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민중항쟁을 만나다
최 화 웅
프랑스 대혁명은 인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깨우쳤다. 개봉한 영화 <원 네이션>(One Nation, One King. Un peuple et son roi)에서 올해로 프랑스 대혁명 230주년을 맞아 민중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그 이후 자유, 평등, 박애는 시민사회의 인권선언이 되어 인류 역사에 스며들었고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삼색은 오늘날 프랑스 국기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왕권을 무너뜨린 민중의 함성은 유럽대륙을 휩쓸고 대륙을 넘어 세계인의 가슴마다에 메아리쳤다. 특히 사순시기를 사는 크리스천에게 영화 ‘원 네이션’은 ‘파스카(Pascha) 성삼일’의 거룩한 의미를 성찰케 했다. 그러나 영화는 엉뚱하게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헨리 16세가 소녀들에게 ‘발 씻김 예식’을 하며 일일이 발등에 입을 맞추는 인자한 왕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1775년 4월 23일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미국 의회에서 남긴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애국 연설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영국은 미국 식민지를 무력으로 다스리려고 하자 미국 인민들이 마침내 항쟁에 나서 독립투쟁을 외친 것이다. 패트릭 헨리의 연설은 자존을 가진 호모사피엔스의 절규였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헨리의 연설은 세인트 조지 터커(St. George Tucker) 판사가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연설을 재구성하여 전기에 삽입한 것이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헨리의 연설을 목격자와 전기 작가가 가미한 것이리라.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원 네이션>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인권선언으로서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원 네이션>이 캐스팅한 출연진들의 기도와 외침에 담긴 혁명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난 2012년 개봉한 <레미제라블>의 진한 감동이 되살아난다.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 시대 중 루이 16세의 처형 이후를 배경으로 했다면 <원 네이션>은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을 계기로 점화된 프랑스 혁명의 봉기를 시발로 루이 16세가 기요틴(guillotine)에서 목을 잘리기까지 가장 치열했던 1790년대의 혁명 현장까지 관객을 안내했다. 피에르 쉘러 감독은 철저한 시대적 고증을 통해 당시의 사상과 정치적 발언, 나아가서 시각적인 측면까지 전달하는 연출력에 신중을 기했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스파르 울리엘과 아델 하에넬, 루이 가렐과 드니 라방 등 명배우들이 혁명에 앞장선 여성들의 이야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놓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영화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민중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당시 프랑스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탄탄한 고증에 역사적 상상력까지 발휘했다. 본격적인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정부군과 민중들의 대치 장면은 시민전쟁을 방불케 하였고 프랑스 혁명을 스펙터클하게 표현하여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외친 민중들의 시대정신과 외침이 관객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로 감동을 전했다.
영화에서 혁명의 진행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만큼 프랑스 대혁명의 내용은 모든 지구인의 상식으로 간주했나 보다. 무능하고 탐욕적인 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귀족과 성직자들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에 비해 배고픔과 도탄에 빠진 생활에 허덕이는 민중들이 참지 못하고 마침내 들고 일어난 항쟁이 1789년 7월로부터 1794년 7월까지 만 5년에 걸친 혁명 과정을 재현했다. 1789년 7월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과 작은 마을에 처음으로 햇살이 비친 날, 노에처럼 살던 떠돌이 ‘바질’을 만난 세탁부 ‘프랑수아즈’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가족관계를 이루는 소중한 삶의 현장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의회의 실황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한 조각의 빵과 사랑하며 살아갈 자유의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 이듬해 8월 국민의회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채택하고 10월에는 파리 민중들의 베르사유 행진과 국왕 일가를 파리 튀일리 궁으로 끌어내는 극적인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1791년 6월 국왕 일가의 파리 탈출을 시도한 이른바 바렌 도주 사건과 맞닥뜨린 민중 시위대와 같은 해 7월 샹 드 마르스 발포 사건에 이어 9월에는 프랑스 최초의 입헌군주제가 채택되고 입법의회가 소집되어 영화는 크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그 이듬해 8월 8월 튀일리 궁 습격을 계기로 대대적인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서 당시 민중의 성난 목소리가 총칼을 대신한다. 민중의 기대와는 달리 지루한 혁명의 진행과 반동 속에 분노한 민중들이 의회를 점거하고 1792년 9월 국민공회가 마침내 반혁명파의 숙청과 왕정 폐지를 의결함으로써 프랑스 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혁명의 열기는 1793년 1월 콩코드 광장에 세워진 단두대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수많은 귀족들을 공개 처형함으로써 프랑스 혁명의 기운은 절정에 달한다. 프랑스 대표 배우들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프랑스 혁명 속 민중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 영화 <원 네이션>은 출연 배우들의 열연으로 혁명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니발 라이징>을 통해 꽃미남 외모로 뛰어난 연기력을 뽐낸 떠돌이 ‘바질’ 역의 가스파르 울리엘이 세탁부 ‘프랑수아즈’역을 맡은 아델 하에넬과 함께 주역을 담당했다. ‘프랑수아즈’의 친구 역을 맡은 이지아 이즐랭이 순수한 매력을 선보이는 가운데 <퐁네프의 연인들>에 출연한 레오 카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연기파 배우 드니 라방이 당시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인 ‘마라’ 역을 맡아 열연했다. 가스파르 울리엘과 더불어 프랑스 대표 남자 배우로 꼽히는 루이 가렐이 평등법 변호사 ‘로베스 피에르’역을 맡아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아들>로 제55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 올리비에 구르메가 인자한 마을의 어른 같은 ‘조제프’ 역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로 무게감을 더했다. 피에르 쉘레 감독은 프랑스 혁명을 연대순으로 나열 하지 않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함성을 외치며 혁명에 뛰어든 민중의 삶과 시대정신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수천 명의 여성 시위대가 총과 프라이팬을 든 채 세찬 빗발을 뚫고 ‘먹을 것을 달라.’고 절규하며 베르사유 궁으로 향하던 항쟁의 영상은 한 폭 그림으로 그려져 관객들로 하여금 계급과 성별을 떠나 역사의 중심에서 프랑스 혁명을 이끈 여성들을 부각시켰다. 영화 <원 네이션>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인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과 함락 이후 루이 16세가 기요틴에서 목이 잘린 1793년 1월까지 민중의 역사의식과 각성을 경이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프랑스 영화답게 극적이거나 폭발적인 장면은 과잉 일변도로연출하지 않았으나 혁명 과정의 사건 속에서 인민들의 의식과 투쟁을 밀도 있게 다루었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으로 혁명을 마무리한 다음 올라가는 엔딩 크로징에서 관객들은 올해로 125주년을 맞은 동학농민혁명과 100주년을 맞은 3.1민족독립만세 의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이어 71주년을 맞은 제주 4.3과 여순 민중항쟁과 59주년을 맞은 4.19학생혁명 그리고 6월 민주항쟁과 촛불혁명에서 목터지게 외친 함성이 다시 들었을 것이다. 영화 <원 네이션>은 ‘절대왕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민중의 삶을 그리고 ‘왕의 나라에서 인민의 나라로 새롭게 태어난 혁명의 현장’이 잊을 수 없는 공감의 명화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첫댓글 좋은 영화에 목말라 있었는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