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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31일
지난 26일부터 마산수산시장 장어거리 앞 마산어시장, 창동·오동동, 돝섬 일원에서 제19회 마산국화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보러갔다.
동래시외버스터미널에서 9시 20분 버스를 타고 10시 조금 지나 마산 협성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축제장 가는 셔틀버스는 마산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15분 걸어서 셔틀버스를 탔다. 셔틀버스는 30분마다 다니는데 잘 못 선택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가는게 옳았다. 시내버스 정류소는 터미널 길 건너 조금 아래쪽에 있는데 800, 102, 버스를 타고 어시장 정류소에 내려 10분정도 걸으면 된다. 돌아갈 때는 피로하므로 택시를 타는 게 좋다.
축제는 돝섬에서도 열리기 때문에 이번에는 돝섬을 먼저 구경하고 나와서 점심식사하고 축재 구경을 했다. 마산 돝섬 셔틀버스를 타고 축제장에 도착 먼저 돝섬을 구경하기로 하고 11시 축제장 오른쪽 돝섬유람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돝섬으로 갔다. 돝섬은 마산의 대표 해양관광지이며, 마산시 창포동 항구와 약 1.2km 정도 떨어져있고, 유람선을 타고 가면 약 11~13분 정도 소요된다. 유람선은 평소에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국화축제 기간에는 10~15분 간격으로 탄력 운행한다는데 아닌 것 같았다. 유람선 이름은 해피랜드 이고 유람선비는 왕복 8,000원, 경로는 7,000원이다. 표를 살 때 먼저 승선신고서를 작성하고 배를 타는데 배의 정원은 94명이다. 탈 때 인원수를 정확히 체크해서 태운다.
돝섬에 도착하여 돝섬을 한 바퀴 돌려고 했는데 중간에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어서 정상으로 가서 쉬다가 내려왔다.
1시 30분 배를 타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다음 운항시간까지 부두에서 30분을 기다렸다. 결론적으로 돝섬을 구경한 것은 잘 한 선택이고 추천할만한 관광지이다.
돝섬과 관련된 전설
옛날 가락국 왕의 총애를 받던 한 후궁이 있었다. 이 후궁이 어느 날 궁중에서 사라져 골포(마산의 옛 이름) 앞바다 섬으로 와 되돌아가지 않았다. 신하들이 환궁을 재촉하자 돌연 황금돼지로 변해 무학산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황금돼지가 맹수로 변해 백성을 해치고 다녔다. 화가 난 왕은 군병을 동원해 황금돼지를 포위했고 그 순간 황금돼지는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섬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 섬은 돼지가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변해 돝섬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 후 밤마다 섬에서 돼지 우는 소리와 함께 괴이한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마침 골포에 은거하던 최치원이 어느 날 그 소리를 듣고 활을 쏘자 소리와 함께 광채도 사라졌다. 이후 최치원이 섬에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 제를 올린 뒤에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돌섬에서 나와 점심으로 축제장 앞에 있는 식당에서 회비빔밥을 사먹었는데 잘 못 선택이었다. 마산에는 아귀찜이 유명한데 지난해에 사먹은 아귀찜을 사먹을걸 하고 후회했다. 점심을 먹은 후 본격적으로 국화축제 구경에 나섰다. 올해 축제 슬로건은 '오색 국화 향기 가을 바다 물들이다'다. 주 행사장인 마산수산시장 장어거리 일대 방재언덕은 온통 오색 국화 천지다. 형형색색으로 활짝 핀 국화 화분 13만6천여개로 만든 9천500여개 작품이 마산만을 배경으로 한 축제장을 가득 채웠다. 올해는 마산항 개항 120주년이다. 창원시는 이를 기념해 항해하는 배와 배를 조종하는 방향타 모양을 본 떠 높이 7m, 폭 15m짜리 대형 국화작품을 만들어 축제장 입구에 설치했다. 한 그루에서 나온 가지에서 1천500송이 동시에 꽃이 피는 작품인 '다륜대작'(多輪大作)도 볼 수 있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 저도 연륙교, 3·15 의거탑, 괭이갈매기,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 등 마산 상징물과 자유의 여신상, 뽀로로 등 만개한 국화로 만든 각종 캐릭터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허나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비슷한 주제의 작품이 너무 많이 설치되어 마음에 꼭 와 닿는 작품이 없었다. 날씨도 덥고 사람도 많고 돝섬 행차에 힘이 빠져 많이 구경을 생략해서 옳게 보지도 못했다. 셔틀버스에서 어느 분은 매일 간다고 했는데 한번은 더 가도 그것도 야간에 가면 될 듯싶었다. 방랑 시인 김삿갓
이 마을 어귀에는 <순천댁 >이라는 과부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객줏집을 하고 있었다 . 오늘 석양 무렵에 일행 네 명의 장사꾼들이 그 집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 네 명이 순천댁을 함께 찾아와 일천 냥이 들었다는 돈 주머니를 맡기면서 , "이 돈은 우리 네 사람의 장사 밑천이오 . 이 돈을 내일 아침까지 아주머니가 좀 맡아 주시오 . 내일 아침에 우리 네 사람이 함께 와서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는 , 어느 누구한테도 이 돈을 주어서는 안되오 !" 하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
순천댁도 <그러마 > 하고 돈을 맡아 두었다 .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객실에 들어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만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 우물가에 나가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
머리를 감고 방에 들어온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에게, "여보게들 ! 머리를 감기는 했는데 빗이 없네 그려 . 누구 빗가진 사람 있나 ?" 하고 말했다 .
그러자 술을 마시던 세 명의 친구들은, "이 사람아 ! 우리한테 무슨 빗이 있겠나 . 빗이 필요하거든 주인 아주머니에게 빌리게나 !"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 그것은 커다란 동티였다 . 머리를 감은 친구는 방에 들어와 잠시 머리를 매만지다가 , 친구들을 향해 , "그래 , 자네들이 빗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주인 아주머니에게 빌릴 수밖에 없겠는 걸 !" 하고 중얼거리며 슬며시 부엌으로 내려왔다. 부엌으로 내려온 사내는 시치미를 떼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손을 내밀어 보이며 , "아주머니 ! 아까 우리가 맡겨 두었던 돈 주머니를 이리 내어 주시오 ."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순천댁은 돈을 맡을 때 약속했던 일이 있는지라 , 돈주머니를 호락호락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
"그 돈은 네 사람이 함께 오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내 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
그러나 사내는 방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쳐댔다.
"여보게들 ! 아주머니가 좀처럼 주려고 하지 않으니 어떡하지 ?"
서로 술을 마시며 떠들던 친구들은 주인아주머니가 빗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줄만 알고, "아주머니 ! 걱정 말고 내 주시오 . 우리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오 ." 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순천댁은 그 말을 <돈을 내 주어도 좋다 >는 말로 알아듣고 돈주머니를 사내에게 내 주어 버렸다 . 이렇게 사내는 친구들과 순천댁을 교묘하게 속여 가지고 돈주머니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고 , 그 길로 줄행랑을 놓아 버렸던 것이다 .
김삿갓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혼자 탄식해 마지않았다 .
"원 , 친구들 간에 그럴 수가 .... 그러나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에 불과하군요 ."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데 불과하다뇨 ? 그게 무슨 말씀이오 ?"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 장사를 함께 떠난 친구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해 , 순천댁에게 돈을 맡기면서 <네 사람이 함께 와서 달라고 하기 전에는 누구한테도 돈을 내 주지 말라 >고 했다니 , 그게 어디 친구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 그것은 친구간이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 도둑놈 심보를 가진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그러니 도둑놈 간에 남에 물건을 가로채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
마을 사람들도 김삿갓의 말을 옳게 여겨,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
"노형의 말씀이 지당하시오 . 친구를 믿지 못하는 것들이 어디 사람인가요 ?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서 긴급 회의를 하는 까닭도 바로 그놈들 때문이라오 .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놈들을 상대하고 싶어서 모인 것은 아니오 .
늦은 저녁에 주막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 우리 늙은이들이 주막으로 달려가 보았다오 . 그랬더니 한 놈은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리고 , 나머지 세 놈들은 순천댁을 상대로 대판 싸움을 하고 있더란 말이오 .
싸움의 원인은 간단하지요. 네 놈이 함께 와서 찾아가야 할 돈을 한 놈이 가지고 도망을 갔으니 , 세 놈은 순천댁더러 돈을 물어주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거예요 . 우리들은 싸움을 말리다 못해 , 사태가 암만해도 심상치 않기에 , 순천댁을 어떡하면 구해줄 수 있겠는지 모두들 이리로 몰려와서 긴급 회의를 하는 중이오 ."
김삿갓은 노인들의 고충을 듣고, 장삿꾼놈들의 무지막지한 행패에 새삼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뭐요 ? 그놈들이 순천댁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행패를 부린다고요 ?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
김삿갓이 너무도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마을 노인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
"아니 ! .... 맡겨 두었던 돈을 돌려 달라고 하는 말이 어째서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이오 ?" "우리들은 노형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구려 !"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김삿갓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돈을 맡아 두었으면 ,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런가 . 그러나 김삿갓은 정색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
"순천댁은 그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협박과 공갈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 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의 말을 점점 이해할 수가 없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 그러자 향장 노인이 거두절미하고 , 김삿갓에게 이렇게 캐물었다 .
"아니 그럼 , 노형은 돈을 물어주지 않고도 그놈들의 행패를 능히 막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오 ? " "노인장과 마을 사람들이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 달라고 하시면 , 제가 지금이라도 주막으로 가서 그자들의 행패를 막아내도록 하겠습니다 ."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시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
"그러면 우리들이 노형을 모시고 갈 테니 , 노형이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주시오 . 순천댁이 그자들에게 참혹하게 당하고 있는 꼴이 너무도 측은해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
이리하여 김삿갓은 한밤중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막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도착해 본 주막의 풍경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 세 명의 젊은 장사꾼들은 순천댁을 방 한복판에 밧줄로 꽁꽁 묶어 놓은 채로 , "네 년이 우리들의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 하고 고함을 질러 대며 무시무시한 엄포를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삿갓은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 세 명의 장삿꾼에게 벼락 같이 호통을 질렀다 .
"이 사람들아 ! 이 여인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못살게 구는가 !"
그리고 여인의 결박을 손수 풀어주면서, 장사꾼들을 다시 이렇게 나무라 주었다 .
"만약 이 여인에게 죄가 있거든 나에게 말해 보게 !"
장사꾼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가 추상같은 호통을 치는 바람에, 처음에는 기가 푹 꺾였다 . 호통 소리가 하도 요란스러워 동헌에서 사또가 출두한 줄로 알았던 것이다 . 그러나 김삿갓의 차림새가 관원이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이자 , 장사꾼들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 "대관절 당신은 누구요 ?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남의 싸움에 들이닥쳐 , 감 놔라 대추 놔라 지랄발광이오 ?" 하고 금방이라도 덤벼들 기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
이렇게 펼쳐진 상황에서는 자칫 세 놈의 젊은 장사꾼을 섣불리 다루다가는 김삿갓이 무슨 봉변을 당하게 될지 모르는 험악안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더욱 호기롭게 세 명의 장사꾼을 향해 너털웃음을 웃어 보였다 .
"허허허 ,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까 주먹으로 해보자는 말인가 ? 그러나 자네들이 이 마을에서 억지로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려다가는 마을 사람들 손에 뼈도 추리지 못하게 될 걸세 ."
김삿갓이 엄포를 놓자, 병풍처럼 둘러서 있던 마을 사람들은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소근거렸다 .
"이 판국에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걸 보니 , 저 양반은 혹시 암행어사가 아닌가 ?" "그러게나 말야 . 암행어사는 언제든지 저 양반처럼 거지꼴로 변장을 하고 다닌다면서 ?" "그래 , 그래 ! 암행어사가 틀림없어 ."
그렇게 소근거리는 소리가 김삿갓의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였으니, 장사꾼들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 아닌게 아니라 장사꾼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더니 별안간 풀이 죽어 버리며 , "우리가 저 여인에게 맡겨 놓은 돈을 저 여인이 엉뚱한 사람에게 주어 버렸다는 말이오 . 그래서 우리가 맡겨 두었던 돈을 변상하라고 하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말입니까 ?" 하고 이번에는 말로만 대드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이때다 싶어 , 장사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마을 노인들로부터 사건의 내용을 자세하게 들었네 . 자네들은 저 여인에게 돈을 맡기면서 , 네 사람이 함께 찾으러 오기 전에는 누구한테도 그 돈을 내 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 "
그러자 셋 중의 한 사람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여인과 분명하게 그런 약속을 했어요 . 그런데 저 여인은 우리들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 도망간 친구에게 돈을 몽땅 내 주었거든요 . 그러니까 우리들은 약속을 어긴 저 여인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아요 ? "
누가 들어도 지당한 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순천댁을 도와주려고 함께 달려왔지만 , 감히 입을 떼지 못하는 것은 , 장사꾼들의 주장이 너무도 정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지금 김삿갓이 장사꾼들에게 조리있게 따지고 들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씩 고개를 끄덕이며 김삿갓의 다음 말을 침을 삼키며 듣고 있었다 .
"자네들 말을 듣고 보니 , 네 사람이 함께 와야만 돈을 찾아갈 수가 있겠는데 , 지금은 세 사람만이 맡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처음 약속과 엄연히 다른 것이니 돈을 내어 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그러자 장사꾼들은 김삿갓의 말을 듣고 날카롭게 반격을 가해 온다.
"저 여인이 사기꾼에게 자기 맘대로 돈을 내주었으니까 모든 책임은 저 여인이 져야 할 게 아니냔 말이오 . 우리가 맡겨 둔 돈을 돌려 달라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요 ?"
김삿갓은 다시 한번 장사꾼들에게 말했다.
"저 여인이 사기꾼에게 속은 것은 자네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일세 , 약속대로라면 자네들이 맡겨 놓은 돈은 네 사람이 반드시 함께 와야만 내 줄 수 있는 돈일세 . 그런데 지금처럼 세 사람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약속이 틀리지 않느냔 말야 . 일단 약속을 했으면 약속은 어디까지나 지켜야 하는 법이네 . 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세 . 네 사람이 함께 오기만 하면 돈은 언제든지 내 주겠네 . 만약 그렇지 않고 자네들처럼 한 사람씩 뿔뿔이 찾아왔을 때에도 돈을 내 줘야 한다면 , 저 여인은 여러 사람에게 돈을 몇 번이고 갚아 줘야 할 게 아닌가 ? "
김삿갓이 반론을 이같이 교묘하게 전개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김삿갓의 이론과 주장이 정당함을 알고 크게 기뻐하였다 . 장사꾼들도 김삿갓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맛만 쩝쩝 다시고 있었다 .
김삿갓이 다시 말했다.
"자네들이 돈을 꼭 찾아가고 싶거든 , 지금이라도 도망간 친구를 붙잡아 가지고 , 네 사람이 함께 오도록 하게 . 그렇게만 해 준다면 약속대로 돈을 즉석에서 돌려주도록 하겠네 .“
김삿갓은 잠시 뜸을 두었다가, "친구들의 돈을 가로채 가지고 도망간 놈은 물론 나쁜 사람이야 . 그러나 그 사람도 자네들의 친구임에는 틀림이 없지 않은가 ? 한 번의 실수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법 , 세 사람이 힘을 모아 그 친구를 찾아내어 네 사람이 함께 와서 , 맡긴 돈을 돌려받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나 ?"
장사꾼들은 잠시 저희끼리 수군거리더니, 김삿갓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
"우리 세 사람이 그 친구를 잡아오면 , 당신은 우리들의 돈을 책임지고 돌려줄 수 있단 말이지요 ? " "물론이지 . 네 사람이 함께 오기만 하면 돈을 돌려주고 말고 ! 그 점은 내가 책임을 지겠네 . 그렇게 되면 친구도 살리고 자네들도 돈을 돌려받게 되니 , 모두가 좋을 게 아닌가 ."
그러나 그들은 무엇인가 미심쩍은 데가 있는지, 잠시 미적거리다가 이렇게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
"우리가 그 친구를 잡아오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오 . 그동안에 그 친구가 그 돈을 죄다 써버렸으면 어떡하지요 ? 그런 경우에도 당신은 일천 냥을 고스란히 돌려주시겠소 ?"
김삿갓은 생각조차 못했던 허를 찔리는 바람에 가슴이 뜨끔했다. 솔직히 말하면 , 김삿갓은 눈앞의 일을 수습하는 데만 급급하여 돈을 가지고 도망간 놈을 붙잡아 오기만 하면 만사가 원만하게 해결되리라 믿고 있었다 . 그러나 도망간 놈이 그동안에 돈을 써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돈을 가지고 도망간 놈이 며칠 사이에 일천 냥이라는 거금을 송두리재 써버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라도 써버렸다면 , 그 돈만큼은 이쪽에서 보충을 해 주어야 할 판이었다 . 김삿갓으로서는 백 냥은 커녕 단돈 스무 냥도 보태 줄 여유가 없었다 . 난처해진 김삿갓은 문득 방안에 노인들을 둘러보며 도움의 말을 청했다 .
"마을 어른들께서도 들으신 바와 같이 , 여기 있는 젊은 세 사람이 돈을 가지고 도망간 친구를 꼭 잡아올 테니 , 순천댁에게 맡겨 둔 일천 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스란히 돌려 달라는 겁니다 . 저도 그렇게 해 주기로 이미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 그러나 도망간 사람이 그동안 돈을 얼마간 써버렸다면 , 그 액수 만큼은 마을 어르신들께서 보충을 해 주실 수밖에 없겠습니다 . 거기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 "
그러자 마을 향장 노인이 김삿갓과 방안에 다른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우리 마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선생이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해 주시려고 애쓰고 계신데 , 우리가 어찌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 다행이 우리 마을에는 오백 냥이 넘는 곗돈이 있으니까 , 부족한 돈이 그 정도에 이르게 되면 ,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다 . 마을에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 하고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
그러자 방안을 가득 메운 이십여 명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향장 어른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 하고 모두 안도의 손을 모으는 것이었다 . 세 젊은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한 듯 , "여보게들 !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 그 놈을 빨리 잡아오도록 하세 ! 제깟놈이 뛰어야 벼룩이요 , 날아야 하루살이지 . 도망을 가면 어디까지 갔을 것인가 ? 우리가 잡아 옴세 !" 하며 돈을 가지고 도망간 친구놈을 잡아오려고 어둠속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
이처럼 걱정스러웠던 문제가 일단락되자,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에게 몰려와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 더구나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순천댁은 즉석에서 술상을 차려다 놓으며 , "만약 저 어른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쯤 황천객이 되어 버렸을 것이옵니다 . 게다가 제가 죽으면 어린것들은 꼼짝없이 거지꼴을 면치 못하게 되었을 것이니 ,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치옵니다 ." 하며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하는 것이었다 .
마을 사람들과 술을 나누어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김삿갓은 늦은 밤 사랑방에 돌아와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아 , 길을 떠날 행장을 차리자 , 이를 본 마을 노인들은 김삿갓을 한사코 놓아 보내려 하지 않았다 .
"그놈들이 돌아와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 선생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마을을 떠나셔서는 아니 되시옵니다 ."
마을 사람들은 김삿갓을 진짜 암행어사로 알았는지, 대접이 여간 융숭하지 않았다 .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날부터 끼니 때마다 이 집 저 집에서 번갈아 김삿갓을 초대를 해가며 융숭한 대접을 해 줄 뿐만 아니라 , 밤이면 모두가 김삿갓이 거처하는 사랑방으로 모여들어 구수한 덕담을 목침돌림 하듯 들려주는 것이었다 .
친구들의 장사 밑천을 가지고 도망친 사내가 친구들에게 붙잡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에 일이었다. 도망간 놈은 일천 냥 중에서 서른 냥만 썼고 나머지 돈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 마을에서는 서른 냥만 보태주면 그만이었다 .
도망갔다 잡혀 온 자는 면목이 없는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김삿갓은 마을 노인들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순천댁을 대신해 장사꾼들에게 돈 주머니를 돌려주며 ,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
"자네들이 순천댁에게 맡겨 두었던 돈은 이자리에서 내가 돌려주겠네 . 자네들은 이 돈을 돌려받거든 장사를 잘해 가지고 모두가 부자가 되도록 하게 . 끝으로 자네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 이번처럼 자네들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의 원인은 자네들이 서로 간에 친구를 믿지 못한 데서 일어난 불상사였다고 나는 생각하네 . 친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친구를 도둑놈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 경우에 따라서는 자네들 자신도 도둑놈이 될 수 있다는 말일세 . 우정은 돈으로 살수 없는 귀한 것이네 . 서로 간에 믿고 살았으면 이번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니 , 이제부터는 서로를 믿고 살아가도록 하게 . 믿음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은 부생공자망 (浮生空自忙 : 허망하게 떠 도는 인생살이 )에 그칠 것이네 "
네 명의 장사꾼은 한결같이 고개를 수그린채 아무 말도 못했다. 김삿갓은 그들을 돌려보내고 자기도 길을 떠나려고 하였다 . 그러나 길을 떠나려 하자 ,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 마을 노인들조차 길을 떠나려는 김삿갓을 한사코 붙잡는 것이었다 .
"선생은 우리 마을에 은인이시오 . 순천댁을 살려준 선생을 어떻게 비가 오는데 떠나게 할 수 있겠소 . 떠나시더라도 비가 개거든 떠나십시오 ."
고맙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꼼짝 못 하고 비가 개기를 기다릴 밖에 없었다 . 그러나 비는 좀체 개지 않았다 . 이러한 와중에 또 다른 재미가 생겼으니 그것은 , 마을 노인들이 저녁이면 제각기 술병을 들고 김삿갓이 지내는 사랑방으로 찾아와 술잔을 나눠가며 구수한 덕담을 나누는 것을 커다란 낙으로 알고 , 김삿갓이 계속 이곳에 머물러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
사랑방에 모인 마을 노인들은 체면 불고하고 할 소리 못 할 소리 주책없이 지껄여대면서 김삿갓과 함께 배를 움켜잡고 웃기도 하면서 밤을 보내는데, 그것은 인정미가 철철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 그러기에 김삿갓도 그들과 어울려 덕담을 지껄여 가면서 어느 날 밤에는 노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이런 말도 하였다 .
"노인장들께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너무도 많이 들려주셔서 저녁마다 이렇게 웃어 쌓다가는 숫제 허리가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
사실 노인들의 덕담은 천태만상이었다. 개중에는 점잖은 사람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음담패설도 많았으나 , 때로는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의미 있는 교훈담도 적지 않았다 . 듣던 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향장 영감님이 들려준 ‘황서랑 (黃鼠狼 )의 이야기 ’였다 . 그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불당골 마을에 서당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의 일이었다 . 그 당시 마을에는 훈장이 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 훈장을 다른 지방에서 모셔올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마을에서 이백 리나 떨어져 있는 해주에서 훈장을 모셔오게 되었는데 , 훈장의 이름은 황금색 (黃金色 )이라고 하였다 .
그런데 황금색 훈장은 눈병이 있어서 언제나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다녔으므로, 마을에 어떤 노인이 어느 날 훈장에게 농담삼아 , "훈장의 눈은 언제나 족제비 똥 누듯 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요 ?" 하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농담이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훈장을 황서랑 (黃鼠狼 )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 족제비를 한문으로 <황서랑 >이라고 하는데 , 훈장의 성씨가 마침 황 씨인 데다가 눈이 족제비 똥 누듯 보였으므로 , 황서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
그런 황서랑은 성품이 소심한 데다가 마음은 워낙 착해서 누구하고도 다툼 한 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모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 자신에 비해 젊고 얼굴이 예쁜 마누라가 외방 남자와 가끔 바람을 피우는 일이었다 .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어느 남편에게나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훈장 황서랑이 만약 성미가 괄괄한 사내였다면 , 바람을 피우는 마누라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한 여름에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질은 물론 바람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까무러칠 정도로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마누라의 주리를 틀어 놓았을 것이다 .
그러나 훈장 황서랑은 마누라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팰 정도로 모진 성품이 안 되었기에 언제나 말로만 마누라를 타일러 왔다 . 그러니까 마누라는 남편을 얕잡아 보고 바람 피우는 버릇을 좀처럼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
남편도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 그런데 훈장이 어느 날 고향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기자 마누라의 일이 새삼스럽게 걱정되었다 . 그것은 자기가 집을 비운 때 마누라가 사잇서방을 어엿하게 집에까지 불러들이지도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
그리하여 훈장은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하던 끝에,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
"내가 갑자기 볼일이 생겨 고향에 며칠 다녀와야 하겠네 . 내가 없는 사이에 임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 여간 걱정스럽지 않네 그려 .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나 ?"
마누라는 그 말을 듣고 남편을 원망하듯 , 이렇게 나무랐다 .
"볼일이 있거든 얼른 다녀오세요 . 나 혼자 있기로 무슨 걱정이예요 . 아무 걱정 말고 빨리 다녀오기나 하세요 ." "아니야 . 암만해도 임자의 행실을 믿을 수가 없어 ."
마누라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당신 마누라를 그렇게나 못 믿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 나를 그렇게나 못 믿겠거든 차라리 내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놓고 다녀오시면 될 게 아니겠어요 ?"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바람을 피우는 여자일수록 머리가 영리한 법이어서 , 엔간한 남편은 대꾸하는 마누라의 말을 당해 내지 못하는 법이다 .
훈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예끼 이 사람아 ! 손과 발을 묶어 놓으면 , 밥은 어떻게 지어먹고 , 뒷간은 어떻게 다닐 것인가 ?"
훈장은 마누라를 향해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묘책 하나가 떠 올랐다 .
그러면서 훈장이 하는 말이, "마누라 ! 좋은 수가 있네 . 임자가 내게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 임자 불구덩이 양쪽에 그림을 하나씩 그려 놓기로 하세 . 그렇게만 해 놓으면 임자가 아무리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 그림이 지워질까 봐 바람을 못 피우게 될 게 아닌가 ?"
고작 생각해 낸 묘방은 기상천외 한 것이었다 .
"뭐든지 좋으니 ,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
마누라는 의심받는 것이 불쾌한 듯 즉석에서 승낙했다. 그리하여 훈장은 마누라를 자빠뜨려 놓고 , 두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한 뒤에 , 옥문 좌우 언덕에 그림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하였다 . 그림이란 것은 한쪽 언덕에는 조 (栗 ) 이삭을 하나 그리고 , 반대편에는 누워있는 토끼를 한 마리 그려 놓는 것이었다 .
이렇게 그림을 모두 그려 놓고 난 훈장 황서랑은 안심하고 고향으로 떠나갔다. 훈장이 집을 떠나자 , 평소에 훈장 마누라와 정을 통해 오던 놈팡이가 가만 있을 턱이 없었다 .
놈팡이는 그날 밤으로 정부를 찾아와, "그 늙은이가 고향길로 떠나 갔다니 이제야 말로 우리 세상일세 그려 . 오늘밤부터 마음 놓고 뿌리가 빠지도록 즐겨 보세 ." 하고 덤벼들었다 .
그러나 훈장 마누라는 손을 휘휘 내 저으며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앙 ~돼요 ! 어 ~떤 일이 있어도 앙 ~돼요 ."
그러자 잔뜩 열이 오른 놈팡이는 화를 벌컥 내며, "안 되다니 , 그게 무슨 소리야 ? 이제부터는 나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 "내가 왜 당신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겠어요 . 당신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은 당신보다도 내가 훨씬 더한데요 ." "그런데 어째서 정을 나누려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 "아무리 정을 나누고 싶어도 그것만은 앙 ~돼요 ! 당신을 가까이 했다가는 나는 꼼짝없이 이 집에서 쫒겨나게 되는 걸요 ." "그동안 당신과 정을 무수히 나눠 왔는데 , 이제 와서 갑자기 쫒겨날까 두렵다는 것은 무슨 소리야 ? 영감쟁이가 별안간 들이닥칠까 봐 무서워 그러나 ?" "그런 건 아니에요 . 볼일이 있어서 고향에 갔으니까 , 그 점만은 안심이에요 ." "그런데 어째서 정을 나누지 못하겠다는 말인가 ? 속 시원히 모든 것을 탁 털어놓고 말해 보라구 !"
그러자 훈장 마누라는 놈팡이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벌떡 뒤로 누워 치마를 활짝 젖히고 양 다리를 활짝 벌려 남편이 불구덩이 양쪽에 그려 놓은 그림을 직접 보여주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영감이 이렇게 방비를 해놓고 고향길로 떠났다오 . 그러니 , 우리가 만약 장난을 치면 그림이 지워져 버릴 게 아니겠어요 ? 그렇게 그림이 지워지는 날이면 나는 이 집에서 쫒겨날 밖에 없지 않아요 ?"
놈팡이는 그림을 바라보다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
"하하하 .... 이 그림은 한편에는 피 (稷 ) 이삭을 그려 놓고 다른 쪽에는 토끼를 그려 놓았군 그래 . 이런 그림이라면 일단 지워져 버리더라도 , 나중에 다시 그려 놓으면 될 게 아닌가 ."
놈팡이는 조 이삭을 피 이삭으로 잘못 보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어마 ! 당신 말을 듣고 보니 ,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 그렇다면 , 되요 , 되요 , 되요 ! 어서 , 마음 놓고 일을 시작해요 . 당신은 정력도 세지만 머리가 아 ~주 비상한 분이에요 ."
사랑이 겨우면 마마 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 하던가. 훈장 마누라의 눈에는 정부가 잘나 보이기만 하였다 . 그리하여 그들은 그날부터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집안에 숨어들어 뿌리가 빠지도록 정을 나눠 오다가 훈장이 돌아올 날이 되자 , 놈팡이로 하여금 불구덩이 입구에 그림을 감쪽같이 그려 놓게 하였다 . 이렇게 함으로서 완전 범죄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훈장 황서랑은 예정된 날짜에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마누라는 남편 부재 중에 못 된 짓을 저지른지라 죄책감에 유난스럽게 반색을 하며 말했다 .
"잘 다녀오셨어요 ? 당신이 집에 계시지 않아 얼마나 쓸쓸했는지 몰라요 . 아응 !"
그러나 훈장은 어쩐지 마누라의 말이 미덥지 않아, "그 동안에 아무 일도 없었는가 ?"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물어보았다. 그러자 마누라는 눈을 흘겨보며 남편을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