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말씀일기 본문은 시편 78편 17-39절인데
이미 전에 시편 78편을 통째로 올려서
오늘은 교회전체 말씀일기 본문인 전도서 2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지혜가 빛이고, 어리석음이 어둠이라고 하여도
그 두 사람의 결론이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똑같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Like the fool, the wise too must die!)
어리석음은 어둠과 같아서 자기 앞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혜는 빛과 같아서 자기의 앞길을 알고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가든, 모르고 가든
결국 죽음 앞에서는 일반이기에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그 인생이 덧없고, 괴롭고,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서는 무엇이 참된 지혜인지를 밝히는 책으로
‘인생살이의 헛됨을 처절하게 알게 하는 것’이
전도서의 우선적인 목표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고 피곤한 것입니까?
만물의 피곤함과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말씀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헛된 일에 분요하며, 마음을 빼앗기고 살고,
해 아래 새 것이 없는 그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2:19~21절.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바울이 무엇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까?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자신’이 ‘선악판단의 주체’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율법체제로 돌아간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불리하게 하고 거스르는 율법을 지우시고 제거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골2:14,15).
빌립보서 3:10~14절.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의 ‘삶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전에
바울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자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알고,
남은 육체의 기간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기 위하여 살았습니다.
이것이 모든 죄인이 가는 ‘죽음의 길’과
다른 성도의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자들입니다. (엡2장)
이러한 자들은 ‘위의 것’을 찾습니다.
‘일반적인 죽음을 죽는 자들’은 ‘땅의 것’만 찾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 주님의 날에 우리의 이 낮은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해질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죽기를 소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땅에 죽지 않고 남겨 두신 이유를 기억하며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