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호동(金湖洞)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있는 동. 면적 1.94㎢, 인구 5만 6613명(2008)이다. 응봉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남쪽은 한강과 접해 있고, 북쪽은 하왕십리동·행당동, 서쪽은 신당동·옥수동과 마주하고 있다. 옛날 이 마을은 무수막, 무쇠막, 무시막 등으로 불렸고 한자로 수철리(水鐵里)라고 하였는데, '금' 자는 수철리의 '철'에서 나오고, '호' 자는 '수' 자에서 인용하여 이름 지어졌다. 이곳을 무수막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시대에 선철을 녹여 무쇠솥, 농기구 등을 주조해서 국가에 바치거나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들과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왕십리 배추장수와 함께 물쇠골 솥장수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남부 두모방 수철리계(水鐵里契) 지역이었다. 1911년 경성부 두모면(豆毛面) 수철리로 불렸고, 1914년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漢芝面) 수철리로 되었다.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금호정(金湖町)으로 되었고, 1943년 성동구에 속하였으며, 1946년 금호동으로 바뀌었다. 1964년 금호1, 2, 3, 4가의 4개 동으로 분할되었다. 법정동인 금호동은 행정동인 금호1가~4가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역은 옛날에는 다른 지역보다 지형이 가파르고 기복이 심해 인구가 많지 않았다. 척박한 토지를 잘 활용하여 과수원을 일구어 많은 수익을 올리던 곳으로 복숭아가 많이 났다. 금호2가동은 대부분 지역이 구릉지대로서 금호초등학교 주변 일대는 금호3가동의 금남시장 자리와 함께 수철리 공동묘지였다. 금남시장 자리를 논골이라 불렀는데, 이는 대부분 산간지대로 밭만 있던 곳인데 이곳에만 논이 약간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금호4가동 한강변에는 조선시대에 무수막 나루터 또는 수철리 나루터가 있어서 강 건너 압구정 나루와 연결되었다. 용비교 밑은 여울목을 이루어서 용이 승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금호3가동의 남쪽에는 독서당길, 서쪽으로는 동호로가 지나고, 지하철 3호선 금호역이 있다.
2. 금호동(琴湖洞)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 1981면 대구직할시 북구 금호동을 거쳐 -1995년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이 되었다. 금호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관문동이다. 지명은 금호강에서 유래한다. 동쪽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중앙고속도로가 지난다. 유적으로는 금호강 북쪽의 금호J.C에서 새터와 문주마을로 갈라지는 삼거리 서쪽 일대에 고분군이 있다. 현재 과수원으로 경작되어 거의 파괴되었으며 1990년 대구교육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여기서 발굴된 돌덧널무덤은 길이 2m, 너비 80cm, 높이 60cm 정도로 뚜껑돌[蓋石]을 사용한 구덩식 돌덧널무덤인데, 굽다리접시와 항아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3. 금호동(金湖洞)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동. 원래 광산군(光山郡) 당부면(當夫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심곡리(心谷里)·만호리(晩湖里)·금부리(金府里)·망월리(望月里)를 합하여 서창면(西倉面) 금호리가 되었다. -1957년 광주시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다시 광산군 서창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광산구가 신설되면서 광주직할시 광산구 금호동이 되었다가 -1995년 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행정동은 서창동)이 되었다. -2001년 행정동인 서창동에서 금호풍암동으로 분동되었으며 -2003년 금호동으로 분동되었다. 행정동은 금호1동과 금호2동이다. 동 은 금부리와 만호리에서 따온 것 이다. 금부(金府)·마재·만호실·망월·심곡(心谷)·심실 등의 옛마을, 뒷등·백석산(白石山:74m) 등의 야산, 민골·비둘깃골·시르골·절골 등의 골짜기, 방석밭·양림들 등의 들판, 큰 바위인 부사대 등이 있다. 고택으로는 120여 년 된 안홍기·김갑봉 가옥 등이 있으며, 사찰로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법륜사와 대한불교 천태종 소속의 금광사가 있다. 주요 기관 및 시설로는 금호종합사회복지관·서구문화센터·서구청소년수련관·도서관·금호중학교 등이 있다. 유적으로는 곽의당, 일신당, 광산이씨효열각, 심곡재 등이 있으며, '각서원답통(各書院答通)' '출의록(出義錄)' '병천사원임안' 등의 고문서가 있다. 문화재로는 병천사(광주 유형문화재 11)가 있다.
4. 금호동(金好洞)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서쪽 끝에 위치하는 행정동이다. 법정동 금곡동과 호매실동을 관할하며, 금호동 이름도 두 법정동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화성지'에 매곡면(梅谷面) 금곡리가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도봉리 · 금곡리 · 조산리 3개 동을 합쳐 지금의 법정동인 금곡동이 만들어졌다. 호매실동(好梅室洞)도 조선 시대 수원부 매곡면 관할 지역에 속하였다. '화성지'에 기록되어 있는 매곡면 '노리촌(老裏村)'과 '자목리(自木里)'가 지금의 호매실에 해당한다. 지금의 호매실동에 있는 자연마을 명칭인 '노림마을'과 '자목마을'이 각각 옛 노리촌과 자목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매곡면의 '호매실'과 '자목리'를 합쳐 비로소 오늘날의 호매실동이 되었다. '호매실'이란 명칭은 동 명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 일대를 관할하는 면 이름 '호매절(好梅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팔도지도'에 증악산(曾岳山, 현재의 칠보산) 서쪽 일대를 관할하는 면으로 호매절면이 표시되어 있다. 호매절면은 지금의 호매실동 일대를 관할하던 면이다. 호매절면은 나중에 폐지되고 대신에 매곡면과 용복면이 새로 생겼다.
5. 금호동(琴湖洞) 강원도 속초시에 있는 동. 면적 1.43㎢, 인구 7976명(2008)이다. 북쪽에 영랑호가 있고, 서남쪽에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둘러쳐져 있으며, 동쪽에 속초항과 동해가 있어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특히 영랑호는 석호(潟湖)로 각종 어족이 풍부하여 낚시터로도 유명하며, 주위에 울창한 솔숲과 기암괴석들이 있어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양양군 소천면 속초리(束草里)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 도천면(속초면)에 편입되고, -1942년에 속초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속초리가 4개 구(區)로 나누어짐에 따라 속초리 사구(四區)가 되어 속초 사구·사구라고 불렀다. -8·15 광복 후 북한의 통치를 받다가 -1951년에 수복되고 피난민으로 인구가 급증하자 일부를 떼어 속초 육구(六區:청학동)로 독립시키고, -1966년 속초시 동제 실시에 따라, 영랑호와 영금정(동명동 소재)의 이름을 따서 금호동으로 개칭하였고, -1988년 10월에 이전 속초리 삼구(三區)인 중앙동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금호동은 법정동인 금호동·중앙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초시청·속초시의회, 중앙파출소·속초해양경찰서 속초지서·속초우체국·속초어촌지도소·속초시도서관·근로복지회관 등 공공기관과 속초시 공설운동장·시외버스터미널·중앙시장 등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동남쪽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로와 영랑호를 일주하는 관광도로가 있다. 영랑호 남쪽 호수가를 '금장대(金將臺)'라고 하는데, 속초시 수복 후 군정관으로 선정을 베푼 제11사단장 김병휘(金炳徽)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여 세운 정자가 있던 곳으로, 정자는 오래되어 헐어지고 그 기단부만 남아 있으므로 김장군이라는 뜻에서 김장대라고 불렀을 터인데 지금은 금장대라고 하고, 지도 등에도 금장대로 표기되어 있다. 금장대 옆에 범처럼 생겼다 하여 범바위(호암)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영험하다 하여 부녀자들이 치성을 드리고 무당들이 살풀이를 하였다고 한다. 공설운동장·중앙시장·시외버스터미널로 갈라지는 교차로 부근을 '짱터'라고 하는데, 청년들이 장치기를 하며 놀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근로복지회관 뒤에는 '유정충 선장 동상(劉禎忠船長銅像)'이 있다. 이 동상은 1990년에 제주도 해역에서 이로작업 중에 돌풍으로 배가 침몰하는데도 탈출하려고 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602호 하나호 침몰 중…”이라는 긴급구조 신호를 보내 선원 21명 전원은 구조되었으나 자신은 배와 함께 목숨을 잃은 유선장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강원도지사, 강릉·동해·삼척·속초의 시장·군수 및 도민들의 성금으로 세운 것이다. 영랑호 동남쪽 가에 '통천군민 순국동지 충혼탑'이 있는데, 이 탑은 북한 공산당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반공전사자 및 6·25 전쟁의 전몰군경 중에 통천군(通川郡) 출신 114명의 충혼을 위로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전국의 통천군민의 성금으로 1969년에 세워 해마다 팔월 한가윗날 수많은 실향민들이 이곳에 모여 망향제를 지내며 실향의 한을 달랜다. 충혼탑 옆에 1952년 속초시가 수복되고 군정관으로 있던 제1군단장 이형근(李亨根)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여 세운 '이형근 장군 덕정비'가 있다.
6. 금호동(金湖洞) 전라남도 광양시(光陽市)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광양시 동남부, 광양만 해상에 위치하는 섬이었다. 서쪽 광양만 해협 너머로 광영동(廣英洞), 마동(馬洞), 중동(中洞), 북쪽 바다 너머로 진월면(津月面) 망덕리, 동쪽 바다 너머로 태인도(太仁島)의 태인동, 남쪽 바다 너머로 여수시(麗水市) 묘도(猫島)와 마주한 곳이다. 원래 광양군 옥곡면 금도(金島), 또는 금호도(金湖島)이다. -1896년 돌산군(突山郡) 북면 관할, -1899년 태인면(太仁面) 관할을 거쳐 -1914년 광양군 골약면(骨若面) 금호리가 되었다. -1983년 태금면(太金面) 금호리가 되었으며, -1986년 전라남도 광양지구출장소 태금면 관할이 되었다. -1989년 광양출장소가 동광양시(東光陽市)로 승격됨에 따라 금호동으로 개칭되어 행정동인 금호동, 금당동(金塘洞)이 분할 관할하는 법정동이 되었다.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광양시 관할이 되었으며, -1998년 행정동이 금호동으로 통합되었다. 대여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한적한 어촌이였으나 1982년 포항제철의 광양제철소가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사라지고 제철소 사원 숙소 등의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동쪽 태인동과 태인연륙교, 서북쪽 광영동과 연륙 금호대교, 서쪽 중동과의 연륙 길호대교로 연결되어 광양제철선과 2번국도가 통과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본부, 백운메디칼센터, 금호동주민센터, 금호치안센터, 금호119안전센터, 전남 드래곤즈 축구장, 백운쇼핑센터, 광양제철중고등학교, 광양제철초등학교, 광양제철남초등학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