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9장
10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11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14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15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18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20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21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2 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23 솔로몬에게 일을 감독하는 우두머리 오백오십 명이 있어 일하는 백성을 다스렸더라
24 바로의 딸이 다윗 성에서부터 올라와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25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성전 짓는 일을 마치니라
26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27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28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설교
어제 함께 살펴봤듯이, 열왕기상 9장은 성전 건축 직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다시 한번 솔로몬에게 순종을 말씀하셨죠. 하지만 열왕기상 9장을 읽다보면,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뭔가가 어긋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명령을 솔로몬이 지키지 못하고 있음을 열왕기서가 고소하듯,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보통은, 열왕기서를 읽으면서, 솔로몬의 성공과 위대함에 주목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솔로몬이 주변 나라에 권력을 행사하고, 많은 부를 축적하고, 엄청난 군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솔로몬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엄청난 규모로 드립니다. 대단한 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목적은, 솔로몬을 높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잘 보시죠. 네 가지로, 솔로몬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첫 번째는, 10절에 나옵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쳤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앞에 나왔던 기록을 떠올려 보시면, 솔로몬은 성전을 7년 동안, 자신의 왕궁을 13년 동안 건축했습니다. 성전보다 왕궁을 건축하는 일에 물질과 시간을 배로 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기 궁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죠.
두 번째는, 11절부터 13절에 나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두로 왕 히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죠. 백향목, 잣나무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히람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에 대한 대가로 갈릴리 땅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줍니다. 히람이 그 땅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아마 그렇게 좋은 땅이 아니었는가 봅니다. 하지만 히람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합니다. 불만이 있지만, 14절 보시면, 계속해서 왕에게 금을 제공합니다. 솔로몬의 권력이 엄청났는가 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놓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을 솔로몬이 히람에게 넘긴 것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 했을 때, 나봇이 같은 이유로 거절했었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함부로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 일을 해버립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게 넘겼습니다. 율법을 가볍게 여기는 솔로몬의 모습이 나옵니다.
세 번째는, ‘금’을 언급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히람이 솔로몬에게 금을 제공하기로 했다는 것은,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는 식량을 중심으로 솔로몬 나라의 번영을 묘사했거든요. 기억하시죠?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이상하게 금이 자주 나오고, 그것도 엄청난 양으로 나옵니다. 28절에도 금이 나오죠. 솔로몬의 관심이 금에 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솔로몬이 역군을 징집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앞부분에서, 히람의 일을 돕기 위해 일꾼 3만 명을 세워서, 만 명씩 보냈던 거 기억하시죠? 15절 보시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일꾼을 세운 이유는,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 성과 여기 예루살렘 성은 성벽을 말합니다. 여러 성읍을 건축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19절에 보시면,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세우고 싶은 것을 다 건축합니다. 여기 국고성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용으로 세운 성을 말하고, 병거성은 말 타고 싸우는 군사를 배치한 성읍을 말합니다.
21절과 22절 보시면, 이때 솔로몬은 이스라엘 자손은 군사와 관리자와 장교로 세우고, 가나안 주민들을 일꾼으로 세워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노예로 세웠다고 하죠. 그런데 잘 보시면, 이렇게 솔로몬이 막 이것저것 건축한다고 하면서, 계속 애굽을 언급합니다. 16절에 애굽 왕 바로의 행적이 나오고요. 24절 보시면, 애굽 왕 바로의 딸의 행동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솔로몬의 나라가 애굽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왕의 욕심을 위해 강제 노역으로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겪었던 상황과 거의 비슷한 것이죠. 열왕기서는 이렇게, 네 가지로 솔로몬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전보다 왕궁에 더 많은 것을 투자하고, 하나님의 기업을 함부로 넘기고, 금을 많이 모으기 시작하고, 그 땅을 애굽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번영과 승리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를 짚어야 합니다. 25절 말씀처럼, 아무리 솔로몬이 엄청난 제단을 쌓고 수많은 제물을 드려도, 그의 마음은 점점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두 번 다시 성전을 완성할 그 순간의 영광과 번영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사무엘 선지자의 외침을 떠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죄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변질시키고, 하나님에게서 서서히 빼앗아 가는지 오늘 말씀으로 잘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그 죄 안에는 엄청난 악이 들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사소하게 짓는, 아무렇지 않게 짓는 모든 죄들이 쌓이면 우리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병들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죄와 가까운 솔로몬을 반면교사로 삼고, 죄와 상관없던 예수님을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고, 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길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금과 은으로 풍요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복으로 풍요로워 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풍요로 인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죠. 그 삶이 얼마나 복되고 평안한지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으로, 불순종의 길을 간 솔로몬의 길을 버리고, 온전히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셔서, 하나님의 생명과 복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