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우리는 바둑을 둔다
▲ 지난 주말 제39회 미추홀리그전이 프로 아마강자 꿈나무 등 32명이 출전한 가운데 인천 바둑발전연구회에서 열렸다.
추수의 계절 가을-.
우리 삶의 못 다한 많은 일들과 사연들 잘 챙기시고, 단풍의 화려함과 나뭇잎의 아쉬움을 19로 반상에 잘 그려봅시다.
9월16일 오후1시 인천 모래내시장역 3번 출구 김종화치과 내 인천바둑발전연구회에서 미추홀바둑리그를 실시합니다.
제39회 미추홀바둑리그가 벌어진 인천 모래내시장입구 김종화치과. 웬 치과에서 바둑대회를? 치과 바로 옆에 치과보다 몇 배 큰 사무실에 ‘바둑 고픈’ 기우들을 위한 공간, 인천바둑발전연구회가 있다. 인천바둑의 대부 김종화치과 원장이 사비를 들여 장만한 돈 안 받는 기원인 셈이다.
‘아니, 대회가 39회 째면 역사가 39년이 흘렀다는 말?’ 하고 놀랄 분이 있겠다. 미추홀리그전은 한 달에 한번 꼭 개최하고야 마는 인천의 정통 기우회가 만든 전통 있는 바둑대회다. 한 달에 한번 대회를 하면 1년 12달동안 우승의 꿈을 가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대회인가.
“이번 달은 다행히 딱 32명 조패가 완성되었으니 저는 그냥 빠지기로 했어요. 진행 도우미 해야지요.” 한눈에 맘 좋게 생긴 이웃집아저씨 김종화 원장이 기자에게 인사를 겸해 넌지시 대회 성황을 자랑한다.
김종화 원장은 1998년 미추홀배 전국아마바둑대회, 1999년 미추홀배 전국장애인바둑대회를 만든 주역이다. 지난 2003년 인천바둑협회 초대회장으로 6년간 협회를 이끌었고, 최근 6년 동안 인천경실련 공동회장을 맡았으며, 십 수 년 동안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치과 진료봉사를 하는 등 음으로 양으로 사회기여를 참 많이 하는 분이다. 이번 미추홀바둑리그를 일반에게 개방한지 4년째가 된다. 거의 매달 개최하니까 39회 째가 되었다. (김종화원장에 대한 기사는 별도 다룰 예정.)
▲ 인천의 프로와 아마 간판스타의 대결. 서능욱-서부길.
‘우와 이렇게 파릇파릇한 멤버가 있었다니!’ 동네바둑잔치인줄 알았더니 선수들의 면면이 화려무쌍타. 인천바둑의 간판 서능욱과 인천협회부회장을 맡은 나종훈과 천풍조 정대상 등 프로 4명이 눈에 띄고, 박중훈 강영일 공한성 서부길 윤명철 임흥기 등 쟁쟁한 아마강자들이 도열해있다.
또 반가운 바둑가족도 눈에 확 띈다. 강호 최호철과 그의 부인과 바둑수학 중인 두 딸(은서 민서) 등 4명의 일가족이 대회에 참여했다. 뿐만 아니다. 영재입단대회에 나섰던 안상범과 박건 신은호 정준우 등 한바연 상위 조에 속한 꿈나무 강호들도 눈에 띈다.
웬만한 전국대회 못지않다. 과거 미추홀기우회원만 참여하던 기우회리그전에서 이제는 인천은 물론 서울 부천 수원 성남 고양 등 서울경기권으로 출전자 분포가 확대된 지 오래다. 물론 가끔은 부산 대구 전주 등지에서도 출전한다고. 관전객 보호자까지 포함하면 50명은 족하다.
참가자들이나 준비하는 쪽이나 40회를 바라보는 경륜 탓에 실로 잘 씻은 파처럼 매끄럽게 대회는 진행된다. 상금은 우승이든 행운상이든 아차상이든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래도 프로를 비롯하여 미래의 박정환이나 한수 배우길 마다않는 장년층까지 32명의 ‘바생바사’ 기우들이 반나절동안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즐거운 옥신각신이다.
▲ 최민서-홍승우 꿈나무 대결.
최근 달라진 풍경은 유리창 밖에서 자녀들 대국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이 늘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좋은 트레이닝장이 되고 있어서다. 앞서 소개한 최호철과 그의 두 딸과 부인 등 4식구가 등판한 것을 비롯해, 소년강자 정준우는 아빠랑 같이 왔고 홍승우 승하 형제도 아빠랑, 박건 신은호는 엄마랑 같이 왔다.
프로든 어린이든 구별 없이 이들은 바둑이 고프다. 따라서 원 없이 승부를 결할 수 있는 마당이 언제나 그립다. 언제나 스마일 서능욱은 예의 그 다운 시원시원함으로 미추홀리그를 평한다. “기사가 바둑을 둘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상금은 개의치 않는다. 어린이도 좋고 성인도 좋고 접바둑도 좋고 어떤 바둑이든 타이틀전은 좋은 것이다. 이번에 실패하면 또 다음 달이 있으니까 더 좋다.”
빡시게 하루 네 판을 두었다. 오늘 경기는 모처럼 프로가 힘을 썼다. 3승자 4명이 생겼는데 프로 3명 꿈나무 1명이다. 그래서 정대상-손은호(2점), 서능욱-나종훈 이렇게 4강전을 펼쳐서 결국 서능욱과 정대상이 우승 팻말을 들게 되었다.
서능욱이야 우승이 익숙한 멤버이며 정대상은 거의 준우승 단골이었다가 최근엔 우승을 종종 하곤 한다고. 이 역시 우승의 기쁨을 두 명에게 선사하겠다는 김원장의 심모원려이리라.
미추홀리그는 남녀노소 즐거운 사람들이 만드는 즐거운 바둑잔치였다. 대단치 않은 상금을 들고서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꺼이 사진촬영에 응한다.
▲ 바로 옆은 민서양의 아빠인 최호철와 부천협회장인 윤명철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시상 후 따끈한 도시락을 주문하여 주최측은 참가자들에게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돌려보낸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바둑파락호들은 남아서 얼굴이 벌겋게 홍조를 띨 때까지 복기에 여념이 없다. 바로 이것이 존재의 이유이며 바둑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노랗게 꽃필 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더니 누렇게 익으니 모두 다 좋아하네. 늙어서 사랑받는 것은 너 밖에 없다. 나도 너처럼 익어가고 싶다. 늙은 호박과 바둑 친구는 싱크로율 100%다.
밥이 그리운 사람, 술이 그리운 사람, 바둑이 고픈 사람은 매월 셋째 주 일요일 오후1시 어김없이 인천 모래내시장을 방문하시라.
▲ 성적 증명서.
▲ 인천바둑발전연구회(왼쪽)와 김종화치과의원은 바로 옆 사무실을 쓰고 있다.
▲ 한국장애인바둑협회 현명덕 회장 늘 대회 때마다 나와서 노력봉사를 한다. 오른쪽은 미추홀기우회 장두화 총무.
▲ 인천내셔널리그 박중훈-나종훈 프로의 '훈남대결'.
▲ 홍승우-박건 꿈나무 대결.
▲ 최호철의 큰딸 최은서-어린이 강자 정준우.
▲ 아빠 최호철과 작은 딸 최민서. 딸 자세가 더 훌륭해 보임. ㅋㅋ
▲ 공한성 서부길의 모습이 진지하다.
▲ 손은호(2점)-정대상 4강전.
▲ 서능욱-나종훈 4강전.
▲ 3승자들 시상. 왼쪽은 장두화 총무. 최호철 김동섭 서부길 김종화 원장. 앞쪽 어린이는 정준우 홍승하 최민서.
▲ 우승자는 정대상 서능욱.
▲ 부천의 강타자 임홍기(오른쪽)는 행운상을 수상. 시상자 천풍조 프로(가운데)가 마치 수상한 것 처럼 밝게 웃는다. ㅋㅋ.
▲ 연안횟집에서 복기 중인 나종훈 윤명철 김종화. 윤명철 부천바둑협회장은 김종화 원장을 꼬드겨서(?) 미추홀전국바둑대회를 개최토록 유도한 공이 크다고.
▲ 여기 바둑파락호가 또 있어요. 공한성 고성원 고청환.
바둑일보 진재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