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정현, 흥과 당당함이 아름답다
즐기며 싸우는 젊음이
아름다움을 알게해준 정현
피겨 김연아, 수영 박태환 이어 '우리가 될까' 하는 선입견 깨줘
승부 강박이나 주눅 없는 자부심… 즐기며 싸우는 젊음이 아름다워
김민정 시인 |
무술년(올해)에 마흔셋이 되었다. 앞자리가 1이었다가 2였다가 3이었을 때만 해도 나는 내 나이가 무서웠다. 제 나이답게 살아야 한다는, 어험, 기침 소리 같은 사회적 '말씀' 아래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갈 나이, 취직할 나이, 결혼할 나이, 아이 낳을 나이, 하여간 무엇을 할 적당한 나이라는 게 왜 이리 시시콜콜 많던지. 하루는 내가 제 나이껏 평범하게 살아주는 게 죽기 전 소원이라는 부모와 말다툼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둘이 이혼할 나이는 언제야? 둘이 죽을 나이는 언젠데? 싸가지가 바가지인 반문이었다지만 그 뒤부터 꽤 편해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 속엣말에 솔직해야겠구나. 안 그러면 내 속을 누구도 모르겠구나.
표현한다는 일의 귀함. 굳이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의 '있음' 그대로를 오롯이 드러내려면 주눅 들지 않아야 할 테고, 어린이처럼 천진해야 할 테고, 무엇보다 드러낼 그 '거리'들에 재미를 느껴야 할 텐데 그런 짜릿한 순간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스포츠 현장이 아닐까 한다.
일분일초도 미리 그려볼 수 없는 순간순간 육체의 움직임. 피 끓는 젊음의 원형(原型). 스포츠를 앞에 두고서는 우리의 독단이란 게 자주 속단으로 결론 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에서 과연 수영이 될까 했는데 박태환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과연 피겨가 될까 했는데 김연아가 나왔으며, 우리나라에서 과연 스켈레톤이 될까 했는데 윤성빈이 나왔다.
정현이 24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를 꺽고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전에 진출한 뒤 미소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
그래서 배울 수 있는 미덕이란 게 겸손함일 적이 많아 나는 스포츠를 사랑해왔고 이를 생(生)으로 사는 스포츠 선수들을 존경해왔다. 특히나 이번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를 오랜만에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나는 나이 앞자리가 4로 넘어가서도 여전히 잦아들 줄 모르는 내 안의 뜨거움에 안도했다.
경기 내내 코트를 오가는 공과 한 몸처럼 반응했던 건 이기고 짐에 촉수가 예민하기도 했겠지만, 실은 승부를 풀어내는 한 플레이어의 어떤 '태도'에 크게 감응한 연유가 더 컸다.
열혈 테니스 팬이라면 오래전부터 구슬로 꿰어 목에 걸었을 이름이지만, 세계 랭킹 1위였던 조코비치를 완파하면서 누구냐 너, 하는 팬들을 구름 떼처럼 퍼뜨린 그 이름, 정현. 코트 위에서 그는 우리가 전에 없던 에너지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뭐랄까, 테니스를 하는 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참으로 충만해 보였달까. 자부심은 자신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말을 증명해 보였달까. 그의 태도에는 승부에 대한 강박도, 자신보다 앞선 랭커에 대한 주눅도 느껴지질 않아 담백한 입맛으로 우리를 함께 즐기게 했다.
나라를 위해 명예를 위해 그러니까 그딴 목적을 위하지 않고 다만 저 자신의 흥(興)에 집중할 때 사람은 저렇게 당당해질 수 있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할 때 사람은 저렇듯 자유로워질 수 있구나, 그게 참 아름다운 거구나.
인생의 선배랍시고 우리가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침묵 가운데 거듦일 것이리.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김혜자 선생님이 일찌감치 말씀하셨듯, 알아서 잘하는 후배를 일단 때리고 볼 일이 아니라 혹여 흘리거나 놓치는 게 있다면 집어주고 들어주는 일이리.
실천적 방법이 궁금하다면 정현 선수의 경기를 반복해서 돌려보면 되리. 그가 파이팅에 넘쳐 점수를 낼 때 간혹 비치는 카메라 속 손뼉 치며 일어났다 앉곤 하는 여인, 해설자 설명대로 어머니라 하는 그 여인의 충분한 거리에서 보이는 차분한 파이팅을 흉내 내보면 되리. 그뿐이면 족하리. 잘 싸우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옳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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