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군인들 아니 사병들의 대우가 옛날 장교들보다 대우가 더
좋다고 하지만, 40여년전 사병들의 군대 생활은 구타와 기합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뒤 민주화가 되기 시작하고 군대에도 빠른 변화가 오기 시작하
여 구타도 기합도 사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있다.
옛날 삼청교육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않아 내가 군대에 입대하
여 본대에 배치받고 처음으로 유격장에 입소를 한적이 있었다.
정말 인간적인 대우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 무섭고 힘들었던 유격
장의 훈련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라 누가 크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지만 입소식에서 살벌한 분위기답게 선서를 하는데
그 내용도 참 살벌했다.
쉽게 말하면 대부분의 유격장은 군인 조교들이 삼청교육대 훈련을
맡아서 실시했던 곳이라고 말을 하는걸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훈련이 많이 거칠었다.
입소식 선서 내용중, 선서, 중략 ~ 죽거나 다칠시에는 자해나 자살
로 간주한다 ~ 생략 .
말만 들어도 살벌하지만 실제 교육도 살벌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각종 훈련중 기합과 구타가 빈번하게 이어지고 취침시간에도 잠
을 편안하게 재우질 않았다.
조교들이 수시로 내무반에 들어와 잠을 깨우고 기합을 주고가기
일쑤였으니까.
여분으로 가져온 군복인 훈련복이 모자랄경우 훈련으로 젖은 훈
련복을 입고 훈련을 받거나 취침을 하기도 하였다.
그냥 훈련만 받으면 무섭지도 힘들지도 않고 재미도 있을것 같았
는데, 위험한 훈련이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기합을 주고 구타
를 한다는 것이다.
난 군 복무중 일주일씩 두번의 유격훈련을 이수하였다. 대게는 세
번정도 이수 한다고 하던데 나는 한번은 해양훈련소 파견으로 두
번을 이수하게 되었다.
일등병때 본대에 가지마자 첫번째 유격훈련을 수료하게 되었는데,
유격훈련을 다녀오면 외박을 보내준데서 선착순으로 신청하여 유
격훈련을 가게 되었다.
출발에 앞서 고참병들이 마늘쫑이나 깻잎 고추장 등 캔으로 된 반
찬거리와 빵등을 사다가 배낭에 넣어주며, 수고하고 오래서 고맙고
즐거운 마음으로 유격훈련을 받으러 출발하게 되었지만, 유격장
정문앞에 인솔한 차에서 내리자마자 살벌한 분위기가 마음을 불안
하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고참들이 우선순위 외박과 반찬까지 준비해 주면서 잘 다
녀오라고 다정하게 말을 했는지는 유격장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의 힘든 기간을 발바닥이 까맣게 되도록 보냇지만 그
래도 사십여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웃으면서 말하는 특별한 추
억으로 마음에 남아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