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4(화) 사순절 열여덟째 날 묵상(출애굽기 3:13-14)
하나님의 이름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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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름이 없습니다.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정 하나라면, 그것 밖에 다른 것이 없다면 굳이 이름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의 존재를 아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제 이름을 안다고 해서 저를 다 알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름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내용이고 관계에서 보여주는 행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라고 답하십니다. 이 히브리어를 새번역 성경은 “나는 곧 나다”라고, 개역개정판 성경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많은 오해의 소지를 하게 하는 좋지 않은 번역입니다. “나는 곧 나다”라는 번역은 동어 반복일 뿐, 모세의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변이 아닙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번역은 희랍철학에서 말하는 스스로 존재하면서, 모든 것의 최초 원인이면서,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남을 움직이게 하는 부동의 원동자를 가리키는 것처럼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번역은 이것입니다. “나는 내가 있을 곳에 있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있을 곳에 계신 분’이 너를 보냈다고 말해라.” 하나님은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면서 동시에 모세에게 자신을 믿고 떠나면 네가 가는 곳, 즉 하나님 자신이 있어야 할 그곳에 있겠다고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십니다.
인간은 이름 지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반복적으로 규정하고 보이는 이미지로 그려내려 합니다. 그리고 곧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맙니다. 이름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은 언제나 자신이 마땅히 계셔야 할 곳에 계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으로도 규정짓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생생하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 기도 : 없이 계신 하나님!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참 믿음을 주소서. 알맹이를 보게 하여 주소서. 겉모양과 이름에 매달리지 않고, 고착화된 하나님 형상을 만들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며, 지금도 끊임없이 창조와 해방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을 어디에서나 만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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