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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앨범 제152차 심원사, 원적사 탐방
海山 추천 1 조회 265 21.06.18 21:47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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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1.06.18 23:23

    첫댓글 종일 흐린 날씨로 산행에는 도움이 되었고, 심원사 오르는 길이 평소 단련이 안되어 다리 근육이 당겼다, 반갑게 맞이하는黃狗는 심원사의 지킴이로 몫을 다하고, 스님의 정성이 담긴 얼음을 띄운 미서가루차는 시원하고 고마웠다. 제초작업도 조금하고, 회장님이 넘어진 나일락나무를 지주를 세워 묶어주는 답례를 하였다. 걸음수가 부족하여(6000보), 원적사를 찾은 선택은 보람있는 일로 중간 주차장에서 걸어서 오르는 경사길은 금방 지쳐서 쉬엄쉬엄 올라 법당의 원효대사, 석교선사, 서암대종사 영정을 참배하고, 西岩堂 鴻根之塔(부도)을 참배하며 경내를 천천히 걸으며 원적선원의 기운을 받고 하산하여 걸음도 알맞고(12000보), 늦은 중식은 할매손두부로 즐거운 산행이 되어 고맙습니다.

  • 21.06.19 13:13

    雙龍溪谷은 深山幽谷에 岩塊사이를 뚫고 泡沫을 이르키는 明鏡止水가 他의 追從을 不許한다.深源溪谷 너북등을 지나면서 서늘한 寒氣를 느끼는 陰散한 氣運을 받는다.잦은 장마에 씻겨나간 山行路는 잠시도 放心을 許諾하지 않는다.불과 1.5km의 距離를 里程標마다 다르게 表記하여 混亂이 苛重된다.主席하고 있는 女僧처럼 잘 정돈된 法堂에 들어서니 黃狗가 警戒한다.人情 많은 스님으로부터 미수가루 차 대접을 받고 울력이랍시고 除草를 돕는다.深源寺 開山祖인 元曉大師 痕跡은 찾을길 없으나 龍湫의 童子僧을 가르친 因緣으로 龍宮에 招待되어 월겸,병증,요령 등을 받아온 傳說은 잊혀져간다.餘裕時間이 充分하여 靑華山 圓寂寺를 찾는다.가파른 오름길을 몇차례 쉼을 거듭하여 境內에 들어서니 意外로 薄待하지 않아 多幸이다.法堂에 들어 西菴 大宗師,元曉,石橋大師께 參拜하고 寮舍채 건너 西菴 大宗師 부도탑 參拜를 하고보니 附近은 管理가 소홀하여 放置된듯 雜草만 茂盛하다.첨 靑華山을 오르던 登山路는 스님들의 嚴格한 統制탓에 草木에 묻혀 痕跡이 없다.靈驗스런 鶴바위를 縱橫으로 둘러보며 刻印시킨다.언제 다시 靑華山을 찾을 날이 있을지,가장 지름길인 駐車場 左側길을 유심히 눈에 담으나 너무 가파른 길이다.

  • 21.06.20 18:31

    西菴 大宗師는 1917년 安東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름은 鴻根, 醴泉 서악사에서 出家하였고, 聞慶 金龍寺에서 금오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해방 후에도 참선과 포교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1972년에는 曦陽山 鳳巖寺에 들어가 정진하였다. 1975년에는 曹溪宗 總務院長이 되어 曹溪宗의 행정을 총괄하였고 1982년에는 鳳巖寺 祖室, 曦陽禪院을 宗立 特別禪院으로 만들었다. 1991년에는 曹溪宗 元老會議 議長, 1993년에는 曹溪宗 宗正이 되었다 그러나 1994년 總務院長 의현 스님의 專橫으로 인해 종단 분규가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宗正에서 물러난다. 이 후 스님은 曹溪宗을 奪宗하여 홀로 정진하였으며, 2001년에야 鳳巖寺 祖室이 되어 다시 曹溪宗에 복귀하였다.西菴 大宗師는 수행에만 열중한 대표적인 禪僧이다. 그는 한국 불교계의 전통인 문중이나 法脈을 가지지 않은 현대 佛敎界의 큰 스님이었다. 서암은 2003년 3월 입적하면서 열반송을 요구하는 소장 스님들에게 ‘그런 거 없다’, ‘할 말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서암 大宗師는 마지막 남긴 말씀대로 ‘그렇게 살다가 간’ 정말 큰 스님이었다. 실제로 一生은 屈曲이 많은 波瀾萬丈한 삶이었다.

  • 21.06.20 18:32

    圓寂寺 法堂 株連
    一念靜坐道場中 勝於恒沙七寶塔
    傳佛心燈萬古微 淸華山圓寂禪院
    寶塔畢竟碎爲塵 一念便是成正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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