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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라는 말
허형만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그 깊고 아늑함 속에
들은 귀 천 년 내려놓고
푸른 바람으로나
그대 위해 머물고 싶은
그늘이라는 말
참 듣기 좋다
시인
귀가 없는 뱀은 혀로 듣고
개구리는 눈으로 듣는다는데
시인이여, 무엇으로 듣는가
세상으로 열린 귀가 멀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늘
눈발이 날리는 텃밭에 쭈그려 앉아
그동안 헛소리에 병든 시들을 불태우나니……
손톱
강원도 건봉사 화장실 두꺼운 유리문에 손가락이 끼었다
검지와 중지 손톱에서 붉은 피가 솟았다
순간 멍했다 아득했다
짜릿한 아픔은 한참 후의 일, 희한하게 정신이 맑았다
겨울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까지 한결 더 빛나 보였다
시 쓰는 정신이 이럴 것이다
긴장과 소름, 통증과 눈물을 속으로 감추는 일이
한세상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토해내는 피로 일갈하고 있는 손톱
시인으로 사는 일이 이럴 것이다
귀를 염(殮)하다
보아서는 안 될 것 안 보며 살고자 했다
말해서는 안 될 것 말 안하고 살고자 했다
보고 말하는 게 모두 귀로 통하는지라
들어서는 안 될 것 또한 듣지 않고 살고자 했다
했으나, 토굴 면벽하지 않고서야 어이 하리야
마침내 들어서는 안 될 소리 듣고 말았으니
허유(許由)의 귀 씻는 정도 갖고는 어림없는 일
아예 귀를 자를 수밖에, 그래 자른 귀 염(殮)하여
솔바람소리 맑은 양지바른 곳에 묻기 위해
아흔두 살 노모 계시는 지리산 속에 들다
사람을 노래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난 길 따라
소소소 가을바람 부니
살살이꽃에서 풍기는
살 내음이 황홀하다
사람이여
살터 온 우주에
새녘 동터오는
새빛 같은 사람이여
샘밑 맑디맑은 영혼이여
사람이어서 우리는
서로서로
심알을 맺느니
사람살이 한평생이 빛이거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
사람이다
*살사리꽃: 코스모스꽃. 살터: 대자연. 높고 큰 자연. 새녘: 동쪽. 동편. 소소소: 바람이 아주 부드럽게 부는 모양. 심알: 마음을 통하고 정을 맺음.
이제 가노니
이제 가노니,
본시 온 적도 없었듯
티끌 한 점마저 말끔히 지우며
그냥 가노니
그동안의 햇살과
그동안의 산빛과
그동안의 온갖 소리들이
얼마나 큰 신비로움이었는지
이제 가노니,
신비로움도 본시 한바탕 바람인 듯
그냥 가노니
나로 인해 눈물 흘렸느냐
나로 인해 가슴이 아팠느냐
나로 인해 먼 길 떠돌았느냐
참으로 무거운 인연줄이었던 것을
이제 가노니,
허허청청 수월(水月)의 뒷모습처럼
그냥 가노니
금물로 쓴 글씨
지성으로 절에 다니시는 어머니께서
장롱 깊숙한 곳에 모셔둔
금물로 씌어진 반야심경을 내놓으시며
제 손을 고즈넉이 잡으셨지요
저도 어머니 마틀마틀한 손결이
어쩌면 이리 다사롭냐고 눈웃음 쳐주고
알만한 글자 홰친홰친 읽어 내려가니
눈물 흘리시며 나무아미타불 합장하셨지요
그날 밤 저는 잠 한숨 못 잤어요
어머니 흘리시던 그 여울 같은 눈물이
하전하전한 나이신데도 당신의 피를
금물로 바꾸신 글씨였음을 알았거든요
사리를 거느리시는 분
백운면 애련리에
세수 삼백오십 세가 되셨다는
느티나무 한 그루 가부좌 틀고 계셨다
수많은 사리들을 거느리시며
내가 보기에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보이시지만
원래 사람이 매긴 나이란 게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되는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 넓으신 그늘에 쉬다가
어찌나 한기가 드는지 벌떡 일어나
두 손 모으고 우듬지가 보일 때까지 우러렀다
한사코 햇살 탓만은 아닐 터
휘추리와 애채 사이를 포롱포롱 건너다니는
멧새의 깜찍한 발가락이 은비늘처럼 번득였다
그때였다 수많은 사리들은 서로 몸을 비벼댔고
고요한 파동은 서서히 하늘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백운면 애련리에
세수 삼백오십 세와는 무관한
수많은 사리를 거느리시는 한 분 계셨다
세상의 발자국도 가는 체로 걸러내시며
계신 듯 아니 계신 듯
겨울 들판을 거닐며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당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영혼의 눈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허형만 연보
1945년 음 10월 26일, 전남 순천시 조례동 659번지에서 부친 허병(許柄)과 모친 신엽덕(申葉德) 사이의 2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남. 5세부터 8세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함.
1963년 순천고등학교 재학 중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시크라멘> 동인회 조직.
1965년 중앙대학교 국문과에 입학. <정오> 문학동인회 조직 활동.
1967년 고향인 순천 시내 「청맥」다방에서 입대기념 시화전 개최.
1972년 중앙대 국문과 복학. 중대신문 현상문예에 시 「제대병」 당선.
1973년 전남 함평군 학다리고등학교 교사 임용. 『월간문학』에 시 『예맞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76년 호남시조백일장에서 시조 「조국강산」이 장원으로 뽑힘.
1978년 김희(金喜)와 결혼. 월간 『아동문예』에 동시 「나무와 나뭇잎」 외 1편으로 천료. 제1시집 『청명』(평민사)을 출간하고 광주 YMCA 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짐.
1979년 강인한, 고정희, 국효문, 김종 시인과 함께 「목요시」 동인회를 결성함. 그 후 송수권, 김준태, 장효문 시인이 동참하면서 수차례 동인지를 발간하였으나 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직접 겪은 몇 년 뒤 해체됨. 『원탁시』 20집부터 원탁시회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음. 제2회 소파문학상 수상. 장남 일현(日炫) 출생.
1981년 실천문학사의 무크지 제2집 『이 땅에 살기 위하여』에 「山 하나」 외 3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임함. 차남 일후(日厚) 출생.
1982년 국립 목포대학교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발령받아 목포로 이사.
1983년 함평군 학교면 학다리고등학교 교정에 고 김재란 교장 송덕시 「조국의 부름 받아 고고한 학의 날개 키우신 이여」 시비 세워짐.
1984년 국립 목포대학교 교수 채용시험에 합격,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로 교수 생활 시작. 제2시집 『풀잎이 하나님에게』(영언문화사) 출간. 창작과 비평사의 17인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허송씨」 외 4편을 발표. 제1회 목포와이즈멘 예술봉사상 수상. 제7회 전남문학상 수상.
1985년 목포대학교 신문사 주간. 제3시집 『모기장을 걷는다』(오상출판사) 출간.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함평군 학교면 노인당에 시 「白鶴頌」 시비 세워짐.
1987년 제4시집 『입맞추기』(전예원) 출간. 수필집 『오매 달이 뜨는구나』(오상출판사) 출간. 목포시 남농기년관에 시 「독야청청 뿌리 깊은 노송이여」 시비와 「남농기념관 記」 세워짐.
1988년 아시아시인회의 참석(자유중국 대중시). 제5시집 『供草』(문학세계사), 제6시집 『이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종로서적) 그리고 첫 평론집 『시와 역사인식』(열음사) 출간.
1990년 제5회 평화문학상 수상. 제34회 전라남도문화상(문학) 수상. 연구서 『우리 시와 종교사상』(김향문화재단) 출간.
1991년 홍콩에 본부를 둔 「세계화문문학협회」 추천시인이 됨. 제9회 한국크리스챤문협상 수상. 제7시집 『진달래 산천』(황토) 출간.
1992년 제2회 우리문학작품상 수상.
1993년 시선집 『새벽』(대정진) 출간.
1994년 제4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수상.
1995년 제8시집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책만드는집) 출간.
1996년 목포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 연구서 『영랑 김윤식연구』(국학자료원) 출간.
1998년 목포역 구내에 시 「목포여 강철로 된 날개여」 시비 세워짐.
1999년 제9시집 『비 잠시 그친 뒤』(문학과지성사) 출간. 중앙어문학회장.
2000년 목포대학교 중등교육연수원장. 제7회한성기문학상 수상. <원탁시회> 대표.
2001년 목포시의 위촉으로 칸타타 「목포여 영원하라」(임평룡 작곡) 창작발표회가 전라남도 신도청 기공 기념 축하 음악회로 목포문화 예술회관에서 성대하게 열림.
2002년 제10시집 『영혼의 눈』(문학사상사) 출간(200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뽑은 좋은책 선정). 8월부터 중국 산동성 옌타이대학 교환교수. 옌타이대학 명예교수가 됨. 국제 3대 인명기관인 영국 IBC 인명사전에 등재. 「지역문학인회」를 창립하고 송수권, 나태주, 강희근 시인과 함께 공동 좌장이 됨. 편저서 『문병란 연구』(시와사람) 출간. 동시 「동전 한 닢」이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수록됨. 장흥군 관산면 천관산 문학공원에 시 「안개」 육필 시비 세워짐.
2003년 제1회 월간문학동리상 수상. 중국어 번역시집 『許炯萬詩賞析』(정봉희 편역, 시와사람사) 출간. 편저 『오늘의 젊은 시인 읽기』(시와사람사) 출간.
2004년 7월 1일 「목포현대시연구소」를 설립하고 시인학교와 명사 초청 특강 실시. 제23회 스승의 날에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 용아 박용철의 전집 중 시집을 주해한 『박용철전집-시집』(깊은샘) 출간.
2005년 제11시집 『첫차』(시안 황금알) 출간(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우수문학도서 선정) 목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원장. 현대문학이론학회장. 제2회 순천문학상 수상. 제12회 광주예술문화상 대상 수상. 화순군 한천면 정우리 양산농원에 시 「頭陀」 시비와 장흥군 장평면 <계명성시비공원>에 시 「절정」 시비 세워짐.
2006년 7월 29일 제19회 LA 해변문학제 초청 강연. 「허형만 시인의 밤」(광주 국악당) 열림. 장사익과 함께 KBS 「낭독의 발견」 출연. 전라남도 문화예술진흥위원. 함평군 학교면 고막소공원에 고 이익주(전 부산시 행정관리국장) 추모시 「조용히 당신의 숨결에」 시비 세워짐.
2007년 1월 31일 모교인 순천고등학교 교정에 시 「동전 한 닢」 시비 세워짐.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목포시문학회 고문.
2008년 제12시집 『눈먼 사랑』(시와사람사) 출간(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8 우수문학 도서 선정). 시선집 『따뜻한 그리움』(시와사람사) 출간. 『시문학 1~3호』(1930. 3. 5~1931. 10. 10) 복간 및 현대어 주해서(문학사상사) 출간. 목포해양대학교 교정에 시 「고하도」 시비 세워짐.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2009년 제7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 계간 『시안』 편집자문위원. 계간 『시와사람』 편집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겸 인권위원장. 국제펜클럽본부(영국) 투옥작가위원회위원. 한중시인대회(중국 선양) 참가. 중국 집안(集安) 문학기행. 미국 LA 수향문학회 초청 특강. 알래스카 문학기행. 무등일보 편집자문위원장. 목포 문화방송 시청자위원. 광주광역시 수완중학교 교정에 작시 「수완중학교 교가」비 세워짐. 전남 진도군 임회면 탑림리에 시비 「세상사」 세워짐.
2010년 제13시집 『그늘이라는 말』(시안) 출간. 제4회 심연수문학상 수상. 전라남도 행정용어순화자문위원회 위원장. 전라남도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제2회 목포문학상 운영위원장. 전라남도문화상 심사위원. 한국시인협회 이사.
2011년 제43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티베트 문학기행.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1년 · 하반기 제5호
허형만
전남 순천 출생.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늘이라는 말』, 『눈먼 사랑』, 『첫차』, 『영혼의 눈』 등. 평론집 『시와 역사인식』, 『영랑 김윤식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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