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벽 / 박일
벽면을 가득 채운 담쟁이 그 흡착의 비밀을 알 수 없었
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저렇게 완벽하게 덮을 수 있다니, 잎
새 지던 가을에야 깊은 내막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진액
까지 뽑고 또 뽑아 올려 발톱으로 몸을 삼았던 한 여자의
일생,
오남매를 위해
팔월의 갯바닥이며 황토밭을 기어 다녔던 어머니
닳은 무릎에
마디마디에 바람이 들었다
검고 푸른 이파리 같던 머릿결
뚝뚝 진다
잎 진 자리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는, 담쟁이가 감싸준 푸른 벽이었다.
박일
전남 해남 출생
2006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등단
시마을 동인
전북작가회의 회원
한국 난 영농조합법인 사무총장
시집 《난》 현대시 시인선 106호
시인 박일에게 있어서 시의 문양은 결코 요란하지 않고 새소리 바람소리의 손목을
끌고 오며 두륜산 산소리를 불러내기도한다. 때로 법성포 어물전꽃게를 사들고 올
때에는 비닐주머니구멍사이 뚜욱뚝 떨어지는 파도소리로 마음 속의 섬 하나를 불러
내어 가만가만 적셔주기도 하는 사람,
__강인한(시인) 책표지 중 부문
가시거미가 집을 짓는다. 휘청거리는 풀들의 너울과 살 비비는 소리를 몸통에 삭혀
고요한 풀과 풀을 엮는다. 생각은 줄 사이의 공간에 둔다. 저 조차 헛짚는 그 공간이
절로 파를 떨 때가 있다. 그것을 거미는 적는다. 저대로 통과해 간 것들을 그리며 끈
끈한 줄을 뽑는 가시거미가 여기, 있다.
__김유석(시인) 책 표지에
박일 시인의 시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그것은 푸른색이라는
시각 이미지이다. 그의 시에서 푸른색은 물과 식물을 함께 관류하는 생명의 색이다. 삭
막한 벽과 같은 시인을 푸른 담쟁이로 감싸서 푸른 벽이 되게하던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
<푸른 벽>이야말로 시인에게는 생명의 원천이다. 시인은 이 시의 말미에 "해변에서, 나는
너무 먼 뭍으로 왔네"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원한 고향인 어머니와의 멀어짐
이다. 어머니와 멀어진다는 것은 시인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죽음과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인은 죽음의 땅에서 재생을 꿈꾼다. 그러므로
시인은 생명의 원천인 푸른 것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초록의 시"를 쓴다
__박남희(시인, 문학평론가) 책 표지에
단비가 내리는 초여름 오후, 현대시 시인선 106호 박일 시인의 시집, "난" 사람
좋은 미소의 집배원 손끝 온기와 함께 왔다 그와 내가 시,라는 배를 타고 온
시간의 파도, 그 거리가 얼마였던가 강산이 여덟 해, 초록의 풀잎 옷을 벗고 입
은 세월, 주고받은 마음의 온기가 늘 한 결이었단 회고(回顧)를 한다 꼭 피붙이
동기간이 장도(壯途)에서 보낸 챔피언의 메달을 만난 듯 기쁘다 그 진정의 난실
의 꽃대에서 풍기는 향이 집안 가득 그윽하다 (최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