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새로운 각오와 다짐쯤은 누구나가 한 번쯤은 구상해 보게 되는 막연한 희망이기도 하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가족 형제 또는 친인척들을 비롯해 가까운 지인들을 떠 올려보면서 말이다.
여느 해처럼 세말 끝 한 해를 보내며 그리고 바뀌어지는 새해 신년의 근하함을 되뇌이면서 나눠보고자 하는 열망과 기원함은 나만의 어쭙잖은 기여일 뿐 다중 다수의 포집된 수많은 인적 관계들 속에서 비록 소수의 특정인들을 제외한 일부 인사들은 안부의 정도마저 그냥 읽고 무시해 쌓는 경지는 경탄해 마지않을 수 없음이다.
그래 생존의 실체를 알음 해 보고자 기체후 일양만강을 고해봤건만 기력(氣力)과 체후(體候)의 겸양 따위 또한 안중에 없는 듯함은 불편함의 이성(理性)아니고 무엇이랴….
순수 이상의 감성과 편안함의 덕목을 바탕으로 한 나의 작은 소망이자 내친 열정에서 비롯된 이러함들은 수십 년 이래 해를 거듭해 오면서 꾸준히 지속되어 왔던 일면 함인 데 반해 쌓은 정리의 부덕함들 이전에 먼저 챙겨보는 정감들은 메마른 인성의 천박함들에서일까? 아니면 자존감 넘친 또 다른 독특한 인생관 때문일까?
꽤 오래전에는 오늘날처럼 통신수단과 정보환경이 열악했었던 때에는 연하카드가 성행했었고 이후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문화의 발달로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한 정보망구축에 이은 온라인상에서 서로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한한 환경에 이르렀지만서도 관계의 형성에 앞서 상호작용의 무례함들은 무슨 연유와 빌미 함들에서인지 모를 일이다.
이를 두고 읽고 씹다라는 뜻의 읽씹(SNUB/phone snubbing)이라고 일컫는데,
문자나 메신저, SNS의 메시지 내용을 읽었음에도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속어로,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메신저 등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메시지를 읽었는지 아닌지를 바로 알 수 있기에 생긴 말이다.
물론 답장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므로 비난할 권리는 없겠지만,
당연히 단순한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다고 해서 씹는 행위라고 볼 수만은 없기도 하겠으나, 상황상 답장을 할 수 없었거나 읽었지만, 답장을 고민하느라 보내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지만 굳이 답장할 필요가 없어서 내지 대답할 가치 또는 하기 싫어서 등 개인의 스타일만은 문제가 있음이다.
여하한 경우에서 읽씹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알기조차는 힘들겠으나 인사의 나눔에도 동정이 있어야 하는가?
읽씹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로 읽씹을 당하면 상대방의 실제 상황을 막론하고 대부분 이렇게 "내가 싫거나 부담스러워서 답장을 안 했나"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 또한 인지상정일 것이므로 감정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뭐가 됐든지 간혹 내지 어쩌다 어떤 경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일단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낄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배전의 경의함들을 표한 인사들엔 아랑곳없다가 뜬금없이 무엇인가 곤경에 이른 형편이나 어려운 상황들에 직면,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불편함의 해소를 위해서는 어쭙잖게 척해 보이며 등장 급작스러운 모습들에는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읽씹을 당했다고 해서 섣불리 판단하는 것 또한 금물이겠지만 이 또한 예의주시 끝에 손절에 이르는 수 또한 간과해서는 아니 될 듯해서 을사년(乙巳年) 신년부터는 이들을 가름하여 안녕이라는 안부함에도 다소 인색함과 더불어 각별히 조신해 보아야겠다고 각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