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자리보존하고 누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나가서 막노동판이라도 알아 봐야 하겠지만 지금 내 몸이 그럴 처지가 못된다는게 한심하고 짜증스러울 뿐이다.
난 벌써 여러 달째 이렇게 자리보존 하고 누워 지내고 있다. 다치기 전 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 삼층 높이에서 발을 헛디뎌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을 했었다.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대로 죽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몇일을 죽은 듯 병원신세를 진 것이다. 간신히 눈을 뜨니 늙으신 노모께서 앉아서 졸고 계셨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대체 몇일을 이러고 있었단 말인가...
노모께 힘겹게 손을 내 뻗었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도 내고 싶었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참으로 답답했다. 그때 마침 노모께서 일어나 있던 날 발견하시고는 담당의를 모시고 왔다. 이리 저리 날 둘러 보던 담당의가
"다행입니다. 하루만 더 늦게 깨어 나셨으면 식물인간으로 살아 가셨어야 했는데 참으로 다행입니다. 환자분 제 얘기 들리시면 눈을 깜빡여 주십시오. 제 말 들리십니까?"
난 아주 천천히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머리쪽으로 더 많이 다치셨으면 돌아 가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뇌쪽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경과를 더 지켜 본 후 앞 이마 피부 이식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자 여기 거울에 환자분 모습 보이시죠?"
내 눈앞으로 거울이 왔다. 이마가 붕대로 칭칭감겨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머리를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이마 피부이식수술이라니... 얼마나 심하게 다쳤길래 이식수술이라니...
진료를 끝 마친 담당의가 나가고 난 뒤 노모께서
"암만 이만하면 다행이여. 암 부처님께서 아직 데려가기 이르다고 결론을 내리신 모양이여. 그래 괜찮은거여?"
난 힘겹게 웃어 보였다. 갑자기 아내랑 두 아들들이 궁금했다. 그 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힘겹게 돌렸다. 작은 아들놈과 아내가 들어 오고 있었다. 작은 놈은 나를 보자 마자 울기 시작했다. 여섯살난 꼬마 아이가 아빠라는 사람이 이렇게 붕대에 칭칭감겨 침대에 누워 있으니 무서울 법도 하지...
"민환아, 아빠야. 니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아빠야. 여보, 민환이가 당신 없는 몇일 새 보고 싶다고 울고 불고 난리지 모예요. 그래서 두 밤만 더 자고 아빠 만나러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떼쓰고 울길래 데려왔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지게 쓰라리고 아팠다. 작은 아들놈을 바라 보았다. 아직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누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비참했다. 그 침묵을 깨고 노모께서
"어멈아, 그러길래 왜 아를 데리고 온거여. 조금만 더 있다가 오지 않구서. 애한테 보여줘서 뭐가 좋다고..."
노모께서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찍어내셨다. 아내에게도 노모께도 그리고 두 아늘놈한테도 한심한 가장으로 비춰지기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면 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완치하는게 우선이었다. 노모와 작은 아들놈이 돌아 가고 아내만 왔다 갔다 내 시중들 들고 있다.
저녁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
18살 먹은 큰 놈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아빠, 경환이 왔어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난 눈만 껌뻑 거린다. 경환이는 아빠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아내한테 하는 얘기가 들려 왔다. 경환이가 연습장에 글을 써서 나에게 보여 준다.
<아빠, 내일 올때 공책하나 가져 올테니까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거기다 써서 보여 주세요. 아직 말씀 못 하시는거 맞죠?>
큰놈의 씀씀이가 눈물겹도록 고맙다. 그렇게 큰놈도 집으로 돌아 가고 아내와 둘만 남았다.
신혼 초.
넉넉치 않았던 살림에 곱고 곱던 아내는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이일 저일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게 보기 안 쓰러울 정도였다. 처갓집에서는 나와 결혼을 반대했었다. 가진 것 없고 연세 많으신 노모랑 살고 있는 내가 장모님 장인어른 눈에는 달갑게 보일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성격이 무던하고 살갑지도 그렇다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도 못하는 성격에 번듯한 직장도 없이 사는게 한심해 보였었으리라... 그런 놈에게 애지중지 키운 딸이 시집을 가겠다니 어느 부모님인들 선뜻 결혼을 승낙하시랴. 비젼도 없어 보이는 사위가 보기 싫으셨던지 결혼을 하고 난 후 아내도 처갓집 발길을 끊다시피 하면서 살아왔었다. 아내는 어렸을 적 부터 남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걸 다 누리며 살아왔었던 사람이었다.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살아 왔었다. 처갓집이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못 살지는 않은 집안 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자라온 딸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선언을 했었으니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는 크게 노여워 하시는게 맞는 현실이리라...
부모님께서 반대하던 결혼을 하였으니 혼수도 하나라도 제대로 해 가지고 온게 없으니 신혼 초 부터 아내는 20년 넘게 살아 오면서 해 보지도 않았던 바깥일이 라는 걸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해댔었다.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했었더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몸도 좋지 않은 사람이 마구잡이로 일을 해 댔으니 어찌 몸이 성할 날이 있으랴.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빚을 내어 분식점을 차렸으나 얼마 못가 더 큰 빚만 남겨 놓고 장사를 마무리 하고 막노동판을 전전긍긍하며 돌아 다니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경제가 좋지 않아 막노동판도 쉽게 얻어 지는 일자리가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 자리가 나서 일을 나가면 길어야 다샛째가 다였다. 다샛째 일을 해 봤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라고는 고작 십오만원도 안되는 돈이었다.
결혼한지 일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아내가 몸이 이상하다고 했다. 헛구역질에 먹는 것도 시원치가 않다고 말했었다. 혹시나 싶어 산부인과에 한 번 가 보라고 떠 보았지만 가기를 꺼려했다. 억지로 끌다시피 산부인과로 데려가 진찰을 받게 했다. 예상치도 못한 말을 담당의에게 전해 들었다.
"임신 삼주째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지금부터 산모분 몸과 마음 둘다 따뜻하게 하시고 일도 많이 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산모분이 워낙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아 일을 조금만 더 무리를 해서 해도 몸이 그걸 알아 차리니까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가 있으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산모께서 먹는 것을 잘 먹어야 태아한테도 좋아요. 입맛이 없으시다고 자꾸 먹는 걸 거르시게 되면 안됩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시도록 하세요."
아내는 눈만 껌뻑껌뻑 거릴 뿐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리 기분이 써억 내키지가 않았다. 아직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 둘다 아직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이는 삼년 후 쯤에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아내가 임신이라니... 병원을 나서는데 아내가 물었다.
"여보, 어쪄죠. 임신이라는데 지금 우리 사정에 임신이 가당키나 한건가요? 우리야 그렇다 쳐도 태어날 아기는 뭐 먹여 키워야 되요?"
어느 새 아내의 목소리는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무능한 남편이 아내는 그 날 따라 더 야속했으리라.
아내의 배는 점점 더 불러 오기 시작했다. 잘 먹야 한다면서 어머님께서는 없는 돈을 박박 긁어 모으셔서 그 비싸다는 전복을 사오셔서 죽을 매일같이 쑤어 아내에게 먹였다. 그 냄새가 역겹다고 아내는 처음에는 몇번 수저를 뜨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내는 매일같이 울었다.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대도 뭐가 그리 애달픈지 매일을 울어댔다. 나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아내가 보기 싫어졌다. 아내가 임신을 하고 육개월로 접어 들던 어느 날, 술이 만취해 무작정 처갓집으로 발길을 내 딛었다.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술김에 그랬다는 건 확실하다. 술이 만취해 처갓집을 찾아 갔던 날 장모님께서는 장인어른이 안 게신 틈을 타 집 안으로 날 들이셨다. 그러고는 조용히 하얀봉투를 주시며
"자네, 이것가지고 빨리 집으로 돌아 가게. 장인어른 아시면 나도 무사하지 못 할테니 얼른 이것 가지고 집으로 돌아 가게. 몇일 전에 다윤이 한테서 전화가 왔었다네. 임신했다는 말을 하고서는 얼마나 애가 울던지 아무것도 못 해주는 에미가 되어 버려서 얼마나 속상하던지 나도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네. 그리고는 앞으로 다시 집으로 찾아 오지 말게나. 애 아빠 아는 날엔 나도 어찌 될지 모르니 앞으로 다시 찾아 오지도 연락하지도 말게 알겠나?"
이렇게 매정하게 말씀을 하시는 장모님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 이 무능력한 사위때문에 그런 걸 누굴 탓하랴. 억지로 쥐어 주시는 봉투를 들고 묵장정 처갓집을 나왔다. 흰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 넘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 가기 전 집앞 마트에 들러 아내가 평소에 좋아 하던 딸기를 한아름 샀다. 집으로 돌아온 난 아내 앞에 딸기와 함게 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싶어 나를 멀뚱히 쳐다보는 아내에게
"오늘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처갓집에 갔었다. 술기운을 빌어 처갓집에 간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진짜 거기 갔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가니까 장모님께서 이 봉투를 주시더라고. 그리고는 이러셨어. 앞으로 절대 다시는 찾아 오지 말라고. 장인어른한테 들키는 날엔 당신도 어찌 될지 모르신다고 말이야. 내가 무슨 염치로 간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윤아. 미안하다. 모든게 다 미안하다. 이렇게 밖에 못 하는 내 자신이 나도 진짜 싫고 밉다. 다윤아, 우리 다윤이 왜 이런 나한테 시집을 와서 고생이냐? 이런 내가 어디가 좋다고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풀썩 앞으고 고꾸라져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튿날 점심무렵에서야 자리에서 일어 날 수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물을 한컵 따라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님도 아내도 보이지 않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또 다시 집을 나섰다. 세상이 온통 하얀 눈천지였다. 그렇게 여기 저기 돌아 다니다 집으로 돌아 오니 집앞에 검은 승용차 한대가 서 있었다. 누군가 싶어 집안으로 들어서니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무거운 걸음을 하신 거였다.
날 먼저 본 장인어른께서,
"자네 나 좀 봅세. 어디가서 이야기라도 좀 나누지."
주춤주춤 장인어른 뒤를 따라 나섰다. 차에 올라타자 장인어른께서 기사에게
"자주가는 한정식집으로 가자."고 말씀하시고는 입을 굳게 다무셨다.
얼마 가지 않아 한정식집에 다다르자 내리라고 눈짓을 하셨다. 쭈뼛쭈뼛 내리자 먼저 안으로 들어간 장인어른 뒤를 나도 따라 들어 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와 본 고급식당이었다. 방으로 들어 갔다. 실내가 참 아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있기만 할 건가? 이리와서 앉게. 어려워 하지 말고."
장인어른 맞은편에 앉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한참을 서로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음식들이 나오고 밥을 먹기 시잘 할 때쯤
"다윤이 엄마한테 얘기들었네. 다윤이 임신했다는 말과 몇일 전 자네가 찾아왔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네. 그래 몇일 전 무슨 낯으로 우리집에 찾아 온겐가? 돈이나 한푼 얻을 요량으로 온 거 였으면 자네 장모가 보지도 않았을 거라고 하더구만. 그런데 자네가 찾아오기 이틀 전 다윤이한테서 전화가 왔었다고 하더구만. 다윤이한테서 임심소식을 듣고 자네 장모 참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군. 더 이상 모질게 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거야. 그래서 자네 우리집에 온 날 그냥 돌려 보내기가 미안해서 봉투에 얼마 넣어 보냈다는 얘기를 나에게 하더라고. 그래 이제 어쩔 셈인가? 아직 일자리도 없이 여기 저기 돌아 다닐 셈인가? 내 체면도 생각 좀 해주게나 현서방."
현서방이라니? 눈에 가싯처럼 달갑지 않게 생각하시던 장인어른께서 현서방이라고 부르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두귀와 두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놀라나? 내가 뭐 잘못한 얘기라도 있는가? 왜 그러나 자네?"
나는 바로 장인어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깜짝놀란 장인어른께서
"뭘 잘했다고 우나. 눈물 닦게나. 어서. 자넬 인정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딸 다윤이가 불쌍해서 눈감아 주려는 것 뿐이라네. 그러니 감동받지 말게. 앞으로도 계속 자네에게는 거는 기대감 같은 것도 없을 테니까."
한 마디로 딱 잘라 모질게 말씀을 하시고는 일어나셔서 나가시려고 하셨다.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나는 지금 아니면 앞으로도 말을 못 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압니다. 다윤이 때문에 그러신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워온 하나뿐인 딸이 아무 보잘 것 없는 남자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전해 들으셨을 때 얼마나 속이 뭉그러 지고 한심하셨을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장인어른 처음 뵈었을 때 알아 봤었지요.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렇게 모진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었습니다. 다윤이가 왜 아무 보잘건 없는 나에게 시집을 오려고 했었는지 저도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신혼여행가서야 듣게 되었습니다. 다윤이가 왜 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꼭 장인어른과 제가 너무나도 흡사하게 닮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더라구요. 너무나도 닮아서 성격에서부터 하는 행동행동 하나가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다고 말을 했던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장인어른과 제가 너무나도 많이 닮아서..."
말을 끝맺지도 못 하고 다시 소리내어 울었다. 장인어른께서는 그런 날 가만히 안아 주셨다.
"다윤이가 그렇게 말을 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네. 다윤이가 늘 상 어렸을 때 부터 그렇게 말을 했었거든. 자긴 커서 결혼을 하게 되면 아빠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고 했었는데. 다윤이가 보기에는 자네가 나랑 꼭 닮았다고 말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네. 자네 이거 한가지만 약속해주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다윤이 힘들게 하지 않기로 말일세. 그리고 다음주 부터 회사에 자리하나 만들어 줄테니까 나와서 일을 하게나. 자네가 이뻐서 일자리를 주는게 아니라 우리 다윤이 힘들어 하는 꼴 보기 싫어서 그러니 그렇게 알고 있게나. 자네 공사판 경험 많다고 들었다네. 현장직이라도 알아 봐 줄테니 그리 알게나. 일어서게 자네 장모님이랑 다윤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집으로 가야지."
장인어른을 바라 보았다. 전에 없던 따스한 눈빛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장모님께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장모님, 앞으로 다윤이 힘들게 하지 않겠습니다. 이 못난 사위 더 미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뻐 해 달라는 말씀도 하지 않겠습니다. 다윤이 힘들게 하지도 않겠습니다."
장모님께서는 그저 눈물만 흘리고 계실 뿐이었다. 두분이 돌아 가시고 절에 다녀 오신다던 어머님이 언제 와 계셔는지 건넌방에서 텔레비젼만 묵묵히 보고 계셨다.
"어머니, 언제 오셨어요? 절에는 잘 다녀 오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내를 놔 두고 어머니 곁으로 갔다. 그때까지 아무 미동도 없으셨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왜 말씀이 없으세요?"
"이놈아, 그러게 이 결혼을 왜 해서 이러고 살어? 뭐 더 험한 꼴 볼려고 결혼을 했냐고... 아까 사부인이 이거 주고 가더랑께. 차마 안에는 보지 못하겠더라고. 이게 뭔지 니가 한번 봐봐야."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내 앞으로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 쉬고는 봉투안을 들여다 보았다. 수표였다. 그것도 꽤 두툼한 장수였다. 액수를 확인했다.
헉...
백만원짜리 수표 열장...
결코 적지 않은 수표였다. 천만원이라는 금액이 가슴을 더욱 더 짓눌렀다.
어머니께서도 금액을 확인하시고는 놀라셔서
"애비야, 이거 받아도 쓰겄냐? 이 많은 돈을 무슨 이유에서 이리 주고 가셨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네 그려? 이거 받아도 될랑가 모르긋다."
어머니께서는 한숨만 내 쉬실 뿐이었다. 그때 마침 아내가 불렀다.
"여보, 이리로 좀 와 봐요."
아내 곁으로 가니 또 아내가 무언가를 내 밀었다. 봉투하나와 통장 그리고 도장이었다. 편지는 아내에게 장모님이 직접 쓰신 편지였다.
< 다윤아...
사랑하는 나의 딸 다윤아. 시집가서 고생이 많지. 아빠 눈치 살피느라 너에게 전화한번 하지 못하고 이러는 내 심정 이해하길 바란다. 이 엄마도 우리 딸 다윤이 많이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단다. 하지만 아빠가 아시는 날엔 어찌 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엄마 마음 우리 다윤이가 이해 해주길 바란다. 다윤이 네가 임신했다고 울며 전화 했을 때 이 엄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더구나. 나에게도 손자가 생기겠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모든게 달라져 보이더라. 쇼핑을 가더라도 먼저 애기용품점에 들르게 되고 하나라도 더 사서 너에게 주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니 답답하더구나. 그래서 어제는 큰 맘먹고 쇼핑가서 우리 손자에게 줄 이쁜 선물을 하나 샀단다. 그거 하나 사는 대도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던지... 이 선물을 사가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을 했단다. 아빠한테 다 말을 하기로. 현서방 집으로 찾아 왔던 일 그리고 니가 임신했다는 말까지 다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까 겁날게 없더라고. 그렇게 저녁에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게 저녁을 먹으면서 다 얘기를 하고 나니까 화를 내실 줄 알았던 아빠가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 들이 시더구나. 그리고는 집으로 한번 찾아 가 보자는 말씀까지 하시는 거야. 멀뚱멀뚱 쳐다보는 엄마보고 거짓말 아니니까 내일 가는 걸로 하고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더구나.
우리 딸 다윤아.
아빠와 엄만 벌써부터 우리딸이랑 현서방 용서하고 이해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처음부터 용서하고 이해를 했었다면 다윤이가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게 될까봐 모질게 군거라고 아빠가 그러시더구나. 혼자힘으로 살아보는 것도 인생공부라시며 연락조차 하지 말라고 엄마에게 까지 협박아닌 협박을 하신거였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니 이 엄만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하단다.
그리고 이 통장은 우리딸 결혼할때 쓰려고 모아 두었던 돈이란다. 지금에서야 주인을 찾아가는 이 통장을 보니 엄마 기분이 묘하네. 얼마 안 되지만 아이 태어나면 그때 쓰도록 하려무나. 그리고 현서방한테도 모질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전해주려무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몸 조심 또 몸조심하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하면 뭐든지 다 해줄테니 망설이지 말고 전화하려무나. 더 이상 쓰면 엄마 울 것 같으니까 이만 줄일게. 내일 그럼 보자. 잘자라 우리딸...
안녕...>
장모님의 편지는 이렇게 끝이났다. 아내는 통장을 만지작 거리며 울먹이고 있었다.
"여보, 이거 받아도 될까요? 엄마가 나 시집 갈때 쓰려고 모아뒀다는데 이거 받아도 될까?"
"그럼... 아차 그러면 장모님이 어머니한테 주신 봉투는 돌려 드리는게 어때? 어머니도 그 봉투 때문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계시는데 그 봉투는 돌려 드리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장모님을 찾아 뵙고 어머니께 드렸던 봉투를 내밀면서
"아머님, 저희 어머니께 드렸던 이 봉투는 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이 봉투를 받으시고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저도 다윤이 한테 주신 통장만으로도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러니 서운케 생각하지 마시고 이 봉투는 넣어 주십시요. 죄송합니다."
장모님께서는 서운하신 표정을 감추시지 못 하시고 눈물만 찍어 내셨다.
"자네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래 넣어 두겠네. 아차 조금만 기다렸다가 일하는 아주머니 오면 다윤이 줄려고 잡채랑 갈비찜 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으니까 기다렸다가 자네도 좀 먹고 가지고 가게나. 장인어른 퇴근 하고 올 시간도 다 됐으니 말이네."
나는 그러마 하고 말씀 드리고는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개집 앞으로 가 개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만히 있었다. 그 때 대문이 열리고 닫는 소리가 들렸다. 뒤로 돌아 서니 장이어른께서 올라 오고 계셨다. 뛰어가 인사를 하며
"다녀오셨습니까? 많이 피곤하시지요?"
"그래 자네 왔는가? 어서 들어가세나."
집안으로 들어 온 장인어른과 나는 부엌으로 가 이른 저녁을 먹고 장모님께서 챙겨 주시는 음식을 받아 들고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님과 아내는 그때까지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아내에게 음식보따리를 건네며
"장모님께서 이 음식들 다윤이 네게 먹이고 싶으시다고 가지고 가라고 하셔서 기다렸다가 저녁도 얻어 먹고 이제 왔어. 어머님, 잡채와 갈비찜이 아주 맛있게 만들어져 어머님 입맛에도 맞으실 거예요. 다윤아 어서 와서 저녁먹어야지..."
아내는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이끌며 밥상앞으로 와 앉고는 어머님 눈치도 볼 것 없이 갈비찜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이를 본 어머님께서는
"에구, 이 어린 것이 못난 시에미 남편 만나서 호강 한 번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맛있는 것 하나 제대로 얻어 먹지도 못 하고 살았으니 오죽할까... 그래 아가 친정엄마가 해주신 음식이 제일이쟈?"
아내는 그제서야 미안했는지 어머님을 보고는
"어머, 어머님 제가 너무 괴걸스럽게 먹었죠? 죄송해요... 어머님께 먼저 드셔 보라는 말씀도 않고 혼자 먹고 있었네요. 어머님도 어서 드셔보세요. 죄송해요..."
"아녀, 난 새아가 너 복스럽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릉께 아여 먹어. 자 이 잡채도 먹고."
어머님은 오히려 아내를 걱정하며 쉽게 드시지를 못하셨다. 그렇게 먹고 난 후 밥상을 치우고 어머님께 아내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씀을 드리고는 아내와 조용히 밤길을 나섰다. 이십여분을 걸어 시내에 접어 드니 한 여름의 열대야를 피해 시내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더 후끈후끈 달아 올라 있었다. 이것 저것 구경하던 아내가 한 아기용품점 앞에 서더니 안을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눈이 머문 곳에는 어제 장모님께 선물로 받았던 모빌과 비슷한 모빌이었다. 아내는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오빠, 우리 애기 건강하게 태어나겠지? 이렇게 약해빠진 엄마 뱃속에서 힘들게 크고 있으니까 태어날땐 진짜 건강한 아가로 태어나겠지?"
아내는 배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나직히 물었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건강하게 안 태어 날려구... 다윤아, 우리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저기 가서 몸 좀 식혔다 갈까?"
난 아담하게 꾸며져 있는 커피숍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사서 먹으면서 걷고 싶다고 했다. 태아에게 안 좋을 거라는 나의 말도 무시하고는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더니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 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올라 오는 언덕길에 메밀묵 장사가 남은 메밀묵이라며 싸게 사가라고 말을 걸길래 어머님이 생각나 사서 집으로 돌아 왔다. 메밀묵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시간은 어느 덧 흘러 산달이 가까워 져 왔다. 아내는 더 힘겨워 했다. 일주일에 두번씩 장모님이 오셔서 돌보아 주셨지만 아내의 입덧은 하루종일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먹지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통시간이 짧아 질 때 마다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피를 못 잡고 있을 쯤 장모님께서 장인어른과 함께 오셨다. 괴로워 하는 아내를 보시고는 장모님께서
"현서방, 어서 짐 좀 꾸리게나. 다윤이 병원 가야겠네. 아직 일주일 정도 남은 걸로 아는데 애가 이리 못 견뎌하니 지금 병원 가봐야 겠어. 빨리 짐 좀 꾸리게."
허겁지겁 짐을 꾸리고 어머님께 잘갔다 오겠다고 끼니 거르지 마시고 잘 차려 잡수시라는 당부를 드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의 등에 업혀 달려 들어 오는 나와 아내를 본 담당 간호사가 담당의를 모시러 간 사이 다른 간호사가 병실로 안내했다. 아내의 고통은 더 심각하게 고조 되었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만 싶었다. 이제까지 해준 것도 없는데 아내가 아닌 나에게 형벌을 내려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잠시 후 담당의가 들어 왔다.
"언제부터 진통이 시작되셨지요? 얼마나 되셨나요?"
"이틀 전 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 하더니 어제 저녁부터 계속 아프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아침에 겨우 죽 반그릇 비우고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 하고 왔어요. 예정일 까진 아직 일주일 남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담당의를 쳐다봤다.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도 초조하게 서 계셨다.
"산모께서 워낙에 체력이 약하시다 보니 예정일 까지 기다렸다가는 태아와 산모분께 안 좋은 일이 일어 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내일 오전까지 기다려 봤다가 진통이 잠시 가라 앉으면 자연분만은 무리이니 제왕절개를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알고 계시고 남편분만 산모곁에 남으시고 두분은 댁으로 돌아 가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어머님, 전화 드릴테니 아버님과 집에 가셔서 전화 기다리고 계세요. 전화 꼭 드릴게요. 점심도 거르셨잖아요. 두분도 기운을 차리셔야 다윤이가 편하게 아기를 낳죠. 댁으로 가 계세요. 내일 전화 드릴게요. 멀리 못 나가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돌아 가시고 난 후 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예요. 네에 조금 전에 병원에 도착해 안정 취하고 있어요. 진지는 잡수셨어요?"
"그랴, 새아가는 괜찮은겨? 나 걱정은 허지를 말고 새아가 잘 보살펴 주랑께. 이 에미는 잘 있을 테니께. 끼니 걱정도 말고 너나 끼니 챙겨 먹어. 알긋쟈?"
삼십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아 오시면서 아버지를 내가 다섯살 쯤에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뒤로 누님 한 분도 가슴에 마저 묻어 버리신 어머니께서는 나 하나만 기대고 사셨다. 그런 아들이 번듯한 직장도 없이 여기 저기 돌아 다니는게 보기 안 쓰러워셨던지 이년전 서울로 아주 올라 와 살고 계신다. 아직도 어머니 당신 눈에는 아들인 내가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애 마냥 불안하신 모양이었다.
이렇게 고생을 하며 큰아들놈이 태어났었다. 다행히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우렁차게 울어대며 세상에 첫발을 내 딛었다. 큰놈이 태어날 당시 몸무게는 아내가 많이 먹지 못 했어도 4.2kg의 우량아로 태어났었다. 지금도 또래아이들 비해 키도 크고 건강하나는 자신만만한 놈이다.
다음 날...
큰 아들놈이 연습장을 앞에 펼쳐 놓더니 이런다.
"아빠, 아빠가 퇴원하시면 하고 싶으신 일들 여기다가 다 적어 보세요."
그러면서 침대매트를 올려 손에 네임펜을 쥐어 주며 써보란다. 난 힘겹게 하나 하나 적어 내려 갔다.
가족, 어머님, 아내, 경환이, 민환이, 장모님, 장인어른...
여기까지 쓰고 나서는팔이 더 이상 아니 하고 싶은 건 너무나도 많은데 더 이상 적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이런 날 본 큰놈이
"아빠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엄마, 아빠 편찮으신가봐 표정이 안 좋아요."
놀란 아내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피식 웃음부터 흘렸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내를 보던 큰놈은
"왜 그래요. 왜 웃어요 엄마."
"경환아, 아빠 편찮으신게 아니라 너무 벅차서 그러시는 거란다. 하고 싶은 건 많으신데 그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으셔서 그러시는 거란다. 경환아빠 그러니까 어서 빨리 털고 일어 냐셔서 해 보고 싶으신 것 다 해보셔야죠. 안 그러니 경환아?"
큰놈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난 굳어진 얼굴 근육으로 간신히 웃어 보였다. 담당의가 들어 왔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내일이 수술인데 컨디션은 좋아지셨습니까?"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은 내일 오후 두시에 잡혀있다고 했다. 우리 몸중에 피부가 제일 깨끗하다는 허벅지쪽의 피부를 떼어내서 이마에 이식하는 거라고 설명을 한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담당의에 말에 그제서야 한숨이 나왔다. 담당의에게 물었다.
"지금 제가 먹고 싶은게 있는데 아직도 먹을 것 가려야 하나요?"
연습장에 쓴 걸 보여 주니 그 걸 본 담당의가
"내일 수술이 끝나고 경과를 지켜 본 후에 먹고 싶으신 것도 드실 수 있으시게 될겁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오히려 저희가 죄송할 따름이네요. 그래요 뭐가 드시고 싶으신지요?"
"아내가 제일 잘 만드는 부대찌개요. 병원에 있으니까 그게 제일 먹고 싶네요."
담당의가 웃었다. 수술 꼭 잘 되게 해 드려서 빠른 회복세 보이시면 꼭 드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고 한 뒤 병실을 나갔다.
밤이 깊어 갔다.
큰놈은 집으로 돌아 가고 아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내일이면 수술을 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아내가 물었다.
"경환아빠, 아무 걱정말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푸욱 주무세요. 그래야 내일 수술도 잘 끝나지요. 그러니 어서 주무세요."
아내의 말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그렇게 쉽사리 오지가 않았다. 창밖으로 비춰지는 서울의 밤 불빛들이 어수선한 내 마음을 대신해 사방을 훤히 밝혀 주고 있었다.
다음 날...
수술을 앞두고 아머님과 아들 두놈, 그리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병원으로 왔다. 큰 놈 경환이가
"아빠, 다 잘 되실 거예요.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푸욱 주무세요. 아셨죠?"
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장모님께서도 잘 될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섰다. 그렇게 마취약에 취해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만에 정신을 가다듬고 힙겹게 눈꺼풀을 여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밤하늘 같았다. 어디선가 사람목소리가 들려 왔다. 죽지는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에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틀을 연이어 잠을 잤다고 했다. 눈을 떠 보니 병실이었다. 아내와 작은놈이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가만히 작은 놈을 불렀다.
"민환아, 이리 온."
민환이는 쭈뼛쭈뼛하며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민환이를 이끌고 내 옆으로 왔다. 민환이의 손을 잡고 웃어 보였다. 그런 내 모습이 낯선지 민환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민환아, 아빠잖아. 아빠하고 불러 봐 어서."
그래도 민환이는 아내뒤로만 자꾸 숨었다. 담당의가 들어 왔다.
"기분은 괜찮으십니까? 아프신 곳은 없으시구요?"
"네, 다 괜찮습니다. 수술은 잘 됐습니까?"
"지금 붕대를 벗겨 드릴테니 거울 한 번 보십시오. 붕대를 벗기겠습니다."
담당의사의 손이 천천히 붕대를 풀었다. 아내가 내 앞으로 거울을 내밀었다.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떠서 거울을 보았다. 이마가 말끔했다. 피부이식을 한다고 꿰맨 자국만 있을 뿐 이마는 깨끗했다.
"선생님, 잘 된 것 맞습니까?"
"네 아주 성공적입니다. 꿰맨 자국만 없어지면 몰라 보겠습니다. 일주일 내로는 퇴원이 가능하겠습니다. 환자분께서 잘 참고 견뎌준 덕분에 수술이 더 잘 된것 같습니다. 그럼 푸욱 쉬십시오."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5일을 더 병원에서 보내고 6일 째 되던 날 퇴원을 했다. 한 겨울이었지만 밖은 덧 없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 쬐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내내 어머님께서는 다니시는 절에 가셔서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아내가 말을 해 주었다.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어머님께서 계신 절로 향했다. 옆에서 부축을 하며 걷던 경환이가
"엄마, 어렸을 때 할머니 손 잡고 왔던 기억이 나요. 하나도 안 변했네요. 벌써 십년이 넘게 해가 바뀌었는데 그쵸?"
"그러게 말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 막내는 처음이네. 우리 민환이 여기가 어디게?"
민환이는 그 큰 눈망울을 더 크게 뜨고 아내를 아니 경환이를 바라 보았다. 경환이는 그런 동생이 귀여운지 안아 올렸다. 저기서 어머님 모습이 보였다. 민환이는 경환이 품에서 벗어나
"할머니~~~~~"
하며 할머니 품으로 달려갔다. 우리를 발견하신 어머니께서는 한달음에 뛰어 오셨다.
"그려, 퇴원 잘 했으니께 다행인거여. 이라고 있지 말고 저짝으로 가장께. 인사 드릴 분이 계시니께. 자 우리 민환이 이리 온."
큰 놈보다 작은 놈이 지 할머니를 잘 따른다. 할머니 손을 꼭 잡은 민환이가 할머니와 함께 앞장서서 저만치 걸어 나간다. 어머님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 간 곳은 조그마한 납골당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작은 위패들이 모셔져 있는 방으로 우리를 들어 가게 하셨다. 그러시고는
"애비야 쩌기 아버지 함자 보이능겨?"
나는 금방 아버지 한자 함자를 찾아 낼 수가 있었다. 너무나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 왔다.
현 진 석...
아버지의 함자 석자가 위패에 새겨져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민환이만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에 바빴고 아내와 경환이는 아버지 위패 앞에 절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가볍게 목례만 했다.
"너거 아부지 너가 어렸을 때 이렇게 이 절에 내팽게 치듯 모셔 놓고 한번도 걸음을 안 했어야. 제사도 제대로 지내 본 적 없고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여기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 모셔 놓은 것이여. 그라고 아버지 위패 바로 위에 위패 보이쟈?"
위로 눈을 가져 갔다.
현 미 선...
하나뿐이었던 누나의 이름이었다. 아니 어떻게 아버지와 나란히 모셔져 있는 걸까? 나의 그런 궁금증을 어찌 아시고는
"그려, 니 누나여. 국민핵겨 댕길때 핵겨 얼마 댕기지도 못하고 열병을 앓고 죽어 부렸제. 너거 아부지 가슴에 묻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거 누나까지 잃고 나니께 이 애미 살맛 안 나더랑께.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제. 그래도 산 사람은 어찌 했어든 살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때부터 이를 꽉 깨물고 버티고 살아온게 지금까지 온거여. 아범아, 이제부터 아버지랑 니 누나 제사 함께 모시면서 살아볼라고 생각 중인디 안되는감?"
"어머님, 안되는게 어딨어요. 당연히 모셔야죠. 경환아빠, 모실거지?"
난 아내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도 이쁘고 고마웠다.
"그럼, 나야 상관없지. 그런데 당신 괜찮겠어?"
"며느리로써 그리고 형님 손아래 사람으로써 당연하지요. 어머님 다음 기일부터 제사 모시기로 해요. 경환아, 너도 그렇게 알고 있거라."
경환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도 민환이는 이리 저리 신기한게 많은지 뛰어 다니고 있었다.
저녁 공양시간...
경환이 어렸을 때 뵙고 오랜만에 뵙는 큰스님과 함께 저녁공양을 함께 들기 시작했다.
"이보게, 자네 성진이... 그래 아픈 곳은 다 나았는가? 어머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더구만. 새벽마다 아들놈 낫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고 하시더구만. 그래 괜찮은가?"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스님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찾아 뵈어야지 찾아 뵈어야지 하면서 생활이 여의치 않아 찾아 뵙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왔습니다. 건강은 하시지요?"
"보다시피 아주 건강하다네. 그래 아직도 이일 저일 하고 다니나?"
"아닙니다. 장인어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공사장에서 감독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막노동판 이력이 많아 감독직으로 하나 일자리를 주시더라구요.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더라구요."
큰스님께서는 껄껄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네가 경환이냐? 진짜 많이 컸구나. 길거리 지나다니다 마주쳐도 못 알아 보게 잘 컸구만. 공부는 잘 하고?"
"네,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강빼면 시체이지요. ㅎㅎ... 민환아 이리와봐. 인사드려야지. 배꼽인사..."
큰눈망울을 또록또록 굴리며 배꼽인사를 하는 민환이가 귀여우셨던지 스님께서는 민환이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셧다. 민환이가
"헤헤, 할아버지 머리는 까까머리래요. 까까머리래요. 히히"
"민환아, 스님께 그런 말하면 못 써요. 그런 말 하는게 아니란다. 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인사드려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아직 애기인 걸요. 그래 우리 민환이 좋아하는게 무엇이더냐?"
"저는요, 우리할머니가 제일 좋아요. 민환이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다 해주시거든요.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 헤헤"
큰스님께서도 따라 웃으셨다.
그 날밤 큰스님 방에서는 밤이 늦도록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스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누나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위패를 보자 마자 어머니께서는 울기 시작하셨다.
"영감, 나 이제 가믄 또 언제 올지 모르니께 기다리지 마시구랴. 언제 올지 모르니께 기다리지 말랑께. 언젠가는 영감곁으로 아주 가겄지. 그리고 미선아. 거서는 잘 살아야 헌다. 알긋쟈. 아프지 말고 잘 살어야 헌다. 염감... 미선아..."
아내는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경환이와 둘이서 짧은 목례를 하고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집으로 올라 왔다.
전 날 큰스님께서 주셨던 달마도 그림 두 점을 큰방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한 장 붙여 놓고 한장은 장모님께 드리기 위해 서럽에 넣어 두었다.
내일부터 다시 일을 하러 나간다. 장인어른께서 몇일 더 쉬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내일부터 새 마음 새 뜻으로 일을 해야겠다.
밖엔 늦겨울 눈이 흩날리고 있다. 경환이는 민환이와 함께 마당에서 뛰어 다니며 눈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고 어머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아내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다. 나도 가만히 두 녀석이 뛰어 노는 마당으로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정말 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다.
정말이지 내일부터 다시 새마음 새뜻으로 일을 하리라 가슴 깊숙히 다짐 또 다짐을 한다.
매일 매일이 어제와 오늘같은 날이 아닌 새로운 날들이 되리라는 희망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