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엔카 명상센터에서의 수행 (1)
글 | 스텔라 박
지난 5월 2일부터 13일까지 12일 동안,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담마 코리아 위빳사나 명상센터(Dhamma Korea Vipassana Meditation Center)’의 묵언 안거(Silent Retreat)에 참가했다.
UCLA에서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자격증을 받은 이들은 매해 적어도 5일 이상의 묵언 안거에 참가해야 한다.
지난 해, 스피릿 록 명상센터(Spirit Rock Meditation Center)에서 7일간의 안거 이후, 좀더 긴 기간 동안 좀더 철저하게 수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담마 코리아에서의 10일짜리 안거는 그런 나의 목적에 매우 적절해보였다. 10일짜리 안거이지만 실제는 12일짜리이다. 들어가는 날과 나오는 날을 뺀, 실제 종일 수행하는 날만 10일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물었다. “왜 그렇게 일부러 힘든 길을 찾아다니는거야?”라고.
글쎄… 한 번도 수행의 맛을 보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에는 내가 하는 짓거리들이 혀를 끌끌 찰 만큼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 열흘 동안 입에 재갈을 물리고 새벽 일찍부터 밤까지 가부좌 틀고 면벽한다는 건, 그래..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은 현대인들의 눈에 고역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침에 죽 한 그릇, 점심 때 채식 밥 한 끼만 먹고 오후불식하는 것도 힘겹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재의 상징 체계인 말보다 침묵이 더 편했고, 밖의 것들에 내 의식을 빼앗기는 것보다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좋았다.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보다 거친 음식을 천천히 알아차리며 먹어 수행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시절 인연이 맞았기에 가능했다. 사실 5월 9일부터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즈 지역에 있는 ‘담마 왓따나 남가주 명상센터(Dhamma Vaddhana Southern California Vipassana Meditation Center)’에서 안거를 하려 계획했었다가 한국에 좀더 머물면서 다른 안거 일정을 알아봤다. 담마 코리아의 캘린더를 보니 여성의 경우 이미 정원이 꽉 찼고 대기자 명단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기자로 참가하는 지원서를 내면서 나는 이미 내가 안거에 참가해 수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국의 ‘담마 코리아’와 캘리포니아의 ‘담마 왓따나’는 모두 전 세계에 분원을 두고 있는 고엔카 명상센터(Goenka Meditation Center)의 지부들이다. 전 세계의 고엔카 명상센터들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정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수행 방법에 있어서도 판에 박아 놓은 것처럼 똑같다.
" 진정한 행복, 진정으로 변치 않고 지속되는 행복을 원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깊숙한 내면으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내면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을 제거해야 한다. - 고엔카 "
위빠사나의 대부, 고엔카
먼저 전 세계에 이러한 명상센터를 건립한 고엔카란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사트야 나라얀 고엔카(S. N. Goenka)는 1924년, 미얀마에서 출생한 인도인이다. 부유하고 보수적인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스스로도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예수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얘기했다. 부자들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다. 요즘 세상에서는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엔카의 경우, 20대에 이미 미얀마의 재벌이 되어 있었음에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었고 그로 인해 수행을 하게 되었으니 전생에 얼마나 큰 공덕을 쌓았던 것일까.
그 많은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그의 고통은 편두통이었다. 머리를 쪼개는 듯한 통증은 21세 때부터 그를 괴롭혔다.
그는 세계적으로 내노라하는 명의들을 모두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마약에 의존해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명상을 해보라는 제안과 함께 재가불자이자 명상 지도자였던 사야지 우바킨(U Ba Khin 1899~1971)을 소개받는다. 우바킨은 고엔카에서 명상을 배우려는 의도를 물었고 고엔카는 있는 그대로, 편두통이 낫는다고 해서 명상을 배우려 한다고 대답했다. 우바킨은 “명상이란 진리를 깨닫기 위한 방법이지 병을 낫게 하는 기술이 아니다.”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고엔카 명상센터에서는 이 명상 수행이 정신적, 신체적 질환의 치료법이 아님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병이 낫기도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도 않
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세우고 제자를 길러낸 고엔카
한국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담마 코리아
고엔카를 가르쳤던 우바킨은 30대 후반 들어 불교, 특히 레디 사야도(1846~1923)의 수행 방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중 38세 때인 1937년, 레디 사야도의 제자인 사야텟지(Saya Thet Gyi, 1873~1945)로부터 수행을 지도받게 된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정진을 계속한 우바킨은 1941년부터 재가 수행자들을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 1952년에는 국제 수행 센터(International Meditation Center, IMC)를 창설하고 세상 떠나는 날까지 약 3,500명에 달하는 재가 신자와 외국인 제자들을 지도했다.
고엔카는 처음엔 명상을 배우기 주저했지만 명상 수행과 함께 그의 편두통이 씻은 듯이 낫자 1955년부터 14년 동안 우바킨의 지도 하에 열심히 명상을 수행했고 스승으로부터 명상을 가르칠 수 있도록 인가를 받았다.
1969년 인도로 이주한 고엔카는 가족에게 사업을 맡기고 위빳사나 명상 가르치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7년 후인 1976년, 그는 마하라쉬트라 주에 첫 명상센터인 ‘담마기리’를 설립했다. 줄곳 혼자 명상을 가르치던 그는 1982년에 이르러 그를 도와줄 명상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담마기리 명상센터에 위빳사나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 후 세계 곳곳에 수많은 명상 센터를 세운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명상 스승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다가 2013년, (당시 89세) 세상을 떠났다.
첫 명상센터가 설립된 이후, 고엔카와 그 제자들은 세계 곳곳에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건립했다. 현재 고엔카 명상코스는 94개 국가의 310 여 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 가운데 176개는 수행처를 갖추고 정기적으로 10일 코스가 열리는 정규센터들이다. 미국에만도 5개의 정규 센터와 4개의 비정규센터가 있으며 유럽, 아시아, 북남미,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 세계 곳곳에 수행처가 마련돼 있다. 그의 모국인 인도에는 무려 78개의 센터가 있다.
담마 코리아 전경
고엔카 명상센터에서의 수행
고엔카 명상센터 한국 지부인 담마 코리아는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해 있다. 당시 해남 대흥사에 머물고 있던 나는 광주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전주행 버스를 탔고 전주부터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세우고 제자를 길러낸 고엔카 한국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담마 코리아 택시를 타고 진안의 수행처에 도착했다.
낮은 산에 둘러쌓인 명상센터는 아직 완전한 건물은 아니지만 한 번에 70-80명 정도가 12일간 먹고 자고 수행할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설과 건물들은 고엔카에서 수행한 이들이 낸 보시금으로 이 지역의 폐교를 구입해 지은 것이다. 고엔카 명상센터는 오직 참가자들의 보시와 봉사로 운영된다. 이 소중한 가르침(담마)을 무료로 팍팍 주는 것에 대해 나는 10일 내내 감사해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시를 하고 정기 후원을 약정했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전세계 어디가 됐든, 몸으로 하는 봉사도 할 예정이다. 담마에 관련해서는 무얼 해도 좋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배워도 좋고, 가르쳐도 좋고, 보시를 해도, 봉사를 해도 좋다는 것을… 그 모두 수행임을…
첫날 입소하면 핸드폰과 태블릿, 컴퓨터, 책 등 마음에 채색할 수 있는 크레용 같은 것들을 모두 반납한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생겨난 이 똑똑한 기기들로 인해 우리들은 얼마나 사색의 시간을 저당잡히고, 침묵을 방해받던가. 10일 동안 전화기 없이 살다 보면 점점 언어 이전의, 존재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깨닫는다. 전화기가 없는 삶은 훨씬 풍요롭고 깊은 맛이 있음을…. 비로소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음을….
첫날은 오리엔테이션 이후 저녁 식사가 제공됐다. 고엔카 명상센터의 식당은 수행자들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도록 모두 한쪽 방향을 향해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묵언을 하는 가운데 식사 시간마다 다른 수행자와 밥을 먹으면서 눈길 마주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는 오직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고엔카 명상센터에서는 이를 간파해 모두가 한쪽 방향을 보도록 탁자를 배치했다. 덕분에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마음을 챙겨가며 식사(Mindful Eating)’를 할 수 있었다.
담마홀 내부. 오직 수행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저녁 식사는 그날과 마지막 날밖에 제공되지 않았다. 나머지 날들은 오전 6시 30분 아침식사, 11시 30분 점심식사, 그리고 오후 5시에 신수련생들에게는 약간의 과일과 차, 구 수련생들은 차만이 제공됐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열흘간 오후불식을 생활화해보게 됐다. 저녁을 먹지 않고 어떻게 살아, 걱정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몸이 가벼워지고 무엇보다 소화에 필요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다 보니 졸림도 덜하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명상 가이드는 고엔카의 육성이 담긴 파일을 틀어준다. 그리고 한국의 명상센터에서는 이를 번역한 오디오가 함께 나온다. 고엔카의 법문이 나올 때는 한국어로만 진행되고 영어권의 수행자들은 다른 방으로 가서 영어 법문을 듣는다. 그 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수행자는 한국어 법문이 나오는 방에 머물면서 스텝들이 나눠준 스마트기기를 통해 자신의 모국어로 법문을 듣고 있었다. 코스가 끝난 후 스텝에게 다른 나라의 명상센터의 경우 어떤 언어로 진행되는지를 물어봤더니, 영어가 기본, 그리고 그 나라 말로 진행되지만 한국어를 비롯, 전세계 거의 모든 언어의 번역본 음성 파일들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의 걱정 없이 전 세계 어느 명상센터의 코스라도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수행자들은 안거 기간 동안 지켜야 할 사항(계戒 , Shila)들을 듣게 된다. 이는 “1)살아있는 생명을 헤치지 않는다. 2) 내게 제공되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는다. 3)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다. 4) 거짓된 말,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다. 5)술, 약 또는 그 어떤 취하게 하는 물질도
하지 않는다.”는 오계이다. 구수련생들은 이에 더해 “6)오후불식 7) 화장, 장신구 등 몸 치장 않기 8) 높은 침대, 또는 화려한 침구를 사용하지 않기” 등 3가지의 계가 추가된다.
또한 모든 수련생들은 코스 기간 동안, 다른 어떠한 종교적인 예배나 의식, 명상법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기독교 신자라고 눈감고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조계종 스님이라고 눈감고 앉아서 화두선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고엔카는 자신이 우바킨으로부터 배운대로, 마음을 대수술하는 최소한의 기간인 10일 동안 온전히 붓다 시대로부터 전해져오는 본래의 방법대로 우리들이 수행하기를 원해서이다. 수많은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해온 결과 그 효과가 검증됐기 때문이다.
스텔라의 마음 공부 - 고엔카 명상센터에서의 수행 2편은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