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비> 이후 전혀 다른 새로운 영화를 연출하기로 공언해온 '기타노 다케시'의 <키쿠지로의 여름>은 결핍 된 두 존재가 여행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료하는 아름다운 로드무비이다. 길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화학 작용과 예측 불허로 종잡을 수 없는 즉흥 연주가 자아내는 '기타노 다케시'의 유희정신은 여기서 절정을 이룬다. 여름 날의 타오르는 녹색 빛은 엉뚱한 남자들로 가득 찬 우주를 따스한 숨결처럼 만들고, 슬픈 현실은 아이러니와 슬픈 환타지의 묘약으로 동화가 된다. 그러나 극중 연출에서 오는 탄력적인 리듬과 여름의 빛이 조율하는 이상주의적 예측 불허성은 도쿄에서 오키나와까지 이어지던 '기타노 다케시'의 전작들을 연상시킨다. 길 위에서 열려진 가능성들, 외로운 소년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어색한 아저씨의 충동, 언제나 영화속에서
게임을 제안하거나 놀이에 열중하던 '기타노 다케시'는 키쿠지로와
소년의 여름을 온통 일탈과 자유의 열기로 달아오르게 만든다. <키쿠지로의 여름> 은 난반사하는 자연의 눈부신 초록빛과 알록달록한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키쿠지로'와 '마사오'의 원색적인 조화로 <소나티네>와 <3×4-10월>에서의 낯익은 풍경을 환기시킨다. 기타노의 서정주의를 뒷받침하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 역시 그 어느때보다 풍요로운 행복감을 전한다. 결국 <키쿠지로의 여름>은 빛과 소리와 시적 리듬으로 가장 단순화된 이야기를 재배치하려는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 세계를
드러낸다. 일본을 가로지르는 여행속에서 바다에 이르고, 그 바다로부터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 <키쿠지로의 여름>은 지금까지의 '기타노' 영화를 구성해왔던 낯익은 코드들이 모두 있으나 패배와 절망의 질서 대신 따뜻하고 달콤한 묘약이 자리잡은 최초의 영화이다. 이것은 <하나비>의 베니스 황금 사자상 수상 이후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한 이 시네아스트가 세상을 행해 나누어주는 사랑처럼 보인다.


모두가 기다리던 여름방학. 하지만 마사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할머니는 매일 일을 나가시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다나
시골로 놀러가버려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 어느 날 먼 곳에 돈을 벌러
가셨다는 엄마의 주소를 발견한 마사오. 그림일기장과 방학숙제를 배낭에 넣고 엄마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전직 야쿠자 남편
기쿠지로를 마사오의 보호자로 동행시킨다.엉뚱한 행동만을 일삼아
마사오를 곤혹스럽게 하고, 때때로 마사오는 뒷전이고 자신이 여름방학을 즐기는 키쿠지로.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같은 환경의 마사오를 걱정하기에 이르고, 서툴고 무뚝뚝한 표현 방법이지만 둘의
거리는 시간이 지나며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긴밀한 관계로 발전해간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채 시작된 둘만의 여행이, 잔잔한 공명을 일으키며 마음 속에 울려퍼지고, 뚱땡이 아저씨, 문어 아저씨, 친절한 아저씨... 모든 것이마사오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여름이 되는데...
왕복 600km의 여정. 그러나 그 여행은 마사오도, 기쿠지로도 잊을수
없는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게 된다...
52세 철없는 아저씨와 9세 걱정많은 소년, 그들이 마침내 찾은 것은
무엇일까?...^^



데뷔작 이래, 영화 문법의 파괴에 심혈을 기울여온 키타노 타케시가
스탠다드한 스토리에 도전했다. 자신의 영화만이 갖는 큰 매력 중 하나인 폭력묘사를 배제하고 누구나 전개와 결말을 상상할 수 있는 ‘엄마를 찾아 떠난 여행’을 그린다. 언어의 사용을 극도로 생략한 전작 <하나비>의 과묵함에서 일변한 요설스러움은 '웃음’이란 스파이스가 되어 때론 눈물을 자아낸다. 이야기를 통속적으로 풀어나가길
꺼리는 키타노는 방법과 절차, 구태의연한 설명을 생략하며, 때로는
스토리를 떠나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먼 길을 택해 의표를 찌르면서
핵심에 근접해간다. 이전 작품들이 돌발적인 폭력으로 인간 깊숙이
잠재한 심리를 파헤친 것처럼 <키쿠지로의 여름> 또한 웃음의 폭발력을 행사하는 키타노의 독자적 세계가 돋보인다.
<하나비> <소나티네>등 우리에게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키워드들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절망과 죽음, 그 폭력적 분출이었다. 그러나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다케시는 처음으로 폭력이 아닌 희만을
선택한다. 달궈진 독설이 아니라 따뜻한 유머로, 냉혹한 킬러가 아닌
조금 모자란 듯 순수한 어른들로 '착하고 해맑은'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하지만 그런 방향의 전환을 통해 다케시 특유의 삶에 대한 깊이와 여백의 이미지들은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두드러진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희망의 영화다. 극단의 순간에서도 바다를 보여주고, 아이와 연을 날리는 여유를 담았던 기타노 다케시. 그가 이번에는 우울한 기타노 블루 대신 신선한 초록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 알록달록한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기쿠지로와 마사오를 등장시켜 경쾌하고 싱그러운 여름 이야기를 들려준다.
Q. <기쿠지로의 여름>을 왜 찍고 싶으셨나요?
<하나비>가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하면서 많은 화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삶과 죽음'이라든지 '폭력'이라는 단어와 결부시켜 얘기한다. 내가 만들긴 했어도 내 영화들의 대부분은 <하나비>처럼 과묵하고 총으로 무조건 갈겨버리는 캐릭터위주였다. 이런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생소하고 색다른 것을 찍고 싶어졌다.
부모와 아이라는 소재는 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거라 호기심이 생겼고 그런 스타일의 얘기를 내가 찍는다면
어떻게 될까가 궁금해졌다. 또한 고전 일본식 만담에 종종 나오는 언밸런스한 커플이 주고받는 이야기의 묘미를 영화에서 실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솔직힌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놓고 신나고 즐겁게 놀고 싶었다!!!
Q. 기쿠지로는 아버지의 이름이라던데...
사실이다. 맨 마지막에 마사오가 아저씨 이름이 뭐냐고 묻는 장면에서 드디어 관객은 "아, 기쿠지로였구나!"라고 알게 된다. 살아있을 때에 거의 아버지와 얘기를 했던 기억이 없다. 나도 가끔 "아, 기쿠지로가 나의 아버지구나"라고 환기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는 "정말
외로웠겠구나... 그 사람은..."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가 기쿠지로를 추억하며 종종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아버지의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같이 놀았던 기억이다.
- 기타노 다케시 인터뷰 중에서 -
[ epilogue ]
어제 새벽녘의 이유모를 극심한 불면속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으례히 예전에 스쳐지나듯 무심코 보았던 영화를 다시 접하게
되면... 새로운 시각으로 이 영화를 바라볼 수가 있다... 난 이 영화에서 '기타노 다케시'라는 거물급 배우를 바라보았다... 이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어린 마사오보다도 더 철없고 억지를 부리는 퇴물 前야쿠자 출신으로 분해서 나오는 배우... 무표정함속에 들어있는 알 수 없는
감정들과... 짖궂은 행동들... 때로는 어른으로서의 의연함... 그런것들을 고루고루 내포하고 있는 캐릭이 이 영화의 '기쿠지로'가 아닌가 싶다... 마사오보다 더 사고뭉치같은 그이지만... 엉뚱한 발상과 행동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는 어쨌든... 마사오에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었음엔 틀림없다... 기타노 다케시라는 일본최고의 감독, 영화배우이자... 코메디언이자... 사회자... 말 그대로 만능 엔터테이너인 그의 영화를 난 거의 보지 못했지만...(고작,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인 '하나비'와 '배틀로얄'... 이 두 영화 모두 현실적이게 잔혹했다...) 내가 본 영화들과는 전 반대의 순수하고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이...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호텔 풀장에서
튜브를 끼고 허우적대던 그 모습과... 상처입는 마사오를 위해 바이크족들에게 '천사의 종'을 강탈하던 그 모습... 쿡쿡!^^ 영화 속에 각 에피소드마다의 그 모습은...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이기에 소화할 수 있는 그 캐릭... '기쿠지로'를 따스함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다가오는 여름... 시원한 해변가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이 따스하면서 엉뚱한 로드무비 한 편... 보시는 것은 어떠할지!^^
*흐르는 곡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의 O.S.T를 주로 담당하는 조 히사이시(Joe Hisaishi)가 이 영화의 O.S.T를 역시 담당하였는데요...
Theme song으로 쓰인 곡중...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찡했던 에피인
'天使의 鐘'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곡입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엄마에 대한 상처로 아파하는 마사오를 위로하기 위해 애쓰는 기쿠지로의 맘이 잘 나타나서... 좋았던... 부분이었습니다...^^ 삽입곡인
'Angel's Bell' 입니다...^^
첫댓글 이 영화 보고나면 조용히 웃음짓게 만드느 영화였어여^^ 다케시의 깜찍(?)한 모습과 꼬마 연기자의 무표정이 압권이져 ㅋㅋㅋ
전 자동차 얻어 타기 에피소드가 가장 재미 있고~ 기억에 남아요~ 그.. 장님 흉내 내던 ㄱㅣ타노.. ^^;
음악이 정말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