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팝 아트 화가로, 요크셔의 브랫포드에서 출생해 브랫포드 미술학교, 왕립미술학교에서 배웠다. 1963년 런던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통속적인 스타일을 극히 세련된 방식으로 이용해, 스냅 사진과 같은 정경을 그렸다. 판화 작업도 많이 했으며, 1964년부터 67년에 걸쳐 미국의 몇개 대학에서 가르쳤다. 대표작은 <예술가의 초상>을 비롯하여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등이 있다.
https://naver.me/G0O59ceb
1. 소개
1937년 7월 9일생으로 앨런 존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의 팝아트 화가다. 요크셔의 브래드포드에서 출생하여 왕립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테이트 갤러리의 관장이었던 알렌 보우니스의 저서에 따르면 그가 예술 평의회의 의뢰로 회화 작품을 물색하던 중 21살의 신입생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눈여겨 보고 구입을 원했으나 보수적인 평의회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호크니는 3년 후 금색 재킷과 금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하고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이후 예술평의회는 그의 추상화를 구입하게 되는데 그것이 아래의 61년 작, "서로 껴안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이다.
이후 데이비드 호크니는 화풍을 바꾸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도전했는데 화가로서의 작품 이외에도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 사진작가, 무대 디자인, 영화제작자 등으로서도 이름을 날린다.
한 대상을 여러 번의 사진을 찍은 후 콜라주화 하여 마치 모자이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독특한 화법은 호크니의 전형적인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한동안 포토콜라주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다가 회화만이 지닌 관찰의 중요성에 다시 매료되어 회화로서 회귀한다. 그리고 건조한 풍경 속에서 물의 운동만큼은 생생하게 묘사를 하는 특징 때문에 호크니는 "수영장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의 작품들 특징 중 하나는 청년이 나체로 수영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모습을 관객이 바라보는 관음적인 묘사가 있다는 점인데 호크니 자신이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호크니는 자신의 성적 성향 때문에 당시 보수적이었던 영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뒤 이러한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이주한 미국에서도 당시 동성애는 불법이었는데 1950년대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분류되어서 수많은 공무원들이 해고당하고 군인들이 강제 전역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0년대부터 각종 시위와 목소리가 높아져 동성애자들의 사회 권리가 주장되어 불법이 폐지되고 동성애자가 시의회 의원에도 당선되는 등 여러가지 인권 운동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 동성애자 정치가가 암살 당하는 등 시대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별 일 없이 무사히 잘 지냈는데 하필이면 가장 개방적인 도시에 거주하는 바람에 본인도 미국에서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처음엔 몰랐다고 한다.
예술가의 초상'(1972). 이 작품은 2018년 11월 16일 뉴욕 경매에서 9,030만 달러(약1,018억원)에 낙찰되어 현존 작가 작품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 기록으로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화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2] 그림 속 서 있는 남성은 호크니의 11살 연하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 때부터 청력이 좋지 않았는데 40대가 될 무렵엔 완전히 청력을 잃게 된다.
미술의 이론에 대해서도 그가 편찬한 저서인 "명화의 비밀" "그림의 역사" "다시 그림이다"가 국내에 정식 소개되었다.
우리 시대가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예술가입니다. 1960년대에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수영장, 정물 등을 비롯하여 인물 초
상화를 다수 제작하며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시
작하였습니다. 호크니는 지난 60여 년의 긴 작업
여정 동안 작품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며, 예술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
진 이미지들을 제작해왔습니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며,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2차원 평면에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가
며 작품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
의 작품은 회화, 판화,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장
르와 더불어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
폭넓은 범주를 다루고 있습니다.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
"환영적 양식으로 그려진 차 그림" 1961 © David
Hockney, Collection Tate, U.K. ⓒTate, London
브래드퍼드 예술학교 학생 시절 호크니는 실물
드로잉과 외부 세계에 대한 충실한 관찰에 입각
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음산한
색과 환영적 공간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와 석판
화를 제작합니다. 당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한창 각광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추상과 재현적 이미지를 구분하는 경계를 흐려가
면서 도식화된 인물의 형태, 그라피티 등을 상용
하여 성과 사랑에 관한 주제를 전달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호크니는 무엇이든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피카소처럼 다양한 양식
과 여러 그림 제작 방식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난봉꾼의 행각(1961~3)> 시리즈는 18세기 영
국 사회를 풍자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윌
리엄 호가스가 그린 동명의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판화입니다. 호크니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현대 사회상
과 시대에 맞게 내용을 교훈적으로 각색하였습니
다.
로스앤젤레스
1964년부터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인근에 거주하며 이 도시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햇빛과 자유로움을 발산하는 로스앤젤레
스에 완전히 매료된 호크니는 묘사에 관한 문제
에 계속해서 몰두합니다. 이 섹션에서는 유리의
투명성과 계속해서 움직이는 물의 특성을 포착하
는 방식 등을 연구하며 기술적인 문제들을 극복
하고자 했던 호크니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대표 작품인 <더 큰 첨벙(1967)>에서 그는 단순
화된 형태와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에 유행하던 추상회화, 회화적 장면의
인공성을 부각하는 작품 둘레의 경계를 풍자하였
습니다. 호크니가 공들여 그린 물살은 우연성에
대한 탐구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실적으로 묘
사한 배경의 낮은 건물은 미니멀리즘 미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근대적 그리드에 대한 유희
적 풍자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외에도 호크니는 '물'을 주제로 한 작품
을 다수 남겼습니다. <수영장으로 쏟아지는 물(1
964)>은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흘러내리는 물을
정지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을 완
성한 이후 호크니는 "물은 추상화로 가는 기회를
제공했다"라며 물을 그리는 것에 초상화를 그리
는 것만큼의 강한 열망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자연주의를 향하여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 호크니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세계에 상당히 감성적으로 반응하
며 이미지를 제작합니다. '자연주의를 향하여'에
서는 그가 오랜 시간 관찰을 통해 느낀 빛과 그림
자, 인물, 그리고 공간과 깊이를 표현하는 데 집
중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시기에 그려진 2인 초상화 시리즈는 영국 테
이트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
로, 오랫동안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면밀히 관찰
하고 다수의 습작 드로잉을 통해 탄생하였습니
다.
<크랄크 부부와 퍼시(1970~1)>의 배경이 되는
패션 디자이너인 두 부부의 런던 신혼집 아파트
를 택한 이유를 두고 호크니는 “침실의 부드러운
빛이 마음에 들어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하였습
니다. 사진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인물의 광채
를 활용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묘사가 어려운 디
테일과 가시성을 확보하였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실물 크기로 제작되어 마치 관객이 서 있는
실제 공간에 대상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불
러일으킵니다.
푸른 기타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한 이후 그의 화풍과 예술
세계가 호크니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
작합니다. <푸른 기타(1976~7)>시리즈에서는
피카소에 대한 호크니의 경외심과 탐구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자연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던 호크니에게
피카소와의 유대감은 위안을 주었고, 양식의 엄
격함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
는 확신을 줍니다. 비록 본인은 판화가가 아니며
단지 약간의 판화 작업을 일삼는 화가일 뿐이라
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 판화를 통해 호크니는 20
세기 후반 판화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 중요
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호크니는 피카소를 굉장히 존경하여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면 그림처럼 발가벗은 채로 피카소와
책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다렸다
고 합니다. 피카소 쪽으로 내민 한 손은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호크니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다수의 작품에서 피카소에 대한 오마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움직이는 초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며 계속하여 다작을 이어갑
니다. 사진, 연극 무대 디자인, 중국의 회권(두루
마리 회화)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면서 일시적으
로는 판화로 관심을 돌려 입체주의, 회화 공간, 3
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다른 실재들을 2차
원 평면에 어떻게 재현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디어는 원근, 기억,
공간에 대한 해석으로, 이 섹션에서는 작가에게
중요한 모델들을 대상으로 그린 여러 점의 초상
화, 강렬한 색으로 표현한 정물화,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는 복합적인 실내 풍경 작품들을 소개합니
다.
추상
1990년대 초, 카메라가 세상을 동질화하고 능동
적으로 보는 행위를 퇴화시킨다고 결론을 내린
호크니는 세계를 묘사할 수 있는 실험적인 방식
들을 계속해서 모색합니다. '추상' 섹션의 작품 <
다른 쪽(1990~3)>에서 볼 수 있듯이 시기에 호
크니는 추상적 패턴과 형태가 조합된 이미지로
회귀하였습니다. 선명한 색감과 다양한 패턴의
면, 춤을 추는 것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은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
로잡습니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새로
운 공간 표현과 인상적인 색의 사용이 이후 작업
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영역에서의 활
동과 다양한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이 시
기의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호크니가 본 세상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
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
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1천 개의 시점이 존
재한다.
이 섹션에서는 21세기 전환기에 제작된 그랜드
캐니언 풍경화와 고향 요크셔로 돌아가 탄생시킨
거대 규모의 요크셔 풍경화 작품을 소개합니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은 호크니가
그린 역대급 사이즈의 작품입니다. 총 50개의 캔
버스가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룹니다.
최근작인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2017)>
는 3,000장의 사진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어
붙여 제작한 하나의 사진 드로잉 작품으로, 지금
까지의 호크니의 작업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최
근 호크니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치며
데이비드 호크니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작업 스타일과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실험적인 작
가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 최신 기법인 판
화와 그 뒤에 이어져 오는 사진, 디지털 기술까지
오랜 시간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는 그의 모험
적인 접근 방식과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
히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규모에서부터 압도당
하는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 <더 큰
그랜드 캐니언(1998)>과 같은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오랜 기간 최고의 명
성으로 현대미술의 거장이 된 그의 서사가 담긴
작품을 직접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naver.me/GbcWZAle
전 세계가 사랑한 색채의 마술사, 데이비드 호크니와 60년대 런던이 통째로 DDP에 온다!
격동의 60년대, 영국 팝아트 신을 이끈 주역들의 작품을 한눈에!
www.elle.co.kr
오늘날 데이비드 호크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예술가를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드로잉부터 콜라주, 아이패드를 활용한 디지털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표현 방식과 화려한 색채 등, 그만의 매혹적인 작품 세계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죠. 호크니 작품의 변천사 또한 흥미롭습니다. 그가 런던에 있던 시기만 해도 작품 전반에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가 드리워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렸던 그는 1964년 로스앤젤레스로 넘어와 푸른색 물로 가득한 수영장과 스프링클러, 샤워실 등을 그려냈습니다. 오늘날 그에게 ‘물의 예술가’라는 칭호를 붙여준 ‘수영장 시리즈’도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죠.
호크니는 1960년대 영국 팝아트 운동의 중심인물이기도 합니다. 팝아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난해한 추상표현주의가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사조에 반기를 들며 뉴욕을 중심으로 태동한 하나의 흐름이었어요. 호크니의 작품은 어려운 주제가 아닌,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소재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Swinging London’이라고도 불리는 영국의 60년대는 팝아트의 부흥과 더불어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어요. 대량 생산, 매스미디어의 발달 등 급변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비틀즈, 롤링 스톤스를 비롯한 새로운 예술가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