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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
창세기 37:5-11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꿈이 있는 사람은 생기가 있고 방향이 있습니다. 항상 할 일이 있습니다. 고된 일을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꿈을 잃은 사람은 의욕을 상실합니다. 꿈을 잃은 사람의 특징은 게으름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시간 관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아무렇게나 살아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의 모든 삶의 동기는 본능입니다. 그들의 삶은 아무리 바빠도 진정한 보람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허무와 짜증과 불만이 가득하여집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영원하고 참된 꿈을 붙드는데 있습니다. 그 꿈은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꿈이며 부활의 소망입니다. 특히 이 땅에서 살아갈 때는 영광의 주께서 주실 영원한 상급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그러나 가장 구체적으로 바라는 꿈은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최고의 꿈은 그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꿈을 가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은혜입니다.
반면에 불신자들도 꿈을 갖고 삽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에서 나온 꿈입니다. 부자가 되려는 꿈, 권력을 잡아보려는 꿈, 인기를 누리려는 꿈 등입니다. 선한 꿈처럼 여겨지는 것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가 되겠다는 꿈,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변호사나 판사, 검사가 되겠다는 꿈, 인류의 문명 발전을 위해 최고의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꿈들은 고작 인간들을 위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꿈은 아닙니다. 즉,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꿈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꿈이 영원한 의미를 갖추려면 그 꿈의 성취에 하나님의 영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꿈은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을 붙들 때만이 우리는 삶의 방향과 의미를 정확하게 붙들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게 되면 그 꿈이 실현되는 날을 바라보면서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우리는 개인에게서 나오는 야망을 취할 때 그 인생의 끝은 허무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리라”(갈 6:8).
야망은 자기 자신이 개인적으로 갖는 욕망으로부터 산출되는 꿈입니다. 야망은 불신자들의 삶의 동기입니다.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원인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망은 야망이 이루어지고 나면 악한 본색을 드러냅니다. 즉, 교만의 극치를 나타내 보입니다.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기고 싶어합니다. 즉, 열심의 동기가 ‘질투와 욕망과 시기와 경쟁’입니다. 야망을 이루는 과정도 항상 많은 죄악이 병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야망을 포기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4-26).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비전이라고 표현합시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내게 부어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심어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아 붙든 사람들은 호흡이 마치는 그 날까지 기도할 제목이 있습니다. 또한 비전과 함께 천국의 꿈을 꾸며 남은 삶을 더욱 귀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비전을 받은 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수고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비전만이 갖는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언제나 교회 공동체와 관련되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그 비전을 이루는 정신은 놀랍게도 희생입니다. 즉, 비전을 받은 자의 희생과 인내가 없이는 주께서 주신 비전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4-25).
즉,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는 자기 희생과 부인의 훈련을 통하여 자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살리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와 후대를 살리는 그러한 특징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든 사람의 특징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 사명의 성취는 믿음과 순종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며 그 사명의 가치는 영원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데 있습니다. 사실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성공합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목적도 실현하고 사업도 성취하고 실제로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기기도 남깁니다. 목회의 야망을 가진 자들은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소위 목회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받아 그 비전을 이루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따르는 삶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의 동기는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받은 신자는 죽는 그 날까지 전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도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으셨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께서 받으신 사명은 자기 백성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세례 요한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
셋째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들의 분명한 특징은 단 한가지인데, 그것은 ‘충성’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넷째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는 칭찬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9).
그러므로 성경에서 영원토록 기억되어지는 인물들은 소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소명에 충성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주의 은혜 가운데 비전을 받고 평생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이 밝든 어둡던 상관없이 그 목표를 향해 달린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요셉은 하나님께 꿈을 받고 평생을 살아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떻게 비전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비전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갖게 된 사람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태어난 때는 야곱이 93세 되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10살이 될 때 동생 베냐민을 얻고 어머나 라헬을 잃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103세였습니다.
야곱은 93세에 11번째 아들로 얻은 요셉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참으로 사랑했던 라헬이 직접 낳은 유일한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요셉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계보를 잇는 아들로 삼고자 고운 자색옷을 입혔습니다.
[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 37:3-4)
아무튼 요셉은 17세가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습니다.
[
6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6-7)
이렇게 요셉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비전을 말하자 그의 형제들은 비웃으며 조롱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야곱의 편애를 받는 요셉이 너무 미웠는데 이제 이러한 꿈까지 말하자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됩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라”(창 37:8).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에게 다시 꿈을 주십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 37:9).
이때 이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물론이고 아버지마저도 그 꿈을 듣고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 37:10).
이에 형들은 더욱 요셉을 시기하였고, 아버지는 요셉의 신기한 꿈 이야기를 일단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창 37:11).
하지만 요셉의 꿈은 개꿈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가도 요셉의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 꿈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기대하며 살아갔습니다. 즉, 그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친히 주신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
요셉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 꿈이 있었고, 이에 그는 자기 인생에 엄청난 격변이 생겨도 그 격변은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시는 과정이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7세의 어린 요셉에게 꿈을 주셨던 하나님은 요셉을 특이하게 다루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난이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청을 받들어 먼 곳 세겜으로 가서 양 떼를 치는 친형들에게 음식을 전달해 주러 갔다가 그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굽 바로의 신하 친위 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립니다.
사실 평생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다가 17세의 나이에 형들에게 살해 당할 뻔 하다가 간신히 살아나서 애굽의 노예로 팔렸을 때 요셉은 얼마나 슬펐겠으며 얼마나 억울했겠으며 얼마나 괴로웠겠으며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많은 눈물을 꾹 참습니다. 억울한 사건들을 당하면서도 주를 바라봄으로 인내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요셉을 기뻐하셨습니다.
[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보디발)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보디발)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창 39:2-6)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어 가시는데 계속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다가 통하지 않으니까 요셉을 망하게 만든 것입니다.
[
6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았더라
](창 39:6-13)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는 소설을 지어내며 요셉을 성폭행범으로 몰아 버립니다.
[
14 그 여인이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창 39:14-18)
이에 보디발은 심히 노한 상태에서 요셉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그 감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이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말을 들어볼 수 있었지만 아마도 요셉은 노예 신분이었고, 그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증거물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인 신분 유지 및 가정의 안정을 위해 무조건 일부러 아내의 말을 듣고 일을 처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인의 조처에 요셉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되지만 아무런 반항이나 도전이나 폭력이나 욕설을 행사하지 않고 갇힌 옥에서 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께서 주신 꿈을 기억하며 붙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또 기뻐하셨습니다.
[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1-23)
그 후 요셉은 감옥에서 이상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어느 날 새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두 죄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두 죄수는 애굽 왕에게 죄를 짓고 옥에 들어오게 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옥에 들어온 그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근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요셉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 둘이 꿈을 꾸었지만 그들의 꿈을 해석할 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요셉이 그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면서 꿈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하나님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은 그 꿈을 해석해 줄 수 있다는 뜻인데, 이는 요셉은 하나님과 늘 대화하는 관계에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에 그 두 관원장은 요셉이 매우 거룩하고 신비한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그들의 비밀스런 꿈을 말합니다.
먼저 술 맡은 관원장이 말합니다.
“꿈에 어떤 포도나무를 보았다네. 그 나무에는 가지가 셋 있었는데 가지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더니, 포도가 열렸다네. 나는 바로 황제의 잔을 들고 있다가 포도를 짜서 즙을 내어 바로 황제에게 바쳤다네.”
그러자 요셉이 곧바로 그 꿈을 해석합니다. 그 꿈 해석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해석이었습니다.
“가지 셋은 삼 일을 뜻합니다. 앞으로 삼 일이 지나기 전에 바로 황제가 당신을 풀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전처럼 술 관원장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풀려나면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 황제에게 아뢰주어 이 감옥에서 나를 풀어 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떡 굽는 관원장도 그의 꿈 이야기를 했지만 그 해석은 바로의 생일이 3일 후인데 그 전에 그가 나무에 달려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3일 후에 요셉의 꿈 해석처럼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하였고 떡 굽는 관원장은 그 머리가 잘려 새들이 먹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도움과 간청을 망각하고 요셉을 잊었습니다.
이때 억울하게 갇히게 된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한 가닥의 소망을 가지고 있던 요셉은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은혜를 망각해 버린 술 맡은 관원장에 대해 얼마나 분노가 치밀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묵묵히 그저 주의 때를 기다릴 뿐이었고, 계속 주께서 주신 비전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살펴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은 후 정확하게 2년 후에 놀랍게도 애굽의 바로 왕이 꿈을 꾼 것이었습니다. 매우 신기하고 흉측한 꿈이었습니다. 이에 그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의 꿈을 말하였지만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해 내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때 바로 곁에서 늘 섬기던 술 맡은 관원장이 2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바로 황제에게 말합니다.
[
9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창 41:9-13)
그러자 바로가 당장 요셉을 옥에서 불러왔고 요셉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고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요셉에게 그가 지난 밤에 꾼 꿈을 말합니다.
[
17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18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22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창 41:17-24)
그러자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합니다.
“그 꿈의 해석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왕께서 꾸신 그 꿈은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행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바로의 꿈을 해석해줍니다.
[
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소서
](창 41:26-33)
이때 바로 황제가 모든 신하들 앞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이처럼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그리고 요셉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나라를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로 임명하노라.”
그리고 바로는 곧바로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웠습니다. 이처럼 바로는 그를 애굽 총리로 세우고 그에게 애굽 전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세계적인 풍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풍년의 기간에 곡식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온 백성을 살리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물질이나 권력 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만일 사명을 받은 사람이 사명을 잃고 사리 사욕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는 그의 사명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요셉은 풍년 기간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7년의 풍년 후에 심한 흉년이 임하였고 가나안 땅에 살던 야곱 집안에도 흉년이 임하므로 결국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왔다가 그 모든 가족이 애굽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처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됩니다. 결국 요셉에게 주어졌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셉의 삶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특이한 삶의 특징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선으로 악을 갚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요셉은 야곱이 죽은 후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붙들고 있던 한 가지 삶의 원칙을 말하는데 그것은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의 이 고백은 그도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그렇게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14-21)
그렇습니다. 요셉은 17세부터 온갖 악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형들에게 따돌림과 미움과 시기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선으로 악을 대하였습니다. 즉, 당하면서 참았습니다.
그는 또한 보디발의 아내처럼 음욕과 정욕과 탐욕에 물든 사람이 그를 착취하거나 이용하거나 정욕의 대상으로 할 경우 어떻게 그 상황을 대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전히 선에 속하였습니다. 즉, 악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비록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참고 기다렸습니다.
또한 술 맡은 관원장처럼 은혜를 망각하는 자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여전히 주께 속하여 선을 행하였습니다. 이때 선을 행한다는 것은 악에 대해 함께 악을 저지르지 않고 그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요셉이 보일 때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요셉을 기뻐하여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하였다는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인생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은 야곱이 죽으면서 남긴 요셉에 대한 예언적인 유언에 담겨 있습니다.
[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창 49:22-26)
이렇게 악에 물들지 않고 도리어 인내하며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은 자가 그 비전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복음적인 신자의 삶의 특징인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삶은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님의 삶의 특징이었습니다.
[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9-24)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로 주께서 사랑하신 우리들이 주님으로 인한 덕과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
24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 2:24-25)
그러므로 바울은 동일하게 권면합니다.
[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9-21)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전 성취는 복음에 의한 신앙적 성품의 산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주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을 만큼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주께서 주신 비전이 성취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든 자들은 어떤 역경이 찾아오든 상관없이 그 비전 때문에 일관된 삶을 살아가면서 놀랍게도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즉, 주께서 주신 비전을 붙든 사람은 죽는 그 날까지 계속 달려갈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며 동시에 주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먼 훗날 요셉의 꿈의 성취를 보면, 그의 꿈은 그가 곡식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특히 그의 꿈의 성취는 가나안에 머물던 씨족으로 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흉년으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온 세상 사람들을 살려내었으며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때 다른 사람을 살려내게 되면서 그들에게 감사의 절을 받는 존재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백성들의 영광인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선으로 악을 갚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했을 때 형제들이 요셉에게 보인 참된 감사는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주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비전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공동체가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나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가운데 가장 복된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 사명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타냅니까? 바울이 대답합니다.
[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 4:7-10, 12)
이러한 자기 부인과 희생 가운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죄에 승리하게 됩니다. 이때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거나 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며 예수님께 와서 영생을 얻을 자들은 우리 앞에 와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참된 인정과 함께 감사를 표현할 것입니다.
“저 분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지난 자들의 삶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거룩한 삶과 성품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여생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명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계속 성장할 것이며, 그 성장에 맞게 우리 주께서는 계속 비전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의 삶의 과정에서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게 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우리에게 영원히 감사하는 우리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바울이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빌 4:1).
바울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들마다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그에게 감사하였고, 그들이 바로 바울에게는 영원한 기쁨이요 면류관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면류관을 얻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출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삶 (창세기 37:5-11)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 작성자 그리스도의보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