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람>, 2025년 봄호.
가는 길
―김소월 따라
맹문재
그날이 오지 않는데
나는 왜 그리워할까?
잊으려 하지만
꿈에 나타나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라진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다시 더 한 번
돌아보는데
서산에 해진다고
강물이 손짓하네
비가 오는 십 리 길
그립다
말을 하니
그리워
그날이 오는데
나는 왜 떠나는 걸까?
이팝나무 아래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저 너머에
얼굴들이 있구나
바위처럼 침묵하면서도 눈뜨고 있었구나
힘은 가까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요란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방향에서 오는 것도 아니구나
파도를 밀고 오는 힘은 나의 과거일 것이다
나의 선택일 것이다
이념이 약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전망을 못 가져
분노하지 못한 채
고리(高利)에 참사당한 시간들
가난한 뿌리가 지상 위로 올라오는구나
서러운 노래가 여울물처럼 나아가는구나
이팝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하늘을 흔들 때마다
꽃들이 부푼다
밀려오는 꽃들의 저 너머에
얼굴들이 있구나
(『시현실』, 2024년 여름호)
맹문재 약력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사북 골목에서』 외. 전태일문학상 수상 외.
카페 게시글
창작실(시)
가는 길(문학과 사람)
맹문재
추천 0
조회 24
25.02.03 16:40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