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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철상의 역사교실 원문보기 글쓴이: 미스터빈
시모노세키 조약은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질서였던 조공·책봉 체제를 와해시키고 메이지 일본의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약체화한 청을 서구 열강이 분할하는 결과를 낳아 결국 청의 붕괴와 중국의 반(半)식민지화를 가져왔다. 또 조선의 멸망과 식민지화를 초래한 첫 단추였으며 근대 일본의 진로를 군사적 침략으로 결정지었던 전주곡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모노세키 조약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학계의 시각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 연구자들은 비록 자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한 조선이 이후 대한제국으로 거듭나 개혁에 박차를 가했으나 일제의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침략정책으로 인해 결국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종을 개혁 성향의 군주로 보고 그가 행한 일련의 개혁정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일제에 의한 한국 강제병합의 침략성과 불법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김도형 연세대 교수는 일본의 한국병합이 지니는 불법 부당성에 대한 비판에는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고종이 을사늑약 당시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고 광무개혁을 전후한 내우외환 시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명(開明) 군주'였다는 해석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일본 학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한국병합 나아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선택한 역사적 과정은 애초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 처한 그때그때의 국제적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취해졌던 결과이며 국가 방어를 위한 자위책이었다는 견해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우세해지고 있다. 다카하시 히데나오(高橋秀直) 전 교토대 교수는 방대한 사료를 통해 청일전쟁을 비롯한 일련의 전쟁들이 특정 시점에서 다음 목표가 정해져 있는 과정이 아니었음을 주장했다.
반면 이노우에 키요시(井上淸) 전 교토대 교수,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나라여대 명예교수 등은 일본이 벌인 일련의 전쟁을 철저한 계획에 따라 진행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보고 있다.
조선일보 20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