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용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불제자들의 경우엔 마음이 갖는 의미는 더 각별해진다. 그러나 마음은 미추, 호오 등 어떤 구분이나 경계가 없는 말이다. 굳이 종교의 범주에 가둘 필요도, 특정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마음은 그저 자연스럽게 놓아두고 관조할 대상이다. 그 변화무쌍한 운용의 근본을 천착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평생을 두고 마음공부를 했어도 그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고 하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각 선방에서는 마음을 찾는 공부에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 고요하기가 해인(海印)의 경계를 넘어서고, 활발발하기가 용호상박의 전투를 무색케 하는 마음의 이치, 쉽지 않은 마음공부의 과정이기에 예로부터 많은 선지식들이 비유와 직설로 마음공부를 지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어렵기만 하다. 이 신출귀몰한 마음을 좀 더 가깝게, 좀 더 쉽고 자연스럽게 관조할 방법은 없는 걸까. 역대 선지식이 납자들을 제접했던 할과 방의 방편은 말고, 일상에서 마음을 느끼고 알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사진작가 이혜련은 그 방법을 자신만의 독특한 연꽃 사진을 통해 우리시대 대중들에게 제시해온 이다. 연꽃을 화두로 들고 선승처럼 참구해온 그의 깨침은 마침내 렌즈를 통해 우리들 앞에 그 오묘한 세계를 편린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이미 사진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혜련 작가가 이달(9월) 연꽃향기를 마음에 담아 느낄 수 있는 전시를 연다. 아울러 이번 전시사진을 중심으로 한 작품집도 출간했다. 사진 전시회의 이름도, 작품집의 이름도 ‘마음’이다. 이 작품집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도 출시될 예정이다.
이혜련의 연꽃은 그의 호 ‘유당(流堂)’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역동적이다. 유당, 흔들리는(또는 흐르는) 집이란 뜻인데, 사실 사바세계에 사는 두두물물중에 유당 아닌 것이 있을까. 따라서 유당은 곧 살아있음의 다른 말일 것이다.
그의 사진이 살아 숨쉬는 것은 미세한, 때론 거친 흔들림의 연속들이 중첩되어 포착된 까닭이다. 연밭의 작은 흔들림은 렌즈와 함께 죽음처럼 고요한 시간을 응시해온 작가의 마음을 통해 환영의 흔들림이 되어 그 참 면목을 나툰다.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찍어온’ 사진작가 이혜련의 작업은 작가 자신의 마음을 연꽃 위에 살포시 머무르게 한 장면들이다. 이혜련의 연꽃 사진은 흙탕물 속에서 때 묻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이 바람에 흩날리거나 구름과 동화되면서 사바에 흘리는 그윽한 향기를 마음에 담아 느낄 수 있게 한다. 작품 속에 소재로 개입시키고 있는 꽃, 물, 구름, 바람은 쉴 새 없이 우주를 떠돌다 마음과 소통하여 비로소 완성의 경계에 이른다.
마음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마음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움직이는 가운데서 고요함을 구한다.
고요한 가운데에서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고요할 때 하나에 집중하면
이것은 적연부동의 상태로서
마음이 동서로 분산되지 않으므로
항상 中의 상태에 있다.
주돈이가 고요함을 주로 하라고 논한 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켜
스스로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혜련 작가는 사진집 ‘마음’에서 이번 사진에서 자신의 추구하고자 했던 세계를 《근사록집해》의 ‘적연부동(寂然不動)’을 통해 이렇게 제시한다.
이혜련 작가는 연꽃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을. 사람이 세차게 부는 날, 작가 이혜련은 차를 몰고 연밭으로 달려간다. 그곳이 전국 어디든 상관이 없다. 아마도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연밭은 우리나라엔 없을 것이리라.
그의 사진은 예술사진이다. 예술사진은 다른 장르에서도 그렇듯이 대중적 주목을 받기는 어렵다. 그 사진이 추구하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대중적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혜련의 사진은 가능한 인공적 조작을 거부한 '날 것 그대로의' 사진이다. 그의 사진에서 나타는 흔들림은, 바람을, 생명을 촬영한 것이다. 셔터 스피드의 조작으로 나타난 영상이 아니라 바람의 흔들림을 그만의 감각으로 포착한 것이다.
바람, 바람은 사진작가 이혜련에게 있어 각별한 존재다. 그에 있어 바람은 태극이요, 창조주이며 또한 진공묘유의 공이다. 움직임이 없으면, 즉 바람이 없으면 죽음이다. 생명이든 마음이든 우주든 모든 것은 바람이 불 때, 움쩍거릴 때 생성된다. 바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은 어김없이 그의 사진 속에 그대로 투영돼 나타난다.
흔들리는 바람, 그의 사진을 보노라면, 화두를 참구하는 납자의 마음 속에 산란하게 일어나는 번뇌망상의 광경들이 연상된다. 그러나 ‘번뇌 즉 보리’라고 했듯이, 바람이 세상을 창조하듯이 번뇌는 마침내 보리(깨달음)를 드러낸다.
좋은 사진, 좋은 작품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장마철에도 빨래를 널 틈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틈을 내어 서울 한복판, 삼청동 국립민속관 맞은편의 ‘공근혜 갤러리’에서 9월 27일까지 펼쳐지는 연꽃의 향연에 동참, 마음을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마음 전시일정>
전시일시: 2009. 9. 14 MON - 9. 27 SUN
전시장소: 공근혜 갤러리 T.02-738-7776
입장료: 무료
<마음 작품집>
A4판형 / 하드커버 양장제본 / 72페이지 / 40여점 작품 수록
지은이 이혜련(출판사 JINDIGITAL.COM}
*사진작가 이혜련(LEE, HEI-RYUN)은?
연꽃과 자연을 통해 마음의 진면목을 촬영하는 작가로, 2007년 ILLUMINATION (김영섭사진화랑 기획전), 2004년 ~然하다...바람 (관훈갤러리), 2002년 몽골의 하늘 (갤러리룩스)의 전시회를 가졌다.
*아래의 글은 미학박사 김화자 님의 사진비평 글 전문이다. 이혜련 작가의 사진세계에 대한 이해의 도움을 위해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蓮의 공명
움직임 가운데서 고요함을 찾으려는 작가의 구도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게 서 있는 연 꽃 혹은 출렁거리는 잎의 파고 속에서도 늘 파랗고 높게 떠 있는 하늘에서 중첩되어 나타난다. 마음을 진동시키는 고뇌보다 더 세차게 부는 바람의 흔들림으로 연 꽃과 잎의 형태가 희미해지다 다시 또렷이 떠오르는 연의 형상은 마음과 현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이접하면서 나타나는 세계를 바람과 빛이 빚어 낸 환상적인 색채들로 펼쳐 놓았다. 빛의 파장에 따라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이 나타나고, 바람이 다시 색을 분산시키며 고요하여 정지되어 있는 듯 하지만 미세한 파동으로 가득 찬 세계와 감각적인 세계를 초월한 세계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과 종교는 가시적이면서 변함없는 실체 이면에 은폐되어 있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의 진실을 믿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의 실체가 아닌 작가가 세상과의 관계 맺는 고유한 방식과 시선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사물의 존재는 색에 의해 보이는 형태들로 드러난다. 따라서 색은 단순히 어떤 것의 반영이 아니라, 이처럼 공간을 열어젖힌다는 점에서 내면과 외부,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존재와 만나는 장소이다. 의도적이지 않는 듯 자연스런 대비적인 구성미와 함께 잔잔하게 인화지 속으로 스며드는 색면의 얼룩들은 작가의 조형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프레이밍과 색채 감각의 결과이다.
작가는 연꽃 밭에 휘몰아치는 바람을 통해 꽃잎들의 희미한 윤곽과 텅 빈 하늘 속으로 사라질 듯 말 듯 한 물질적인 형태의 바스러짐이 단순히 공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動과 靜이 이접되는 세계를 자연스레 연결시켜 준다. 바람으로 진동하는 연 밭의 풍경과는 달리 파란 하늘은 늘 고요하다. 비어있는 차원을 통해 사물의 다양하고 낯선 모습들이 새롭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쪽빛 하늘의 심연은 우리의 편협한 눈과 가슴으로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인간의 욕망으로 혼탁해진 물과 오염된 공기를 호흡하고 자랐지만 군자와 같은 자태를 지닌 연과 청정한 하늘 사이의 경계를 바람이 지우며 마음먹기에 따라 하늘같은 寂然의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음을 감성적이면서도 명상적인 구도를 통해 표현해 내었다.
빛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신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면 이러한 빛으로 색의 신비를 통해 작가의 사유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형태와 무게 없는 바람을 매개로 컬러와 구도, 움직임을 대비시킨 프레이밍 감각을 통해 삼라만상은 고정되지 않고 늘 변화한다는 諸行無常도 시각화하였다. 작가의 사유는 폭풍처럼 휘날리는 연 잎이나 연꽃의 파동 치는 흔적이 되기도 하고, 무념의 파란 하늘이나 흰 구름처럼 조용히 멈춰서기도 한다. 펼치고 접히는 연잎의 율동이 만들어낸 자취들은 어쩌면 고뇌의 자국이기도 하고 고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욕망의 흔들림과 겹침은 결국 하얀 한 점의 구름으로 超動하거나, 노란 연밥으로 결실을 맺기도 한다. 중용의 덕 혹은 해탈의 염원으로 휘감아 도는 바람은 단순히 자연의 현상이 아닌 작가의 마음을 누설한 것이다. 흙탕물 속의 연꽃,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고요함은 사후의 극락이나 영생의 세계가 아닌 일상의 평정심을 통해서도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색채의 미묘하고 몽환적인 조화는 신비스럽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며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작가의 기원을 시각화해주는 동시에 분주하고 무거운 우리의 시선도 편히 쉬게 해준다. 김화자 (미학 박사, 사진 비평)
이학종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