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은의 「구와 삼각형」 평설 / 박남희
구와 삼각형
추성은
시인은 도마뱀 인간을 만나고 싶어
서울숲에 갔다
산책길에는 돌과 돌의 틈 사이로 허물을 벗는 작은 도마뱀
날씨는 별로였지
도마뱀 머리의 살인마는 비 온 뒤 숲길 진흙과 구정물 속에서 태어났다 살인마는 종종 시를 쓰기도 했으므로 그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몰랐고, 자신이 무슨 시를 썼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누구를 죽였는지도 몰랐으나 그는 살인마였다 한 손에는 도끼와 시집을 들고, 도마뱀 인간을 찾아 산책길을 배회했다 그는 시와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서로가 서로를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 오락을 동시에 즐겼다
세 개의 채널에서 송출하는 뉴스에서는 똑같은 앵커의 얼굴로
세 개의 비 예보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시인은 같은 숲길을
트랙을, 자신의 잘린 꼬리를 따라 빙빙 도는 팽이처럼 무한히
놀이처럼 회선하고 있는데
숲 도마뱀은 진흙과 구정물 속
돌멩이와 돌멩이 또 다른 돌멩이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세 개의 틈에 알을 깠다
이제 알에서 무엇이 태어날지는 진흙이 아니라
시인이 정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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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인간(lizard man)은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빌런으로 등장 하면서 사이버 상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캐릭터로 인식되어 왔으나, 1988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실제로 목격되었다는 기사가 나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추성은의 시 「구와 삼각형」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도마뱀 인간’을 등장시켜서 ‘시인’의 은유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이 시는 이러한 설정에서부터 화자가 시인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시인은 자신처럼 낯선 존재와의 소통을 꿈꾸면서 “도마뱀 인간을 만나고 싶어/ 서울숲”에 간다. 화자의 진술에 의하면 “도마뱀 머리의 살인마는 비 온 뒤 숲길 진흙과 구정물 속에서 태어났다”. 이어서 “살인마는 종종 시를 쓰기도 했으므로 그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몰랐고, 자신이 무슨 시를 썼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누구를 죽였는지도 몰랐으나 그는 살인마였다 한 손에는 도끼와 시집을 들고, 도마뱀 인간을 찾아 산책길을 배회했다”고 하여 화자는 시인이기도 한 도마뱀 인간을 매우 독특한 존재로 소개하고 있다. 화자는 한손에는 도끼를, 한손에는 시집을 든 시인을 ‘도마뱀 머리의 살인마’로 표현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는 폭력적이기보다는 오락 게임 속의 독특한 캐릭터 정도로 인식된다. “그는 시와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서로가 서로를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 오락을 동시에 즐겼다”는 진술을 통해서 도마뱀 시인이 서울숲으로 또 다른 도마뱀 시인을 찾아 나선 행동 자체가 시창작 과정의 은유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창작과정은 “시인은 같은 숲길을/ 트랙을, 자신의 잘린 꼬리를 따라 빙빙 도는 팽이처럼 무한히/ 놀이처럼 회선하고 있”다는 진술을 통해서 ‘구’로 인식된다. 이와 더불어 “숲 도마뱀은 진흙과 구정물 속/ 돌멩이와 돌멩이 또 다른 돌멩이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세 개의 틈에 알을 깠다”는 진술을 종합해보면, 이 시의 제목이 왜 ‘구와 삼각형’인지 시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도마뱀 인간으로서의 시인은 “비 온 뒤 숲길 진흙과 구정물 속에서 태어”난 존재이고 세 개의 돌멩이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삼각형의 틈, 즉 엄혹한 현실 속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점에서, 그의 한 손에 도끼를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이 증명된다.
추성은의 시 「구와 삼각형」은 전체적으로 낯선 분위기의 서사가 바탕이 된 시이지만, 태생부터 힘든 환경 속에서 태어난 시인이 삼각형으로 상징되는 엄혹한 현실과 맞서는 유일한 길은, 같은 숲길을 무한히 빙빙 도는 시쓰기 놀이와 돌멩이와 돌멩이 사이에 둥근 알(詩)을 낳아놓은 일이다. 이 시가 기존의 수많은 메타시들과 구별되는 것은 가상세계나 게임에서나 등장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활용하여 엄혹한 현실 속을 살아가는 시인의 실존을 낯선 상징으로 새롭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전문지 《아토포스》 2024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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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 『고장난 아침』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어쩌다 시간여행』,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