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가을 장마라고...
2021년 8월 22일 일요일
음력 辛丑年 칠월 열닷새 보름날
어제부터 내리는 비는 가을 장마가 시작되었기 때문
이란다. 일반적으로 장마라고 하면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하여 비가 이어지는 날씨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때아닌 비가 느닷없이 이어져 늦장마,
가을 장마라고 하는 말이 생겼다. 기후의 변화는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요, 우리네
인간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연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시도때도 없이, 계절에 상관없이 장맛비
처럼 이어지다 보니 그렇게 일컫는 말이 생기는 것
아닐까 싶다.
젊은 날에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분다해도 달라지는 일상은 없었다.
허나 지금 이곳에서 텃밭농사를 지으며 산골살이를
하는 요즘에는 비가 내리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서
하늘이 허락하는 휴일인 셈이다. 하긴 산골살이에는
휴일 개념이 없다. 일을 하다가도 내가 쉬면 휴일인
것이요, 휴일에 일을 하면 평일인 것이니까 말이다.
정해진 룰이나 틀이 없는 자유로운 일상이라 할까?
더군다나 이젠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에서 은퇴하여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흔히들 말하는 백수 생활인데
휴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에 도시에 살며
이런 시기를 맞이했더라면 어떡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한 느낌이 든다. 지금 촌부는 텃밭농사로
인하여 딴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산골살이는 내게
주어진 복된 혜택이겠지 싶다.
각설하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종일 오락가락하던
어제 촌부의 일상으로 들어가 뭘 했는지 살펴보자.
이른 아침엔 비가 내리지 않고 잔뜩 흐리기만 했다.
아내가 걷기운동을 하는 사이 밭에 나가 드문드문
나있는 잡초도 뽑고,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고추밭에 들어가 붉게 익어가는 고추를 살펴보았다.
호박밭에 들어가 적당하게 자란 호박을 하나 따고,
가지밭에서 가지를 제법 많이 땄다. 올해는 가지를
말려서 보관을 하고 있어 이번 것도 말려야 하는데
비가 내려 두었다가 비가 그치면 썰어 말릴까 싶다.
오이도 조금 땄는데 못생겼다. 이제 거의 끝물이라
그렇다. 오이는 따는 대로 모았다가 오이지를 담가
냉장보관을 한다. 방울토마토는 지금이 한창이다.
이것은 딱히 보관을 할 방법이 따로 없으니 따와서
아일랜드 식탁에 놓아두고 시나브로 생으로 먹는다.
다음날 또 따오면 전날 것은 주스로 만들어 마신다.
아침나절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빈둥빈둥 시간 까먹기를 한다. 그러다가 좀
갑갑하여 우산을 바쳐들고 밭으로 나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며 돌아다녔다. 고추밭을 지나다보니
한창 익어야 하는 시기에 비가 내려 방해가 된다는
듯이 울상을 짓고 있는 것 같았으나 며칠전에 심은
배추밭으로 갔더니 빗물을 듬뿍 머금고 있는 어린
배추는 살판이 났다는 듯이 싱그럽게 보였다. 이런
두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촌부가 바로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아비가 된 듯한
그런 심정이라고 할까? 하지만 결론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 외 무슨 뾰족한 방도가 있겠는가 싶었다.
저녁무렵에 추적거리던 비가 잠시 주춤한 사이에
새로 일군 밭에 씨앗을 뿌려놓은 무우 새싹을 솎아
주고 북을 주었다. 떡잎 사이로 본잎이 석장 정도가
나와 꽤 많이 자라 그 중에 튼실한 녀석 하나만 남겨
두고 모두 다 뽑았다. 솎은 어린 새싹은 그 자리에서
떡잎을 떼어내고 본잎만 골라 아내에게 갖다주었다.
얼마 안되어 겉절이 보다는 샐러드를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새싹 비빔밥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뭘 할
것인지는 아내의 몫이니까 알아서 할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다가 장독대 입구에 세워놓은 아치형
지지대가 빗물을 잔뜩 머금은 더덕 덩굴과 잎, 꽃의
무게를 못이겨서 곧 자빠질 듯이 현관쪽으로 숙여진
모습이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힘을 못받는 것이
문제였다. 칭칭 감고 있는 덩굴이 상하면 한창 피고
있는 꽃이 시들시들 상하고 씨앗도 맺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교체를 할 수 없으니 방법은 단 한 가지 뿐,
반대편으로 끈을 묶어 흔들림을 방지하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보기는 좀 그렇지만 양쪽에 한 줄씩
끈을 묶어놓았더니 괜찮을 것 같다. 장독대에 드나
드는 아내가 좋아하고, 지금 꽂이 많이 피어 초롱이
매달려 있는 모습 같아서 아주 보기도 좋을 뿐더러
머잖아 씨방이 생겨 씨앗을 품어 여물면 늦가을에
많은 더덕씨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손을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첫댓글 가을 장마에
걱정하는 모습, 나막신 장수와 우산장수의
심정이라는 글에 적극으로 공감합니다~~
규모가 작은 텃밭농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농부랍시고 날씨에 따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잎 크로바의 행운이 우리 모두에게 안겼으면 좋겠습니다.^^
촌부님의 일상은
책으로 내도 될듯요^^
좋은글
정성들여 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 과찬이십니다.
산골살이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올렸을 뿐인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