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의 이름 앞에서
가끔 우리 가문의 뿌리를 생각하다 보면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
마음이 조용해질 때가 있습니다.
삼봉 정도전.
그 이름은
역사책 속의 한 인물만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는
자부심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기준이기도 합니다.
삼봉 선생은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이 맞물리던 자리에서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세운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생각은
한 개인의 뜻에 머물지 않았고,
글과 제도와 정치의 방향이 되어
조선이라는 나라의 뼈대를 이루었습니다.
그 큰 이름을 생각하면
후손 된 사람으로서
마음 한쪽이 숙연해집니다.
우리는 흔히
위대한 조상을 두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말합니다.
물론 그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그 자랑보다 먼저
책임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큰 조상을 모셨다는 것은
그 이름을 내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이름 앞에서
내 삶을 한 번 더 반듯하게 세우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삼봉 선생께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셨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기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을 바르게 돌보고,
사회에서는
이웃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며,
말과 글에서는
품격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일.
그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후손이 조상의 이름을
조용히 이어가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후손이라는 것은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신을 기억하고,
그 이름 앞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부끄럽지 않게 하루를 살아가려는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후손이라는 말이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부족한 사람입니다.
살아오며
늘 반듯한 길만 걸은 것도 아니고,
때로는 흔들렸고,
때로는 멀리 돌아왔으며,
세상의 무게 앞에서
작아진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한 가지 마음은 더 분명해집니다.
적어도 삼봉의 후손이라는 이름 앞에서
함부로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입니다.
글 한 줄을 쓰더라도
가볍지 않게 쓰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며,
작은 행동 하나라도
가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피고 싶습니다.
삼봉 선생의 뜻을
제가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 깊은 학문과
큰 정치적 포부와
한 시대를 설계한 정신을
오늘의 제가 온전히 감당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의 옷깃을
한 번 여미게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삼봉이라는 이름은
오늘의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정신의 등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문이란
단순히 성씨를 함께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통해
그 뿌리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문중이란
과거를 기리는 곳이면서도,
동시에 오늘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가문의 이름이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영광이
오늘을 사는 후손들의 말과 태도와 삶 속에서
조금씩 다시 빛났으면 합니다.
크게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고,
조용히 품격을 지키며,
가족과 이웃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남는 것.
그 또한
삼봉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작은 길이라 믿습니다.
삼봉 정도전.
그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면
자랑보다 먼저
마음가짐이 떠오릅니다.
더 크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더 높이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후손으로 산다는 것은
영광을 물려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영광 앞에서
내 하루를 반듯하게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저는
삼봉의 이름 앞에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다짐해 봅니다.
큰일은 못 하더라도
작은 삶 하나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자고.
그것이 후손 된 사람이
조상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예의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