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됩니까” 질문에 “수미산”…운문 선사의 수수께끼 대답
#궁궁통1
중국의 운문 선사는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선구(禪句)로 유명합니다.
운문 선사는
중국 선불교 운문종의 종조입니다.
당시에는
임제종과 쌍벽을 이루었던
종파입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운문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았을 적에
죄가 있습니까?”
그러자 운문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수미산(須彌山)이니라.”
수미산은
불교적 우주관에서
종종 등장하는 산입니다.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겼던 상상 속의 산입니다.
절집에서는
‘수미산’ 하면
가장 높은 산,
세상의 중심,
혹은 가장 큰 산으로 통합니다.
그렇다면
운문 선사의 답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았을 적에
죄가 있느냐, 라는 물음에
수미산이라고 답을 했으니 말입니다.
죄가 엄청나게 많다는
뜻일까요.
#궁궁통2
사람들은
운문 선사의 대답을
글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죄가 수미산이니,
죄가 무지하게 많다고
풀이합니다.
그런데
운문 선사의 이 일화는
선문답입니다.
단순한 물음과 답이 아니라,
여기에는
사물과 세상을 관통하는
깊은 이치의 안목이
숨어 있습니다.
선문답 일화는
그걸 수수께끼의 형식으로
던져 놓았을 뿐입니다.
성철 스님은
입적하기 전에
열반송을 내놓았습니다.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
우리말로 풀면 이렇습니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치니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라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언뜻 보면
후회막심한 글로 보입니다.
“평생 사람들을 속였고,
그 죄업이 수미산만큼 크다.
그 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그로 인한 후회가 막심하다.”
이런 뜻으로
읽기 쉽습니다.
실제 저는 기독교 신자인
주위 사람에게서
성철 스님의 열반송이
이런 뜻이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또 여러 교회에서
성철 스님의 열반송을
이런 식으로 풀어서 올려놓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식의 해석은
선(禪)불교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가령 예수께서
“나는 가장 높은 자요, 또 가장 낮은 자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예수는 고위층 기득권자이거나
미천한 하층민이라고
해석한다면 어떨까요.
그 역시
예수의 말씀에 대한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해석입니다.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생각이지요.
#궁궁통3
불교에서 수미산은
가장 크고,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요.
그 높은 수미산도
공(空)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의 선사들은
가장 역설적인 어법으로
색(色)이 공(空)함을 노래합니다.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았을 적에
죄가 있느냐는 물음에
왜
수미산이라고 답했을까요.
성철 스님은 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했을까요.
이런저런 죄의식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죄의 정체를 일러주는 겁니다.
그게 본래
비어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걸 깨달으면
너도 자유롭다고 말입니다.
그걸 수미산에 빗대서
최대한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죄도 공(空)하고,
수미산도 공(空)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죄가 콩알만 하다고 하지 않고,
죄가 수미산만 하다고 하는 겁니다.
#궁궁통4
운문 선사의 대답이나
성철 스님의 열반송에서
제가 보는 건
속임이나,
죄업이나,
후회막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거대한 자유,
무한한 자유입니다.
<불교에서는 티끌 하나에 수미산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티끌의 정체, 수미산의 정체를 안다면 가능한 일이다.>
수미산만큼 높은 산도
단박에 포맷되는,
그런 이치의 눈입니다.
결국
이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니까 말입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