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냥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미제놈들은...
브리머의 제멋대로의 방침에 이라크 전역은 물론 미국까지 경악했다. 콘돌리자 라이스도 미국 정부에 조언도 구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평가했다. 2003년 9월 8일 브리머는 워싱턴 포스트에 이라크가 자치를 할 수 있는 7가지 세부사항이 담긴 로드맵을 공개했는데 헌법을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가 만들 것이란 말에 시아파가 반발했다. 이라크 시아파의 최고 거물인 아야톨라 올 오즈마 알리 알 시스타니는 미국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헌법을 마음대로 만들 것을 우려했고 설상가상으로 뉴욕대학 로스쿨 교수 노아 펠드만이 헌법 자문관으로 선출되자 그들의 우려는 극에 달했다. 펠드만 교수는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 아랍 전체가 유대인이 이라크의 신헌법을 만든다고 알리며 소란을 피웠고 결국 알 시스타니가 나섰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알 시스타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시스타니는 시아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사담 후세인 집권 시절에 가택 연금 상태였으나 이제는 자유롭게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심이 있다면 정계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해 신도들에게 정적주의를 강권했다. 이란 집권 세력인 아야톨라와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회고록 333쪽
시스타니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시아파의 바티칸이라 평한 시아파 성도 나자프에 거주하면서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그의 권위는 실로 대단했고 그는 정교 분리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미국의 발상에 호의적이었고 미국 정부는 시스타니를 이라크의 벤저민 플랭클린이라 부르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브리머는 시스타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연합군임시행정처 전체가 다 그랬다. 그들은 몇달만에야 시스타니의 중요함을 알고 시스타니와 협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스타니는 외국인과 이교도는 일절 만나주지 않는 사람이었고 이에 브리머는 플로리다에 사는 이라크계 미국인 비뇨기과 의사를 보냈다. 그는 비뇨기과 의사로는 유능했지만 외교사절론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 보낸 외교사절은 제약회사 직원이었다. 이걸 보고 이라크의 시아파 정치인들은 기가 막혀 하면서 교황과 협상할때 의사를 보낼 생각이냐고 항의했지만 브리머는 시스타니를 설득하는데 전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CPA가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을 동안 시스타니는 파트와를 선포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뽑은 헌법 작성 위원회가 '이라크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라크인들의 국가적 정체성과 고귀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시스타니의 요구는 이라크인들이 직접 뽑은 대표자들이 새로운 헌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시스타니의 완강한 반대에 브리머의 제안은 수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워싱턴에서 NSC 회의가 소집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시스타니의 선거를 열자는 주장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시스타니를 지지했지만 브리머는 대통령이 뭐라건 아야톨라 올 오즈마가 뭐라던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침을 지지할 파트와를 선포해줄 다른 성직자를 찾아올 것을 명령했다. 그에게 알 시스타니는 그저 검은 터번을 두른 늙은이였을 뿐이었다. 알 시스타니의 영향력을 아는 미국인들도 그의 말을 듣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알 시스타니의 의견이 옳았음에도 깔아뭉개버렸다. 일단 브리머의 7단계 계획을 보면서 잠시 머리를 식히시라.
1. 통치위원회 수립
2. 헌법준비위원회 수립
3. 통치위원회의 정부 업무 인수인계
4. 헌법 제정
5. 선거를 통한 헌법 비준
6. 정부 각료 선출 선거
7. 주권 이양
이쯤되면 아시겠지만 문제는 브리머의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과 권력욕이었다. 브리머는 자신의 권력이 침해받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최소 자신이 2005년까진 집권할 거라고 천명했고 미국이 이라크에서 빠져나가는 안에 대해선 일부로 무시했다. 브리머의 이 7가지 계획안은 미국 정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국무부의 콜린 파월 등은 브리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브리머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떠벌리고 나서야 알았다. 브리머는 이라크의 선거법과 유권자 명부가 없다는 구실로 선거도 열지 않았다. 선거를 열면 바트당과 종교극단주의자들만 좋아할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그렇다고 이라크인들이 포함된 통치위원회에게 권력을 주지도 않았다. 그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았단 이유였다. 브리머는 자신이 이라크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것만이 이라크를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아주 놀고 있었다.
결국 미국 정부도 브리머가 너무 안하무인으로 날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콜린 파월과 콘돌리자 라이스는 NSC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사항들이 바그다드에서 곧바로 외부에 공개되는 바람에 문제가 일어난다고 항의했다. 제리 브리머는 자신도 국방부와 연락하고 싶었지만 럼즈펠드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제멋대로 정한 결정 때문에 워싱턴이 뒤집히는 일은 계속 벌어졌다. 결구 2003년 9월말 라이스는 부시에게 바그다드와 워싱턴을 조율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고 부시도 동의했다. 책임자로는 전 인도 대사인 로버트 블랙윌이 정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국무부가 국방부를 몰아내고 이라크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고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생어 등의 보도에 펜타곤은 분노에 미쳐 날뛰었다. 결국 부시는 계획을 번복하고 CPA의 통솔권을 국방부에 남기기로 했다. 도널드 럼즈펠드는 라이스에게 당신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누를 끼쳤는지 아냐고 따졌고 라이스는 이라크를 이렇게 망친 거야 말로 진짜 누라고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그나마 럼즈펠드라도 이라크를 통제했으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럼즈펠드는 이번 일 이후 이라크에서 아예 손을 놔버렸다.(...) 럼즈펠드는 브리머를 통제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대통령에게 물어라라고 일관했다. 상황이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지 아는 관료들은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지금 글을 쓰는 필자와 이 글을 나중에 읽을 독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원래 이 글에선 이라크의 행정법 제정에 대해서 더 길게 언급할 계획이었으나 생각보다 너무 긴 관계로 다음 화로 넘기기로 하고 종교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CPA와 브리머가 아야톨라 올 오즈마를 무시했던 것은 이라크의 시아파 통치위원들이 자신들이 아야톨라 올 오즈마를 설득시킬 수 있다고 감언이설을 늘어놓은 것도 컸다. 당연히 아야톨라 올 오즈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던 전문가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뜯어말렸지만 브리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브리머의 주권이양 프로젝트는 대혼란에 빠졌다. 아야톨라 올 오즈마의 파트와 때문에 통치위원회는 알 시스타니가 말했던 것 외에는 미국과 어떠한 조건에도 합의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10월에 전문가들은 그의 계획이 실행될 수 없음을 알고 11월부터 브리머를 설득했으나 그가 인정한 것은 11월 10일이 된 후였다. 브리머는 럼즈펠드와 라이스, 파월에게 자신의 계획을 재조정하겠다는 것을 알렸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시아파 위원들에게 아야톨라 올 오즈마를 무시하라고 지시했던 것을 실수라고 시인했다.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랴.
지랄도 정도껏 해야 개성이다!
첫댓글 병신들의 향연이군
돈을 퍼부어도 소프트웨어가 엉망이면 정책이 망하는 거구나...
뭐, 뭔 일이든 결국 인간이 하는 거니까요.
책임과 권한이 저 정도로 막중한 인물의 '오만과 아집'이 얼마나 재앙을 초래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군요.
아아. 정말 뒷골이 아파온다.
쾅쾅! 이게 무슨소리죠?
이라크에 헬게이트 열리는 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