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 69
-아저씨! 어떻게 할 거예요? 고발 할 거면 얼른 하세요. 우리도 바쁜 사람이니 고발하면 얼른 조서 꾸며야 할
것 아닌가요? 아니면 여기 경찰 아저씨 말씀대로 치료비를 받으시겠다면 내가 드리지요. 얼마를 드리면 되겠
어요?
하면서 지갑을 열더니 십만 원 권 수표를 한 장 꺼내어 책상위에 소리가 나도록 탁! 내려 놓고는
-이거면 되겠어요? 아니면 모자라요? 더 드려요? 말씀하세요. 고발할 거면 지금이라도 병원 가셔서 진단서 끊
으세요. 그 비용도 내가 내 드릴까요?
하더니 뒤에서 우물쭈물 거리며 서있는 여자를 돌아보면서
-아가씨! 정신 차려요. 내가보니 아가씨가 저 아저씨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아직은 모텔까지 갈 생각은 없고,
그래서 그러는 줄은 알지만, 그래요! 아가씨가 저 아저씨에게 끌려서 모텔에 들어가고 그래서 오늘 아가씨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하도록 그냥 두었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그건 분명 잘못이네요. 그러니 그 잘못에 대한 대
가는 치룰 테니까, 얼른 결정 하세요. 고발하든지 치료비를 받고 끝내든지. 어떡할래요?
하는데 문이 삐걱 열리더니 중년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며 진철과 진우를 보더니
-아! 여기들 있었네요. 하긴 여기밖에 올 데가 없지, 경찰서로 가기 전에 여기에서 조서를 꾸며야 할 테니까.
진우가 돌아보니 바로 조금 전에 여자를 태웠던 택시 기사였다.
-무슨 일로?
경찰이 그렇게 말하며 들어서는 남자에게 묻자
-아! 수고들 하십니다. 저는 택시 기사인데, 조금 아까 싸우던.
하면서 진철과 사내를 보더니
-이 사람이요. 이 여자 분을 내가 태웠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냥 가다가 생각해보니 이미 싸움은 벌어졌는데
아무래도 이 남자분이 피해를 볼 것 같아서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왔지요.
여자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빨개진다.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서있다. 경찰들이 그 여자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고, 지구대 내에 있던 몇 사람도 그 남자와 그 여자를 돌아가며 쳐다본다. 잠시 그렇게
있더니 여자가 갑자기 남자의 팔을 휙~ 잡아 이끌며
-가요!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들이 문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경찰이 하하하 웃으며
-아가씨 대단하네요. 잘하셨어요. 저 여자 오늘 밤에 큰일 당 할 뻔 한 것을 구해주니까. 그래도 차마 자기 남자
가 잘못했다는 것은 말하지 못하겠던 모양이지요.
-우린 어떻게 하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피해자가 나가버렸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합니까? 얼른들 가세요.
-명보원님! 우리 가요.
진철은 정신이 없다. 인정님이 늘 순진하고 약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보통이 아니었다. 진철은 진우가 끄는
힘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는데 바로 앞에서 그 사내를 여자가 택시에 태우고 택시는 남자만 태우고는 달려
간다.
진철이 담배를 피우며 헛기침을 하자 여자가 돌아서서 두 사람을 보더니 꾸벅 인사를 하면서
-아까는 죄송했어요. 그리고 고맙구요. 사실은 차마 그 안에서 그 남자에게 불리한 말을 하기가,
-됐어요. 아가씨 마음 이해해요. 다음부터는 좀 더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데이트 하세요.
진우가 그렇게 말하고는
-명보원님 우리 가요.
하면서 멀리서 오는 택시를 보더니 손을 흔든다.
‘명보원님이, 지난 번 영통 홈플러스 앞에서는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를 나무라더니 오늘은, 그러고 보니 평상시
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분이 이상하게 그런 일에는 저렇게 예민할까?’
-내가 오늘 너무 심했지요?
-아네요. 잘 하셨어요. 다만 말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싶기는 하지만요.
-처음에는 참으려고 했어요. 인정씨도 곁에 계시고 해서, 그런데 그 사내자식이 싫다는 여자에게 너무, 이상하
게 나는 그런 꼴을 못 봐요. 흥분이 돼서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의협심이 강하신가 봐요. 호호호
-의협심이요?
‘인정님이 내 마음을 아세요. 그 아이도 저 여자도 어쩌면 명혜가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요. 아니, 명혜
는 늘 당했었지요. 아니 어쩌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쩌면 지금도 원치 않는 서러움을 당하며 살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8
‘눈이 오려나?’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를 널다 말고 창을 통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던 진우는 하늘에 잔뜩 끼어있는 검은 구름을
보면서 생각을 한다. 습기가 가득한 창의 한 부분을 손으로 닦은 후 올려다 본 하늘이었다.
연말 분위기는 제일 먼저 홈플러스 같은 다수의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매장들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빤
짝 이들이 가로수에 치장되기 시작하였으며 트리가 세워지고 알록달록하고 예쁜 장식들로 꾸며지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인계동도 연말 분위기를 타기 시작하였다. 송년 회식이 유흥주점들과 유흥주점 주변의 식당들로부터 리
어카 포장마차에까지 사람들을 끌어 들였고 들뜬 사람들의 무계획성 같은 소비가 돈이라는 괴물을 통해서 나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둘러 일찍 저녁식사로 일차 회식을 끝낸 사람들은 노래방으로 노래 바로 나이트로 룸살롱으로 몰려 들기 시작
하였고 늦게 모임을 갖은 사람들은 그런 자리를 찾다가 자리가 없어서 호프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음식으로 안주
를 할 만한 식당으로 몰린다. 호프집은 테이블의 간격을 좁게 하여 한 명이라도 손님을 더 받기 위하여 애를 썼고
식당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밤 열두시가 넘으면 순대 떡볶이 어묵을 파는 곳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떤 사람은
어묵을 간장에 찍은 후 돌아서거나 뒤로 빠져 나와서 먹곤 한다.
라벤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녁 열시가 조금 넘으면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열한 시가 넘으
면 자리가 없었다. 아가씨들이 모자란다. 평상시에는 한두 명 모자라면 보도 방을 통해서 해결하곤 하지만 연말
에는 보도 방에서 조차 아가씨를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속된 말도 개똥도 약에 쓰려니 없더라는 말이 이럴 때에
는 소용되는 말이 된다.
아가씨가 모자라면 어쩔 수 없다.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라는 등식은 깨지고 남자 둘에 여자 하나가 되거나 남자
넷에 여자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나마 없을 때에는 되돌아가는 손님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