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제19회 전국장애인동계체전의 MVP, 금메달 4관왕 노르딕스키 김민영 선수
- “늘 멈추지 않고 한 발 한 발 세계 무대로까지 나아가고 싶습니다”
2020년 이후 2년 만에 전국장애인동계체전이 개최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않았다. 13일부터 나흘간 강원도 강릉․평창, 춘천․횡성 일원에서 치러진 전국동계체전에서 전남장애인체육회 소속 노르딕스키 김민영(가이드러너 김철영) 선수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에서 각각 금메달 2개씩을 획득하며 4관왕에 올랐고,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 노르딕스키계에 떠오른 샛별, 김민영 선수를 만났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A. 안녕하세요? 전남장애인체육회 신인팀 소속 노르딕스키 선수 김민영입니다. 우석대 4학년이고,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손끝으로 읽는 국정’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제가 금메달 4관왕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최우수선수에 선정된 것도 그렇고요. 메달을 확인할 때마다 “아, 꿈이 아니구나!” 안도 반, 놀라움 반의 심정을 느낍니다. 어쩌다 인터넷에서 저와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마다 쑥쓰럽기도 해요.
Q. 스포츠는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요.
A. 저는 시각장애와 더불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시각장애는 중증까지는 아니라 사물 형체 등을 어느 정도 볼 수 있고, 오른쪽 귀의 보청기를 통해 소리를 들어요. 초등학교 교육은 일반학교에서 수료하고, 중학교 진학은 특수학교인 은광학교로 하게 됐어요. 장애가 있다 보니 약간 침착한 성격이 되더라고요. 사실, 장난기나 활동성이 없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되어 굳어지게 됐죠. 특수학교에 진학 후 체육 선생님 권유로 스포츠를 시작하고 나서는 스스로도 느낄 만큼 적극적이 되었죠. 처음에는 체력을 기른다는 느낌으로 유도와 육상을 시작했는데, 안전하게 체계적으로 뛰고 구르면서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런 어느 날, 선생님께서 스키캠프 참여 의사를 물어보셨죠. 호기심에 별생각 없이 전남장애인체육회에서 개최하는 캠프에 참가했고, 거기서 스키를 처음 만나게 됐어요. 도구를 통해 내 몸을 움직이고, 눈 위를 걷고 달리고 활강하는 감각이 신선했죠. 그런 저를 눈여겨보셨는지, 캠프 코침님이 정식으로 스키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하셨어요.
Q. 스키도 유도처럼 넘어지는 법부터 배운다고 하던데요.
A. 반은 맞고 반은 살짝 틀린 말이에요. 흔히 ‘스키’ 하면 연상되는 건 대개 활강하거나 기문을 스쳐 지나듯 돌며 내려오는 모습인데, 그건 알파인스키입니다. 그 경우 안전 등을 이유로 넘어지는 법을 먼저 배우는데, 노르딕스키는 사정이 좀 달라요. 알파인스키는 스키복이 도톰한 편이라 넘어져도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데, 노르딕스키는 얇고 활동적인 스키복이 특징이거든요. 넘어지면 충격이 좀 있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최대한 넘어지지 말자!’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 있어요. 대신 균형 잡는 법을 더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Q. ‘노르딕스키’라는 스포츠가 궁금해지네요.
A. 노르딕스키는 눈이 많이 덮인 북유럽 국가에서 유래한 스키로 ‘설상의 마라톤’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체력 유지와 안배가 중요해요. 장애인 노르딕스키 종목은 평지와 언덕 등 일정 코스를 빠르게 완주하는 것이 관건인 크로스컨트리와 스키와 사격이 결합된 바이에슬론 부문으로 나누어져요. 이건 좀 아쉬운 현실인데, 크로스컨트리스키는 좀 지루하다는 평가를 듣곤 합니다. 코스가 장거리라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차갑고 새하얀 설원에 굴하지 않고 언덕과 평지를 사력을 다해 올라가고 달리며 나아가는 인간 내면의 투지와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경사로를 내려갈 때는 긴 인내를 보상받는 듯 짜릿하기도 하고요. 한편 바이에슬론은 사격 덕분에 비교적 주목도가 높은 편인 것 같아요. 표적을 맞추지 못했을 때 달려야 하는 벌칙주로 규칙을 통한 역전 승부도 가능해 생각보다도 더 반전 있는 스포츠입니다.
Q. 2016년 13회 동계체전이 첫 출전이었습니다.
A. 고등학교 때였고, 메달 순위권에 들거나 입상 이전에 경험상 출전한 것에 더 가까웠죠. 지금 떠올려봐도 그냥 무사히 완주했다는 결과만 생각날 뿐 당시 기억은 좀 흐릿해요. 알게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었던 모양이에요. 대신 코치님 및 스태프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더욱 인상 깊게 남았죠. 당시만 해도 장애인 노르딕스키의 지원이나 훈련 체계 등이 지금에 비해 단단히 자리 잡지 못했던 때였거든요. 시설이나 인력 등 지역 간의 편차도 어느 정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치님들은 정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선수들을 독려하고 격려해주셨어요. 성적이나 성과에서 무한정 자유로울 수 없지만, 최대한 연연하지 않고 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스키를 스키로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그런 점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Q.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동계체전의 성과가 더 뜻깊을 것 같네요.
A. 감회가 남다르긴 해요. 사실 이번 동계체전은 기쁜 한편, 아쉬움이 남는 경기이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메달로 4관왕에 올랐고,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건 꿈같은 일이었어요. 하지만 마음속으로 선의의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는 선수가 사정상 출전하지 않았거든요. 경기장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그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아요. 언제고 기회가 닿으면 함께 눈밭을 달릴 수 있겠죠. 그날을 기대하며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더 분발할 겁니다.
Q. 스키는 가이드러너와의 호흡이 중요한 스포츠 중 하나죠.
A. 맞아요. 귀에 찬 수신기를 통해 가이드러너의 신호와 안내로 코스를 완주하니까요. 경기뿐 아니라 훈련부터가 서로 호흡을 맞추는 과정의 연속이죠. 눈의 질감이나 스키의 상태 등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해가며 무수한 완주를 반복하거든요. 경기 코스를 생각하며 어느 구간에서는 속도를 내고, 어디에서는 체력 보존을 위해 속도를 늦추는 등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의논하기도 하죠. 특히 김철영 가이드러너는 전남체육회 현역 바이에슬론 선수이기도 해서 연습이 막힐 때 조언을 받곤 합니다. 가령 바이에슬론에서 사격할 때 코스 완주하느라 상승했던 심박을 낮게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려워 애를 먹곤 했거든요. 김철영 가이드러너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어요.
Q. 선수로서 느끼는 아쉬움이 있을 것 같아요.
A. 사격을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에슬론의 스키 장비는 동일하기에 준비 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장비 지원이나 훈련 일정 등을 전남장애인체육회에서 지원해주고 있고요. 전공 수업 시간표와 겹치지 않게 신인팀 단체 훈련에 참여하고 있어요. 단지 스키를 연습할 수 있는 시설이 대관령 쪽에 있어서 오고가는 길이 좀 번거롭긴 해요. 가까운 곳에 스키 연습장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가지고 있죠.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A. 우선 베이징 패럴림픽을 진지하게 응원할 계획이에요. 인터뷰가 국정 4월호에 실린다고 하니, 그때는 이미 패럴림픽이 모두 끝나 있겠네요. 사실 전에는 패럴림픽을 봐도 담담했는데, 이번 제19회 동계체전에서 좋은 성과를 낸 덕인지 부쩍 관심이 생겨요. 훈련이나 여타 대회를 거치며 베이징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신의현 선수나 원유민 선수를 만나기도 해서 더욱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언젠가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 순간을 위해 안주하지 않고 계속 눈을 헤치며 나아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또 항상 뒤에서 지지해주시는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장애인 노르딕스키에 꾸준한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계속해 발전된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혜령 기자
* 이 원고는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74호에 쓸 목적으로 작성된 기사의 초안입니다. 실제 국정에 실린 내용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