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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설교본문 : 시편 8편(참고, 시편 7편)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1년 2월 7일
서 론 : 하나님을 아는 즐거움이 있습니까?
1) 보이는 육신의 세상과 보이지 않는 영의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보이는 육신의 세상과 보이지 않는 영의 세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 눈에도 보이고 손에도 잡히는 육의 세상 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모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있습니다.
2) 그러나 문제는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고 있는 동안 영의 세계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숨이 끊어지고 난 후에는 영의 세계를 모두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어떤 회개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고 있을 때에 영의 세계를 알아야만 하는데,
영의 세계는 육신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3)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영의 감각이 있어야만 신앙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영의 세상이 영원하다 할지라도 눈에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영의 생명을 받은 자만이
영의 세상을 알 수 있는 영의 세상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의 생명을 받은 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4) 하나님을 아는 기쁨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두려움을 아는 자
거듭난 자는 육신 안에 하나님의 영의 생명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를 압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기쁨이 생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갈등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마치 어떤 사람과 연애의 감정이 생겼을 때
그와 가까워질수록 기쁘고, 그와 멀어질수록 두려움이 생기는 것처럼
거듭난 자는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기쁘고,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5) 먼저 영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되어야 영의 세상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에는 아주 열심히 하는데
즐거워하는 것이나 두려워하는 것이 모두 세상일에 대한 것뿐이라면 그는 거듭난 자가 아닙니다.
그에게 영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영의 생명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8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우리는 시편 8편을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제 1 부 : 고통 중에 부르짖는 다윗(시편 7편)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의 말씀은 시편 8편입니다만,
시편 8편의 기쁨과 감동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시편 7편의 말씀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7편은 시편 8편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다윗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은 탄식의 기도입니다.
• 시편 7편과 시편 8편과의 관계
다윗이 시편 7편을 기록하고 곧이어 8편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
후일 시편 편집자들이 다윗의 여러 시들을 편집할 때 시편 7편 뒤에 8편을 둔 것입니다.
시편 편집자들이 시편 8편을 시편 7편 다음에 둔 것은 시편 8편의 감동적인 노래가
시편 7편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나온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시편 7편의 고통의 자리에서 시편 8편을 노래한 다윗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다윗을 보고 완전한 자라 평하신 이유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8편을 보기 전에
먼저 시편 7편에 담긴 다윗의 고통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고통 중에 하나님께 탄식하며 구하는 다윗
시편 7편의 표제에 ‘베냐민 사람 구시가 한 말을 듣고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는 글이 있습니다.
구시가 누구인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많은 구약 학자들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베냐민 사람 시므온이
다윗을 쫓아가며 먼지와 돌을 집어 던지면서 욕설을 퍼부었던 때에
시므온과 함께 다윗을 따라가며 조롱하고 욕을 한 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1)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괴로운 다윗(7:2)
다윗은 지금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치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쫓기는 자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다윗의 아픈 심정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뒤쫓아 가면서 먼지와 돌을 집어 던지면서 듣기 거북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다윗을 욕하는 자를 단칼에 죽이겠다는 부하를 제지하며
묵묵히 그들이 하는 욕설을 다 들었습니다만,
사실 다윗은 그때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후일 다윗이 죽을 때 솔로몬에게 시므온을 잘 처리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보아도
이때 다윗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마지 사자가 자기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7:1)
다윗이 왕이니 그런 자를 왕의 권력으로 죽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합당하고 공정한 일에는 주저 없이 칼을 들지만,
자기 개인의 일에는 절대로 칼을 들지 않습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다윗의 이런 성품을 잘 알기에 다윗을 험담하고 다닙니다.
다윗은 사자가 자기 몸을 찢는 것처럼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결단코 왕의 권한을 그 일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아뢸 뿐입니다.
3) 만일 내가 이런 일을 행한 것이 있다면 나를 벌하여 주옵소서(7:3~5)
다윗은 만일 그 대적자들이 다윗을 험담하고 다니는 그런 일들을
한 가지라도 한 일이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자신이 지금 당장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윗을 험담하고 다닌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대적자들은 다윗이 그와 평화롭게 지내는 자들을 악으로 갚고,
까닭 없이 연약한 사람의 것을 약탈하였다고 험담하고 다녔습니다(4절).
다윗은 그들이 험담하며 다니는 그런 죄는 짓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➀ 다윗의 대적자들 : 독재자 사울 앞에서는 말 한 마디 못하던 자들
아들에게 쫓겨 도망하는 다윗에게 돌과 먼지를 던지며 욕을 하는 자들은
폭력으로 다스리던 독재자 사울 앞에서는 말 한 마디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온유한 심성으로 백성을 다스리자
말도 안 되는 욕설로 다윗을 험담하고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➁ 거짓뉴스에 놀아난 자들 : 자기 욕망에 부합한 것만 믿는 자들
“다윗은 겉으로는 화친을 청하면서 뒤로는 그 사람을 치는 천하에 못된 놈이다.”,
“다윗은 권력을 이용하여 힘없는 자의 것을 약탈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독재자이다.”(7:4절)
이것은 대적자들이 다윗을 향해서 한 욕설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거짓뉴스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윗이 실제로 이런 일을 했는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정치적 목적으로 만든 가짜뉴스에 놀아났습니다.
➂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부합한 것만 믿으려 합니다.
사울 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평소에 다윗을 향한 미움을 품고 있다가
다윗이 이러저러하더라는 말을 듣고는
그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함께 욕설을 퍼붓는 자가 된 것입니다.
4) 다윗의 고통 : 왕의 권한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기 때문
다윗의 고통은 그가 가진 왕의 권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물론 고통이 있었지만,
그 고통이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고통이 계속 된 것은
그가 국가 권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결코 사용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나라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왕입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가진 왕의 권세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자들에게는 단칼이 그 목을 벨만큼
용감한 군대 장관 출신의 다윗이었으나,
자신에게 돌과 먼지를 던지면서 욕을 하는 자에게는
왜 그러느냐는 말 한 마디를 안 합니다.
이런 고통은 말씀대로 살려는 선한 왕이었기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 묵상 : 고통 중에도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기에 힘쓰는 다윗
시편 7편은 큰 권력을 가진 이가
그 권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결단코 사용하지 않는 자가 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자에게 몸이 찢기는 것처럼 괴로우면서도
자기 권력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다윗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십니다.
제 2 부 :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우신지요(시편 8편)
• 시편 7편의 자리에서 시편 8편을 보십시오. 그러면 다윗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시편 7편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① 큰 고통 중에 있던 다윗이 하나님 앞에 나와 그 고통을 고백하며 탄식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돌보시리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② 그러다 자기를 도우신 하나님에 대하여 묵상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을 묵상하다가 다윗은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➂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모든 것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격의 노래를 부릅니다.
2. 하나님의 뛰어난 능력과 주의 아름다운 이름
1)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8:1)
다윗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다가
세상을 이처럼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아름다운 분이실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 중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아름답지 못한 것들은 본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이 아니라
사람이 죄를 범하여 저주를 받아서 생긴 것들입니다.
그러나 비록 저주를 받아 본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라 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다윗은 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2) 주의 영광이 하늘 위에까지 이르렀나이다(8:1)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 만물에 가득하고 넘쳐서
하늘 위에까지 이르렀다고 노래합니다.
이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천사가 하나님께 시중을 들고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저 하늘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를 묵상합니다.
3)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셔서 대적을 꺾으시는 이(8:2)
세상의 권력자들은 모두 힘 있는 자들과 함께 합니다.
힘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합해야 그 권세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정사와 권세를 하나님께서 친히 갖고 계시므로
세상의 권력자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힘과 권세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니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기는 사람이기만 하면
그들이 어린아이와 젖먹이일지라도 그들에게 힘을 주셔서 강한 자를 물리치게 하십니다.
4)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늘과 달과 별들(8:3)
지극히 작고 나약한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을 통해
세상의 권세자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은
또한 이 장엄한 우주를 만드신 분이기도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저 엄청난 우주의 별들을 바라봅니다.
이 엄청난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얼마나 벅차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3.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1)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8:4)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답고 장엄한 이 세상과 저 하늘의 별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우주의 중심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모든 세상과 저 하늘의 별들이 다 사람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도록 모든 것을 다 마련해 놓으신 후에
제일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2)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8:5)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셨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천사보다도 더 뛰어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담 이후로 저주를 받아
하나님께서 본래 만드신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다만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이니,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3)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8:5)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된 사람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영광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순결하고, 하나님처럼 의로우며,
하나님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담의 잘못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그 영화와 존귀의 관을 잃어버렸습니다만,
본래 우리는 그처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들이었습니다.
4)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8:6~8)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사람은
주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아담이 아직 마귀에게 속아 죄를 범하기 전에, 그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4.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랑
1) 사람에게 새롭게 만들어 주신 구원의 길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사람의 그 영광과 존귀와 아름다움은 아담의 죄로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죽이기도 하고,
아주 조그마한 박테리아균에도 죽을 수 있는 초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름다운 영광의 복을 회복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에서는 율법이고,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입니다.
2) 사람을 생각하시고 권고하시면서 돌보시는 하나님(8:4)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잘 따르지 않으니 이를 어찌합니까?
사람이 그 영광을 회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들어 주신 그 복음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데,
사람들이 그 구원의 길보다는 멸망하고 말 땅의 일에만 관심이 있으니 이를 어찌합니까?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계속해서 사람을 생각하시며 권면하시고 돌보십니다.
때로는 선지자를 보내시고 때로는 징계의 채찍을 치시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속마음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영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람을 생각하고 권면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3)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아름다움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놀라운 영광과 존귀를 다 잃어버렸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잃어버린 본래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때의 영광보다 더 크고 놀라운 영광입니다.
전에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어 마귀에게 속아서 그 영광을 다 잃어버렸지만,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주신 그 영광을 입게 될 때에는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는 완전한 영광을 가진 자가 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돌보심은 하나님의 권면과 함께 나타남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자들에게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말씀과 권면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경청하여 들으며 사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만일 그 권면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부하면
하나님의 돌봐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도 중단되고 단절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께서 주시는 그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항상 가까이 하는 자가 되십시오.
결 론 :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노래한 다윗의 기쁨을 아는 자가 되십시오.
1) 거듭난 생명을 얻었다고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육과 영은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밀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을 따라 살면 영에서 멀어지고,
영을 따라 살면 육의 세계에서 중단하고 절제해야만 할 일이 많아집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육의 세계는 당장 눈앞에서 나를 위협하는데,
나는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향하여 그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야만 합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육의 어려움을 뚫고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육의 세계를 거슬러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영이 건강하게 자라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건하지 못하고 부실하면 육의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요즘 코로나 19 사태를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거나 중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영의 세계를 알지만
무거운 육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강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목표이고 열매입니다.
오직 주께서 주신 새 생명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자, 흔들리지 않을 만한 강건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 그분을 사랑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 잘 되어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가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4) 신앙의 열매가 맺어지기까지 날마다 신앙이 자라가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영의 감각이 생겨야 합니다.
또 감각이 생긴다고 할지라도
영의 감각이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되어야 하고
또 그것이 악에 속한 것인지 주께 속한 것인지 분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경건의 삶을 계속 하면
주께서 우리의 영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우십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도 시편 8편의 다윗처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건강한 영을 가진 자가 됩시다.
주님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셔서
그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범한 죄로 인하여
주께서 만드신 그 아름다운 영광을 잃어버렸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더욱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하셨음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주께서 이처럼 우리를 생각하며 보살펴 주셨으니
우리도 평생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