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생물이 없었다면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의 화성판 "(감자)삼시세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진=테크인사이더
[말랑말랑과학-70]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과학실험, 우주정거장 유지·운영 등 험난한 우주 환경 속에서 각종 임무를 수행하려면 튼튼한 체력은 필수다. 다만 우주비행사들도 사람인지라 우주에서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주에서 병에 걸리면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된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상비약과 진단·검사장비 등이 실려 있어 기본적인 응급처치와 간단한 진단·검사가 가능하다. 우주인들을 위해 지상에서는 의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언제든 필요한 의학 상담을 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제는 크게 아플 때다. 우주에서 병원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ISS 우주인들은 임무를 포기하고 지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나 유럽우주국(ESA) 등은 우주비행사와 이들이 사용할 화물 등을 ISS로 보낼 때 철저한 소독을 거친다. 병원을 쉽게 가기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장기간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깨끗이 멸균된 물품을 우주로 보내는 것이다. NASA 등의 이런 철저한 노력이라면 우주인들을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최근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와 UC버클리 등 공동연구팀은 ISS에서 사용하는 먼지 필터 등을 수거해 분석했다. 놀랍게도 연구팀은 먼지 필터에서 기회감염성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기회감염성 박테리아란 사람의 면역력이 좋을 때는 별문제 되지 않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면 체내 감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의미한다. 연구팀은 ISS에서 발견된 박테리아가 우주비행사들 건강에 해를 끼치는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는 미생물학회지(Microbiome) 최근호에 게재됐다.
박테리아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NASA 등이 우주선 발사 전 우주선과 화물을 철저히 소독한다고는 하지만 우주선이 발사될 때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이 슬쩍 무임승차, 혹은 히치하이킹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된 박테리아는 ISS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고 도킹 과정에서 우주선에서 ISS로 건너가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우주로 나간다고 해서 더 위험할까. 과학자들은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우주를 여행하는 박테리아는 사람의 장 속에 들어간 것과 유사한 환경에 놓였다고 착각하게 된다. 우주선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장(腸)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테리아도 사람과 비슷해 자신이 익숙한 환경에 놓였다고 생각하면 긴장을 풀고 마음껏 증식하기 시작한다. 이때 전염력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 미생물이 없었다면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의 화성판 "(감자)삼시세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진=테크인사이더
실제로 2009년 한 연구에서는 우주로 보낸 살모넬라균은 지구에서보다 3~7배까지 전염력이 강해진 것이 확인됐다. 살모넬라균은 식중독을 유발한다. 우주비행사들이 먹을 음식은 이미 지구에서 살균 포장해 보내기에 식중독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우주 공간에 나간 박테리아가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보여준 좋은 연구인 셈이다. 같은 해 진행된 다른 연구에서는 대장균(E. Coli)과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이 우주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2013년 연구에서는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역시 우주 생활에도 끄떡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녹농균은 패혈증, 만성기도 감염증 등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화상, 외상 등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물론 박테리아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마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척박한 화성의 토양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위해 비옥한 토양이 필요했던 그가 사용한 방법은 자신의 장 속 미생물을 활용해 퇴비를 만드는 것이었다. 미생물이 없었다면 그는 구조대가 오기 전 화성에서 굶어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화성판 '(감자)삼시세끼'는 미생물 덕이다.
[이영욱 과학기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