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
孫破虜討逆傳第一(1) 吳書
國志 四十六
孫堅傳(3)
前到魯陽(전도노양)與袁術相見(여원술상견)
손견이 전진하여
노양에 도착하여 원술과 서로 만났다.
術表(술표)堅行破虜將軍領豫州刺史(견행포로장군령예주자사)
원술은 표를
올려 손견에게 포로장군을 대행하고 예주자사도 겸하도록 하였다.
遂治兵於魯陽城(수치병노양성)當進軍討卓(당진군토탁)
드디어 노양성에
군사를 주둔하고 진군하여 동탁을 토벌하려고
遣長史公仇稱(견장사공구칭)將兵從事(장병종사)還州督促軍糧(환주독촉군량)
장사 공구칭을
보내 병사들을 이끌고 일에 따라 형주로 돌아가 군량을 독촉하는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施帳幔於城東門外(시장만어성동문외)祖道送稱(조도송칭)
노양성 동문
밖에 휘장을 치고 공구칭을 위한 송별의 길 잔치를 열었는데,
官屬並會(관속병회)卓遣步騎數萬人(탁견보기수만인)逆堅(역견)
그의 관속도
모두 이곳에 모였다. 동탁이 보병과 기병 수만 명을 보내 소견을 맞아 싸우려 했는데,
輕騎數十先到(경기수십선도)堅方行酒談笑(견방행주담소)
날랜 기병
수십 명이 먼저 도착하였다. 소견은 마침 술자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勅部曲整頓行陣(칙부곡정돈행진)無得妄動(무득망동)
부하 병사들에게
정돈하여 진을 행하며 경거 망동을 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後騎漸益(후기점익)堅徐罷坐(견서파좌)導引入城(도인입성)
뒤에 기병이
점차 늘어나자 소견은 천천히 자리를 끝내고 사람들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 갔다.
乃謂左右曰(내위좌우왈)
그리고는
주위에 말하기를
向堅所以不卽起者(향견소이불즉기자)恐兵相蹈藉(공병상도자)
“지난번
내가 바로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군사들이 서로 밟아 깔려
諸君不得入耳(제군부득입이)
여러분이
들어갈 수 없을까 두려웠을 뿐입니다.” 하였다.
卓兵見堅士衆(탁병견견사중)甚整不敢攻城(심정불감공성)
동탁의 병사들은
손견의 병사들을 보니, 매우 정돈되어 감히 성을 공격하지 못하고,
乃引還(내인환)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堅移屯梁東(견이둔양동)大爲卓軍所攻(대위탁군소공)
손견은 대량
동쪽으로 주둔지를 옮겼는데, 동탁의 군사가 맹렬히 공격하자,
堅與數十騎(견여수십기)潰圍而出(궤위이출)
손견과 그의
기병 수십기는 포위를 뚫고 탈출하였다.
堅常著赤罽幘(견상저적계책)乃脫幘(내탈책)令親近將祖茂(령친근장조무)著之(저지)
손견은 항상
불은 색 담으로 만든 책을 쓰고 있었는데, 그 책을 벗어 측근 장수 조무에게 쓰도록 했다.
卓騎爭逐茂(탁기쟁축무)故堅從閒道得免(고견종한도득면)
동탁의 기병은
다투어 조무를 쫓았기 때문에 손견은 샛길로 탈출할 수 있었다.
茂困迫(무곤박)下馬以幘冠冢閒燒柱(하마이책관총한소주)
조무는 추격병으로
곤경에 처하자, 말에서 내려 책을 무덤 사이에 놓고 불태우고는
因伏草中(인복초중)卓騎望見(탁기망견)圍繞數重(위요수중)
풀 속에
엎드렸다. 동탁의 기병은 멀리서 바라보고 주위를 여러 겹으로 에워싸고는
定近覺是柱(정근각시주)乃去(내거)
가까이 머무르면서
책이 완전히 탄 것을 보고는 떠났다.
堅復相收兵(견부상수병)合戰於陽人(합전어양인)
소견은 다시
군사들을 모아 양인에서 적과 싸워
大破卓軍(대파탁군)梟其都督華雄等(효기도독화웅등)
동탁의 군을
크게 쳐부수고 그의 도독 화웅 등을 죽였다.
是時或(시시혹)閒堅於術(한견어술)述懷疑(술회의)不運軍糧(불은군량)
이때 어떤
사람이 원술에게 소견을 이간질하자, 원술이 의심을 품고는 군량을 운반해 주지 않았다.
陽人去魯陽百餘里(양인거노양백여리)堅夜馳見術(견야치견술)
양인은 노양에서 100여리 떨어져 있는데, 소견이 밤에 말로 달려가 원술을 만나고는
畵地計校曰(화지계교왈)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계교를 말하기를
所以出身不顧(소이출신불고)上爲國家討賊(상위국가토적)
“몸을 던져가며
개인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는 까닭은 위로 국가를 위해 적을 토벌하고,
下慰將軍家門之私讎(하위장군가문지사수)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사로운 원수를 갚기 위함입니다.
堅與卓非有骨肉之怨也(견여탁비유골육지원야)
손견과 동탁은
골육의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而將軍受譖潤之言(이장군수참윤지언)還相嫌疑(환상혐의)
그런데 장군은
참소하는 말을 듣고 도리어 의심한단 말입니까?” 하자,
術踧踖(술축적)卽調發軍糧(즉조발군량)
원술은 삼가 하면서 바로 군량을 출발시켰다.
堅還屯(견환둔)
손견은 진영으로
돌아왔다.
卓憚堅猛壯(탁탄견맹장)乃遣將軍李傕等(내견장군이각등)
동탁은 손견의
용맹함고 씩씩함을 꺼리어 장군 이각 등을 보내어
來求和親(래구화친)令堅列疏子弟(령견열소자제)任刺史郡守者(임자사군수자)
화친을 구하려고
와서는 손견의 자제로 자사나 군수로 임명하고자 하는자를 열거하여 올리면
許表用之(허표용지)堅曰(견왈)
표를 올려서
그들의 임용을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손견이 말했다.
卓逆天無道蕩覆王室(탁역천무도탕복왕실)
“동탁은
하늘을 거스르고 도가 없으며 황실을 뒤엎었다.
今不夷汝三族(금불이여삼족)縣示四海(현시사해)
지금 너의
삼족을 멸하지 못하여 천하에 나타나 보이게 된다면
則吾死不瞑目(즉오사불명목)豈將與乃和親邪(기장여내화친사)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어찌 함께 화친을 한단말인가?”
復進軍大谷(부진군대곡)拒雒九十里(거낙구십리)
다시 대곡으로
진군하니, 낙양과 90리 거리에서 막았다.
卓尋徙都西入關(탁심사도서입관)焚燒雒邑(분소낙읍)
동탁은 얼마
되지 않아 수도를 서쪽 함곡관으로 옮기면서 낙읍을 불태워 버렸다.
堅乃前(견내전)入至雒(입지낙)修諸陵(수제릉)平塞卓所發掘(평색탁소발굴)
소견은 이윽고
앞으로 전진하여 낙읍에 이르러 여러 능묘를 보수하고 동탁이 파헤친 능을 정리하였다.
訖引軍還住魯陽(흘인군환주노양)
이를 마치고는
군사를 이끌고 노양에서 머물렀다.
初平三年
초평 3년(192)
術使堅征荊州(술사견정형주)擊劉表(격유표)
원술은 손견을
시켜 형주를 정벌하고, 유표를 치게하였다.
表遣黃祖逆於樊鄧之間(표견황조역어번등지간)
유표는 황조를
보내 번성과 등성 사이에서 싸웠다.
堅擊破之(견격파지)追渡漢水(추도한수)遂圍襄陽(수위양양)
손견은 그들을
격파하고 한수를 건너 추격하여 드디어 양양을 포위하였다.
單馬行峴山(단마행현산)爲祖軍士所射殺(위조군사소사살)
홀로 말을
타고 현산을 순시하다가 황조의 군사가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兄子賁帥將士衆(형자군수장사중)就術(취술)
손견의 조카
분이 군사들을 이끌고 원술에게 가자,
術復表(술부표)賁爲豫州刺史(분위예주자사)
원술은 다시
표를 올려 손분을 예주자사로 삼았다.
堅四子策權翊匡(견사자책권익광)權旣稱尊號(권기칭존호)
손견은 4명의 아들이 있었으니, 책, 권, 익, 광이었으며, 손권은
이미 존호를 칭하고 나서
諡堅曰(시견왈)武烈皇帝(무열황제)
손견의 시호를
무열황제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