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시편 33:1-8
제목: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 기독교는 칭의된 성도들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송의 의무를 정직하고 마땅하게 이행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찬송을 원하십니다.
| 시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공동번역: 의인들아, 야훼께 감사하며 기뻐 뛰어라. 옳은 사람의 찬양이라야 기뻐 받으신다, NIV: Sing joyfully to the LORD, you righteous; it is fitting for the upright(정직한 자) to praise him) |
하나님께서는 참된 의인(정직한 자들, the upright)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찬송을 기뻐 받으십니다. 구원받은 의인은 하나님을 마음껏 찬송할 거룩한 의무가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고귀한 권리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한 가지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도덕적으로나 행위상으로 완전하고 허물이 없어서 성도가 의롭다고 칭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약점이 있고 허물이 많아보일지라도,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 불러주십니다(이신칭의, 요16:9-10).
|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이처럼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참 신자는 시편 33편 1절에서 말하는 의인과 정확히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며(right and true), 그분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신실하고 믿음직하기 때문(faithful)이라고 말씀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죄를 지으실 수 없으며 우리를 향해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 시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며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신뢰할 수 있다. For the word of the LORD is right and true; he is faithful in all he does) |
그러므로 우리가 변함없는 하나님을 믿고 마음 깊은 곳에서 찬송할 수 있는 탄탄한 근거가 바로 시33:4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시시각각 우리를 속이고 실망시킬지라도,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으시며 그 약속을 언제나 신실하게 지켜나가십니다.
● 참된 신자만이 누리는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인이 아닌 세상 피조물들과 세상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본능)는 가지고 있습니다(시33:8). 미신이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인간이 가진 원시적인 종교 본능에 따라 막연하게나마 조물주나 천지신명을 두려워하며 제사를 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성도들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시33:1 joyful)하지는 못합니다.
| 시33: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NIV: Let all the earth fear the LORD; let all the people (NASB, KJV: inhabitants) of the world revere him) |
예수님께서 성육신하고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은 당연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빠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높고 깊은 단계(신약교회)보다는 덜 성숙해 있었습니다. 세상의 여러 종교나 율법과, 우리가 믿는 기독교 복음의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격적으로 누리는 “참된 기쁨”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참 신자’의 위대한 특권은, 우리 하나님을 마음껏 즐거워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시33:1 Sing joyfully to the LORD). 세상의 신화나 여러 타종교의 전설들을 보면 수많은 신(gods)들이 등장하는데, 저마다 스스로의 막강한 힘을 과시합니다. 이에 혹세무민당한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강한 신들이 무섭고 두려워서 그저 화(禍)를 피하기 위해 섬기고(worship) 제물을 바칩니다(offering). 이성과 도덕이 마비된 비인간적인 종교에서는 기우제를 지내며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심지어는 자신의 친자식까지도 희생시키는 잔인한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순히 힘이 강해서만이 아니라, 완전히 정직하시고(시33:4), 순결하시며(시19:8), 지극히 의로우시기(시33:4, right) 때문에 거룩하고 유일하신 절대자(요일2:20, The Holy One)가 되십니다.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The commandment of the LORD is pure)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For the word of the LORD is right and true; he is faithful in all he does) |
● 하나님 말씀의 묵상을 통해 성도들은 심령의 참된 기쁨을 회복합니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문화 현상의 일종에 불과하기에, 그 안에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과 이기심이 쉽게 개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교훈(시19:8, 33:4)에 온전히 근거한 참된 신앙은 거짓이 없고 정직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합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속의 영혼을 기쁘게 하는 진정한 즐거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spel) 안에만 존재합니다. 혹시 우리가 신앙생활을 수십 년간 오래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심령 깊은 곳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없다면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가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소유한 신자가 아니라, 그저 형식과 관습에 젖어든 종교인으로서 종교생활을 해온 것은 아닌가?’ 정직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때때로 부르짖는 기도나 열정적인 실천적 행동(output)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깊이 되새기는 묵상(meditation)의 시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시편 1:2). input이 필요해요.
|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공동번역: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NIV: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i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
우리가 입으로 외치는 기도와 신앙의 고백(output)도 중요하지만, 그에 더해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을 향한 묵상은 하나님을 더없이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 이 묵상은 말씀을 내 안에 수용하는 input입니다.
| 시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May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pleasing in your sight.) |
기독교 바깥의 측은한 이방인의 중언부언이나 수다쟁이처럼 기도의 탈을 쓰고 우리의 요구와 말만 무성하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자 그분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인 우리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 마6:7.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한 귀엽고 어린 자녀들이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깔깔 웃고 즐거워하는 평화로운 장면을 한번 그림으로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이러한 우리들의 순전한 모습과 묵상과 찬송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 벧전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현: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신령한 젖’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며, 역사적∙신학적으로도 가장 정통적인 성경 해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세상의 허망한 것을 내려놓고, 정직하시고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즐거워하고 찬송하는(시33:1)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초신자는 본문만 읽으셔도 되고요. 여력이 되시는 분들은 아래 추가 설명을 읽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호크마 주석: 시편>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 여기서 `의인들', `정직한 자'는 여호와 앞에 서서 경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자들을 의미한다(15편; 24편; 100:4; 118:19f, Kraus). 구약 시대에 성전(또는 성소)에 들어가 여호와를 경배할 수 있는 자격은 율법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부여되었다(Bri- ggs). 물론 이들은 하나님 처럼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들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었다. 이와 관련 하여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한 불신자들은 결코 마음으로부터 주를 찬양할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불신자들의 불경스러운 업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주석하였다. 그러나 경건한 무리들은 여호와를 찬송하는 일에 열중해야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들의 삶 속에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조건, 곧 경건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땅히 할 바로다'는 `몰두할 것이로다', 또는 `열중할 것이로다'로
해석할 수 있다(Calvin).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수금'(* , 킨노르)은 다윗과 레위인 악사들의 악기였고 구약 시대에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악기이다. 이 악기에는 울림통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현의 숫자는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비파'(* , 네벧)는 줄대가 비스듬하게 생긴 현악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악기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음악에만 연주되었다는 점이다(대상 15:16). 즉, 이 악기들은 예배용 악기들이라 말할 수 있다(92: 1-3; 삼상 10:5; 삼하 6:5; 대상 15:16; 25:1, 3, 6; 대하 512; 29:25; 느 12:27).
=====33:3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수금'(* , 킨노르)은 다윗과 레위인 악사들의 악기였고 구약 시대에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악기이다. 이 악기에는 울림통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현의 숫자는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비파'(* , 네벧)는 줄대가 비스듬하게 생긴 현악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악기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음악에만 연주되었다는 점이다(대상 15:16). 즉, 이 악기들은 예배용 악기들이라 말할 수 있다(92: 1-3; 삼상 10:5; 삼하 6:5; 대상 15:16; 25:1, 3, 6; 대하 512; 29:25; 느 12:27).
=====33:3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수금'(* , 킨노르)은 다윗과 레위인 악사들의 악기였고 구약 시대에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악기이다. 이 악기에는 울림통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현의 숫자는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비파'(* , 네벧)는 줄대가 비스듬하게 생긴 현악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악기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음악에만 연주되었다는 점이다(대상 15:16). 즉, 이 악기들은 예배용 악기들이라 말할 수 있다(92: 1-3; 삼상 10:5; 삼하 6:5; 대상 15:16; 25:1, 3, 6; 대하 512; 29:25; 느 12:27).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여 - 사실상 원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키'(* )가 본절 초두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기 시작하는
첫절로 보아야 한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란 그 말씀의 의도와 목적이 모순되지 않으며 아울러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롬 7:12, Delitzsch).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 여기서 `진실하시도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 )는 `확고 부동함', `충실', `성실'을 의미한다. 이는 한마디로 행위에 있어서 전혀 결점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지키는 데 있어서 확고 부동하시며, 악인에게 형벌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 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그러하시다(신 32:4, Briggs).
=====33: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 율법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투영되어 있는데, 본 구절은 그중 `정의와 공의'의 측면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층만하도다 - 본 구절에서 다윗은 율법의 특성중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근거에는 정의의와 공의뿐만 아니라 그의 인자하심도 포함되며 이 두가지 속성이 합하여 여호와의 거룩하심을 구성한다. 따라서 본절에서 시인은 공의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송의 근거로 삼고 있다.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다윗은 찬양의 또 다른 근거로서 여호와의 창조를 들고 있다.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천지 창조시 `...이 있으라'는 명령을 가리키며, `입 기운' 또한 `여호와의말씀'과 동의어 반복이다(사 11:4). 그리고 `만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암'(* )은 본래 `군사들'을 의미 하는데, `하늘'이라는 의미의 `솨마임'(* )과 함께 언급되면 천사들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하늘의 발광체들, 곧 해와 달과 별들을 의미한다(Brig- gs, Delitzsch, Rawlinson). 그런데 이러한 광대한 하늘과 광체들을 오직 말씀으로써 창조하셨으로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능히 합당하신 것이다.
=====33:7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 이는 창조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물의 모습(창 1:7)을 묘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양쪽에 많은물이 쌓여졌던 홍해 사건과 요단 강 사건에서도 보여 진다(출 15:8; 수 3:13,16). 그런데 홍해 사건과 요단강 사건은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이지만 바닷물이 넘치지 않고 한곳에 억류되어 있었던 것은 창조시의 놀사운 기적이었다(Delitzsch). 여기서 `무더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드'(* )는 `억류된 물'을 의미하며 특별히 이 단어는 피조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또는 지배)를 암시한다(TWOT).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 혹자는 이를 궁창 위에 억류된 물을 묘사하고 있는것 으로 해석하려 한다(Briggs). 하지만 `깊은 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홈'(* )은 `하늘 아래의 원천(源泉)', `깊은 바다 밑의 물'을 의미하므로(창 49:25; 욘 2:5) 이 해석은 옳지 않다(TWOT). 이 구절은 깊은 바다를 하나님께서 해연(海淵)에 저장해 두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에 대해서는 창 7:11; 욥 38 :22, 23을 참조하라. 여기서 `테홈'이란 용어는 창 1:2에서는 최초의 바다, 곧 혼돈의 바다라는 의미로 언급되어 있다. 만일 `테홈'이 이러한 의미로 여기서 사용되었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혼돈의 바다를 진정 시키셨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Kra- us).
=====33: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 여기서 `온 땅'은 문자 그대로 무생물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거민'과 같은 온 인류에 대한 시적(詩的) 표현이다. 한편 `세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 ) 에 대해서는 24:1 주석을 참조하라.
‘의인’과 ‘정직한 자’는 도덕적 완벽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율법에 순종하여 예배할 자격을 갖춘 이들을 뜻합니다.
칼빈은 경건한 무리가 찬송에 열중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찬양할 조건과 뜨거운 열정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찬양에 쓰인 수금과 비파는 다윗과 레위인의 악기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예배용으로만 연주되었습니다.
4절 초두의 접속사 ‘키’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는 시작점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모순 없이 반드시 성취되며, 그분의 행사는 결점 없이 완벽하고 확고부동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율법에 반영된 정의와 공의의 측면뿐만 아니라 세상에 가득한 인자하심(사랑)으로 구성됩니다.
시인은 공의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주요 근거로 삼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 시 오직 말씀과 입 기운으로 광대한 하늘과 해, 달, 별들을 만드셨으므로 찬송받기에 합당하십니다.
바닷물이 넘치지 않도록 한곳에 억류하고 깊은 바다를 저장하신 창조의 역사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보여줍니다.
'온 땅'은 인류를 뜻하는 시적 표현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창조와 통치 권능 앞에 온 세계 거민은 그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도덕적 완벽함이 아닌 은혜를 경험한 자를 의인이라 부르시고, 찬양할 마음까지 부어주신 주님의 인자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 한 마디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바다까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이 참으로 든든합니다.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온 마음 다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합니다.
<매튜 헨리 주석>
하나님의 권능과 전능하심 (시편 33:1-11)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네 가지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Ⅰ. 하나님께서 찬양 받으실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그의 간절한 소원. 그는 자신이 이 일을 아주 잘 해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타인들도 역시 이 찬양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소원하였다. 이 협주에서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더 좋은 것이다. 찬송하는 자가 많을수록 그것은 더욱 하늘 나라에 가깝게 된다.
1. 거룩한 기쁨은 찬양의 심장이고 혼이며, 여기에서 그것이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강조되고 있다(1절).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이 앞의 32편에서 이 말씀으로 끝을 맺었던 것과 같이 이 시편에서는 다시 이 말씀으로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종교적 행사는 존재들 중 최선의 존재이신 또한 친구들 중 가장 좋은 친구이신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만족과 승리감으로 시작하고 끝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감사의 찬미는 거룩한 기쁨의 호흡이자 언어이며, 여기에서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2절).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그를 칭송하며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3. 종교적 노래들은 감사의 찬미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며 그것이 여기에서 요구되고 있다(3절).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라. 그것은 네가 가진 가장 좋은 노래이며 빈번히 사용하여 진부하게 된 노래가 아니라 새로워서 여지없이 심금을 올릴 새 노래이며, 새로운 긍휼과 모든 경우를 위한 새 노래이고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연민을 위해서 부르는 새 노래이다." 악기가 성전가를 더 잘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당시에 다윗의 명에 의하여 사용되었는데 이것 또한 여기에서 요구되고 있고(2절). "비파로 그를 찬송할지어다."
(1) 이 의무에 대한 훌륭한 규칙이 여기에 나오고 있다. "공교히 그리고 즐거운 소리로 그것을 연주할지어다. 즉 그 연주가 머리와 가슴, 이 양자의 가장 좋은 것을 함유하도록 하여라. 즉 그 연주를 지성적으로 명석한 두뇌로 연주되게 하는 동시에 사랑스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연주되도록 하여라."
(2) 또한 이 의무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제기되어 있다.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해야 할 아름다운 일인 까닭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아주 즐거운 일이 되며(찬양의 의복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덧입히시는 아름다움 위에 더 많은 것을
더해 준다)우리의 고백에 대한 훌륭한 장식이 된다.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명예를 부여해 준 '정직한 자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정직한 자들은 아름다운 모양으로 하나님을 찬미한다. 이는 그것은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찬미하는, 즉 저희의 영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까닭이다. 그 반면에 위선자의 찬미는 "미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비유"같아서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잠 26:7).
Ⅱ.그가 하나님과 그의 무한하신 완전성에 대해 품었던 고귀한 생각(4,5절).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것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1. 그의 "말씀"안에서, 여기에서는 그것이 모든 신적 계시를 뜻하는 바 하나님의 잡다한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자손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말한다. 그의 말씀은 모두 정직하며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계명은 공평의 규칙과 선악에 대한 영원의 이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약속들은 모두 지혜롭고 선하며 침범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다. 모두 그의 위협에는 불의가 없으며 그 위협조차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의도된 것으로, 우리로 하여금 악을 포기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은 올바르기 때문에 그 말씀에서 이탈하는 것은 모두 그릇되며, 우리가 그것과 일치될 때 우리도 정당하게 되는 것이다.
2. 그의 "행사"에서 그가 하시는 일들은 모두가 "진실하게' 행하여지는데, 그 모두가 "진리의 글"이라고 칭해지는(단 10:21) 그의 계획에 의거하여 행하여진다. 하나님의 모든 작품 속에 나타난 사본은 영원하신 마음속에 품고 계신 계획, 즉 위대하신 원본과 정확히 부합하며 조금도 변모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내신다.
(1) 그는 불요불굴의 정의의 신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신다." 그가 내리시는 판결에는 오직 정의가 있을 뿐이며 그 판결의 집행에는 다만 공의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기의 어떤 피조물에게도 그릇 행하지 않았으며 잘못 행할 수도 없으시다. 그는 그릇되게 행하는 자들을 항상 기꺼이 고쳐 주시고자 하며, 그것을 즐거움으로 행하신다. 그는 의로운 자들에게서 기쁨을 얻으신다. 그는 스스로가 의로우신 여호와이시므로 이를 사랑하신다.
(2) 그는 무한 그리하여 관대한 신이시라는 것이다.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즉 땅은 그의 인자하심에 대한
증거와 실례로 가득 차 있다. 땅이 위로부터 받는 자비로운 영향력과 그로 말미암아 땅이 산출해 낼 수 있는 열매, 또 인간과 짐승 모두를 위한 양식 및 세상의 모든 열방이 받는 공통적 축복은-즉 지구상의 가장 암흑한 지역이나 혹서지와 혹한지, 가장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 지대라고 해서 제외되지는 않는다-"세상에 그의 인자하심이 충만함"을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 이 땅이 하나님이 인자하심으로 충만해 있는데도 그에 대한 찬양은 매우 부족하며, 그의 혜택으로 살아가는 군중은 많아도 그의 영광이 되도록 사는 자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Ⅲ. 세계 창조에서 실증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대하여 그가 가졌던 확신,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러므로 그를 "천지의 창조자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로서 찬양한다. 여기에서도 그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1. 하나님은 어떻게 이 세계를 만드셨으며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는가?
(1) 얼마나 쉽게 행하셨는가! 삼라만상이 "여호와의 말씀"과 "그의 입 기운으로" 만들어졌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오, 성령은 호흡이시므로 성부는 세상을 만드시고 그의 아들과 성령을 통하여
그 세계를 다스리시며 구속하신다. "그는 말씀하시고 명하셨으며"(9절)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두 가지 일이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아니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에 의해 세계가 조성되었듯이 작은 세계인 인간도 그렇게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시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저 새로운 세계인 교회가 세워졌으며, 저 새로운 창조, 즉 새로운 인간인 영혼에게 은혜가 역사하셨다.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신 능력이라면 무엇인들 하실 수가 없겠는가!
(2) 얼마나 효과적으로 행해졌는가! "그러자 그것은 견고히 섰도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릴은 무엇이나 뜻을 이루신다. 즉 그가 행하시며 그것은 견고히 선다."무릇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전 3:14). 만물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오늘날까지 있음"은 견고히 서 있으라는 그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119:91).
2. 그가 만드신 것은 무엇인가? 그는 만물을 지으셨으나 여기서 주목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하늘들과 그 만상들"(6절). 즉 가시적인 하늘과 태양, 달,
별 및 그 천체들 또 가장 높은 하늘과 천사들과 천군들이다.
(2) 물들과 그 보고들(7절). 땅은 맨 처음 물에 덮여 있었는데 땅이 물론 물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에 침몰하여 가라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연의 하나님은 태초부터 그가 자연의 통상적 규율과 그의 능력의 일상적 운용에 얽매이지 않으심을 나타내 보이시려고 "저가"말씀으로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어" 육지가 나타나도록 하셨다. 그러나 그것들을 무더기로 계속 쌓아 두지 않으시고 "깊은 물을 곳간에 두셨으니." 바다가 저희 침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창고 안에 들 듯 해변의 모래에 의하여 감금되는 평지에 두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눈으로부터 감추어지는 은밀한 지하의 동굴에 두셨다. 또한 그것을 깊은 샘들이 터질 그날을 위하여 흡사 창고 속에 든 것처럼 예비하여 두셨다. 그리고 그 바닷물들은 그 집의 위대하신 주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그 사용을 위하여 그곳에 여전히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3. 이러한 창조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8절)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그를 경외할지어다." 즉 모든 인간의 자손들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라(시 95:5, 6). 영구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경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계 14:6, 7).
우리는 모두 그를 경외하도록 하자. 즉 그의 진노와 불쾌하심을 두려워하고 그를 우리의 원수로 삼는 일이나 그를 대적하여 맞서지 않도록 하자. 이런 권세를 가진 그는 의심할 나위 없이 모든 권능을 그의 수중에 장악하였을 것이니 감히 그를 노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천군들을 자기의 군대로 소유하시며 바다의 깊은 곳을 자기 탄약고로 삼으시고 계신 이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따라서 평화 상태를 희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렘 5:22).
Ⅳ.하나님의 지고한 주권과 지배에 관해 그가 품었던 만족감(10,11절).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책략을 압제하시어 그것이 그들의 의사에 반대되고 자신의 계획에 유용하도록 만드신다. 와서 믿음의 눈으로 보좌 위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1. 자기 대적들의 도모를 좌절시키시는 하나님. "그는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따라서 그와 그의 왕국을 대적하여 그들이 궁리해 내는 모든 것은 "허사"로 판명된다(2:1).
아히도벨의 모략은 어리석은 것으로 변하고 말았고 하만의 음모는 좌절되어 버리고 말았다. 비록 그 계획이 아무리 심오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기대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만일 하나님께서"그것은 서지 못할 것이다.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모두 전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2. 자기 자신의 법령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리라." 그의 계획은 본질상 변경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가 한 가지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그를 돌이킬 수가 있겠는가?" 그의 계획의 실시는 반대 받을 수는 있지만 그 집행은 어떤 창조된 권세에 의해서도 하등 방해를 받을 수 없다. 모든 시대의 변혁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기의 방침을 바꾸지 않으셨으며 모든 사건 속에서, 심지어 우리를 극히 놀라게 하는 사건에서조차 그의 변함없는 의향은 성취된다. 그 어떤 것도 그의 뜻이 제 때에 실현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시편을 노래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신에 대한 큰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통치하시며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무한하신 지혜로 세계를 다스리셨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무한하신 지혜로 세계를 다스리셨고 우리가 티끌 가운데에서 잠잠하게 될 때도 통치하실 것이라는 이 생각은 얼마나 우리를 항상 편안하게 해 주는가!
시인은 거룩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성도들이 악기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함 없이 올바르며,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역사 또한 진리의 계획에 따라 정확하게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불의하지 않은 공의의 신이시며, 지구 전역에 그분의 인자하심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입 기운만으로 만물을 손쉽게 만드셨고, 명하신 그 말씀은 영원히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천지 창조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조와 교회의 세우심, 영혼의 구원 역사에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발광체들과 천군을 창조하셨고, 혼돈의 바닷물을 억류하여 지하 깊은 곳에 예비해 두셨습니다.
온 땅의 거민은 만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마땅히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그분의 권능 앞에 평화를 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대적들이 아무리 심오한 계략을 꾸밀지라도 하나님은 열방의 도모를 모두 좌절시키고 허사로 만드십니다.
모든 시대의 변혁 속에서도 하나님의 목적과 뜻은 어떤 피조물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영원히 성취됩니다.
말씀 한 마디로 온 우주를 지으시고 그 뜻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상의 어떠한 대적이나 모략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막을 수 없음을 믿기에,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참된 평안을 누립니다.
공의와 인자하심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날마다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공감되는 마음을 담아 작성한 3줄 댓글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공의와 인자하심, 그리고 온 만물을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전능함 앞에 우리 영혼이 절로 경배하게 됩니다.
찬양할 수 있는 마음과 뜨거운 열정마저 은혜로 부어주셨으니, 삶의 모든 순간마다 오직 주님만을 기쁘게 노래하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신 주님의 거룩한 영광을 향해 온 세계 거민과 함께 마음 다해 경외와 찬송을 올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긴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과 끝없는 인자하심이 마음 깊이 와닿아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위기를 맞닥뜨려도, 모든 계략을 무효로 만드시는 전능하신 주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기억할 때 참된 평안을 얻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은혜를 묵상하며, 주님께서 주신 기쁨과 감사로 평생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길 원합니다.
아멘!
도덕적 완벽함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를 의인이라 불러주시고 찬송의 특권을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기복적이고 두려운 종교와 달리, 정직하고 신실하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마음껏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음이 성도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중언부언하는 요구만 늘어놓기보다 신령한 젖과 같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아버지의 품 안에서 순전한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정직하시고 진실하신 주님을 나의 반석으로 삼아, 세상의 허망한 것을 내려놓고 평생 주님만을 온전히 즐거워하며 찬송하는 복된 성도가 되겠습니다.
정직하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허망한 요구를 내려놓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성도의 특권을 누리며, 삶의 모든 순간 마땅히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즐거워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아멘!
아멘!
하나님이야말로 참 신이시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의로우십니다. 즉, 모든 것의 기준, 표준이 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의"이신 것을 아는 자들이 참된 의인, 정직한 자가 되고, 의인의 찬송이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공동번역의 표현이 의미 전달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하늘에서 파생된 진선미를 우리가 경험하고 살지만 그것들은 작은 조각들일 뿐이고, 완전하거나 순전하지 못합니다. 항상 결여되어 있고 영원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속성까지도 일부나마 이해하게 되어, 하나님만이 완전무결하시고 영원하시며, 참으로 아름다우시고, 선하시며, 참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 자들이 어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참으로 그의 법을,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꼭 우리의 기도가 바라는대로 응답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함으로 무릎 꿇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읽고 이렇게 고백하게 되네요.
아멘! 공감이 가는 깊고 풍성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즐거워하고 기뻐 받으시는 찬송하는 자가 되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