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을 향한 유니버설의 전폭적인 지지에는 사실 '잭슨 표 영화'가 보증하는 높은 완성도 외에 다른 내막이 존재한다. 유니버설은 <반지의 제왕> 때 겪었던 뼈아픈 교훈을 잊지 않고 있었다. 원래 피터 잭슨이 <킹콩>의 연출을 준비한 건 <반지의 제왕>이 제작되기도 전인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잭슨의 미래는 전도 유망했다. 컬트영화라 불린 <고무인간의 최후>는 악취미로 가득 찼지만 충분히 독창적이었고, <천상의 피조물들>로는 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까지 수상한 실력파 감독이 잭슨이었다. 잭슨을 향한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들의 구애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폭스는 <혹성탈출>의 리메이크 버전을, 미라맥스는 <반지의 제왕>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유니버설은 잭슨이 연출하는 <프라이트너>가 완성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킹콩> 리메이크판 제작을 추진했다. 잭슨의 선택은 명백했다. <반지의 제왕>과 <킹콩>을 연출하되, 1순위는 잭슨이 평생 숙원이라 목놓아 외쳤던 <킹콩>이었다. 컨셉 회의를 비롯, 웨타 스튜디오에서 프리프로덕션이 진행된 것이 1997년의 일이다. 그러나 스튜디오 시스템의 맹점은 <킹콩>의 발목을 붙들었다. <프라이트너>의 흥행 실패와 잇따른 사정으로 유니버설이 <킹콩> 제작을 번복하고 나선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반지의 제왕>에 착수한 잭슨은 이 시리즈로 엄청난 흥행 수익은 물론, 17개 부문의 오스카상을 휩쓴 할리우드 공인 스타 감독이 되었다. 유니버설의 입장에선 잭슨을 놓친 것이 참혹할 만큼의 손실이었다. 결국 2002년 잭슨을 찾아 뉴질랜드 웰링턴에 온 유니버설 간부들은 그에게 흥행 수익의 20%를 제안하며 <킹콩> 제작을 통사정했다. 톰 크루즈나 톰 행크스 같은 스타 배우라면 모를까, 감독에게는 전례 없는 파격적 수치였다. 실로 '죽이는 금액'이 잭슨에게 약속된 것이다.
피터 잭슨, 내 인생의 영화
수 년을 빙빙 돌아 제작에 이른 <킹콩>이다. 영화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피터 잭슨의 변화된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이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12kg이나 줄어 홀쭉해진 몸, 거추장스럽던 안경을 벗어 던진 그의 얼굴에서 <반지의 제왕>을 연출한 거구의 잭슨은 사라지고 없다. 혹 킹콩의 특수 효과를 잭슨 자신에게 적용한 건 아닐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지난해 9월부터 1933년판 오리지널 <킹콩>을 리메이크하면서 잭슨의 한 해는 <킹콩>에 온전히 바쳐졌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촬영, 편집, 회의의 연속이었다. 기진맥진한 일과로 체중을 잃어가는 동안 잭슨이 창조한 킹콩의 위용은 날로 발전해갔다.
<킹콩>은 잭슨에게 단순히 영화 한 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운명적인 작품이다. 잭슨과 <킹콩>의 인연은 그가 초등학생 시절인 아홉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질랜드의 푸케라우아만, TV에서 <킹콩>을 시청하던 잭슨의 머리에서 번쩍 섬광이 스쳤다. "현실을 잊게 만드는 마법 같은 화면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잭슨은 <킹콩>을 시청하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판타지에 대한 내 열망, 공룡에 대한 집착,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나의 열정들은 모두 그때 본 <킹콩>에서 비롯됐다. <킹콩>을 보면서 느꼈던 바로 그 순간의 감동. 온 생애를 바쳐서라도 내가 느꼈던 그때의 희열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잭슨의 이후 삶은 <킹콩>에 바쳐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찰흙으로 공룡을 만들고, 집에서 쓰던 수퍼 8mm 캠코더로 조악한 스톱 모션 영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킹콩>을 향한 잭슨의 열정도 함께 커나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든 잭슨은 영화감독으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것은 모두 <킹콩> 덕이라 단언한다.
먼지 쓴 고전, 테크놀로지를 입다
국내에서는 1976년 제시카 랭 주연의 <킹콩>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잭슨의 어린 시절을 뒤흔든 영화이자 잭슨이 리메이크하는 작품은 킹콩 영화의 효시로 불리는 1933년 판 오리지널 <킹콩>이다. 어니스트 쇼드색과 머리안 C. 쿠퍼가 연출한 흑백 영화 킹콩은 탐험대와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수마트라의 한 섬에서 잡아온 거대한 고릴라가 탈출해 뉴욕을 점령한다는 스토리로, 파산 직전의 제작사를 위기에서 구해냈을 뿐 아니라 당시로선 획기적인 기술력이 동원된 작품이었다. 주인공 앤 대로를 연기한 배우 페이 레이는 킹콩의 거대한 손에 이끌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두려움에 떠는 장면에서 "화면 속의 거대한 킹콩은 사실 46㎝ 모형에 불과했다"고 회상한다. 촬영의 트릭과 매트 페인팅, 프로젝션, 미니어처 배경들 덕에 조그마한 킹콩 인형이 거대 킹콩으로 거듭난 것이다. 당시 <킹콩>은 명실상부한 화제의 영화였다. 영화를 본 아돌프 히틀러는 <킹콩>을 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했으며, 일본에서는 <킹콩>의 영향으로 일본 괴수 영화의 시작인 <고질라>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킹콩>의 기술력 또한 무시 못할 파장을 일으켰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조지 루카스의 판타스틱한 영화 세상은 모두 <킹콩>의 특수 효과에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터 잭슨의 리메이크 <킹콩>은 물론 오리지널 <킹콩>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무리 오리지널 이 어린 잭슨에게 짜릿한 감흥을 주었다 할지라도, 30년대 할리우드의 기술력으로 제작된 <킹콩>이 <반지의 제왕>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 관객에게 통할 리는 만무하다. 어디까지나 잭슨이 추구하는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짜릿한 감격을 지금의 관객들도 느끼게 해주자는 데 있다. "오리지널 <킹콩>은 그 시대의 영화다. <반지의 제왕>이 지금 시대의 영화인 것처럼 말이다. 두 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비교할 수는 없다. 재창조된 <킹콩>에는 현대의 테크놀로지가 집약되어 있다." 잭슨은 21세기 경이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관객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고릴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호언 장담한다.
세상에서 가장 리얼한 판타지
킹콩의 분노는 영화 제작자 덴험의 사리사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여배우 앤과 전설의 해골 섬을 찾은 덴험은 그곳에서 킹콩과 고대 공룡시대의 잔인한 공룡과 맞딱드린다. 킹콩은 원주민에 의해 제물로 바쳐진 앤을 해치기는커녕 보호해 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덴험은 그런 킹콩을 돈벌이로 이용할 궁리를 하고, 앤을 미끼로 킹콩을 뉴욕으로 데려 온다. 광기에 사로잡힌 킹콩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인간의 공격을 피해 앤을 데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피터 잭슨은 "원작이 매력적인 만큼 이야기는 그대로 가져왔다"고 말하지만 사실 기본 시놉시스를 제외하고 <킹콩>은 오리지널 판과 같은 대사가 하나도 없을 만큼 완벽히 다른 영화로 거듭났다. <반지의 제왕> 연출이 변화의 발판이었다. "1996년에 완성한 <킹콩> 시나리오는 이를테면 <인디아나 존스>식 영화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 사이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고 그 작업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판타지란 리얼리즘을 통해 구현됐을 때 가장 제대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잭슨은 <킹콩>의 시나리오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 가정하고 수정해 나갔다. 18m짜리 킹콩과 여자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남겨졌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순히 영화적 재미가 아닌 실제적인 사건으로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가야 했다. 매 장면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면서 잭슨은 새로운 <킹콩>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갔고 그러자면 감정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의 캐스팅도 관건이었다.
관능적인 금발의 미녀 앤 대신 잭슨은 좀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21그램>의 나오미 와츠를, 앤의 연인이자 심약한 작가로는 <피아니스트>의 애이드리언 브로디를 캐스팅했다. 나오미 와츠와 애이드리언 브로디 캐스팅이 잘 끼워진 단추였다면, 덴험 역에 코믹 배우 잭 블랙이 캐스팅된 건 다소 의외였다. 원작의 배우가 로버트 암스트롱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40대 후반, 50대 배우를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잭슨은 전형적인 캐스팅을 거부하고 덴험 역에 변화를 감행한다. 잭슨이 염두에 둔 것은 서른다섯 살 시절 젊은 시절의 영화감독 오손 웰스였다. 약간 젊은 듯하면서 강박적, 충동적 성격을 지닌 영화감독. 어떤 면에선 재능 있고 천재적이지만 실수를 자주 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 젊은 시절 웰스의 캐릭터였다. 잭슨은 웰스의 캐릭터에 기초해 캐스팅을 진행했고, 잭 블랙이 적역으로 거론됐다. 잭 블랙이 연기하는 덴험은 킹콩을 우선 영화로 찍고 그 다음엔 붙잡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캐릭터다. 사람들을 모험으로 이끌 만큼 자존심이 세지만, 타인을 보호할 줄 모르기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인물이 새로 창조된 덴험이다. "잭에게 평소 연기할 때처럼 애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매력을 발산하면 되는 것이다." <스쿨 오브 락>을 비롯 일단의 영화에서 잭 블랙이 보여 준 코믹 연기와는 전혀 다른 연기, <킹콩>에서 그는 새로운 연기에 도전한다.
성난 얼굴의 늙은 고릴라
1933년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킹콩>이 달성하지 못했던 과업은 명백했다. 바로 '야수와 미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였다. 인형으로 만들어진 킹콩과 공룡들의 혈전에 흥겨워할 수는 있지만, 조악한 인형을 두고 차마 관객에게 감정 이입을 하라고까지 하는 건 무리였다. 리메이크판을 만들면서 피터 잭슨은 '적어도 딱 한 장면은 관객에게서 눈물을 쏟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디테일한 감정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집약된다. 뉴욕 5번가, 1,200피트 높이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아찔한 마천루 위에 괴로운 신음을 내며 포효하는 킹콩의 모습이 비친다. 킹콩의 뒤, 텅 빈 하늘 위로 기세 등등한 커티스 헬다이버 복엽기 두 대가 쏜살같이 강하한다. 복엽기에서 쏟아지는 총알 세례를 맞으며 장렬한 최후를 맞는 킹콩의 모습은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잭슨 판 킹콩의 하이라이트다. "킹콩은 매우 늙은 고릴라지만, 다른 생명체와 감정적 교류를 가져본 적이 없다. 자신이 알게 된 어떤 사람을 처음엔 죽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서서히 마음이 움직이게 되어 전혀 다른 상황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담아내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고, 깊이 있는 심리 상태를 다루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인형은 아니 될 말이었다. 섬세한 감정을 소화해낼 제대로 된 연기자가 필요했다. 잭슨은 킹콩 역으로 <반지의 제왕>의 디지털 캐릭터 골룸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를 제공한 앤디 서키스를 섭외했다. 서키스는 보다 완벽한 고릴라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촬영 전 르완다에서 고릴라와 생활하며 고릴라의 습관을 익혔다. 물리적인 고릴라의 형태, 뼈대의 모양 등을 연구하고 근육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웨타 특수효과팀의 세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웨타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들이 킹콩처럼 구르고 기고 매달리고 물어뜯고 표정을 짓는 행동을 일삼는 건 새삼스런 구경거리도 아니었다. 골룸을 창조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모션 캡처와 CGI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특수 라이크라 의상을 걸친 서키스는 심장을 쾅쾅 두드려대고 발을 구르는 등 유인원의 움직임을 하루종일 흉내냈으며, 얼굴 근육에 빼곡이 점들을 연결하고 조형 틀니를 끼운 채 코를 킁킁거리는 간단한 동작부터 슬픔, 기쁨을 나타내주는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스튜디오에 설치 된 52대의 특수 카메라는 서키스의 이런 모양을 빼지 않고 다각도로 기록했다. 이렇게 채집된 서키스의 움직임은 컴퓨터에 입력되어 수치로 전환됐고,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컴퓨터상의 고릴라 뼈대 위에 비로소 서키스의 움직임이 입혀졌다. 여기에 킹콩이 채 등장하기도 전에 먼저 나타나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사운드팀의 연구로 결합되면서 상처투성이에 추악하고 때로 포악하기까지 한 잭슨판 킹콩이 완성된 것이다. "보통 연기와 디지털 캐릭터 연기와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서키스의 말대로 새로 창조된 킹콩은 진짜 감정 연기를 하는 명실상부한 영화 속 주인공이 됐다.
미니어처 해골 섬
잭슨은 2005년 판 <킹콩>의 시대적 배경을 원작과 같은 30년대로 하고 있다. 그는 30년대를 일컬어 "마지막 탐험의 시대"로 명명한다. "미지의 공간이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시대인 30년대를 통해 <킹콩>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지금은 사라진 티라노사우로스들과 18m나 되는 거대 킹콩이 서로 뒤엉켜 존재하는 미지의 해골 섬 '로드 오브 정글'은 그런 의미에서 <킹콩> 제작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이다. 실사 촬영의 경우 원래 타이의 섬이 거론되었으나 쓰나미로 인해 뉴질랜드로 촬영지가 변경됐다.
문제는 실사를 제외한 나머지 스튜디오 촬영에 달려 있었다. 웨타 스튜디오가 창조한 킹콩의 미니어처 배경 53개, 800개에 달하는 미니어처 장면 중 대부분은 해골 섬의 미니어처였다. 그건 스튜디오 안으로 대자연을 옮겨오는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은 바위 하나까지도 스탭들 사이에서 고유명사로 불려졌고, 이끼를 붙이고 자갈을 깔아 실제처럼 만들었다. 웨타 스튜디오의 별칭 '웰리우드'의 집념이야 <반지의 제왕>에서부터 익히 확인된 바다. 오죽하면 웨타의 한 특수효과 수퍼바이저가 작업실 문에 '만약 지옥이 꽉 차서 자리가 없으면 시체들이 내 작업실로 올 것이다'라고 써붙여 놓았을까. 이렇게 수고를 다해 미니어처를 제작한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관건은 이 작은 미니어처를 스크린에 얼마나 스케일 있게 전달하느냐였다. 촬영팀은 실제 크기보다 축소된 작업물들을 최대한 바짝 클로즈업해 촬영을 해나갔다. 실제 보다 10배는 넘어 보이게 만드는 미니어처 촬영으로 웨타 스튜디오는 해골 섬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100% 관객 지향형 영화
후반 작업을 하던 도중 피터 잭슨은 뜻밖의 선언을 하고 나섰다. <반지의 제왕> 때부터 함께 작업해온 영화음악가 하워드 쇼어를 <킹콩>에선 제임스 뉴튼 하워드로 교체하겠다고 한 것이다. 쇼어는 <반지의 제왕> 3부작으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배트맨 비긴즈> <에비에이터> <갱스 오브 뉴욕> 등의 음악을 작곡한 영화음악의 거장이다. <킹콩>의 시사를 겨우 7주 앞두고 잭슨이 내린 결정은 다소 갑작스럽지만 <킹콩>이 지향하는 바를 명백히 설명해준다. <프렌치 키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식스 센스>처럼 좀 더 대중적인 영화에 참여한 뉴튼의 성향이야말로 대중 영화로서 <킹콩>의 정체성을 공고히 해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늘 혁신적인 작품만을 생산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킹콩>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 연출자로서 관객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영화다." 잭슨의 이 같은 개념은 그가 고안해낸 독특한 웹사이트를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의 경우 일정 홍보 시점이 되기 전까지 스틸 한 컷, 영상 한 컷도 허투루 공개되지 않는다. 엄청난 비밀 창고인 듯 꽁꽁 싸매져 있던 창고문을 잭슨은 과감히 관객에게 개봉했다. 지난 1년여 간 잭슨이 만든 <킹콩> 웹사이트 '콩이즈킹넷(www.kongisking.net)'은 마치 매일 저녁 9시 뉴스처럼 프리프로덕션에서 촬영, 후반작업까지 <킹콩>의 소식을 일주일에 2~3번 팬들에게 물어 나르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잭슨의 하루 일과, 블루 스크린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모습, 특수 효과팀의 제작 노하우까지 <킹콩>의 제작과 관련된 동영상부터 작은 소식 하나까지 모두 콩이즈킹넷에 속속 등록됐다. 영화사의 마케팅 플랜에 의해 제공된 특종, 독점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킹콩>과 관련된 소식을 접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잭슨의 팬들이 되는 것이며, 잭슨 역시 영화의 제작 과정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킹콩>의 충실한 팬 중 하나인 것이다. 친절하고 세밀하며 풍부한 제작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DVD 서플먼트는 대체 뭘로 만들까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다. 만우절 날 웹사이트에 <킹콩: 콩의 아들>과 <킹콩: 늑대의 거짓 속으로>가 이미 제작 단계에 있으며, 2006년에 개봉될 거라는 깜찍한 농담들까지 제공하며 잭슨은 <킹콩>의 웹사이트를 꾸려나갔다.
<킹콩>을 보고 전율을 느꼈던 아홉 살 소년 잭슨이 43세가 되어 만드는 <킹콩>은 결국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재미있는 대중 오락 영화의 모범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신이 수십 년 전 오리지널 <킹콩>을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듯이, 잭슨은 자신의 <킹콩>을 보고 같은 스릴을 느껴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어린이가 나오는 꿈을 꾼다. 잭슨에게 <킹콩>은 축제와도 같은 영화다. 그건 그가 감독이 되었던 가장 자명한 이유이자, 앞으로도 감독으로서 성취하고자 하는 최고의 목표다.
잭슨은 사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원작의 '킹콩의 여인' 페이 레이가 출연해 주길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섭외 도중 페이 레이는 별세했고, 잭슨은 극중 나오미 와츠가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오리지널 <킹콩>에서 페이 레이가 썼던 모자를 쓰게 함으로써 그녀에 대한 자신의 변함없는 애정을 바쳤다. 또한 바쁜 촬영을 틈타 잭슨은 오리지널 <킹콩> DVD 제작 작업에도 참여, 원작에서 사라진 6분간의 해골 섬 장면을 복원해냈다. 그건 그가 감독이기 이전 한 영화의 순수한 팬임을 고백하는 아주 성스러운 의식이다. 영화 소년의 열망이 이룩한 가장 기대되는 역작. 킹콩의 모습이 보이기 이전, 벌써 <킹콩>의 포효가 들리기 시작한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