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소감】
원로 학자님과 개미군단의 행군
― 정구복 교수님이 ‘올사모’ 카페에 올린 ‘생활 이야기’를 읽고
윤승원 수필가
특별회원으로 참여하는 ‘올사모’(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카페에서 존경하는 원로 교수님의 인상 깊은 생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낙암 정구복 교수님(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이 ‘올사모’ 카페 ‘생활 이야기(Life Story)’ 코너에 올리신 『둘레길을 걷다가 본 개미군단의 행군』 제목의 ‘개미 관찰기’입니다.
(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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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이야기(Life Story)
둘레길을 걷다가 본 개미군단의 행군
정구복
개미군단의 행군 <배경설명> :
둘레길을 가기 위해 집에서 나서면 오솔길의 두 번째 산마루에는 2m가 넘는 긴 장대가 뉘어져 있습니다. 누구인가 쉬어 가라고 양쪽에 고정한 못이 박혀 있습니다. 한 두세 달 전부터 이곳에 앉아 쉬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진 참조)
왜냐하면, 이 장대 위에는 수백 마리인지, 수천 마리인지 수만 마리인지 셀 수 없는 솔 개미 떼가 계속 행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미군단의 행군’이란 용어를 붙입니다.
방향도 양 갈래입니다. 좌로 가는 행군, 우로 가는 행군이 있습니다. 개미 행군에 쉼터의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나는 빼앗김보다 더 소중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이를 보고 어설픈 즉흥시를 지어 봅니다.
개미 행군에 수천 마리가 달립니다. 쉬지 않고 계속 달립니다. 모든 개미의 크기가 같습니다.
계급장도 없고, 지휘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깃발도 어떤 신호도 보이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갔다가 다시 회군하여 오는지도 모릅니다. 뒷 개미가 앞 개미를 충실하게 따릅니다. 참으로 지키는 신의가 철저합니다.
행군의 목표가 무엇일까? 우로 가는 개미군단, 좌로 가는 개미군단
2행인지, 3행인지, 4~5행인지 앞뒤가 서로 밟히지도 않습니다. 길이 없는 데도 좌우충돌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개미 군단에게 이 점 미안합니다. 날씨가 궂은 날이나 쾌청한 날이나 밤이나 낮이나 행군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내가 주시해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참나무 숲에서 매암매암 매미의 음악이 들립니다.
내가 내려올 때 보아도 행군은 계속됩니다. 행군의 진정한 속내는 알 수가 없습니다.
행군하는 개미군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순 기후 현상인지 아닌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징조를 알려주는 것은 아닐는지 개미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지만 그게 그것임을 느낍니다.
2026.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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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흥미로운 옥고를 읽었습니다.
원로 역사학자님으로서 평생 큰 학문적 업적을 쌓아오셨는데, 이번에는 역사책이 아니라 개미들의 행군을 역사처럼 기록하셨습니다.
제목부터 재미있습니다.
「둘레길을 걷다가 본 개미군단의 행군」.
집을 나서 둘레길로 가는 길목, 두 번째 산마루에 2m가 넘는 긴 장대 하나가 놓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쉬라고 양쪽에 못까지 박아 놓은 쉼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장대가 사람의 쉼터가 아니라 개미들의 행군 도로가 되어버렸습니다.
수백 마리인지, 수천 마리인지, 아니면 수만 마리인지 헤아릴 수도 없는 개미들이 장대 위를 쉬지 않고 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수님은 어쩔 수 없이 쉼터를 개미 군단에게 양보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재미있어집니다.
사람이라면 의자가 하나만 있어도 서로 먼저 앉으려고 할 텐데, 개미들은 그 긴 장대를 차지하고도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좌로 가는 무리와 우로 가는 무리가 있는데도 부딪치지 않습니다. 2행, 3행, 4~5행으로 줄지어 가면서도 앞뒤가 서로 밟히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지휘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깃발도 없습니다.
계급장도 없습니다.
확성기도 없습니다.
훈련 교관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행군은 질서정연합니다.
교수님은 이 모습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행군의 목표가 무엇일까?”
참으로 역사학자다운 질문입니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사정을 물어볼 수도 없고, 개미군단의 작전계획서를 열어볼 수도 없습니다.
교수님 역시 “행군하는 개미군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대목이 저는 재미있습니다. 평생 역사를 연구하신 원로 학자께서 개미 앞에서는 잠시 ‘초보 관찰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학문의 진정한 자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 보고,
궁금한 것은 궁금한 채로 남겨두는 것.
개미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바라보는 것.
그런 자세가 오히려 오래 학문을 연구해 오신 학자님 인품의 깊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문득 인간 세상의 행군도 떠올랐습니다.
인간도 평생 어디론가 열심히 걸어갑니다.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직장으로,
농부는 들녘으로,
저는 <명상의 숲길>로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개미들은 말없이 행군하는데 인간은 말이 많습니다.
개미들에게는 계급장이 없는데 인간은 직함을 붙입니다.
개미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고 길을 양보하는데 인간은 좁은 길에서도 먼저 가려고 다투기도 합니다.
개미들은 지휘자가 보이지 않아도 질서를 지키는데 인간은 지휘자가 있어도 질서를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마지막에 쓰신 “개미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지만 그게 그것임을 느낀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참 묘한 일입니다.
개미에게는 짧은 한 생이지만 그들 나름의 하루가 있고, 인간에게는 수십 년의 긴 생이 있지만, 우리 역시 결국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개미는 장대 위를 오가고,
인간은 세상이라는 긴 장대 위를 오갑니다.
개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인간 역시 자신의 인생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계속 걷습니다.
교수님께서 쓴 즉흥시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개미 군단에게 이 점 미안합니다.”
저는 이 한마디에서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낍니다.
개미를 하찮은 벌레로 보지 않고, 오히려 인간보다 질서 있게 살아가는 작은 생명으로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교수님이 내려올 때 다시 보아도 행군은 계속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날씨가 궂어도,
날씨가 맑아도,
밤이든 낮이든,
교수님이 바라보든 바라보지 않든,
개미군단의 행군은 계속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우리는 자기 길을 걸어갑니다.
박수를 받는 날도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햇살이 눈 부신 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정구복 교수님이 개미를 관찰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개미를 통해 인간을 관찰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연구하신 원로 학자께서 이번에는 아주 작은 개미들의 행군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큰 질문 하나를 던져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행군하고 있는가?”
그리고 저는 교수님의 개미군단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작은 개미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행군을 바라보다가 우리 인간의 행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긴 장대 하나가 오늘은 사람의 쉼터가 아니라 개미들의 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대 위에서 벌어진 작은 행군이 원로 학자의 눈을 거쳐 한 편의 ‘생활 이야기’가 되었고,
그 이야기를 읽는 우리에게는 삶의 질서와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큰 길이 되었습니다.
역시 의미 있는 ‘생활 이야기’는 작은 것을 크게 보게 합니다.
작지만 따뜻한 것, 인간적인 것, 사람 냄새나는 것, 흥미로운 발견, 인생에 대한 재해석, 그것을 글로 기록하는 마음이 소중합니다.
‘수필문학’의 출발선도 그렇습니다. ‘수필문학’의 본령도 ‘구체적 사실의 의미화’입니다.
오랜 세월 ‘수필 문학’을 공부해온 저의 시선을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작지만 따뜻한 것을 보아온 훌륭한 인품의 관찰자는 개미 한 마리에서도 세상을 읽어냅니다.>
2026.9.13.
윤승원 소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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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장선생님 댓글
♧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9.13.10:10
제 글보다 윤 선생의 글이 더 넓고 의미 깊은 해석을 하셨습니다.
이 글을 올릴까 말까 주저하기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윤 선생의 평을 받고 보니 오히려 부끄러워집니다.
이는 겸사가 결코 아닙니다 .
좌우행군이 평화롭게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진보와 보수가 진흙탕 싸움에 험담을 하고 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자연이 인간의 스승입니다. 작은 생명체에서도 그 질서와 사랑과 겸손을 배웁니다. 이 나라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애국심도 변질되어 갑니다. 표면적으로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사는 것같아도 정신적 행복은 따르지 못합니다.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가요?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 국가에서 좌파가 왜 극성입니까? 일사불란한 개미군단에게 애국심과 도덕심과 양심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