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장간의 결투
그때 구경하는 소년들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하나가 대장간 중간 지점에서 아궁이에 풀무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신기하다.
그런데 풀무질하는 솜씨가 노련하다. 동작이 아주 매끄럽다.
다른 세 곳의 아궁이에서 덩치 큰 장정이 일하는 것보다 더 숙달되어 보인다.
소년들은 ‘우리가 작업하는 것을 처음 봐서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이쪽저쪽 비교해가며 유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작업 과정이 신기하여 소년 둘은 문간 기둥을 잡고, 목을 길게 죽 빼고 구경을 한다.
그때 얼굴의 반이 검은 구레나룻에 뒤덮인 어깨 넓은 장정이 다가오더니, 소년들을 보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큰 소리로 묻는다.
대장간이 쇠망치의 담금질 소리와 온갖 쇠붙이들 부딪치는 소리로 인하여 워낙 시끄럽다 보니,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습관상 일상의 대화 자체가 큰 목소리고, 고함치는 소리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서로 간의 감정이 쌓여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아차’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소년들은 구렛나루를 보고는
구렛나루의 그 커다란 덩치에 기 氣가 압도 壓倒 되고 말았다.
중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하였다.
“강 촌장님이 맡겨놓으신 도끼 찾으려고 왔습니다”
“음, 도끼날 수리해 달라는 거 말이지?”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대장간의 소소한 일까지 알고 있고, 먼저 대답해주니 반갑다.
“예, 맞아요”
“근데, 지금 급한 일 때문에 도끼날을 아직 벼리지 못했을걸….”
“오늘 꼭 사용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음…. 잠시만” 하더니 현장으로 들어가더니 풀무질과 망치질을 교차로 하던 그 소년을 데리고 왔다.
그 소년은 조금 거만스러운 태도로 이중부와 한준을 대충 훑어보더니,
“부주 府主님의 명으로 급한 병장기를 보름 정도 제작해야만 되기에 그동안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라고 한다.
“오늘까지 날을 수리해 주기로 한 약속을 믿고, 작업을 준비했는데, 어떻게 하지”
“그럼, 맡긴 도끼를 수리할 때까지 우리 대장간 도끼를 사용하면 안 될까?” 하고 타협책을 제안한다.
“할 수 없지, 오늘 도끼가 꼭 필요한데, 그렇게라도 해야겠네”
대장간 소년의 거만스러운 어투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도끼가 있어야만 오늘 땔감을 쉬이 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꺼이 합의하였다.
그때, 이중부가 타고 온 나귀 안장 옆에 걸어둔 철창을 본, 소년이 갑자기 눈을 크게 치켜뜨더니 창날을 유심히 살펴 본다.
그러더니 돌연, 나귀의 등에 걸린 창날을 오른손으로 집어 든다.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이중부가 아니다.
철창은 자신의 재산목록 1호다.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오소리 가죽으로 창날을 닦고 또 닦는다.
오소리 가죽은 기름을 많이 품고 있어 오소리 가죽으로 쇠붙이를 닦으면 녹이 슬지 않고 윤이 반들반들 난다.
자신의 분신 分身이나 다름없이 소중히 다루고 있는 철창이다.
철창이 생긴 이후 나귀도 귀중품에서 후 순위 後 順位로 밀려난 것이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창을 처음 보는 녀석이 함부로 집어 들다니, 그것도 말투나 표정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거만스러운 놈이 감히….
이중부의 왼손이 소년의 오른 손목을 잡고 비튼다. 이에 놀란 소년이 창을 집어 들던 오른손을 거두며 왼손으로 이중부의 오른편 가슴을 가격한다. 이중부도 얼른 뒤로 몸을 비틀며 왼발로 소년의 옆구리를 가격한다. 소년도 이에 질세라 주먹을 쥔 오른손을 앞으로 내지르며 이중부의 발차기 공격을 가로막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다. 소년도 만만찮은 무예 솜씨를 보인다.
잠시 대치한다. 이중부는 발차기하던 오른 다리의 정강이 부위에 은근한 통증을 느낀다. 소년 역시 오른 팔뚝이 얼얼한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서로가 다섯 초씩을 겨누었다. 서로가 만만찮은 고수임을 직감한다.
순간, 이중부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이단 앞 발차기를 시도한다. 이 중부의 주특기 중의 한 가지다.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오른발로 먼저 상대의 왼쪽 머리를 향해 가격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피 공격자 被 攻擊者는 본능적으로 오른편으로 머리를 돌리게 마련이다. 그때 공중에 뜬 상태에서 즉, 탄력받은 왼발로 반대쪽으로 향하는 상대의 얼굴이나 머리를 가격하면 그걸로 상황 끝이다.
각법 脚法 중의 원앙각 鴛鴦脚 초식이다.
허공에서 번갈아 차는 양 발길질이 원앙새 암수가 정답게 노니는 모습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각법 脚法의 무술 초식 명이 원앙각으로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대장간 소년의 몸놀림도 보통이 아니다.
왼쪽을 공격당하면 오른쪽으로 피하는 것이 보통인데, 소년은 이중부의 공격 방향을 예측이나 하고 있다는 듯이 오른편으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잽싸게 뒤로 두 걸음 물러난다. 그러자 이 중부는 ‘아차’ 속으로 놀라며 임기응변 臨機應變으로 착지하려던 오른발을 그대로 내뻗쳐 소년의 가슴팍을 재차 공격한다.
땅에 착지하려면 무릎을 굽혀야만 한다.
그런데 무릎을 굽히지 않고 공격을 계속한 것이다.
이런 식의 임기응변식 공격 초식은 대단히 위험스러운 동작이다.
허공에 뜬 몸의 중심을 잡고 착지해야 할 다리로 다시, 상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수비가 전혀 되지 않는 아주 위태로운 몸놀림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간에 공중 삼단 三段 앞발 차기가 된 모양이다.
무술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복 원앙각술 複 鴛鴦却術이 전개된 것이다.
전설상의 삼족오 三足烏 공중 삼단 발길질이다.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발길질을 세 번씩이나 해댄다니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대단한 무술 실력이다.
이중부의 오른발이 소년의 오른쪽 옆구리를 스치며 둘 다 옆으로 나뒹군다.
소년은 제법 타격을 입은 모양이다.
옆으로 한 바퀴 구른 이중부는 얼른 일어나 소년을 밑에 깔고 타 올라앉는다.
“이놈이 어디 함부로 까불고 있어, 너 오늘 맛 좀 봐라”
“오늘 이 어르신이 네놈 버릇을 고쳐주마”하며 오른손을 치켜들어 손바닥으로 소년의 뺨을 때리려 한다.
순간,
이중부는 몸이 허공에 붕 떠는 것을 느낀다.
옆에 있던 구레나룻 장정이 “요놈이” 하며 이중부의 목덜미를 잡아채고 들어 올린 것이다.
구레나룻의 구릿빛 굵은 팔뚝에 푸른 핏줄이 울퉁불퉁하게 돌출된다.
대단한 용력 勇力을 지닌 자 같다.
갑자기 허공에 신체가 ‘붕’ 뜬 이중부는 힘을 쓸 수가 없다.
사지 四肢를 움직여 보지만, 마치 등껍질을 잡힌 거북이처럼 아득바득거릴 뿐이다.
이를 보던 한준이 얼른 땅바닥에 있던 엄지 크기의 작은 조약돌을 집어 들어 구레나룻의 뒤통수를 겨냥하여 힘껏 던진다.
‘퍽’
조약돌에 뒷머리를 맞은 구레나룻 “엇!”하며 순간적으로 손에 힘이 풀린다.
그러자 이중부는 그 찰나적인 순간에 왼발 뒤꿈치로 구레나룻의 복부 명치 부근을 힘껏 차버린다.
생각지도 않게 명치를 가격당한 구레나룻은 이중부의 목덜미를 놓치며 “어이쿠” 하며 앞으로 고개를 수그린다.
이중부는 몸을 비틀어 오른손으로 구레나룻의 왼 어깨를 짚으며, 옆으로 이마를 돌려 앞으로 쓰러지는 구레나룻의 관자놀이를 향해 힘껏 박치기해 버린다.
복부와 연이어 안면 顔面 태양혈 太陽穴을 강타당한 구레나룻은 고목이 태풍에 쓰러지듯이, 옆으로 고꾸라져 버린다.
이중부는 자기 머리만큼이나 더 큰 장정을 단, 이 초식에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대장간에서 일하던 장정 댓 명이 달려 나온다.
마당에는 소년과 장정 두 명이 쓰러져 있고 이중부는 씩씩대고 있다.
한준은 얼른 이중부 곁으로 다가가 “괜찮아”하고 물으면서, 달려오는 장정들을 상대하려는 품새를 잡는다.
“이 정도로는 끄떡없지” 이중부는 ‘씨~익’ 웃으며 한준과 등을 맞대고 기마자세를 취한다.
기마자세 騎馬姿勢는 유목민 遊牧民들 특유의 무예 자세다.
말을 타듯이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히고 허리를 곧추세워 몸의 중심을 잡아 각을 세운다.
그러면 공격과 방어에 필요한 모든 동작을 신속하고도 부드럽게 전개할 수 있다.
늘 말을 타고 생활하는 기마유목민들에게는 자연스레 갖추게 되는 무술의 기본 동작이다.
이제 상황은 바뀌어, 두 소년과 한 무리의 대장간 장정들과의 대결 양상이다.
두 소년이 등을 맞대는 것은 둘이서 다수자 多數者를 상대할 때 흔히 쓰는 방어술이다.
“이놈들이 어디에 와서 행패야”
“쪼끄만 놈들이 도적 떼들 끄나풀 같아”
모여든 장정들은 한마디씩 하며 곧 두 소년을 금방 요절낼 듯이 웅성웅성한다.
장정들 하나하나가 꽤 힘을 쓸 만한 거구 巨軀들이다. 대장간에서 일하려면 일반인들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는 것은 불문가지 不問可知다
보기에는 소년들 체격으로는 서너 명이 달려들어도 한 장정을 상대하기에 역부족 力不足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장정들 어깨높이의 작은 두 소년을 여섯 명이나 되는 거구의 장정들이 이중으로 에워싸고 있으니 그 모양새가 가관 可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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