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글은 서울교구의강영옥선생의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사도직 운동'에서 추려온 것이다.
천주교회에서 사도직단체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수동적인 평신도활동을 변화시키는 듯하였지만
이들 단체가 확장해나가면서 평신도들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는데 이는 평신도가 이들 영성을
통해서 생활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떄문인데 그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빈첸시오 레지오 그리고 꾸르실요이었다
꾸료실요가 도입된 1960년대 한국 교회안에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대채로 신자들은
소극적이고 타상적이고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사도직 수행은 성직자나 수도자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졌고 신자들은 계명 이행과 개인적인 기도 생활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였다
꾸료실요는 그리스도교 정신과 생활을 사회속에 구현하려는 신앙쇄신운동이다.
꾸료실요의 본질이 개인의 성화이며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의 교육인데, 역사적 과정 안에서 토착화한다는
명분으로 꾸르실요 본래의 영성을 벗어나 평신도지도자 단기양성과정으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한다.
꾸료실요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본래의 소명의식에 강조점이 있으며 소명을 깨달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이엊야하는데 많은 꾸르실리타가 배출됨에도 실천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않고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외형적인 형식보다는 내면적인 기도와 수련에 충실하기를 희망하고있다.
그동안은 많은 신자들이 레지오등 단체활동이 많은데 소공동체까지할려니 버겁다고 했다
이는 기존의 각단체와 소공동체를 별개로 보기떄문이라는 것이다. 교구에서 뜻깊은사제들은
오래전부터 본당에서의 단체활동의 그릇으로서는 많은 신자들을 품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인식은 소공동체모임이 기존의 행정위주의 구.반조직을 그대로 활동한탓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리고 구역모임의 봉사자를 교구차원에서 양성하여 훈련하는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런일로 구역 특색에 맞게 현실적인 대안보다는 교구에서 주어진 질문에 응답하는
수동적인 것이 모임에 한계를 불러오게되었다.
다행히도 요번 시노드본당모임을 통해서 확장된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적지않는 문제점과 헤쳐나가야 할 바를 직감하는 것 같다. 실제생활과 접목을 통해서
실생활에 확장해 나갈수가 있다면 새로운 2천년기의 교회시대가 여릴것이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코로나의 거리두기시대를 맞아서 그 위기를 해쳐나가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라 여겨지고
이를 주님이 주신 은사로 여겨 은사활성화에 보다 더 박차를 가하여야만 할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