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이 대답하되,
"이백도홍 유록시에 춘풍도 좋거니와 노백풍청 황국시에 추월이 밝았으니,
춘풍이 좋을씨고. 진실로 그럴 양이면 추월 춘풍 연분 맺어 놀아 볼까."
춘풍이 추월 두고 차운하였으되,
"아미산 반륜월, 도기영문 양추월, 북당야야 인사월,
동정월, 관산월, 황산릉명월, 오주에 여견월, 이월 삼월뿐이로다.
월백풍청 여차양야에 나는 춘풍 너는 추월
우리들이 배필 되면 천지가 변하기로 풍월이야 변할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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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이 대답하되,
"서방님은 월자운을 달았으니 나는 풍자운을 달아 볼까.
수수산에 서북풍, 낙양성에 견추풍, 만국병전 초목풍,
무협장취 만리풍, 양류수사 만강풍, 취적강산 낙원풍, 삼월에 화신풍,
동지섣달 설한풍, 이제 풍자 풍자 다 버리고
추월 춘풍 배필되어 대동강이 마르도록 추월이야 변할손가.
좋을씨고 청풍명월 야삼경에 양인심사 양인지라.
화류봉접 좋은 연분 어이 인제 만났는고."
춘풍이 대희하여 생증장액 수고란 호취개렴 접쌍연이라.
허랑한 이춘풍이 장사에 뜻이 없고 이날부터 이천오백 냥을 마음대로 쓰는구나.
장취불성 맑은 소리로 일삼으며
주야로 노닐거늘 추월이는 수천 냥을 홀리려고 교태하여 이른 말이,
"통한단 쌍문초, 도리불수 능라단, 초록 저고리감만 날 사 주오.
은죽적 금봉채 가진 노리개 날 해 주오.
두리소반 주전자 화로 양푼 대야 날 사 주오.
동래반상, 안성유기 구첩반상 실굽다리 날 사 주오.
요강 타구 새옹 냄비 청동화로 날 사 주게.
백통대 은대 금대 수복 담뱃대 날 사 주오.
문어 전복 편포 안주하게 날 사 주오.
연안배천 상상미로 밥쌀하게 팔아 주오.
동래을산 장곽해의 날 사 주오."
온가지로 헤어 내니 허랑한 이춘풍이 일호나 사양할까.
수천여 냥 돈을 비일비재 내어주니 청산유수 아니어든 오랠손가.
일 년이 못 다가서 낭탁이 비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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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의 거동 보소.
춘풍의 재물을 빼앗고 괄시하여 내쫓으니 춘풍의 슬픈 거동 가련하다.
"내 눈에 보기 싫다."
석경 면경 홱 던지고 생증 내어 구박할 제,
성외성내 한량에게 의논하되 즐경막의 장작인가,
전당집의 은촛댄가, 썩은 나무 박힌 뿌리런가. 이러할 줄 몰랐던가.
"어디로 갈랴시오. 노자가 부족하면 한 때나 보태지요."
돈 한돈 내어주며 바삐 나가라 재촉하니,
춘풍의 거동 보소. 분한 마음 폭발하여 추월더러 하는 말이,
"우리 둘이 갓 만나서 원앙금침 마주 누워,
불원상리 굳은 언약 태산같이 언약하여,
대동강이 마르도록 떠나가지 말자더니,
이렇듯 깊은 맹세 농담인가 진정인가.
이제 이 말 웬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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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이 이 말 듣고 변색하여 하는 말이,
"이 사람아, 내 말 좀 들어보소.
청루물정 몰랐던가. 장난부 이낭청도 동가식 서가숙하고,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평양기생 추월 성식 몰랐던가.
자네가 가져온 돈냥 혼자 먹던가."
이같이 구박하여 등 밀치며 어서 바삐 가라 하니,
춘풍이 분한 중에 탄식하며 전면 기둥 비켜서서 이리저리 생각하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집으로 가자 하니 무면 도강동이요, 처자도 부끄럽고,
또한 막중 호조 돈 이천 냥을 내어다가 한푼 없이 돌아가면,
금부옥에 가두고 주장대로 지르면 속절없이 죽겠으니 서울로도 못 가겠고,
불원천리 가자 하되 노자 한 푼 없으니 그도 또한 못 하겠다.
이를 장차 어찌하리. 이럴 줄 몰랐던가. 후회막급 창연하다.
대동강 깊은 물에 풍덩 빠져 죽자 하니, 그도 차마 못하겠고,
석자 세치 지자수건 목을 매어 죽자 하니 이도 차마 못 하겠네.
답답한 이내 일을 어찌하면 옳단 말고.
평양성 내 걸인 되어 이집 저집 빌자 하니,
노소인민 아동주족 이놈 저놈 꾸짖으니 걸시고 못하리라.
어디로 가잔 말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추월 앞에 나가 앉아 잔생이 비는 말이,
"추월아 추월아. 내 말 잠깐 들어 봐라. 우리 조선이 인정지국이어든 어찌 그리 박절한가.
날 살리게 날 살리게. 내가 자네 집에 도로 있어 물이나 긷고 불 사환이나 하고 있으면 어떠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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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이 거동 보소. 눈을 흘겨보면서,
"여보소, 이 사람아. 자네가 전 행실을 못 고치고 '하게' 소리하려면 내 집 다시 오지 마소."
이렇듯이 구박하니
춘풍이 하릴없이 '아가씨' 말이 저로 나고 존대가 절로 난다.
춘풍이 이날부터 추월의 집 사환하는 일, 생불여사라 가련하다.
누더기 차림으로 이리저리 다닐 저게 거동 볼작시면 종로의 상거지라.
조석 먹는 거동 보면, 이 빠진 헌 사발에 누른 밥에 토장덩이 제격이라.
수저도 없이 뜰 아래나 부엌에서 먹는 거동, 제 신세 스스로 생각하니 목이 메어 못 먹겠네.
주야로 한량들은 청산에 구름 모이듯 수륙재에 노승 되듯,
개성부에 장사 모이듯, 추월의 집으로 모여와서 온갖 희롱 다 하면서,
좋은 술별 안주에 배반이 낭자하며 청가일곡 화답하여 한창 이리 노닐 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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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춘풍의 거동 보소.
뜰 아래서 방안을 엿보니 눈에는 풍년이요, 입에는 흉년이라.
제 신세를 생각하고 노래하되,
"세상사 가소롭다.
나도 경성 장부로 왈자벗님 취담하여 청루미색 가무중에 수만 금을 허비하고,
또 왜시골 내려와서 주인을 작첩하여 불원상리 하잤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니 세상사 가소롭다."
이 때는 엄동이라 일락서산하고 바람은 솔솔하고 월색은 조용한데,
"울고 가는 저 기러기야, 내 전정을 들어보고 내 고향에 전하여라.
우리 처자 그리워라. 나를 그려 죽었는가 말았는가.
이리저리 생각하니 대장부 일촌간장 봄눈 슬 듯 하는구나.
그런 정 저런 정 다 버리고 전에 하던 가사나 하여 보세."
매화타령을 한다.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피엄즉도 하다마는 백설이 분분하니 필지 말지, 어화 세상사 가소롭다."
이 때 추월의 방에 놀던 한량들이 노래를 듣고 의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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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이 무색하여 하는 말이,
"내 집의 사환하는 놈이, 서울 이춘풍이라 하는 놈이 소리를 하니 신청치 마소서."
한량들이 이 말 듣고 하는 말이,
"서울 산다 하니 불쌍하다." 하고 술 한잔 잔 가득 부어 주니,
춘풍이 갈지우갈하여 받아먹으니 가련하더라.
각설 이 때 춘풍의 처, 가장을 이별하고 백 가지로 생각하며 주야로 탄식하는 말이,
"멀고 멀은 큰 장사에 소망 얻어 평안히 돌아오기 천만 축수 기다리오." 하되
춘풍이 아니 오고 풍편에 오는 말이
서울 사는 이춘풍이 평양 장사 내려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호강으로 노닐다가,
수천 금 재물 다 없애고서 추월에게 구박맞아 사환한단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말이,
"애고 애고 이 말이 웬말인고. 슬프다, 가장 나와 같이 만났건만, 어이 그리 허랑한고.
청루미색에 한번 치패도 어렵거든 천리타향에 막중국전을 대돈변으로 내어 가지고,
또 낭패하단 말가. 애고 답답스런지고, 뉘를 바라고 산단 말가.
전생에 무슨 죄로 여자가 되어 나서 가장 한번 잘 못 만나 평생 고생하는구나.
이내 팔자 이렇도록 되었는가. 어찌하여 사잔 말가. 박명한 이내 팔자 도망하기 어렵도다.
종남산 다다라서 물명주 질긴 수건 한 끝은 나무에 매고 한 끝은 목에 매어 죽고지고.
여자가 되어 나서 이런 팔자 또 있는가.
염마국 십전대왕 아귀사자 빨리 보내어 내 목숨을 잡아가오."
☆☆☆
이를 갈며 하는 말이,
"평양을 찾아가서 추월의 집 찾아 불문곡직 달려들어 추월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춘풍에게 달려들어 허리띠에 목을 매어 죽으리라."
악을 내어 울다가 도로 고쳐 생각하되,
"이리도 못 하리라. 어이하여 사잔 말가.
내 가장을 경성으로 데려다가 살리재도 어찌하리요.
아무리 생각하여도 할 수가 전혀 없다.
소년에 패가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야로 품을 팔아 전곡 빚을 갚은 후에
의식 걱정 아니 하고 우리 양주 백년화락하겠더니, 원수로다, 평양 장사 원수로다."
이렇듯이 지내는데 뒷집의 참판 댁이 있어,
노대감은 돌아가고 맏자제 문장으로 소년급제하여 갖은 청환 다 지내고
참판으로 근년에 평양감사 부망으로 불구에 평양 감사 한단 말 듣고 춘풍의 처 계교를 생각터니,
그 댁이 빈한하여 국록을 타서 수다식구 사는 중에,
그 대부인 있단 말을 듣고 침재품을 얻으려고 그 댁에 들어가니,
후원 별당 깊은 곳에 참판의 대부인이
평상에 누워 행세 가난키로 식사도 부실하고 초췌하다.
춘풍 아내 생각하되
이 댁에 부치어서 가장을 살려 내고 추월을 설치하여 보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재품을 힘써 팔아 얻은 돈냥 다 들여서 참판 댁 대부인 조석 진지 차려 가니,
부인이 이외에 때마다 받아먹고 감지덕지하여 생각하되,
'이 깊은 은혜를 어찌할꼬.'
주야로 근심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