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이야기]국제학생증 만들려다 서울대 교수님 되다.
우선 국제학생증을 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십 줄이 훌쩍 넘은 나이에 웬 학생증이냐구? 남들이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나이가 안 들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으니 한 번 만들어나 보자. 거짓말 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럽기는 했지만, 이집트에서는 학생증의 입장료 할인이 매우 유용하다고도 하고, 방콕 카오산에서처럼 카이로에서도 누구나 학생증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스마일리아 호텔의 '거멜'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데려다 준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윤선생이 호텔로 환전하러 간다길래, 나도 환전을 부탁해 놓고 거멜을 따라 나섰다. 택시를 타고 ISIC 사무실로 가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자, 여직원이 여권을 보자고 한다. 어? 이런 말 없었는데? 내 나이가 좀 찔렸다.
여권을 확인한 여직원이 학생증은 안 되지만 교사증은 된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컴퓨터로 만들어간 짝퉁 학생증을 몇 번 사용해 본 적이 있었지만, 카이로에서 멋지게 코팅된 진짜? 국제학생증을 가져 보려다가 진짜 국제교사증을 발급받았다.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직 익숙치 못하다. 가짜 학생증이 맘에 걸렸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근데 우습게도 졸지에 서울대학 교수님이 된 거다. 신청 서류를 작성할 때 직원이 알아보기 쉽게 서울에 있는 대학교Seoul, University라고 서류에 써 넣었는데, 직원이 그냥 학생Student을 선생Teacher이라고만 고쳤기 때문이다.
며칠 뒤 아스완 아부심벨 매표소에서, 내 뒤에 줄을 서 있던 유럽인 커플이 내 국제교사증을 유심히 보았었나 보다. 내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무얼 가르쳐?"
"응? 미술" 내가 미술선생이기에 당연 스럽게 대답했다.
"오우!!!" 너무나 존경스럽고 놀라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한국의 미술 교육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날씨도 더워서 행색이 후줄근한데다, 모자를 눌러 쓴 조그만 동양 녀석이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라니... 본의 아니게 명문대학 교수가 된 게 또 찔렸다.
이런, 수수료가 부족하다. 아직 이집트 돈에 감각이 덜 익숙한 모양이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이집션 파운드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50피에스타를 50파운드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하필 금요일이라 아래층 은행은 문이 닫혀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10달러만 환전을 부탁했다. 근데 이치들이 외국인을 보면 꼭 남겨 먹으려 한다. 잠시 후 환전을 부탁했던 바로 그 이집션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알고 보니 이 사람도 어느 호텔에선가 학생증을 만들려는 유럽인을 데리고 온 거였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나 그럴려구?’
거멜이 자기 집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며, 집에 아이가 셋이니 하면서 이런저런 가정사를 이야기한다. 그냥 집안 얘기가 아니고 팁을 달라는 소리였다. 나를 위해 수고를 해 주었으니 당연히 줘야겠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이집트 돈이 별로 없어 약간만 주고 말았다. 지금도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
밖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타고 이스마일리아로 돌아오니, 윤선생이 환전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영수증의 환율을 보니, 공항 환전소나 시내 환전소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만들어 온 국제교사증을 가지고 함께 아스완 가는 기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메트로지하철 표를 사고 들어가 타는 것까지 우리나라와 똑같았지만,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서 그야말로 찜통이다. 그래도 시간 정확하고 교통체증이 없어 좋다.
미단 타흐릴에서 네 정거장만 지나면 바로 람세스역이다. 열차 예매창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예지가 침대열차를 타고 싶어 했지만, 1등칸과 요금이 너무 많은 차이가 나기에 그냥 1등칸을 타기로 했다.
기차표 한 장 사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북새통을 이룰 땐 그렇다 치고, 지금은 줄 선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이사람 저사람 새치기하고 먼저 손을 뻗어 들이미는 게 임자다.


이집트에는 구석구석 경찰이 참 많기도 하다. 저 편에 서 있던 흰 제복의 경찰이 다가오더니, 우리 교사증을 다 걷어서 창구 직원아줌마에게 주며 기차표 예매를 도와준다. 이젠 긴 줄이 줄어들어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밖에 없어서 우리가 한다고 했지만, 굳이 자기가 해 준다며 과잉 친절을 베푼다. 그러고는 박시시적선,팁를 요구한다는 글을 많이 보았는데, 어라? 이 친구가 그냥 가 버린다.
이집트 경찰이 나의 기대?를 손상시킨다.
‘그래, 너무 고정된 선입견도 안 좋을 때가 있는 거야.’
근데 기차표를 자세히 보니 우리가 낸 요금보다 5파운드씩 작은 금액이 적혀 있다. 아줌마가 뭐라 뭐라 알아먹기 힘든 글씨로 티켓 위에 복잡하게 써 놓았지만, 시스템은 간단했다. 둘이 이렇게 협조하면서 조금씩 남겨 먹는 모양이었다.
그래, 결국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_-

헉헉,,, 해가 떠 오른 뒤로는 카이로의 날씨가 찜통더위로 변했다. 그래, 역시 이집트 여름 날씨가 이 정도는 돼야지. 근데, 더워도 너무 너무 덥다.
다시 메트로를 타기 위해 걸어가는 길에, 택시 기사들이 꽤나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어이, 어디 가?"
"미단 타흐릴. 신경 꺼, 우리 메트로 타고 갈거야."
택시기사 왈 "여기는 메트로 없어, 택시 타고 가야 돼."
지하철 입구 바로 옆에서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다른 기사들과도 계속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다니, 아무튼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그냥 웃어주고 타고 왔던 메트로를 타고 다시 타흐릴 광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역도 역마다 특색을 살려 멋지게 디자인해 놓은 곳도 많지만, 카이로의 역마다 보이는 모자이크 장식이 무척 아름답고 이국적이다.


해롱이의 배낭여행 http://lhr3333.web-bi.net/
첫댓글 생방송 같네요 ㅎㅎ잘 읽고 갑니다. 감사요~~^^
와...국제학생증이 아닌 국제교사증...넘 부러워요..^^....이건 교사아닌사람은 안되는거겠죠? ^^
저는 위에 쓴대로 미술선생이라서 당연 국제교사증이 됩니다만, 아무도 교사를 증명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
그래요? 가르치는 과목만 선택하면 된단 말이죠?? 그럼 난 도덕선생..
아뇨,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ㅎㅎ.잘 보고 갑니다.
우리 모두 이집트 가면 선생님 될수 있는거에요? ^^.... 다이빙선생은 없으니까 체육선생님 증으로....^^ 글 재밌게 읽어써요...
누구나 쯩을 만들어 사용해 보라는 뜻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일부러 속여서까지? 학생증이나 교사증을 만들라고 권장하고 싶지는 않네요. 잘 판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