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하고 나면 아버지는 바쁘게 여기 저기를 찾아 나선다. 한문 글을 많이 배운 사람을 우선적으로 찾는다. 글을 익히지 못하였기때문에 이름 석자를 짓는데도 남의 힘이 필요했던 거다. 시골마을에는 요즘처럼 흔한 작명소나 철학관이 없기 때문에 한문을 많이 배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마을의 희망이었다. 유교문화가 지배적이어서 뜻풀이를 하는 한문은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분은 마을 사람들의 족보를 다 꿰차고 있다. 돌림자는 물론이고 마을사람들의 생일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는 만물박사였다.
아버지께서는 한문을 모르시지만 족보에 올리는 돌림자는 다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만혼으로 첫아이를 느즈막이 낳았다.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였다. 돌림자를 쓸까, 아니면 나름대로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다가 돌림자를 포기하게 되었다. 아들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하나되도록 하는 통일의 역군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 적합한 이름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말글회장, 우리말회장 등 다양한 한글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았다. 그러다가 나 스스로 아이의 이름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녀석의 이름은 다양하게 모색되었다. 김백두한라, 김백두, 김한라, 김오솔비 등을 놓고 고심했다. 한문을 벗어나 순 한글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정형화된 틀도 과감히 벗어나기로 했다. 아이의 이름찾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순 한글로 짓되 외자로 지어보기로 하고 책을 뒤져 보았다. 가장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의미를 갖되 통일의 역군이 되는 이름을 찾았다. 한반도 어디를 가도 사시사철 푸르게 하늘을 향해 쭉 솟아오른 적송군락을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등산다니면서 만났던 강원도의 적송군락은 내가 그토록 찾았던 이름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큰 아이의 이름은 솔이 되었다. 3년 뒤 두번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놈의 이름도 순한글 외자로 결정했다. 정인보 사학자의 역사관인 민족의 얼에서 가져와 얼로 지었다. 그래서 두 아들의 이름은 김솔, 김얼이다.
북한강자전거길은 이어가기는 계속되었다. 가평군을 벗어나서 강원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북한강을 건너야 한다. 옛날 같으면 나룻배를 타고 큰 물길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를 설치하여 편하게 건널 수 있었다. 북한강길에는 4개의 인증센터가 있는데 3번째 센터가 경강교에 있다. 강원도로 가는 경춘가도에는 많은 다리가 있다.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춘천시 남면을 연결하는 다리는 경강교이다. 어찌하여 다리 이름이 경강교로 되었을까. 경기도와 강원도를 포함하는 이름을 찾다보니 경기도의 서울경(京)자와 강원도의 냇강(江)자를 조합하여 경강교가 된 것이다. 결국 다리의 이름에서 경기도와 강원도가 하나로 이어진 한반도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전거인증센터가 없었다면 바로 이 다리를 건너 강원도 땅으로 들어갔을텐데 인증을 위해서 잠시 멈추어 서서 경강교와 북한강 물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다리는 자연을 극복한 사례이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자연을 훼손한 것은 아니기에 위안을 얻는다.
일상의 삶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 수 있음은 자연이 무상으로 주는 혜택에 기인한다. 그러니 자연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찾으려했던 인간의 본성은 자연 속에 있다.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규범들도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사고들은 윤리적 자연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윤리적 자연주의가 인간사회에 적용된 가장 쉬운 사례는 '상식'이라는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남은 비윤리적이고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단 하루를 산다고 해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仁)의 실천이며 본성으로 회귀하여 성인되는 길이다.
첫댓글 세상엔 상식과 윤리가 분명 존재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이상한 잣대에 의해 무시되고 헌신짝처럼 버려지곤합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사람은 너무 매사 꼬치꼬치따져 피곤하다고 치부하고 변칙을 일삼고 얼렁뚱땅 사탕발림하는 사람이 능력 있어 보이는 세상이다보니 < 윤리, 상식, 도리> 운운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받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항상 힘이 강합니다. 황소걸음이지만 진실은 언젠가 상식과 원칙과 도리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분명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