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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에 문인상이 누워 있는 이유? 남평문씨본리세거지
검은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고샅길을 사부작사부작 걷는 선비. 그 고고함을 마을로 표현하면 딱 어울리는 곳이 대구 달성의 인흥마을 이다. 길게 이어진 돌담은 정갈하며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고건물에는 기품까지 서려 있어 마을만 둘러봐도 그 어렵다는 사서삼경 뗀 기분이 든다. 한옥이 단순히 숙식의 공간이 아니라 사유와 철학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인흥마을은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자리한 남평문씨 세거지다. 화원의 신도시 아파트 숲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전통을 지키는 마을이 살아 남은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비슬산자락 장단산이 어머니 처럼 마을을 보듬어 주고 있다. 마을 앞은 목화밭 남평 문씨는 고려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가문이다. 1715년 그 18대 후손인 문경호란 인물이 이곳에 터를 닦고 일가를 이루고 산 곳이 인흥마을이다.
풍성한 목화꽃
원래 고려때에는 인홍사(仁弘寺)라는 절집이 있었다. 중창을 거듭한 후 나라에서 인흥(仁興)이라는 이름을 하사해 절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 인흥 마을 이름의 유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 때는 이름을 날렷던 절집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여러 부재가 떨어져 나간 삼층 석탑만이 당시 이곳이 절이라는 것을 홀로 외치고 있는 듯하다. 잘라지고 부러진 부분을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 이써 폐사지의 스산한 바람이 느껴진다.
70년대 번안가요 '목화밭' 노래를 흥얼거리며 목화밭을 휘감으며 마을로 들어선다.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이 수봉정사. 기하학적인 글씨가 시원스러운데 전서체의 대가 위창 오세창 글씨란다. 경유당 글씨도 그의 작품. 당대 명필의 편액만 보더라도 문씨 가문의 위세를 엿볼 수 있다.
수봉정사는 수봉 문영박을 기리며 후손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는 교육장소다.
수봉정사의 대문의 빗장은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육갑문까지 세심하고 조각한 정성이 대견하다. 둥글넙적한 거북등 왼쪽에는 곤괘, 오른쪽은 건괘가 새겨져 있는데, 이 역시 장수와 화재를 막기 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를 달았는데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어 집을 지키기 때문이란다.
좌측 거북 꼬리 부분에 장금장치가 달려 있다.
독야청청
노송이 허리를 굽히고 있으며 가지는 마당에 너른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 아래 석가산을 쌓고
바위 하나를 올려 두었느데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마치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을 보는 듯하다.
엄격한 유교 집안에 도교의 상징물들을 품은 것이 이채롭다.
건물은 고졸하면서도 정교하다. 자로 잰 듯이 끼워 맞췄는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비틀어지지 않고 어긋남이 없는 것을 보니 당대 최고의 목수의 손재주가 닿은 것 같다. 호피문양의 기둥이 튼실한 데 가죽나무란다.
전면 마루 위에 살짝 단을 높이고 측면에 난간을 두어 누각을 하나 만들었고 사백루(思白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사백루(思白樓)..생각은 하얗게. 글씨에 무념무상의 정신이 배어있다.중국 명나라 서예가인 문징명 글씨다 기둥과 대들보가 안정감을 더해준다 가운데 글씨가 이청각(履淸閣).역시 문징명의 글씨.이청이란 청렴을 밟는다는 의미. 마루를 거니는 자체가 청렴이라니 멋지다.
정사의 이름이 된 수봉 문영박은 1919년 별세할 때까지 군자금을 모금해 상해 임시정부에 보낸 애국지사로 나중에 훈장까지 받았다고한다. 마루 아래에 문인석 2기가 누워 있는데 마치 조선판 미이라를 보는 듯하다. 원래는 수봉 문영박의 묘소에 세우려고 후손들이 미리 구입했다고한다. 수봉은 늘 청렴하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화려한 석상을 세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유언을 남기자, 묘소에 세우지 못하고 이렇게 마루 아래에 두었다고 한다. 후손들은 이 석상을 보며 수봉의 깊은 뜻을 되새긴다고 한다.
비록 문인석은 누워있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정신은 하늘을 찌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쾌활' . 호방한 유쾌한 글씨가 맘에 든다. 후대에 추사글씨를 집자한 것 같다.
마당에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우물 井 한자를 알게 해주는 모양이다.
수봉정사 옆 쪽으로 들어가면 인수문고와 중곡서고가 자리한다. 수봉이 자비를 털어 20년동안 모은 8500여 책...1책에 2~3권 분량이라니 약 2만만 분량으로 안동 도산서원의 2배에 육박. 문중문고로는 국내 최대란다. 이곳의 책을 꺼내 수봉정사나 광거당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수봉정사 옆으로 수백년된 회화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선비와 양반을 상징하는 학자수다.
돌담길은 신작로 처럼 곧고 길게 뻗어 있는 것이 특징. 중국의 정전법(井田法)을 따라 가로 세로 길을 만든 계획도시로 보면 된다.
담벼락은 높아 내부를 볼 수 없어 답답하게 보인다. 봄이면 능소화 가지가 담장을 넘어 길게 늘어뜨리는데 이때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이 마을에 모여든다고 한다.
올래길처럽 휘어지지 않고 승용차 한 대 너끈히 지나가는 길이다.
돌담을 한 바퀴 휘감아 돌면 열차처럼 길게 도열한 한옥풍경을 만나게 된다. 연립주택을 보는 듯
합각면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모란에 그려져 있다.
이 자리가 사진 포인트
인흥마을의 또다른 볼거리인 광거당
광거당의 매력은 집 안쪽 보다는 바깥 소나무. 길게 도열한 병정 같다. 이렇게 늘씬한 소나무를 어디서 구했는지 .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재미가 그만이다.
이집의 대문 빗장도 거북, 육갑문은 생략했다. 외양간의 구유는 고목 파 놓았다. 가장 먼저 반긴 것이 꽃담. 소박한 꽃이 활짝 피었다. 정원풍경과 바로 마주치지 않고 기와로 만든 꽃에 시선을 가게 했다.안쪽을 바로 보지 못하도록 만든 지혜의 장치
고양이랑 잘도 어울리네
광거당 현판
수석노태지관(水石老苔池館)..수석과 오래된 이끼 그리고 연못이 있는 집 이
그림같은 글씨는 추사 김정희 글씨다.
남평문씨가 전국적 명성을 얻은 것이 광거당 건물이 건립하고 나서다. 수많은 책을 보기 위해 몇 달씩 머물렀다고 한다. 학문과 예술을 토론하는 문화공간으로 보면 된다.
바깥에서
광거당을 보는 것보다. 누각에 턱을 괴고 바깥을 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합각면에는 꽃이 활짝 피었고 누각에 앉으면 곧은 소나무를 감상하게 된다. 5월이면 모과꽃으로 가득하다고 하는데 마치 레드카핏을 거니는 기분이란다.
수석노태지관(水石老苔池館)을 증명하듯 인흥마을에는 근사한 연못을 조성해 놓았다. 연못을 한 바퀴 돌면서 바라본 마을이 아름답다. 뒤쪽으로 천연보호림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허한곳을 비보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외갓집 한정식 흑태는 남빙양 영하 18도 수심 2000미터에 서식하는 어종으로 DHA는 물론 불포화 지방산인 오메가 3를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성인병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한다. 이 흑태를 갖은 양념을 넣고 찐 것이 흑태찜. 육질이 부드러워 수육을 먹는 기분. 얼큰하고 담백하다. 딸려나온 밑반찬도 깔금하다. 흑태찜전문. 대 5만원, 중 4만원, 소 3만원
053-632-2277 대구 달성군 화원읍 비슬로 512길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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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