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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토미 요시히코라는 일본의 에세이작가가 펴낸 『일하는 의미를 잃은 당신에게』라는 책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심리학자는『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 자신이 1942년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갇혀 겼었던 일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1991년 86세 되던 해 그에게 한 편집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인생과 일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닥터 빅터 프랭클은 “나는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내 인생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일하는 의미를 잊은 당신에게』는 바로 빅터 프랭클의 말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빅터 프랭클이 창시한 심리요법 ‘로고테라피’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로고테라피는 마음의 허무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도록 돕기 위해 이론과 방법을 구축했습니다.
『일하는 의미를 잃은 당신에게』를 읽어보면 우리가 왜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과 흘러간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겨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반복하고 아무 의미없이 시간을 낭비하며 허송세월 보냈던 시간들을 여전히 후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라는 테두리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찾지 못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데 우리는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다면 우리는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을 찾아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책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직 돈! 돈! 돈! 때문에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우리 인생 그런 인생이 지금 행복을 느끼지 않고 있다면 삶도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우리가 자신이 행복해야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산다면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보다는 행복을 느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의미를 찾아야 행복해집니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 우리가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같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예수님께서도 너희들이 과연 인생의 의미를 찾았냐고 묻고 계십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을 만나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냐고 묻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만남을 잘 살펴보고 우리도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누구를 찾아다니는 지 살펴보고 진정 참된 발견과 만남을 통해 참 인생의 의미, 참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위해 첫째, 세례 요한같은 선지자를 찾아다닙니다.
누가복음 7장 26절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이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시면“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선지자를 찾으려고 요한을 따라다녔고 지금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중에도 선지자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성장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면서 제일 먼저 어떤 목사님, 어떤 능력의 종을 찾아다니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뭐가 특별히 말씀을 잘 가르치는 목회자, 특별히 전도 열심히 하는 목회자, 요즘은 셀교회의 훈련을 받고 셀교회를 추구하며 셀목회를 잘하는 목회자... 이런 분들을 찾아다니며 그런 목회자가 있는 교회에서 내가 등록하고 있으면 나도 신앙적으로 뭔가 이뤄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흔히 보듯이 대형교회는 성도들이 모여들고 작은 교회는 그 있던 성도들마저 큰 교회로 떠난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저는 큰 교회에 전혀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던 성도들이 처음 신앙을 가지며 전도되어져서 교회등록했다면 박수를 치고 그 교회를 칭찬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기존의 신앙을 가지고 있던 성도가 뭔가 특별한 교육, 뭔가 특별한 은사, 뭔가 특별한 예배의 느낌을 찾아서 어떤 교회, 어떤 목회자를 찾아다니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선지자를 찾아다니며 훌륭한 선지자 세례 요한을 찾았다고 말씀하시지만 이 말씀속에서 우리는 분명 신앙의 한계, 신앙성장의 장애물을 발견하여야합니다.
사람들은 자꾸 본질과 원칙을 알고 어디서 찾아야할 지를 알면서도 다른 곳에서 뭔가 나에게 큰 도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저기 다른 곳을 찾아다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세 때가 되면 이렇게 사람들이 신앙본질을 찾지 않고 여기저기 다른 곳에 뭔가를 찾아다니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3,24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이단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주를 봐라. 우리가 따르는 분은 미혹하는 표적과 기사가 아닌 진정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신 참 그리스도”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참된 선지자, 마지막 그리스도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말세의 때에 참된 선지자를 찾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말세의 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으로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발휘하며 그리스도가 될 인간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목회자, 사역자, 심지어 은사받은 평신도를 마치 그리스도의 위치까지 놓고 위대한 사람의 추종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능력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찾아서 능력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니고 이 목사, 저 목사를 찾아다니고 그렇게 다니다가는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못 찾을 뿐 아니라 지옥의 길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아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신앙을 찾아다니십니까? 사람을 찾아다니십니까? 우리가 말씀속에서 신앙의 본 모습을 찾고 더욱 신앙의 본질에 합당한 신앙적인 모습속에서 신앙을 찾아야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뭔가 특별한 사람, 특별한 능력의 장소... 이런 곳을 찾아다니시지는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의 권면처럼 우리는 선지자를 찾지 않고 뭔가 특별한 사람을 찾지 않고 말씀속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속에서 참 신앙을 찾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위해 둘째, 참 신앙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다닙니다.
누가복음 7장 2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칭찬하시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낳은 자라는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기에 여자가 낳은 자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말씀이야말로 정말 요한이 대단하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서를 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바로 요한이 인류역사상 유일하게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선구자적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이기에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승천, 성령강림, 하나님의 나라가 전 세계에 확장되는 놀라운 역사를 보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복음전파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며 진정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했던 사람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초대교회 성도와 그 이후의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뿐 아니라 그 이상의 사역도 감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초월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유대땅에 오셔서 유대인들을 변화시키고 유대땅의 영역속에서 사역하셨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전 세계에 모든 국가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61장 6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목사 저 목사 찾아다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환경을 쫓아가거나 어떤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거나 하지 않고 참 신앙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앙성숙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될 때 가능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택함받은 족속이고 하나님앞에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이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정말 바른 신앙으로 다른 어떤 능력의 의사를 받은 사람보다 더 하나님앞에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보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그리스도인이 더 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자존감을 가지고 참 신앙의 성숙을 이뤄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위해 마지막 셋째로, 참 구주이신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 말씀입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에 대해 이렇게 대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조롱하며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은 먹기를 즐겨하며 포도주를 즐겨마신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였습니다. 정말 이런 소문은 추잡스러운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좋지 못한 소식은 항상 뇌리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그것을 고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혹은 사회지도자, 성직자, 교사, 법조계와 기타 공직자들은 허위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소문이 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런 소문이 나버리면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미 뇌리속에 인식하게 되어 완전히 허위사실로 밝혀내지 못하면 직책을 내려놓고 사직해야하는 경우를 흔하게 보게 됩니다.
이런 목적으로 아마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 이런 모함을 하였던 듯 쉽습니다. 과연 오늘 말씀구절속에서의 오해처럼 예수님은 음식욕심을 가진 탐식가, 포도주를 즐겨마시는 음주가일까요? 가나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들어내시고 가는 곳마다 식사를 하시며 죄인들과 세리들, 각종 소외당하는 이웃들과 식사하는 모습속에서 분명 오해를 받으실 수 있는 상황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에 대해 분명히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은 세상의 유언비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은 반반 섞어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혼돈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서로 말을 하다가도 진짜인가 거짓인가 참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100% 거짓말만 하는 사람, 100% 진실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거짓 사실과 진실을 막 섞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가 뭘 사실로 받아들이고 뭘 걸러서 들어야할 지 분간하지 못할 때 우리는 참 괴롭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어디가 진짜고 어디가 가짜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성경속에서 예수님의 하셨던 사역은 분명 옳았고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고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5~47절입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필요를 생각하며 나눠주고 마음을 같이 하여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함께 식사도 하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관계였습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해 함께 식탁의 교제도 할 뿐 아니라 재정도 공동으로 섬기고 옷도 나눠쓰고 식기구도 나눠쓰고 각장 가정용품을 나눠쓰고 작업도구들도 나눠썼습니다. 이러면서 마음문이 열리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함께 식사하시며 복음전하신 사역이나 성령이 임한 후 예루살렘교인들에게 임한 식탁의 교제의 은혜나 초대교회이후 지금까지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며 친근함을 추구하기 위해 진행하는 식사의 모임이나 모두 참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이런 모임을 통해 서로 마음문을 열고 은혜가 임하고 평화의 모습이 찾아오고 모두 즐거워지는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18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결국 식사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식사자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고 함께 그리스도안에서의 한 형제자매인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여기 고주리에 들어와서 시골목회한다고 하고 개척교회한다고 하니까 어떤 선교사님께서 이런 권면을 해주셨습니다. 마음문을 열고 전도하는데는 함께 식사하는 것이 최고다 교회에서 식사대접하고 수시로 사람들에게 식사초대를 해서 관계를 맺으라고 권면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고주리지역에서 그렇게 무턱대고 식사초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단지 어떤 행사를 계기로 큰 행사를 진행하면서 간식과 식사를 대접하니 그것은 조금 호응해주시더라구요..
식사교제가 정말 전도의 문을 여는데 귀하게 사용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문을 열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으로 우리의 교제가 끝이 나면 안됩니다. 단지 마음의 문을 열고 가족같이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야하고 성령의 평안과 성령의 감동, 성령의 은사를 통해 그리스로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는 결과적으로 영적 능력자를 만나는 것도 좋고 인품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고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할 만한 영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만나야할 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7절입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우리가 신앙의 성장을 위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며 정말 예수님만 의지할 때 우리는 참 복된 인생,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로마서 1장 4절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다른 어떤 환경을 만나고 다른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하기보다 정말 우리 예수님을 삶가운데 체험하고 예수님을 높여드리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우리는 정말 참 복된 신앙생활, 은혜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교회를 나오면서도 그냥 마음 평안하면 되었다, 혹은 교회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 내 생계에 도움이 될만한 관계를 많이 맺으면 되었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신앙생활하면 그것은 현세에서만 종교생활하는 것이지 정말 복된 신앙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 더 나아가 내세의 큰 축복을 누리는 신앙생활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목사나 영적 권능을 지닌 사람을 추종하며 살아가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통해 내가 생각하기에 좋아 보이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지 말고 진정 말씀과 생활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풍파가 찾아오고 어떤 오해가 찾아오고 어떤 인간적인 갈등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정말 복된 인생이 되도록 우리 주님을 찾고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