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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동안 하나의 이름으로 살지 못한 겨레
'高麗'(고려)의 중국·일본 발음과 서양인의 표음
高麗(고려)의 '麗'자 발음에 대한 기록이 왕건 고리 시대 송(宋)나라 왕약흠의 <책부원귀>(冊府元龜, 1013), <신당서>(新唐書, 1060),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監, 1084) 등의 사서에 '麗'는 나라 이름 高句麗(고구려)나 高麗의 경우 '려'가 아니라 '리'로 읽는다고 되어 있다. 즉 중국인들은 高句麗나 高麗 시대에도 '리'로 발음했고 현세에도 '리'로 발음하고 있다.
이렇게 '리'로 발음한다는 방증은 서양의 고문서에도 있다. 십자군 전쟁 시기 몽골제국과의 동맹을 목적으로 수도사 루브룩(G. Rubruck)이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특사로 몽골로 갔다. 수도 카라코룸 궁정에서 뭉게칸을 만났을 때 '高麗' 사신들을 본 그가 1255년 <몽골제국여행기>에 "중국의 동쪽 물 건너에 'Caule'가 있다"고 썼다.
또 원(元)나라에서 오래 머물렀던 이탈리아인 마르코 폴로(M. Polo)는 1295년 귀국하고 발간한 <동방견문록>에 쿠빌라이칸이 반란을 평정한 뒤 "대칸에 복속한 네 지역 이름 중 하나가 Cauli"였다고 썼다. 두 서양인이 표기한 'Caule, Cauli'는 중국인들이 '高麗'를 '가우리' 로 발음하는 것을 듣고 표음한 것이다. 즉 '麗'는 '리'로 발음한 것이다.
그런데 高麗의 '高'를 '가우'(cau)로 표음한 것은 어째서 인가. 고구려 연구회 서길수에 의하면 한자(漢字)의 옛 소리를 다룬 <한자고금어휘>에 중국인은 '高'를 상고음에서는 고(ko), 고대음에서는 가우(kau), 근현대 만다린어에서는 가오(kao)로 발음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高句麗의 高자 발음은 기원전 700년경부터 남북조시대가 수(隋)나라에 의해 통일된 500년대 말까지 쓰인 상고음에 해당된다. 그래서 '고'(ko)로 발음한다, 그러나 루브룩과 폴로의 1200년대는 고대음시기여서 '가우'(Cau) 즉 '가우리'로 표음된 것이다. 근현대 '가오' 발음의 'Caoli' 는 1674년 샹송의 <아시아지도>에 처음 나왔다.
高麗의 '고'자 발음의 근거를 방증하는 또 다른 예는 한자를 겸용하는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인 1500년대 중 후반에 일본에 도착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Coray, Corai' 등으로 표음 했다. 즉 일본인들은 高麗의 '高'를 '고' 로 발음하고, '麗'는 '라이'로 발음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는 高를 시기에 따라 다르게 발음 했지만 우리 겨레는 왕건의 高麗 때에도 1000여 년 구전 되어온 고구리→고리→발해의 겨레말을 따라 '고리'로 발음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로부터 200여 년 뒤 '고리'에 대한 더 의미 깊은 표기들이 서양인들에 의해 나타났다.
Gores, Gori, Core 는 '고리' 사람들인가?
1400년대 말 포르투갈인이 배로 아프리카 남단을 넘어 인도와 말라카 해협을 지나 동쪽으로 향해 가던 때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는 '고리'에 이어 조선왕조가 시작된 지 100여 년 뒤였다. 처음 나온 표기는 말라카 왕국에 포로로 잡힌 아라우오(R. Araujo)가 1510년 포르투갈의 인도 총독 알부케르케(A. Albuquerque)에 보낸 편지에 "Gores들이 말라카에서 무역 활동을 하고 있다"고 썼다. 1512년 인도/말라카 약재무역 책임자 피레스(T.Pires)의 <동양요록>(Sema Orientale)에 "무역활동을 하는 'Gores'는 류큐에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 남단과 그리 멀지 않은 류큐는 일본과 대만 사이의 여러 섬들을 말한다. 북의 학자 장영남은 1513년 포르투갈 왕이 로마 교황 레오 10세에 보낸 편지에 "Gores 상인단이 류큐에서 말라카로 오곤 했다"고도 썼다.(1) 포르투갈어에서 'Gores'는 'Gore'의 복수인 'Gore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1514년 이탈리인 엠폴리(G. Empoli)의 편지에 "북쪽으로 가면 'Cini, Lechi(류큐), Gori'라는 중국 지역이 있다"고 썼다. 1517년 피레스가 중국 대사가 되어 광동에 갔을 때 "'Luchuans(류큐인들), Guores, Japanese'를 만났다"고도 썼다. 여기서 'Guores'는 앞에 나온 'Gores'의 다른 표기이지 다른 이름은 아니다. 1510년대 초에 반복되어 나온 Gore(s)와 Gori의 발음은 '고리'이다.
그 뒤 1549년, 일본으로 가던 토레스(C. Torres)와 란칠로토(N.Lancilloto) 신부는 "일본인들은 중국의 동쪽에 있는 'Coree'사람들과 교역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썼다. 이 'Coree'의 발음도 '코리'이니 그 미지의 나라는 '고리' 와 같은 발음이다. 그러면 이들이 '고리인들'이나 그 후예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1557년 알브케르케의 아들(B. Albuquerque)이 발간한 <논평>(Commentario)에도 "Gores 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 사람들이다"고 썼다.(2) 이러한 기록들에 의하면 Gore, Gori, Coree 상인들은 류큐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류큐의 원주민들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어서 1571년 포르투갈인 두라도(F. Dourado)의 <동양해도>에 우리나라가 'Core'로 처음 표기되었다. 같은 해 일본 가톨릭 교구의 빌렐라(G. Vilela)신부는 예수회 보하 총장에 보낸 편지에 "China와 Japan 사이에 있는 'Corea'라고 불리는 다른 왕국…."이라고 표기했다.
1578년 이탈리아 신부 프레네스티노(Prenestino)는 'Coria' 로 표기했다. 여기서 라틴계 언어에서 명사 끝에 접미사 'a'를 붙이면 여성이나 나라라 이름이 된다. 즉 모어인 'Core'나 'Cori'에 'a' 가 접미사로 붙어서 'Corea', 'Coria' 라는 나라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다. 즉 '고리'가 '고리아', '코리아'(Coria, Corea)라는 나라로 표기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기들이 1500년대 후반에 '고리'(高麗)를 일컫는 'Corea'로 귀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Gori' 는 '고리'의 정확한 표음이었다
이 Gori, Gore가 정말 고리(高麗) 사람들이었는지 좀 더 생각해 보자. 1200년대에 서양인인들은 '고리'(高麗)를 중국인의 발음을 따라 Caule, Cauli로 표음했다. 그런데 중국의 고대음이나 근현대음 시기인 1500년대, 서양인들이 이 미지의 나라를 Cauli나 Caoli로 표기하지 않고 Gore, Gori, Coree, Core 같은 '고리' 발음으로 표음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이런 표기들은 중국인들의 발음을 따른 것이 아니다. 둘째, 말라카 지역 주위에 '고리'와 비슷한 이름의 나라는 없다. 셋째, 이 표기들은 1500년대 후반에 Corea로 정착되어 '고리'를 이르는 것으로 확정됐다. 넷째, 그래서 서양인들은 이 지역에 진출해 무역을 해온 '고리'인들로부터 듣고 그렇게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의 'Corai'처럼 나라가 '조선'으로 바뀌었다 해도 오랜 역사를 가진 '고리'라는 표기가 있었다는 점으로 볼 때 자신들은 '고리'인이라고 했을 것이다. 다섯째, 그 뒤 서양인들이 중국 남부에 도착해서 '고리'가 조선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되자 다시 중국인 발음을 따라 표음해 쓰기 시작했다.
1578년 스페인의 중국사절단장 라다(M. Rada)가 '조선'의 중국식 발음인 'Chausien'으로 표음했다. 1596년 네덜란드인 랑그렌의 <동인도 지도>에 Corea의 2차적 이름으로 일본식 발음을 따른 'Tiauxen',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들려 조선인 포로 5명을 데리고 여행한 카를레티(F. Carletti)는 일본과 우리말 발음에 가까운 'Cioscien', 1653년 조선에 도착해 13년 살고 탈출한 하멜의 표류기에는 'Tiocenkouk'(죠선국) 으로 표기했다.
그 뒤 1600년대에 들어서서 포르투갈 출신 로드리게스(T.J. Rodrigues) 신부는 1577년 일본에 도착한 뒤 1620년대 중국에 거주하며 집필한 <일본교회사>에서 "…….Corai 왕국은 중국사람들이 'Cauli'라 부르지만 Corai 사람들 자신은 'Core'라고 부른다"고 썼다. 이는 처음에 'Gore, Gori, Core'로 표기한 것이 곧 '고리'(高麗)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기록을 되새겨 보니 내가 2000년대에 가졌던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즉 1500년대 초의 'Gori'는 선대 왕조 '고리'의 정확한 로마자 표음이었다는 확신이다.
Corea로 정착된 350여 년 뒤, Korea로
서양인들이 '고리' 를 350여 년 동안 'Corea'로 부르고 쓰던 중 'Korea'라는 표기도 나왔다. 그 맨 처음 기록은 제주도에 도착했던 네덜란드인 하멜(Hamel)이 1668년 탈출한 뒤 출간한 <스페르웨르호의 불운한 항해 표류기>에서 였다. 원저에는 'Coeree'로 표기했으나 1671년 독일어 번역판에는 'Korea'로 표기됐다. 1734년 러시아 키릴로프의 <러시아제국총도>에 'Korea'로 처음 표기됐다. 독일은 우리 나라를 'Korea'로, 불어권에서는 'Corée'로 쓴다.
1800년대 후반에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조선에 밀어닥치며 맺게 된 조약문서에 'Corea'가 쓰였다. 그러나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의 미-일 비밀협정(가쓰라-태프트 밀약)에는 '대한'이 'Korea'로 쓰였다. 1910년 일본이 '대한'을 강제병합하고 그 선언문을 세계 여러 나라에 통고하는 영어 번역 문헌에도 'Korea'로 썼다.
세계 2차 대전 뒤 미국의 득세로 영어가 세계적으로 보편화 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해방되며 분단된 조국의 남북이 충돌한 전쟁은 'Korean War' 였다. 돌이켜 보니 'Corea' 로 표기되었던 350여 년 조국은 한 나라였다. 'Korea'로 바뀌어 쓰이기 시작하며, 우리 겨레는 나라를 잃었고 지금도 남북은 반목 대립하며 분단의 수치스러운 'Korea'의 역사를 살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2003년 이래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Korea'의 역사를 청산하고 원조격인 'Corea'를 되찾아 쓰자고 제언 했었다. 'Corea'를 쓰기로 하면 현재 'Corea'로 쓰는 방대한 라틴어권과 'Corée'로 쓰는 불어권까지 'C'로 아우르는 장점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젊은이들이 'Corea 되찾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문헌과 근현대 사전에 나온 '高麗=고리'
동서양과 우리나라의 이런 사료들로 보아 '高麗'를 '고리'로 발음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한문으로 쓰인 <삼강행실도>가 훈민정음 반포 35년 뒤 1481년부터 1700년대에 언해본(우리글 판)으로 중간됐는데 高句麗, 高麗가 '고구려', '고려'로 쓰여 있다. <용비어천가>에 쓰인 高麗의 '고리' 발성법을 무색게 한다.
또 1517년 중국어 학습서 <번역노걸대언해>에 '고려'로, 1677년 <박통사> 언해본에는 高麗를 '고렷'으로 썼다. 1797년 <오륜행실도>에는 '고려'로 썼지만 '고려적' 이란 표기도 나왔다는 점은 놀랍다. '고렷' 이나 '고려적'(고려 때) 이라고 쓴 것은 우리 겨레가 관습적으로 '고릿적'(오랜 옛 시절) 이라고 말한다. 즉 백성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온 말버릇이 옛날 나라 '고리' 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사대사상이 극심했던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을 언문이라고 낮게 여겼다. 그래서 조선 시대 한자(漢字) 공부에 제일 많이 쓰인 <천자문>(千字文)에 '麗'자 가 '빛날 려' 로 읽는 경우인 '金生麗水'만 있고, <유합>(類合) 책에도 '나라 이름 리'로 읽는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高麗의 '麗'도 천자문과 유합에 나온 발음 '려'를 따라 '고려'로 발음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한문 자전이나 옥편은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1770~1903년의 증보문헌비고에는 高麗의 麗는 평성 '리'로 읽는 경우라고도 했다. 반면 같은 시기인 1716년 청(靑)나라의 <강희자전>에 高麗, 高句麗는 '고리', '고구리'로 읽게 되어 있다. 드디어 1770년대 후반(정조)에 와서 우리나라 옥편의 시조인 <전운옥편>(全韻玉篇)이 나왔는데 그 속에 '동쪽나라 리'의 예로 高麗는 '고리'로 읽도록 명기되어 있다. 그 뒤1860년대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高句麗의 '麗'는 '리'로 읽으라는 주를 한문으로 달아 놓았다. 고려를 '고리'로 발음한다는 점이 기술돼있는 조선 후기 사료들이다. 1909년 지석영의 <자전석요>에는 '나라 이름 리'가 없지만 1915년 최남선의 <신자전>에는 '고리나라'(高麗東國)라고 읽어야 한다고 밝혔다.
해방 뒤 1957년 남한의 한글학회 <큰사전>에 '고구리'라는 단어가 있고, 1966년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초판, 1973년 이가원, 장삼식의 <한자대전>(漢字大典), 1983년 태평양출판사의 <최신대옥편>(最新大玉篇), 1984년 <최신홍자 옥편>(最新弘字 玉篇), 1984년 <명문한자대자전>(明文漢字大字典), 1997년 민중서림의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을 포함한 현대의 자전들에 '麗'자는 '려'와 '리'로 읽는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나라 이름일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남측의 한 학자는 "북의 겨레말 사전들을 본 것 가운데 나라 이름 '高麗'에 대해 '고려' 외에 다르게 읽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1700년대 이후 남한의 여러 자전에 '고리'로 읽고 발음하도록 명기되어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남에서는 겨레말 자전이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고 북에서도 고려로 말하고 쓰고 있다.
□ 필자주석
(1) 장영남, 역사학 연합학술희의, 평양, 2002년 12월 26일
(2) 16세기유럽 고서에 나타난 한국, 정성화, <역사학보> Vol.162,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