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넥타이 부대 출신이다
① 남자의 한가운데 달려있다.② 걸을 때 흔들린다.③ 보통 때는 축 늘어져 있다.④ 앞쪽이 굵다. 이 대상이 무얼까. 이 물음에 대개는 대답을 안한다. 몰라서가 아니다. 뻔한 것인데 말하기가 뭣해서 안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은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웃기만 한다. 그러나 그 짐작은 완전히 틀렸다. 언제나 잘못 넘겨짚으면 팔이 부러진다.
이것으로 보아 넥타이는 남성의 전유물임에 틀림이 없지 싶다. 여성에게는 대신 스카프가 존재한다. 내가 넥타이를 처음 맨 것은 대학교 3학년 때다. 봄 축제를 참석 할 때 아이들을 가르친 아르바이트로 생전 처음 콤비라는 옷을 샀고 쵸콜렛 빛의 폼나는 그 옷을 걸치고 겨우 구한 파트너를 모시고 아버지 넥타이를 맸다.
나는 맵시고 뭐고 숨이 콱 막히고 어쩌다 손이 스치기라도 하면 삐뚤어진 것 같은 예감도 들어 자꾸 거울을 들여다보곤 했다. 지금도 나는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는다. 매면 그 현상, 어딘가가 거북하고 삐뚤어진 것 같은 착각이 엄습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나로선 정말 편하지 않다. 이딴 것을 죽을똥살똥 왜 매는 건지 모르겠다는 내 심경인데 이는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놈인가를 자인하는 말도 된다. 언젠가 길에서 가냘픈 여자가 남자 넥타이를 잡아당기자 꼼짝 못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넥타이만 붙들고 늘어지면 꼼짝을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고보면 넥타이와 남성의 거시기는 성질 까지도 꼭 닮았다. 우리는 직장을 얻으면 양복부터 맞추고 넥타이를 꼭 맸다. 선을 보러 갈 때도 면접을 볼 때도 이는 꼭 필수 차림이다. 넥타이는 사람의 목을 조여 자유를 구속하는 사회적 장치일 수 있지만, 남성이 성인으로 성장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는 증표이자 상징적인 액세서리이다.넥타이 차림은 다른 복장과 달리 뭘 입을까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동료나 조직원 사이에서 튀거나 처질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이해못할 것이지만 옷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신사복과 넥타이 차림이 오히려 가장 편하고 무난한 의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넥타이는 아무리 색깔과 디자인이 다르더라도 근본적으로 점잖으며 규격화된 깔끔한 표정에 스스로 도시화된 매끈함을 가졌다. 그런 복장은 일정한 조직과 규범에 편입돼 충실하게 지키고 따르겠다는 약속과도 같아 어느 직장에서는 의무적으로 그 복장을 착용하여야한다는 묵시적인 규율이 적용되고도 있다.
무질서하고 문란하게 대학시절을 보낸 녀석들이 깔끔하게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변화를 상징한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때는 옷차림만으로도 대접을 달리 하던 적도 있다. 잠바 차림으로 은행을 가서 대출을 하자 하면 퇴짜를 받을 수밖에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그 시절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읍내에서 평판 높은 몇몇 관료나 은행가들이 입을 정도 였다. 헐벗은 만큼 거지도 많았고 도둑도 많았다.
그렇다고 요즘 도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좀도둑이다. 칼 들이대는 강도 출현은 바로 뉴스깜이었다. 우리집도 닭장에 닭이 때때로 없어져 아버지는 불침번 서듯 밤을 지키고는 했는데 개소리가 꽤 중요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 양복이 졸지에 사라져 버렸다. 안방 한가운데 걸쳐진 양복을 훔쳐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안방을 비워둔 적이 없으며 그렇다면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같이 들고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나중 듣기로 밖에서 긴 장대로 빼꼼히 걸린 양복을 들춰 업어 갔다는 것이다. 요즘은 헌옷으로 내놓아도 쳐다보지도 않지만 당시는 양복을 빌려 입는 경우가 꽤 많았다. 세탁소가 중매를 잘 서주었던 그시절이다.
그 덕분에 넥타이는 아무 쓸모가 없이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넥타이는 멋과 명예의 상징이지만 스스로는 자수성가를 하지는 못한다. 양복이나 콤비가 안개꽃처럼 바탕이 되어주어야 비로소 장미꽃처럼 화사해지는 것이다. 어쩜 서울깍쟁이 같고 부자집 막둥이 같기도 하다. 헌데 나는 여직 넥타이 매는법을 모른다. 아내가 매준 넥타이 그대로 와이셔츠를 벗을 때 러닝셔츠처럼 목 위로 끌어올려 옷을 벗는다. 누구는 귀찮아서 그렇게 한다지만 나는 맬 줄을 몰라서 그렇게 한다. 그냥 그대로 처박아두면 좋겠다 싶은데 어쩔 수없이 그 다음날도 매야 할 때는 꼭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올가미 상태로 놔둔다.
배우려면 배울 수 있겠지만 애당초 나는 넥타이가 싫었다. 나만 그렇지 세상사람들은 넥타이에 목을 맨 것인지 출장길에서 꼭 둘러보는 것이 넥타이 상점이다. 넥타이에 관한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다. 별로 우습지는 않지만(진짜 별로다. 약간 뻔한 이야기다.) 넥타이를 고르는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프랑스인:최신 유행하는 겁니까? 독일인:얼마나 오래 맬 수 있지요? 미국인:세계에서 제일 좋은 겁니까? 영국인:신사들이 매는 겁니까?그리고 그 다음 중국인:팔면 얼마 이익이 납니까? 일본인:얼마나 깎아줄 겁니까? 이 개그의 마지막 등장인물은 역시 한국인이다. 뭐라고 했을까? 얼마나 깎아주느냐고 할 거 같은데 그건 이미 일본사람이 말했다. "이 넥타이 진짭니까?"가 한국인의 질문이라고 한다.
넥타이는 명품이면 더 좋지만 색깔도 아주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빨간 넥타이를 매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미신처럼 번져 있다. 정치적으로 많이들 선호하고 이용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처음 도입된 1960년 TV토론 때 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는 빨간 넥타이를 맸다. 흑백TV 시절이었지만 그의 빨간 넥타이는 눈길을 확 끌었고, 결국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를 제쳤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도 집권 2기부터는 중요한 연설 때마다 거의 빨간 넥타이를 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빨간색을 즐긴다. 국내 정치인도 TV에서 많이 보았고 우리도 빨간 넥타이를 맨 사람이 대통령도 됐다.넥타이는 와이셔츠가 겸비되어야 가능하다. 깔끔한 채취, 바로 화이트칼라라고 부르는 상징은 여기서 발족된 것이다.
그렇다면 청바지는 불루칼라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은 청바지에 셔츠를 걸치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맵시가 오히려 산뜻하기 까지하다. 셔츠와 청바지로는 좀 부족하다 싶은데 그 맵시는 전적으로 넥타이가 받쳐주고 살려 준 것만 같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라는 말, 참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표현이었는데 그 옷차림이 산뜻하듯 지금에서는 그 말의 뜻대로 세상도 변해가는 것 같다. 불루칼라와 화이트 칼라, 굳이 노동자와 사무직으로 구분 할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는 세상이다. 모두 노동자고 고용인일 뿐이다.
한 때 부모들은 넥타이 매고 양복 빼입고 출근하는 자식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었다. 큰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신망을 그렇게 받았으면서도 누구든 제대로 행하지는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나이 31살 때 넥타이 매고 큰 일을 한 번 낸 적은 있다. 갓 취직하고 갓 결혼하여 처신이 녹록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 대전에서는 열이 덜 올라 아내에게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주말에 상경을 했다. 물론 빨간 넥타이를 매고.
''넥타이 부대''를 6월 항쟁의 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넥타이 부대라는 말은 명동을 중심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초기에는 ''명동 넥타이 부대''라는 말이 있었다. 명동지역은 금융권의 본사가 밀집한 지역이어서 명동성당 농성과 함께 이들 금융권 직장인들의 가담이 큰 물줄기를 튼 것이다. 1987년 당시의 거리시위는 대학생들이 주도했다. 그러던 것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은폐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넥타이를 맨 일반 직장인들이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하면서 시위의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전두환 정권이 넥타이 부대의 등장으로 결국 6.29선언이라는 항복조치를 하게 됐던 것이다. '오늘 맥주 무료 제공'이라는 시원한 글씨를 써붙인 술집을 본 경우가 내 평생 딱 두 번인데 한 번은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이고 그리고 바로 6.29선언을 한 날이다. 나는 그 큰 기쁨을 다 만끽하였으니 참 행복한 한국인이다. 또 언제 그런 날이 찾아올까.
당시 우리의 청년문화는 짧기만 하다는 정설을 뒤엎고 앞뒤 가리지 않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었다. 이후 넥타이는 스스로 보통사람을 자처했고 이제 넥타이는 자유와 자율을 제대로 실천한 평범한 셀러리맨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평범한 시민은 권위의식을 제일 싫어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 나는 이후 넥타이를 맨 것은 거의 손으로 꼽는다. 이제 청춘이 다 갔다싶어서인지 어느 새 빨간 색은 사라져 버렸고 검은 색 하나 은색 하나에 알록달록한 것 하나가 고작이다.
남의 집 행사에 초를 칠 수는 없어서 어쩔 수없이 넥타이를 매고 나서는 길 아내도 넥타이 매는법을 까먹었는지 영 신통치 않아 할 수없이 이번에는 아들이 매어주었다. 하지만 말이다. 또 다시 거리로 뛰쳐나갈 일이 생긴다면 나는 넥타이를 다시 매고 나설 것이다. 바로 넥타이는 배움과 고상함 그리고 품격을 모두 갖은 남성의 거시기와도 같은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지녔기에 그 모아진 표상은 세상을 능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여! 괄시마라. 나는 86년 넥타이부대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