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한 며칠간만이라도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막 눈이 녹은 양지쪽 산에서 관솔이나 솔방울을 주워 가마니에 담아오는 일도 하고 싶고 허드렛물로 쓰던 샘을 치우고 바위틈에서 퐁퐁 솟는 샘물이 이윽고 샘에 차고 넘쳐서 미나리꽝으로 흘러가는 모습도 보고 싶다. 가을무를 뽑아 집 앞 밭에 깊게 파고 움 저장하는 것도 초겨울에는 꼭 해 보아야 하고 무엇보다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쇠죽을 끓여보는 일이다.
쇠죽 끓이는 일은 어느 때 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눈발이 날리는 겨울 늦은 오후가 좋다. 먼저 부엌에 가서 설거지통에 있던 쇠죽물을 가마솥에 붓고 아궁이에 불부터 지핀다. 설거지통에 있던 물이라고 해서 더럽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시골이라 당연히 세제를 쓰지 않은 개숫물은 밥이나 반찬찌꺼기가 있는 물에 쌀뜨물이 섞여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우리 가족이 미처 하지 못한 발우 공양을 소가 대신해 준다면 맞을 것이다. 부엌 밥솥 땔감은 잔솔가지도 좋고 콩대 같은 것도 괜찮지만 쇠죽솥 땔감은 통장작이 제격이다. 그래야 큰 솥 여물이 다 잘 익을 때까지 불이 있고 남는 불은 고래 저 안까지 밀어 놓아야 긴긴 겨울밤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작두로 말려 두었던 볏짚이며 고구마 줄기를 잘게 썬다. 작두에 썰어야 할 볏짚을 넣는 것을 ‘여물을 먹인다.’라고 한다. 여물을 먹이는 사람과 작두자루에 발을 올리고 여물을 써는 사람은 아무나 함께 하지 못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손가락 끊기 십상이다. 거기엔 세상에서 가장 돈독한 신뢰가 존재한다. 여물을 썰 동안 물은 이미 설설 끓기 시작한다. 물이 끓을 때 여물이며 썩어가는 호박 벌레 먹은 콩이나 정미소에서 얻어 온 쌀겨 따위를 넣어야 재료들이 익으면서 넘치지 않고 많이 들어간다. 겨울밤엔 소도 밤참을 먹어야 할 만큼 길고 춥다.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는 짐승이라고 해서 함부로 먹이지 않으셨다. 봄이면 꼭 우리더러 쑥이며 이른 봄풀 한 삼태기를 캐 오게 해서 넣고 풀이 흔한 여름에도 한 번 정도는 익혀서 먹였다. 그러면서 늘 소는 우리 집에서 제일 일을 많이 하는 으뜸 일꾼이라고 하셨다.
어쩌면 내 수필 시작도 쇠죽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책이라곤 오직 교육부에서 산골 어린이들에게 독서권장 목적으로 주는 ‘그림 없는 그림책’ 한 권이 전부였다. 그 책에는 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미운 오리 새끼 백조이야기 등 안데르센 동화가 실려 있었는데 나는 몽당비를 깔고 아궁이 앞에 앉아 달님이 들려준 이야기 속 삽화를 그려 보거나 좋은 문장을 옮겨 적어보는 일이었다. 쇠죽이 한소끔 끓으면 솥 밑바닥 재료들을 여물주걱으로 한 번 뒤집어 주어야 한다. 이제 그 큰 무쇠 솥에도 빈자리가 좀 생겼다. 대야에 물을 담아 데워서 발을 씻어도 좋고 여물바가지에 감자나 고구마를 넣어서 익히면 그것도 먹을 만하다. 여물냄새가 좀 나긴 해도 아궁이에서 구워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알불만을 아궁이 앞쪽으로 모아 빈 달걀껍데기에 쌀을 씻어 넣고 밥을 해 먹어도 재미나고 칼국수를 하는 날에 반죽을 조금 얻어 와서 구워 먹어도 별미다. 가끔은 어머니가 미처 부엌에서 익히지 못한 된장찌개 뚝배기나 간 갈치를 구우라고 석쇠를 넘겨 줄 때도 있다. 잉걸불을 모아 노릇노릇하게 갈치를 굽던 아궁이 그 아궁이에서 가족의 단란한 한 끼 식사가 준비되었다면 과장일까.
다 끓인 쇠죽솥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는 온 집안에 감돌고 아궁이 불꽃보다 붉은 저녁놀은 산을 다 태워버릴 듯 능선 너머로 스러진다. 소의 긴 눈썹 위로 엷은 어둠이 내리면 사랑방엔 호롱불이 밝혀지고 아궁이 숯불이 화로에 담겨 윗목에 놓인다. 쇠죽을 먹는 워낭소리는 평화롭게 초가를 감싸고 이따금 골바람이 불어가는 저녁 동그란 상 위로 방금 아궁이에서 꺼내온 된장 뚝배기는 여태 보글보글 끓는다. 상 위에는 된장뚝배기와 김치 콩잎이 전부였지만 또 하나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듬성듬성 놓인 찬그릇 사이 조용히 내려앉은 평화를 그 때는 너무 어려서 보지 못했다. 그 겨울 저녁 밥상 이후로 어디서도 그렇게 평화로운 저녁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외롭거나 무의미하거나 거래가 함께하는 그런 저녁상 끝엔 언제나 그 겨울 저녁이 그리웠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 겨울 저녁 평화는 쇠죽솥에 아궁이에 불 지피던 순간부터 예비된 게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고향 겨울로 돌아가 다시 쇠죽을 끓이고 싶다. 이제 그 일이 그저 귀찮고 힘겨운 일상이 아니라는 걸 알 나이가 되었다. 쇠죽을 끓이는 동작 하나하나는 그저 가축의 먹을 것을 준비하는 노동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 작두에 여물을 써는 일은 지극히 아름다운 춤이요 워낭소리를 들으며 쇠죽을 구유에 퍼다 놓는 일은 평화의 노래를 짓는 일이었다. 꿈이 무엇인지도 조차 모르던 어린 소녀가 저녁 한때 평화를 구하는 소박한 기도 같은 거였다.
* 에세이21 봄(2011)호에서 발췌
* 이정연(李正連)수필가. - 1963년 경북 경산 출생 -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림 - 2004년 5월 에세이문학 등림 現,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문화예술위원
카톡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공감과 함께 옛 추억을 꺼내어 공유 하였습니다. 수필의 글씀에도 옛 후각의 기억이 남아 있어 더 한층 다가갈 수 있었던 옛 시절이었습니다. 서정의 옛 경험을 살린 수필의 수작 잘 삼사하였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회장님 감사 드립니다. "평화를 구하는 소박한 기도 같은 거..."에 공감합니다.
첫댓글 어려서는 귀찮던 쇠죽 끓이던 일을 그리워하며 추억들을 떠올리니
순수한 시골 정치에 쇠죽 냄새가 솔솔 납니다.
'꿈이 무엇인지도 조차 모르던 어린 소녀가 저녁 한때 평화를 구하는 소박한 기도 같은 거였다. '
좋은 작품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카톡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공감과 함께 옛 추억을 꺼내어 공유 하였습니다.
수필의 글씀에도 옛 후각의 기억이 남아 있어 더 한층 다가갈 수 있었던 옛 시절이었습니다.
서정의 옛 경험을 살린 수필의 수작 잘 삼사하였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회장님 감사 드립니다.
"평화를 구하는 소박한 기도 같은 거..."에 공감합니다.
'고향 겨울로 돌아가 다시 쇠죽을 끓이고 싶다.' 에 공감합니다.
아버지가 작두로 볏짚을 썰 때
나는 작두가 움직이지 않도록 머리맡을 밟고 있다가
눈가장자리를 다친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그 영광의 상처는 남아 있고요.
내 어린 날의 한 토막이 올라와 있는 느낌입니다. 공감가는 글 흐뭇한 마음으로 읽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