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사(寶石寺)
○ 충남 금산군 남이면 진락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마곡사(麻谷寺)의 말사
○ 885년 조구대사(租丘大師)창건
○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
○ 고종 때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지음
○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비가 세워져 있다
◇보석사 대웅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 보석사는 금산군 남이면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885년 (신라 헌강왕 11년)에 조구대사(租丘大師)가 이 절을 세울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절 이름을 보석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882년(조선 고종19) 명성황후가 다시 세웠다. 보석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과 좌우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좌상은 불상의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아름다워 조선시대 불상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웅전은 다포식의 맞배지붕 건물로 네모나게 다듬은 사괴석을 쌓아 만든 기단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워 단아하고 소박한 멋이 있다. 대웅전의 문은 모두 띠살문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정면의 가운데에 있는 어간은 문짝이 4개 달려 있어서 사분합 띠살문, 정면의 양 옆에 있는 형간은 문짝이 3개 달려 있어서 삼분합 띠살문이라고 한다. 양 측면에는 문짝이 1개 달려 있어서 띠살홀문이라고 한다. 지붕 양옆에는 바람과 비를 막기 위해 풍판을 달았다.
◇보석사 의선각(毅禪閣)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9호)
: 의선각은 승병장 영규(靈圭)대사가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수도할 때 머물던 건물이다. 영규대사는 1592년(성조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800여 명을 모아 의병장 조헌이 이끄는 7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에 참전했으나 8월18일 왜군과 격렬한 전투 끝에 순절하였다. 의선각은 익공식의맞배지붕 건물로 창녕위 김병주가 ‘의선각(毅禪閣)’ 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본래 의선각은 영규대사의 위퍠 외에 선사(禪師) 아홉 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었으나 영규대사의 위패를 칠백의총 종용사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보석사 주지 장곡스님
: 해남 대흥사 동국선원, 예산 정혜사 능인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10안거를 성만한 장곡스님은 1973년 17세에 부여 무량사에 입산해 동국대 불교대학 졸업, 고란사, 공주 갑사 주지, 충남지방경찰청 경승지단장, 대전서구 노인복지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20년 6월 서구노인 복지관장 정년퇴임 후 현재 보석사 주지, (사)백불복지회 대표이사, 백제불교문화대학(원)학장으로 진법포교에 임하고 있다.
◇보석사 장곡스님, 20여 년 동안의 아침편지를 책으로 엮어
: 보석사 장곡스님이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매일 아침 SNS에 올린 글을 모은책 ‘새가 꽃을 물어오지 않아도 봄바람은 저절로 꽃다운 것을’을 지난 3월15일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신문사 정호스님이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