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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달콤해질 때까지:
임영남 제3시집 『슬픔도 졸이면 단맛이 난다』에 대해
양 애 경(시인, 전 한국영상대 교수)
임영남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공주 문인들의 행사에서였던 것 같다. 그 후 함께 할 일이 자주 생겼다. 교장선생님으로 재직했고 지금은 공주교대의 연구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시집을 묶게 되었으니 원고를 읽어봐달라고 한다. 이분에게도 시를 통해 이야기하고픈 가슴 깊은 곳의 사연이 있는가보다 싶었다.
이 시집 『슬픔도 졸이면 단맛이 난다』는 임영남 시인이 첫시집 『겨울벗기』(1996)와 제2시집 『들꽃을 위하여』(2002) 이후 22년만에 묶는 3번째 시집이다. 아마도 육아와 직장생활이라는 2가지의 큰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작품활동이 조금 뒤로 늦춰진 것이 아닌가 짐작이 간다.
1. 짧은 시들의 아름다움
이번 시집에 수록된 60여 편의 시를 읽으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임영남 시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다. 몸에 걸친 옷이 꼭 명품처럼 보여서 물어보면, 살짝 웃으며 보세옷이어요 하는 걸 보면서 이 시인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란 걸 알았었지만, 시에도 그러한 뛰어난 미감(美感)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특히 몇 편의 시에 주목하게 된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짤막한 작품들이다. 제일 처음 눈에 띄는 작품은 시 <눈길>이다.
입춘(立春)에게 편지가 왔다
어서 길을 내라고
우체통으로 향한
눈부터 쓸어야겠다
- 시 <눈길> 전문
때는 겨울. 마당엔 눈이 가득하지만 시인은 봄을 간절히 기다린다. 아직 입춘도 오지 않았지만 시인의 마음은 벌써 봄을 느끼고 있다. 사실 시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떤 소식이다. 그 반가운 소식은 아마도 우체통을 통해 오리라. 그래서 시인은 우체통으로 가는 방향의 눈부터 쓸어내겠다고 한다. 간절한 소망과 그것이 오리라는 희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남쪽 지방에선 겨울에도 동백꽃이 피고 진다. 동백꽃은 한 잎씩 지지 않는다. 동그랗고 예쁜 꽃모양을 유지한 채로 떨어져서 보는 사람을 아쉽게 한다. 시 <선운사 동백>은 낙화의 아쉬움을 이제 막 아이에서 여자가 되는 소녀의 미묘한 감정에 비유하여 표현했다.
선운사 동백나무 아랫도리
우는 아이 서 있네
초경을 하고서 부끄러운 듯
- <선운사 동백>, 전문
선운사의 동백나무는 고목(古木)이다. 가지가 옆으로 많이 벌어져서 마치 치마폭 같다. 그 치마폭 아래 빨간 동백꽃이 가득 떨어져 있다. 시인은 그 붉은빛을 이제 막 초경(初經)을 치르고 있는 소녀로 보았다. 갑자기 어른이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된 자신을 발견한 소녀가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울고 있다. 겨울에서 초봄 사이. 시인은 쓰지 않았지만 어쩐지 나뭇가지에 하얀 눈이 얹혀 있을 것 같다. 짧은 3행의 시가 많은 느낌을 전해주며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계절은 다시 흘러서 초여름이다. <여름 소나기>를 읽으면 농촌의 초여름이 떠오른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 농번기다. 대기 속에는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하고 타는 듯한 햇볕 아래서 사람들은 과일나무의 꽃을 솎고 잡초를 뽑아주고 쓰러진 모를 일으켜 세운다. 해가 지면 쓰러지듯 고단하게 잠든다.
스스로 몸을 헐어
이불이 되어주고
서로의 체온을 나눠주며
언제나 둘이 아닌 하나가 되고 싶어
줄기줄기 내려와 파고드는
이 아름다운 땀 냄새
초록 초록 태어나는
새벽 발자국
- <여름 소나기>, 전문
공기와 습기가 못 견딜 만큼 뜨거워지면 터져나오는 게 소나기다. 시인은 소나기를 하늘과 땅, 여자와 남자가 만나 하나가 되는 의식(儀式)처럼 느낀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면 빗줄기가 땅과 만나 피어오르는 흙냄새가 물씬 느껴지는데, 이것을 시인은 ‘아름다운 땀냄새’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늘과 땅의 만남을 통해 초록색의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풋풋하고 관능적인 여름의 계절감이 잘 나타난 시다.
시 <장마>도 짤막한 4행 속에 많은 이야기거리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바람이 수상하다
개미들은 줄지어 이사 가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거미의 버선발이 흥미롭다
- 시 <장마>, 전문
때는 장마철 큰비가 내리려 하는 시점이다. 대기 속에 불안한 기운이 돌고, 여기에는 쓰여져 있지 않지만 뉴스에서는 연속으로 산사태 위험과 하천 범람에 대한 경고가 뜨고 있으리라. 미물들도 저 위험한 것은 본능적으로 안다. 개미들은 둑이 떠내려가서 몰살될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집단으로 대피 중이다.
그런데 거미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 시인은 거미를 바라보고 있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놓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줄을 움켜쥐고 있는 거미의 발까지 관찰하는 시인의 시선이 세심하다. 시끄러운 것과 조용한 것, 요동치는 것과 정지해 있는 것. 세상에는 언제나 양쪽 면이 있다. ‘흥미롭다’고만 말하고 시인이 숨기고 있는 말이 뭘까? 궁금하다. 답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도 시인의 전략인 것 같다.
2. 삶의 고난 속에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은 어렵다. 금수저로 태어나면 세상이 훨씬 물렁할 것 같지만, 일단 금수저로 태어나는 일의 확률이 희박하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짊어져야 할 짐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다. 머리가 좋고 용모가 단정하고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도 삶은 만만치 않은가 보다.
험난한 줄도 모르고 담을 올랐느냐고
바람이 물어온다
‘온몸에 힘을 빼야 해’
지독한 날을 견뎌온 자리마다
그 손의 못 자국처럼 옹이가 남아있다
시 <담쟁이덩굴> 중에서
임영남 시인의 시 <담쟁이덩굴>에서 시인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을 향해 한 발 한 발 오른 삶이다. 그러나 바람이 흔들어 떨어뜨리려 한다. ‘험난한 줄 모르고 담을 올랐느냐?’고 비웃기까지 한다. 덩굴은 생존의 요령을 획득한다. ‘힘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힘을 빼야’ 역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목표를 위한 의지는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지독한 긴 시간을 버텨낸 손바닥에는 옹이가 남는다.
필자가 다니던 중학교 건물 벽에도 커튼처럼 촘촘하게 담쟁이덩굴이 덮여 있었다. 저 덩굴이 어떻게 벽에 붙어 있는지 궁금해서 덩굴을 들쳐 본 적이 있었다. 줄기에서 나온 작은 돌기들이 벽에 딱 붙어 있었다. 마치 식물이 손가락 마디마디로 벽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서 떼내어 보았는데, 돌기가 벽에 그대로 남았다. 손가락이 부러질망정 절대로 그 벽에서 떨어질 수 없다는 담쟁이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개미의 귀로> 1과 2에는 임영남 시인의 그러한 생존에의 의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이 그렇게 그녀를 힘들게 했는가를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지만, <개미의 귀로 2>는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원칙의 길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길이 끊어진 곳에 무임승차 버스가 지나간다. 만원(滿員)이다. 몇 십 년째 어두운 터널에서 기다리지만 길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서지도 않고 지나가고 여전히 만원(滿員)이다. 기진한 개미는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남아있을까 엘리베이터가 보이기는 하는데.
고단한 땀으로 밤새 꿈을 꾸고, 가족들이 준 힘을 먹으며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개미의 귀로 2> 중에서
이 시 속의 화자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 서 있다. 오래도록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목적지로 가는 버스는 내 앞에 서지 않고, 이미 무임승차자들로 만원인 상태다. 내가 힘들여 얻으려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힘들이지 않고 얻는 걸 보면 좌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든 것을 참기 어렵다.
그래도 화자에겐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다. 개미처럼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마지막 희망과 위로일 것이다. 성공한 교육자이며 커리어우먼으로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임영남시인에게도, 삶은 만만치 않게 험난한 도전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시인은 마음의 성장을 이룬다. 시 <탱자꽃에도 상처가 있다>는 ‘이해(理解)’를 주제로 한다. 시인이 어린시절 살던 집의 울타리를 이루었던 탱자나무는 큰 가시를 가지고 있고 꽃도 작았으며 열매는 떫었다. 무엇 하나 사랑스러운 점이 없어서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면 자신이 그런 탱자같은 취급을 받게 되기도 한다.
신맛과 쓴맛은 뱉어내고 단맛만을 맛보고 싶어 했지 떫은맛은 던져버렸어 그땐 몰랐어 꽃과 열매도 상처 받는다는 걸
내가 탱자가 되어 보니 알겠어. 신항리 145번지. 울타리가 되어준 탱자. 널 만나면 자신을 지켜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고 위로하고 싶어.
작고 여린 꽃에게도
시 <탱자꽃에도 상처가 있다> 중에서
사람들은 보통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는 쉽게 한편이 되지만 조금만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안면이 싹 바뀌기도 한다. 거기에 반발하면 까칠하다는 비난이 돌아온다. 시인은 비로소 이해한다. 탱자나무가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과 짐승을 피하기 위해 몸에 가시가 돋쳤다는 것을. 그래서 시인은 탱자에게 ‘자신을 지켜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는 위로를 전한다.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시 <집에도 상처가 있다>는 임영남시인이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에서 그녀는 ‘힘들어도 힘들다 말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 말 못하는’ 삶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한다.
너무 애쓰지 마
힘들면 힘들다 그래
아프면 아프다 그래
그래도 돼
그렇게 살아
참다가 곪아버리고
옹이마다 썩어지고 문드러져 녹아내리고
서까래가 내려앉도록
아이들 몰래 앓는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가슴 무너지는 소리 누가 들을까 하여
달님 앞에서 울고
강물 앞에서 울고
입을 틀어막으며 폭포처럼 펑펑 울어도
자주색달개비 꽃눈처럼 강물에 비친 별빛은 무심히 빛나고
바다에 물든 일출은 여전히 아름다워
너무 애쓰지 마
그래도 돼
그렇게 살아
- <집에도 상처가 있다> 전문
집에 어려운 일이 생긴다. 끙끙 앓으면서도 힘들단 말도 아프단 말도 못하는 건 가족을 위해서다. 특히 아이들은 집에 닥쳐온 위기와 부모의 고민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부모는 ‘서까래가 내려앉고 가슴이 무너져도’ 아이들 앞에서 어려운 표시를 내지 않으려 한다. 참다못해 집을 뛰쳐나오면, 들끓는 마음과 달리 세상이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더 서럽다. 시인은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참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 어쩌면 이 말은 너무 많이 참았던 자신에게 주는 위로처럼 들린다.
3. 나를 지탱해주는 힘, 가족
임영남 시인을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참 극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봉황동 옛 골목길> 같은 작품들을 보면 임시인이 공주교대 시절 은사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듯한데, 아마도 어려서부터의 가정교육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임시인은 대가족의 일원으로 자란 듯한데, 시 <어머니의 된장국>을 보면, 집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달차근한 햇마늘 줄기처럼
당차게 키워내신 육 남매
고단한 땀방울
고춧대 자작한 아궁이불
슬픔도 졸이면 단맛이 나는지
뚝배기 속 고만고만한 수저가 자란다
<어머니의 된장국> 전문
6남매를 둔 집이다. 어지간 넉넉한 집이 아니라면 기르고 먹이고 교육시키기가 쉬울 리 없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고춧대로 불을 때어 밥을 짓고, 남은 불에 국을 끓여내신다. “슬픔도 졸이면 단맛이 나는지”라는 구절이 빼어나다. 그 한 구절에는 많은 사연과 의미가 담겨 있다.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 지탱하는 어려운 형편이고, 뚝배기에 특별한 재료도 넣지 않고 졸여낸 된장국이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밥상은 꿀처럼 달다. 그 덕분에 6남매는 햇마늘 줄기처럼 쑥쑥, 달차근하고 당차게 자랄 수 있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시 <앉은뱅이꽃>에서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다. 들에 핀 앉은뱅이꽃-제비꽃-을 보며 시인은 어머니의 유언을 떠올린다. ‘우애 있게 살어.’라는 말씀이다. 어미새처럼 연신 먹이를 물어다 막둥이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가 그리워서 시인은 무덤가에 핀 앉은뱅이 꽃에 말을 건다.
<어머니의 된장국>과 <앉은뱅이꽃>에서처럼, 자식에게 가장 어머니를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것은 역시 밥에 얽힌 추억이다. 시 <밥물>에서 임영남 시인은 밥 뜸들이는 냄새에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마을 어귀 뉘 집에서 뜸 들이는 구수한 냄새
밥물은 절로 절로 흘러넘쳐도
당신 없는 세상은 솔바람도 스산한 겨울
자식 입에 밥물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배부르다 좋아하시던 어머니
살아생전 뜨신 밥 한 그릇 못 해 드렸는데
꿈결에
비단 안개 두르고 다녀가시니
하늘 끝 처마마다 영산홍 밥물 들겄네
시 <밥물> 전문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주부들은 밥물이 끓어 넘치려 할 때 불을 줄이고 뜸을 들인다. 밥물은 밥을 못 넘기는 환자나 우유를 못 먹는 아기에게 미음, 그러니까 생명수가 되기도 한다. 평생 자식 입에 밥 넣어주시느라 자신의 밥은 챙기지 못하시던 어머니를 잃고, 자식은 후회할 일만 많아진다. 왜 내가 밥하여 어머니를 대접하지 못했을까. 이젠 밥물이 넘쳐흐를 만큼 흔한 세상인데 왜 어머니가 안 계실까.
마지막 연에서 어머니는 비단 안개를 두르고 석양빛에 물들어 계신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늘 끝 처마마다 영산홍 밥물 들것네”라는 구절이 선연하게 아름다운 것은, 시인의 마음에 간직한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선녀처럼, 중생을 살리는 관음보살처럼 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시집 안에는 어머니 외에도 가족에 관한 시가 많이 눈에 띈다. <아버지 문갑>에는 아버지가, <신혼집>에는 새색시였을 때의 시댁 가족이, <등 붉어진 남자>에는 남편이, <얼렁 댕겨와유>에는 시어머님이 각각 등장한다. 모두 소중한 인연이며 시인의 든든한 지지자들이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족에 대한 시 중에서 <봄 편지>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웃음이 입술 가득 번질 수 있다는 건
가슴 뿌듯하여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건
혼자 있어도 늘 콧노래가 이어진다는 건
네가 있기 때문이다
자궁 속에 돛을 달고
목표도 없이 출렁이고 있다는 건
나이도 점령할 수 없다는 건
네가 있기 때문이다
- 시 <봄 편지> 전문
시인의 어머니가 자식 입에 밥물만 들어가도 배부르시다던 것처럼, 이제 시인 역시 ‘가슴 뿌듯하여 먹지 않아도 배부른’ 자식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하기만 해도 웃음이 흐르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하물며 늙어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한다. 자식이란 그렇게 든든한 존재인가 보다.
시 <오월의 빛깔>에서 시인은 오월의 신부가 된 딸의 결혼식 날, 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써 피했다고 썼다. 마침 직접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시인에게 왜 그러셨느냐 물으니, 눈을 마주치면 좋은 날 울게 될 것만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빈 둥지 증후군이 느껴지는 이 시의 말미는 다행히 ‘손주들 재롱에 슬픔이 짧아졌다’는 해피엔딩이다. 어머니와 딸, 손녀로 이어지는 인연의 소중함을 강하게 느끼며, 가족이 시인을 치유해주고 지탱하게 해주는 힘인 것을 알게 된다.
4. 슬픔이 달콤해질 때까지
여기까지 읽어내려오니, 임영남 시인이 인생이라는 심한 몸살을 겪어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고 순조로운 삶을 산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삶은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이었나 보다.
시 <숲속 걷기>를 읽으면, 급류를 타고 온 배가 기슭에 닿은 것처럼 편안해진다. 시인의 마음이 잔잔한 회복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발장에 양말까지 가지런히 벗어놓고
물 둘레길을 천천히 걷노라면
숲 그늘이 따라와 말을 건넨다
맨발로 터덕터덕 걷다 보면
월성산 봉화대 뻐꾸기도 따라 걷고
주미산 물소리도 함께 걷고
철마산 골바람도 부채질해 주며
일락산 두리봉으로 넘어간다.
수원지 물빛이
어느 날은 즐거웠고
어떤 날은 애잔했다
얼마나 아팠느냐
물어오는 이 없어도
물결 따라 둘레길 걷다 보면
한가득 쏟아 놓은 거친 숨소리
신발장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낙엽처럼 가벼워져 내려가고 있다
<숲속 걷기> 전문
맨발로 친근한 이름의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시인은 낙엽처럼 가벼워진다. 해내야 할 일들과 이루어야 할 목표, 지켜야 할 사람들 때문에 정작 자신의 고달픔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던 긴 시간은 마침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를 토닥토닥 위로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 <나팔꽃 세상>에 이른다.
장마에 온몸이 찢어져
뿌리째 뽑혔는가 싶더니
보란 듯이
소금기 마른 어깨띠 띠고
보라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버티고 견디다 보면
너의 세상도 오리라
곧 오리라 오리라
<나팔꽃 세상> 중에서
‘나팔꽃’이라 이름 붙여진 그대로, 나팔꽃은 입을 활짝 연 모습으로 핀다. 폭우로 줄기가 찢겨나가고 덩굴이 땅바닥에 떨어져도 푸른 보랏빛으로 만발하여 다음과 같이 소리친다고 임영남 시인은 노래한다. ‘버티고 견디다 보면 / 너의 세상도 오리라 / 곧 오리라’고. 이 부르짖음은 자식에게, 제자에게,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격려의 메시지로 들린다.
어머니께서 고된 땀방울을 졸여내어 단맛이 도는 된장국을 6남매의 밥상에 올려놓으셨듯이, 임영남 시인은 폭우와 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나팔꽃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슬픔을 피하지 말고 달콤해질 때까지 조련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