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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바이블 36 미트라교Mithras
▶ 초대교회의 강력한 라이벌, 미트라교!
#미트라Mithras는 고대 아리아인의 남신男神으로 빛, 진실, 맹약(盟約)을 관장했다.
BC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문헌인 '리그베다'는 미트라의 이름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이 문헌에서는 미트라를 태양신이라고도 기록했으며 소마술과 암소를
둘러싼 신화와 관련이 있다. 다음으로 오래된 사료는 BC 14세기의 '보아즈쾨이문서'로, 거기에서는
히타이트인과 미탄니인 사이의 '맹약의 신'으로 나타난다.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에서는 미트라(Mithra)라고 불리며, '미트라 찬가'에서 '죽음에서의
구세주', '축복을 주는 자', '승리자', '전사(戰士)', '목장(牧場)의 주인' 등으로 불렸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은 #페르시아 제국의 전신인 아케메네스 왕조의 아르탁세륵세스 1세가
BC 449년경에 남긴 비문(碑文)에는 #아후라 마즈다 외에 토착신앙의 미트라와 아나히타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미트라의 기원에 관해서는 조로아스터교보다도 더 오래된 고래 아리아인의 토속신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로마에 미트라교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을 무렵 이 종교는 페르시아의 조르아스터교의 영향 아래
진실과 빛의 신으로 되어 있었고, 최고의 창조신인 아후라 마즈다 신성(神性)의 한 분신으로 등장했다.
미트라는 아케메네스, 아르사케스, 사산왕조 등에서 왕조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고,
그것이 로마제국에서는 밀의종교(密儀宗敎)로 크게 유행을 떨쳤다.
#두산 세계대백과는 미트라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BC 1세기 전반 그리스도교의 유럽 침투 이전에 로마제국(帝國)에 널리 유포되어 있어서 새종교인
그리스도교와는 유력한 경쟁적 종교였다. 미트라의 기원은 고대 인도, 이란의 민족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미트라 숭배는 BC 3세기경에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페르시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자연히 로마로 전파되어 밀의종교로서 특히 군인층에 널리
신앙되었다. 미트라교에 대해서는 고대 페르시아의 아르탁세륵세스 2세(재위 BC 404∼BC 358)의
비문(碑文)에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로마에 나타났던 종교 형태는 이미 그 내용이 크게 변질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소(小)아시아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토착종교와 혼성(混成)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폼페이우스(BC 106∼BC 48) 황제의 동정(東征) 이후에는 로마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대제大帝가 그리스도교로 개종改宗을 하고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점차 모습이 사라져 갔다. 신자의 제례는 종종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바위굴 안에서 행해졌는데,
그 깊숙한 곳 암벽에는 '수소를 도살하는 신'의 부조(浮彫)를 볼 수 있다. 미트라 신전에 건조되었던
우상(偶像)은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당시의 건조물을 포함한 종교적 유적은 현재 유럽에
많이 남아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미트라교 (Mithraism)항목]
미트라의 비밀이 흥미로운 것은 그 종교가 기독교의 근원을 추적할 수 있는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트라의 전승은 기독교의 것에 비해 적어도 600년은 앞서고 있으며, 초대 기독교와 같은 시기에
번성했다. 이 종파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며, 3세기에는 수백 개의 미트라에움(미트라를 숭배하는
지하 사원)들이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던 소아시아, 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과 스코틀랜드
국경에 퍼졌다. 당시 초대교회와 미트라교가 공존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서로에 대해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두 종교가 로마에서 서로를 맞대고 존재하던 수 세기 동안 , 지속적으로 미트라교가 기독교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두 종교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유사성들을 낳았다.
그러나 AD 5세기에 이르면 기독교가 힘을 얻자, 미트라교를 이단으로 선언하고 무자비하게 응징한다.
기독교는 미트라교의 추종자들을 자신들에게 편입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며 수많은
미트라에움들을 교회로 변신시켰다. 오늘날 많은 로마 교회들, 특히 로마의 성 클레멘타인 교회의
지하의 아치형 매장 토굴은 이것이 미트라에움들 이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미트라 신전에 건조되었던 우상(偶像)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에 많이 파괴되었지만,
당시의 건조물을 포함한 종교적 유적은 현재 유럽에 많이 남아 있다.
특히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미트라 솔 인빅투스의 숭배자였고, 그의 영향아래
예수는 솔 인빅투스와 동화 되어 버렸다. 심지어 카톨릭의 교황이나 주교들이 대관식이나 미사 때 쓰는
큰 모자의 이름은 '미트라'(Mitra)이다! (이 모자의 한글이름은 '주교관'이다)
미트라는 아래의 특징을 예수와 공유하고 있다.
① 미트라는 12월 25일에 태어났다.
② 미트라는 동굴, 바위, 처녀 등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③ 미트라를 기리는 거룩한 主의 날은 즉 일요일(sunday)이었다.
④ 미트라는 천궁의 12궁도에 해당되는 제자를 거느렸다.
⑤ 미트라 교도들은 그가 부활한 날에 축제를 베풀었는데, 그 날은 지중해의 여러 나라에서
춘분축제였으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이 되었다.
⑥ 미트라는 태양신의 아들로서 미트라 성 삼위일체설을 형성하였다.
⑦ 전투를 끝낸 미트라는 무덤에 들어갔으며 3일 후에 다시 일어났다.
⑧ 미트라는 소와 관련이 있으며 '목장의 주인'(목자)으로 불렸다.
최근에 20~30 명이 들어 설 수 있는 지하 동굴들이 이탈리아를 포함해서 북쪽으로는 영국,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굴 되었다. 당시 로마 군대가 주둔 했던
곳에서는 어김없이 발견되는 이 동굴들에는 이상한 인물과 장면을 묘사 하는 그림과 유물들이
공통적으로 발견 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동굴들이 미트라교의 예배 장소임을 밝혀내었다.
이 미트라 숭배의 흔적이 발견된 지역은 영국, 이탈리아, 로마니아, 독일,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
이란, 알메니아, 시리아, 이스라엘 및 북부 아프리카 이다.
밀교였던 관계로 그들의 경전과 여타 정보가 전무 했지만, 부분적인 정보들이 당시 역사가들의
서술이나 초대 교회인들의 비판서에서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정보는 영웅전으로 유명한
역사가 플루타르크의 진술이다. BC 67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 하고 있다 "소아시아 남동부 해안의
'실리시아'에 미트라의 밀교 의식을 행하는 큰 무리의 해적 떼가 있었다" 실리시아는 바울이 출생한
다소라는 도시가 위치한 지역 이었다. 가장 오래 된 유물들은 AD 1 세기 말의 것으로, 3 세기에 교세가
가장 확장 되었으며, 5 세기 초 기독교의 득세로 수그러들었다. 신도들은 군인, 관료, 상인이
주를 이루었고 여성은 배제 되었다.
태양신 미트라는 '정복 불가능한 신' 또는 '불멸의 젊은 신'으로 묘사되어 주로 신도들은 군인, 관료,
상인이 주를 이루었으며 여성신도는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 미트라는 귀족과 황실에서 받아들여
제국과 황제의 수호신으로도 격상 되었다. 5 세기경 기독교는 맹위를 떨쳐 많은 미트라의 지하 사원을
접수하여 기독교 사원으로 개조 한 곳이 여기 저기 드러난다. 기독교 교회라고 생각 된 곳에서
채 지워지지 않은 미트라 그림들이 발견된 것이다.
몇 단계의 의식을 거쳐야만 최고의 진리에 접할 수 있었던 그들의 가르침은 철저히 신도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수 되었기에 학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교의에 대해 학설이 분분 했다. 미트라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어로 계약 을 뜻하고, 지역에 따라 마이트로스, 미어, 메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힌두교의 마에트라는 불교와 결합해 미륵신앙으로 발전해 나갔다. 로마의 미트라는
'솔 인빅투스'라고도 불렸으며, 로마의 저술가들에 따르면 미트라의 근원이 페르시아에 있다고 서술했다.
세상의 어둠과 악을 정복하기 위해 태양신 보냈다는 미트라는 사자상으로도 상징되었는데,
사자의 입에는 벌(Bee)이 물려져 있다. 그 벌은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갈대아어에서 '벌'은 '로고스'란 뜻도 된다.)
미트라는 '우라노스'(Ouranos, 빛을 비추는 자)로도 불리는데, 우라노스는 '크로노스'(Kronos)와
동의어로서 크로노스는 '광선을 보내는 자' 혹은 '뿔이 나온 자'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태양신의 아들인 미트라가 빛을 준다는 것을 타오르는 등불과 켜진 밀랍초(wax candle)로써
상징하게 하였고(밀랍초를 사용한 것은 밀랍이 벌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양신
숭배종교의 모든 의식에는 타오르는 등불과 밀랍 촛불의 행렬이 필수적 요소였다.
[Alexander Hislop / 두 개의 바빌론 / P.193~197] 이런 영향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세상의 빛으로 불리워졌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 성 삼위 일체의 두 번째, 즉 아들의
존재로써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생일은 12월 25일로 경축 되었으며, 만인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었다가 3 일만에 부활 했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의 부활절(춘분)주기와 일치하며 점성학의
12궁도(宮圖)에 해당되는 12 제자를 거느렸다고전해진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국가적 축제로 행했던
농신제(農神祭)중에 미트라신을 섬기는 절기로 12월 25일을 정하고 있었다. 이 12월 25일이
로마달력으로는 서양의 동지절에 해당되는데 이 문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초기교회의 신자들이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 안식일(토요일)을 지켰으나, 일요일을 신성하게 여긴
미트라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송낙원은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를 정리하며
초대교회에서의 안식일(토요일) 예배가 말기에 이르러서 서서히 일요일 예배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송낙원 / 세계기독교회사 / 이건사 / P.101]
결국 이런 문화적 토양속에서 로마교회는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나, 모든 교회가 일요일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자 태양신 숭배자 콘스탄티누스가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고 법령을 제정하게 된다.
[교회사 핸드북 / 생명의 말씀사 / P.144]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
[김의환 박사 감수 / 교회사 / 세종문화사 / P.145]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들은 2세기경에 미트라교의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 예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나, 동방 교회들은 321년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질 때까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황제의 칙령 속에 나타난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는 표현을 볼 때, 일요일 휴업령은 로마의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미트라교도들을 배려한 칙령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트라교에 따르면 그 전에 등장했던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따라 세상이 선과 악의 끊임없는
전쟁터였다고 주장했다. 이 세계는 악마의 숙주들과 신을 섬기는 선민들 사이의 치열한 투쟁장소인
것이다. 신성이 육체들, 그리고 빛의 선한 운명을 망치는 어둠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미트라는 태양신의 신성한 아들이자 우주의 어둠에 대항해 싸웠던 선한 구원자를 나타낸 것이며,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악의 앞잡이들과 싸웠다.
미트라는 천체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우주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보아졌다.
미트라는 남녀간의 동침을 거치지 않고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동굴속의 바위에서 솟아났다.
미트라의 조각이 알 모양의 '생식 바위'(petra genetrix)로부터 뛰쳐나오는 벌거벗은 아기의 모습으로
그의 출생을 나타내고 있다. #미트라는 악마의 억압으로 동굴속 바위에 감금되어 있다가
'애욕의 열에 의해서'(solo aestu libidinis)태어난다.
미트라는 12월 25일,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낮은 날에 있는 동지 전날, 목동들만 출생의 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났다. 새벽빛이 밝아올 때, 사제가 미트라의 동굴사원에서 나와 "신이
태어났도다!'"하고 외쳤다고 한다. 신도들은 종을 울리고, 축가를 부르고, 촛불을 켜고, 선물을 나누고,
빵과 물로 성찬례를 행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신화를 살펴보면, 어머니인 데메테르 여신에 의해 동굴에 감춰진 #페르세포네에게
제우스가 뱀으로 변장하고 그녀를 임신시켰다. #미트라와 디오니소스 신화 속에서 그들이 태어나고
잉태된 동굴은 대지(垈地)의 자궁(子宮)을 상징한다.
"이윽고 동굴에 이르자, 마리아가 해산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에 마을로 돌아갈 수 없다고 고백하고는
'이 동굴로 들어갑시다'라고 말했다...(중략)...동굴은 빛으로 가득찼다. 그 빛은 등불과 촛불의 빛보다
밝고, 태양자체의 빛보다 더 찬란했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 2권 /이동진 역 / 문학수첩 / P.63~64]
"요셉이 산파에게 '자 마리아를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산파가 더 들어가려고 할 때 두려움을 느꼈다.
동굴이 찬란한 광채로 가득찼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 2권 / 이동진 역 /문학수첩 / P.21]
위에서 인용한 것은 예수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전혀 다른 2개의 외경이다.
초대교회의 여러 전승들에 따르면 예수도 동굴에서 태어났다. 순교자 저스틴과 3세기의 오리겐은
요셉과 마리아가 머물렀던 집이 동굴 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콘스탄티누스의 모후 헬레나Helena는 유대땅을 돌아다니며, 기적을 통해 예수가 매달린
진짜 십자가를 동굴에서 발견했다며 그곳에 성묘교회를 짓고, 다시 예수가 태어난 동굴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곳에 예수탄생교회를 지었다. 헬레나가 발견한 예수 유적이 날조된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예수와 관련된 유적이 동굴과 관련 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그 당시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 탄생이 동굴에서 이루어졌다고 믿은 것이 확실하다.
현재 정경으로 인정된 예수의 어린시절을 담고 있는 2개의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은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반면에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부모는 여관을 구하지 못해
갓 태어난 예수를 구유에 눕혔다고 한다. (누가복음에서도 특별히 장소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4복음서만 받아들인 후대 기독교인들은 "구유가 있으니까 그 곳은 당연히 마굿간이나 외양간
아니었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세진 박사 같은 고고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 베들레헴에서는 동굴 위에 집을 짓고 아래층의 동굴은 외양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바위를 깎아 구유를 만들었다고 한다.
미트라는 점성학에서 말하는 천궁의 12궁도에 해당되는 제자들을 거느렸으며, 길, 진리, 빛, 말씀,
신의 아들, 착한 목동 등 다양하게 묘사 되었다. 종종 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어린양을 이끄는 것으로
그려졌다.
미트라교의 신자들에게는 정의와 사랑의 신인 오시리스를 찾는 40일이 있었다. 이 종파는 또한 불길한
금요일(예수가 처형된 성 금요일과 유사)을 지켰는데, 그 날은 지구를 비옥하게 한 미트라의 희생적인
황소 도살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전투에서 지친 미트라는 상징적으로 시체로 표현되며, 신성한
동굴(바위 무덤)에 안치된다. 이것은 후에 기독교의 부활절 전의 예수의 고난 주간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미트라는 3일후에 동굴에서 부활한다. 이것은 당시의 춘분 이었으며, 이스터 여신의 축제
(봄의 여신축제, 이스터는 지구의 여신을 이르는 라틴어에서 딴 말)는 미트라의 부활절이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종교회의에서는 이날이 예수의 부활절이 되어 버린다.
또, 미트라의 숭배자들은 태양의 에너지가 인간의 두뇌에 축적 된다고 믿었고 이것이 후광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이것은 후에 중세시대 성화에서 예수의 얼굴모습을 표현할 때 묘사했던 얼굴의
후광에 영향을 끼쳤다.
미트라 숭배자들은 천국과 지옥, 마지막 심판, 구원, 부활 등의 교리를 믿었다. 마지막 성만찬의
이야기도 매우 흡사하다. 카톨릭의 성직자 계급 제도나 예배 형식 및 예배 시 쓰이는 도구들
즉 향불, 예배 의복 등등 모두 미트라와 흡사 하다. 십자가 목걸이, 염주알 등도 마찬가지이다.
미트라 교의 입문은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바위굴 안에서 세례를 시행했다고 한다.
미트라 동굴에서 자주 발견되는 하나의 벽화가 있는데, 그것은 태양신의 아들인 미트라가 황소를
죽이는 그림이다. 돌에 새겨진 벽화에는 황소, 개, 까마귀, 뱀, 전갈들이 나타나며 여러 곳의 그림 중
사자와 물 잔도 종종 포함 되어 있다. 뒷배경으로 많은 별들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 부조물에 나타나는 동물들은 모두 별자리를 가리킨다. 황소는 황소자리이며 그 외에 개, 사자,
뱀, 까마귀, 전갈 등 각각 별자리에 해당된다. 이 그림이 페르시아의 미트라에서는 발견 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은 최근의 학자들은, 로마의 미트라가 이름만 빌렸을 뿐이지 새로운 신앙 체계임을 밝혀
내었다. 로마의 미트라 지하사원에는 황소 도살 장면이 항상 동굴 안에 놓여져 있었는데 이것은
점성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점은 뒤에서 언급하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종교가 불교의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미륵彌勒이란 산스크리트어의 마이트레야Maitreya라는 말을 소리글로 옮긴 것인데, 이 단어는
'계약','약속'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미트라도 '계약','약속'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같은
어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말세사상과의 연관은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된 민중들에게 부각되어 사회 모순을 해결 짓는
구세주로서의 미륵을 갈구하는 사회개혁 이념으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미륵 彌勒 항목]
불교의 미륵사상은 종말론적인 사상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배화교拜火敎를 믿다가 부처의 제자가
된 사람도 있다고 불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종교라는 것은 이렇게 서로 간에 영향을 받아서 생기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할 수 있겠다.
▶ 물고기좌의 시대
필자가 점성술(占星術)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일반적인 기독교인은 "그런 미신이 기독교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라며 반문을 하시리라 본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점성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배경을 분석하기 위해 점성술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점성술을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독교가 등장할 당시
사회상황에서 점성술의 영향은 막대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천체를 관측하는 것은 농사와 관련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천체의 상황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좌우한다고 강렬한 믿음이 있었다.
더욱이 필자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기독교의 주요상징이 점성술과 관련 되었으며, 점성술에
의하자면 예수는 기원을 전후로 해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예수가 등장하는
그 무렵, 즉 기원을 전후로 한 그때는 점성술로 따지자면 상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이다.
BC 1세기의 로마의 저명한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 70년~BC 19년)는 쿠마에의
시빌의 신탁을 상기시켰다. 이 시인은 에콜로구스 제4권에서 구세주가 올 것을 예언했다!
"우리는 시빌의 노래처럼 마지막 시대에 이르렀다. 시간의 여신은 잉태를 했으며 위대한 일련의 시대가
새로워진다. 정의의 성처녀가 우리에게 돌아 올 것이다. 이미 새로운 시대의 첫 탄생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보내졌다. 이 탄생과 더불어 철의 종족은 멸하고 황금인간이 세계를 물려받으리라.
아기의 탄생을 웃음으로 맞아 들여라. 영광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황소는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너의 요람은 꽃으로 장식되어 너를 어루만지리라. 시간이 임박했으니 어서 오라.
모든 창조물이 다가올 시대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보라! 아기여, 너의 어머니를 미소로 맞이하라."
[Virgil /The Pastoral Poems/ Eclogue4 P.53]
시빌(Sibyl)은 천년을 살았다는 그리스 신화속의 무녀(巫女)로 그녀의 위명(爲名)으로 수많은
신탁(神託)이 등장했다. BC 2세기 무렵에 들어서는 유대인들도 시빌의 신탁집을 작성했는데,
AD 2세기 무렵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인들이 기록한 시빌의 신탁집도 등장하게 된다.
시빌의 신탁집에는 종말론과 메시아 사상들로 가득한데 그것을 통해 BC 1세기경의 로마인이
구세주를 예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BC 1세기의 로마인이 여호와의
계시라도 받았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점을 이해하기 위해 그 당시 만연했던 점성술을 살펴보지 않으면
않된다.
농경문화가 시작됨과 더불어 씨를 뿌릴 때, 추수 할 때, 겨울을 나고 봄 농사 준비 할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4 계절의 구분점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의 문명이 북 반구에서 일어났으므로
이러한 지식들은 북 반구에서 관찰 한 것을 나타 낸다.
당시의 태양은 12월 22일 경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다가 3일 쯤 지난 12월 25일 경 부터
다시 지구에 가까이 다가 오기 시작 하는데 이것이 바로 동지(冬至) 이다.(태양신의 탄생)
3월25일경 부터 드디어 밤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을 맞게된다. (봄의 여신축제,
태양신의 부활) 6월25일경 태양은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하지(夏至)다. 하지를 전 후로 밤이 길어지기
시작 하면서 추수를 준비 할 때가 다가온다. 9월25일 추분(秋分) 이후에는 어두움의 길이가 빛을
능가 하기 시작 한다. 이 4 계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의 회전 축이 태양을 도는 면에 대해
23.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남 북을 오락 가락 하는 태양의 운행은 12궁도(Zodiac)를 따라 움직인다.
지구에 적도가 있듯이 천구에도 적도가 있고, 천구 적도와 태양의 운행 항로가 교차하는 곳에
바로 춘분과 추분이 일어난다. 춘분과 추분의 바로 중간 지점들에 하지와 동지가 있는 것이다.
그 교차로는 십자가(X)의 모습과 유사하며 그것을 통과하여 암흑 권세(추분)를 이기며 다시 부활한 것이
태양(=주님)이다.
고대인들은 태양과 달, 움직이는 별들(행성들), 혜성들, 그리고 기타 천체들이 고정되어져 있는
지구 주위를 움직이고 있는 천상의 신들이라고 믿었다. #태양신Solinvictus이 천상의 신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특별히 경배되었고 12월 25일 동지 동안 하늘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 매년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되었다.
황도면(태양이 하늘에서 이동하는 길)이 12궁도를 형성하고 있는 열두 가지의 별-패턴 지대를
지나쳐가기 때문에, 태양은 12궁도의 신들을 낳는 혹은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신으로 생각되었다.
지구는 또 하나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속성을 알면 당시의 #미트라교와 기독교의 밑바닥에 깔린
메시아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지구는 온통 딱딱한 물질로 되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지구의 많은
부분을 물이 차지 하고 있다. 땅들도 여러 종류로 되어 있어서 딱딱한 바위질도 있지만 더 연한 흙으로
이루어 진 곳도 있다. 즉, 밀도가 균일 하게 분포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태양과 달은 지구에 막강한 인력을 행사 하고 있다. 부드러운 물이 달의 인력에
끌려 간만의 차이가 일어나듯이, #태양과 달이 행사하는 인력에 대해 지구는 균일 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지구는 밀도가 다른 물질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구의 자전축이 미세 하게
떨리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잘 조여진 차 바퀴는 떨림이 없으나 덜 조여진 바퀴는 구르며 좌우로 떨려
대는 현상과 마찬가지이다. 이 떨림은 전체적으로 매우 미세 해서 북극이나 남극점을 기준으로 불과
직경 수 미터의 원을 그려 대고 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BC 128 년 #그리스 천체 관측가 히파르코스Hipparchos 였다.
그는 12궁도의 별자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뒤쪽으로 천천히 흘러서, 동지에 다다른 태양의 위치와
비교할 때 하늘의 새로운 위치에 나타난다는 발견을 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히파르코스는 지구는
움직일 수 없었던 것으로 믿었으므로 지구의 떨림현상을 지구 밖의 것, 즉 천체적도의 후진으로
관측했다.
'분점의 세차 운동'(Precession of Equinox)으로 불리워지는 이 현상은 12 궁도중 하나를 완전히
벗어 나는데 2,160 년이 걸리며, 12궁도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25,920 년이 걸린다. 이 주기는
현재 인간이 발견한 정확히 반복 되는 주기 중 가장 커다란 것이다. 히파르코스가 이런 발견을 하던
당시에는 태양신의 부활이라고 말할수 있는 춘분은 양자리에서 나타났다. 양자리 전에는 춘분이
황소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예수가 등장할 무렵부터 현대까지 춘분은 물고기 자리에서
일어 나지만, 2040년경에 이르면 춘분은 물병자리에서 일어 나게 되어 있다.
마찬 가지로 지금의 북극 성(Polaris)은 훗날 우리의 북쪽에서 벗어 나게 되며, 과학자들은 이미
각 시대의 새로운 북극성들의 리스트를 작성 해 놓고 있다.
이제 미트라와 점성술의 관계를 살펴 보자. BC 2000 년 경 부터 예수가 등장할 그 무렵까지
춘분은 양 자리에서 일어 났다. 바로 전 시대, BC 4000~BC 2000 무렵에는 춘분이 바로 문제의
황소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 때의 천구 적도는 개(Canis Minor the Dog), 뱀(Hydra the Snake),
까마귀(Raven), 전갈 (Scorpio the Scorpion)의 자리를 교차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 뱀, 까마귀,
전갈은 12궁도(Zodiac)가 아닌 88개의 #별자리를Constellations뜻한다. 이 모든 동물들이 미트라 사원
벽화의 동물들과 일치 하고 있다.
또한 황소자리 시대의 동지와 하지는 각각 사자(Leo the Lion) 자리와 물병 (Aquaries the Water Bearer)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트라 벽화에 있는 또 다른 비밀 즉 사자와 물잔(Cup)은 이 절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미트라 사원 벽화에 대해서 분분했던 학자들은 위의 설명이 나오자 조용 해져 버렸다.
가장 명쾌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미트라는 12 제자(별자리)를 거느리고, 춘분의 교차 지점에서
하늘의 십자가에 매달려 만인을 대속 해 죽으시고, 3 일 만에 부활 해 황소를 희생 제물로 삼아 만인을
구속 한다!
"영 중의 영이시여, 당신의 뜻이 그러 하시다면, 저희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탄생을 주시어 저희로
거듭 나게 하옵소서.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서 호흡할 지어다" [미트라 기도 문 중]
또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예수라는 존재 자체가 점성학과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상징할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기호는 십자가지만, 그 다음 상징으로는 두 마리의 물고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물고기 상징에 대해 예수가 어부 베드로를 제자로 삼았기 때문 이라고 하거나, 초기 기독교가
박해받을 때 그 기호가 기독교 신자들끼리의 암호였다고 기독교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어째서 두 마리의 물고기인가? 점성술에 대해서 약간알고 계신 분이라면, 즉시 그것이
물고기좌의 상징임을 알아채신 분이 많이 계실 것이다. 점성술에서 물고기좌는 서로 꼬리를 묶고
반대방향으로 헤엄치고 있는 한 쌍의 물고기로 그려진다. 일부학자들은 크리스트(chirst)의 어원이
그리스어의 물고기(ichthys)에서 기원되었다고도 한다.
당시 지중해에서 만연한 점성술로 인해, 그 당시 춘분점이 양좌에서 물고기좌로 넘어가면서
약 2천년동안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믿음이 퍼져나갔음이 분명하다. 점성술에 의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믿음은 곧바로 새로 등장할 태양신의 전설로 퍼져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BC 2000년 경 부터 예수 시대 까지 춘분은 양의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 외 3 절기는 각각 염소, 저울, 게 자리에서 일어 났고, 이 4절기는 천구 적도의 후진이 발견되기
훨씬 전 부터 알려져 있었다. 양의 자리가 끝나고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하니 어린양이 희생 되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미트라교의 예로 다시 돌아가 보면, 원래의 #미트라 신앙은 조로아스터교 보다도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BC 15세기경의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문헌 '리그베다'에 따르면 미트라를 태양신으로
부르며 소와 관련 짓는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미트라 신앙은 애초부터 천문학과 관련해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로아스터교의 등장 이후 미트라는 그 종교의 하위천사로 흡수 되지만, 나중에 이르러서는
거꾸로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까지 흡수하고 새로운 미트라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기원을
따지자면 고대 아리아인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트라 신앙에는 황소좌가 끝나던 시대의
종교관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고 추측된다. 미트라에움의 벽화들이 BC 4000~BC 2000년에
해당되는 별자리와 관련 되었다는 점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황소좌의 시대가 끝나자
미트라는 황소를 잡는다. (실제 현대까지 통용되는 서양의 카드 점치기-Tarrot-에는 아직도 황소시대의
조디액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원래 부질없는 짓이지만 이런 이유로 더 더욱 쓸모없음을 아시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양좌의 시대가 끝나니, 유대인의 여호와는 어린양(예수)을 잡는다. 미트라와 예수는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한 자'로 구별되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한 시대를 마감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미트라는 힘겹게 황소를 죽였으나 치명상을 입고 무덤에 들어간다. 그리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3일후에 부활한다!
이집트 피라밋들이 세워 졌던 시대로 돌아가 보면, 춘분은 황소 자리에서 일어 났으며, 추분은
전갈 자리에서, 동지와 하지는 사자와 물병 자리에서 일어 났다. 피라밋 시대의 주요 절기는
각각 황소, 사람, 사자, 독수리로 대표 되었던 것이고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스핑크스는 이런 지식을
내포하고 있다.
이 이집트 인의 천체 지식이 성경에 흡수 된 흔적이 보인다. 기독교인중 황소, 사람의 얼굴 같은 생물,
사자, 독수리 하면 금방 알아 차리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케루빔의 모습인데,
이 천사의 모습은 기이하게도 점성학에서 쓰이는 별자리가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에스겔 1장 10절]
여기서 등장하는 #황소는황소좌를 뜻하고, #사자는 사자좌를 뜻한다. 사람의 얼굴 같은 생물은
#고대 점성술에서 물병좌에 해당 하는데 현재까지도 점성학 책에선 물병좌를 얼굴이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독수리는 현대에서는 전갈좌로에 해당된다.
현재에도 전갈과 독수리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케루빔의 4개의 얼굴은 점성술로 치자면 황소좌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에스겔이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해도 그는 BC 597년 유대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갔다는 인물이다.
그 시기는 양좌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본 케루빔은 어째서 황소좌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을까?
앞서서 지적했듯이 케루빔은 상당히 오래된 가나안의 토속신 이었을 것이다. 황소좌에 해당되는 시기를
반영하여 케루빔의 모습이 형성 되었으나, 시대가 바뀌어 양좌에 가서도 시기를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양좌로 바뀐 그 시기에 맞춰 다른 신이 등장 했으나 케루빔의 인기는 여전 했을지도
모른다. 미트라가 계속해서 인기를 끌었듯이 말이다. 이 에스겔의 케루빔과 비슷한 네짐승, 네생물 등이
요한 계시록에도 등장 한다.
덧붙여서 최근에 등장한 모 종교 단체에서 케루빔을 가르켜 UFO라는 주장하는등 만화영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야훼를 가르켜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을 보아할 때,
#노아의 방주가 실존했다고 우기는 창조과학회와 그야말로 막상막하 용호상박이다!
적그리스도 작
천리아허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