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추녀 끝에 떨어지고 요강 엎어놓은 과부집 담모퉁이에서 낫과 새끼 도막을 든 아낙이 농협서기 보고 슬쩍 피하는구나
농자금은 봄에 주고 겨울에 거둬들이는데 오늘 복골 양짓말 17호 중 늙은이 셋을 만났을 뿐
200년 전 강진 그해 가을 還子 받으러 나온 이속 나부랭이처럼 이 집 저 집 설치는 길에 토종개 다 어디 가고 발바리 몇 마리 기를 쓰고 짖어댄다
땅은 쇠고 사람들은 흩어졌구나
대밭집 젊은 양주 공사판 떠돌고 높은 뜰팡 미어진 창호지 문 열고 추곡수매 마저 하면 오라는 할애비 뒤에 서너 살짜리 손녀가 밭숟갈 물고 숨는구나
3990호를 죽여 다만 1호를 살찌운다는 당신의 田論처럼 아직 무쇠 같은 탕개가 농사꾼을 비틀어대고 있는 곳이 조선천지 복골뿐이겠으며 산천의 기름기는 누가 다 거둬 가는지요
날아가는 쇠기러기야 하늘 어딘들 길 없겠습니까만 쇠여물 끓이는 연기 따라 산을 내려온 어둠이 마을을 덮으면 캄캄한 땅 어느 곳에 나라가 있다 하겠습니까 .................................................................................................................
다시 茶山을 읽으며 2 / 이상국
아랫복골 김해 김씨 사백 년 울타리에 얼어터진 감이 겨울을 나고 있는데 늙은 소가 덕석을 입고 짚단을 씹고 있다
퍼내지 않은 우물은 나뭇잎에 덮여 썩고 감자톨 같은 아이들 담벼락에 붙어 양지달굼* 합니다
때로 겨울 안개가 길을 메우고 어쩌다 우체부가 지나갈 뿐인데 뻔히 내려다보이는 비행장에선 하루 두 번 서울 가는 비행기가 뜨는구나
이를테면 식민지 이승만 박정희 다 겪었어도 이렇게 사람의 씨가 마른 적은 없었다고 술판 끝의 늙은이들이 핏대를 세우며 죽어 넘어지면 상여 멜 사람 없음을 한탄하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 사는 땅이 얼마나 황폐한 곳인지요
당신께서도 농토의 주인은 오직 농사꾼과 나라뿐이라 했거늘 오늘 백만석꾼 천만석꾼 부지기수요 벼슬아치 또한 모두 그들 편이니 대체 농사꾼에게 나라가 있어 무슨 소용이 있다 하겠습니까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