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운 시집 『녹슨 글라디올러스』 출간
정여운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시립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2013년 『한국수필』로 수필, 2020년 『서정시학』에 시 「문에도 멍이 든다」 외 2편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붉은 도장」으로 불교신문 10·27법난 문예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2021) 『녹슨 글라디올러스』(2024) 공저 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2023) 외 다수, 詩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2023)가 있다. 2024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 부문에 선정되었다. ‘새얼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말을 다루는데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가 시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말할 때는 마치 작두 탄 무당처럼 처연하고 아프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그 타고난 말솜씨에 홀려 눈물을 흘리며 장단을 맞추게 하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슬픔이 가진 아이러니를 잘 요리할 줄 아는 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ㅡ이경림(시인)
정여운 시의 강점은 튼튼한 서사가 있다는 것이다. 세속사회의 온갖 기막힌 사연이 다 펼쳐진다. 장삼이사의 수많은 사연을 펼쳐놓는 방식은 무녀의 무가나 소리꾼의 판소리 가락을 방불케 한다. 대체로 처절하지만 유쾌할 때도 있다. 인생이란 것이 희희낙락의 나날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애통절통의 나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정여운의 시의 청승스런 가락에 빠져들어 생로병사 희로애락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웃음도 나오고 코끝도 찡해진다. 산전수전을 맨몸으로 치른 시인이 이 땅에 한 사람 있으니, 그이의 이름은 정여운이다.
ㅡ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시인은 타자의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이다. 시인은 세상의 슬픔을 감지하고 울음의 진원을 찾아가 그것과 하나가 되어 함께 운다. 시인은 말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자 대신 말을 해주는 말words이다. 시인은 울지 못하는 자 대신 울음의 말을 해준다. 시인이 타자의 울음을 실컷 울 때, 시의 숲이 천천히 우거진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롤랑 바르트R. Barthes는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하는 거나 다름없다.”(『사랑의 단상』)고 하였다. 바르트는 이 전언이 나오는 장의 제목을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고 붙였다.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 혹은 통감은 모든 사상과 예술의 기원이다. 아픔과 결핍의 타자에 관한 관심이 없다면, 예술-언어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여운 시인도 세상의 통증에 민감하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민감한 촉수를 들이대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아픔이다. 이 시집의 압도적 다수의 시편이 어머니를 직접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정여운에게 어머니는 이 세상의 통증의 출발점이다. 그녀의 언어는 어머니의 통점을 지날 때 가장 심하게 떤다. 그 떨림은 정여운 시의 기원이며, 그녀의 애정이 부챗살처럼 세상으로 번져가는 꼭짓점이다.
새벽 두 시, 비몽사몽간에
쿵!
하현달이 창틀로 낙상했다
신음처럼 달빛은 책상을 싸안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문장이다
아픈 구름이 능선에서
엉. 거. 주. 춤. 한다
40킬로미터의 직유가 시작되고 있다
삭정이 같은 불면 속에서
그림자가 화드득 자라난다
내게로 내려앉은 어머니의 뼈 두 마디
비틀려진 詩가 아련히 들려온다
---[낙상 詩] 전문
이 작품은 정여운의 시 세계와 그녀의 어머니가 맺고 있는 상관관계를 잘 드러내 준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비몽사몽간에” 나타나는 존재이다. 즉 그녀에게 어머니는 무의식의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존재이자 전의식을 넘어 의식에 출몰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마치 하늘에서 달이 떨어지듯이 나타난다. 그것은 충격처럼(“쿵!”) 그녀의 작업 공간인 “책상”으로 떨어진다. 시인에게 책상은 시를 쓰는 자리이고 그 위에 어머니는 “낙상”한 “하현달”의 모습으로 방문한다. 어머니는 그녀의 예민한 촉수를 건드려 시를 쓰게 하는 존재이다. 마치 어떤 절실한 바람이 가야금의 현을 울리듯 그녀의 어머니는 넘어져 다치며(“낙상”) 그녀의 시혼詩魂을 흔든다. 이때 어머니의 속성은 “신음”으로 요약된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아픔이자 고통이며, 결핍이자 인내의 존재이다. 어머니의 고통은 시인에게 그대로 감염되어서 시인은 “삭정이 같은 불면”에 시달린다. 그 말라 죽은 가지 같은 황량한 시간에 어머니의 “그림자”가 자라나고, 어느 순간 그녀에게 “어머니의 뼈 두 마디”가 내려앉는다. 이렇게 그녀를 찾아온 어머니의 뼈마디가 그녀에게는 시, 즉 “비틀려진 詩”이다. 그녀의 시는 이렇게 어머니가 아프게 쓰러진 자리에서 시작되므로 “낙상 詩”이다.
엄마가 입을 열면 붉은 꽃 시詩 쏟아지네// 쪼록쪼록 내 뱃속에 밥 들어오라고 소리 하네/ 밥 찾으러 부엌에 가는 길, 십리보다 더 멀구나//…(중략)…//이슬비 뿌려가며 시詩를 매일 키우시네/ 글썽이는 봄날에 나도 시를 짓고 있네/
―「십 리 부엌 길―사친별곡 2」 부분
시인의 각주에 의하면 두 번째 행은 “말년에 부르시던 어머니의 노래를 받아쓴 시”이다. 시인에게 “어머니의 노래”는 이미 시이다. 시인은 이미 시가 된 어머니의 노래를 받아쓰는 자이다. “엄마가 입을 열면 붉은 꽃 시詩 쏟아지네”라는 진술을 보라. 시인에게 어머니는 지상 최대의 뮤즈이다. 시인은 어머니-뮤즈를 불러내 그녀의 말을 받아 적는다. 이 상호텍스트성 때문에, 위 시에는 복수 화자dual narrator가 등장한다. 첫 번째 행은 시인의 목소리이고 두 번째 연은 어머니의 목소리이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무엇보다 ‘배가 고픈 자’이다. 어머니는 끝없는 허기에 시달리고(“쪼록쪼록 내 뱃속”) 그녀의 허기를 채워줄 “부엌”은 멀기만 하다. “밥 찾으러 부엌에 가는 길”이 “십 리보다 더” 먼 현실 속에서 어머니는 식구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과도한 노동과 헌신의 세월을 보냈다. 중략된 부분엔 그것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어머니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시인은 눈물이 “글썽이는 봄날”에 그것을 받아쓴다.
샛별같이 밝은 눈이 반 봉사가 되었구나/ 명 짧다고 우리 엄마 열일곱에 시집보내/ 온갖 풍파 다 겪으며 시집살이 겪어왔네// 사자님아 사자님아, 나는 언제 데려갈래/ 내 나이 올해 칠십아홉,/ 모진 목숨 죽어지지도 않고/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저승길로 가고 싶다
―「어머니의 비가悲歌―사친별곡 5」 부분
이 작품에서도 우리는 두 명의 화자가 주고받는 서글픈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연에서 시인이 어머니를 소개하면, 두 번째 연에서는 어머니가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4·4조의 타령은 슬픈 민요처럼 모녀의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정여운 시집 『녹슨 글라디올러스』 , 도서출판 지혜, 양장, 값 12,000원
정여운 시집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