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의 3주와 아브라함의 3일
*이 글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WA)가 발행하는 KMQ의 청탁으로 쓰여진 글로 KMQ에도 실린 글입니다.
I. 들어가는 말
“여러분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내 생명도 소중합니다... 한국군은 이곳(이라크)에서 나가 주십시오....” 김선일이 그를 붙잡은 이슬람의 무자헤딘들 앞에서 절규했던 내용이다. 그 모습은 알자지라 아랍방송을 통하여 지난 6월 21일 이른 아침 (한국 시간) 처음 방영되었고, 특별히 한국 텔레비전에 반복적으로 방영되어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 각인 되었다. 그 절규 내용을 기초로 하여, 어떤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교하기도 하였다. “그가 기독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신학교 까운 입고 졸업한 사실이 부끄럽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죽어야 한다.” 적지 않은 기독인들이 그 목사의 설교에 동감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선교사는 앞으로 선교훈련과정 중에 선교후보생들에게 순교연습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그 의견에 동의한 자들도 있었다. 김선일이 스테반처럼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외치며 천사와 같은 표정으로 죽었더라면 선교효과가 얼마나 컸겠는가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예수 그리스도의의 복음을 생명력 있게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는데, 그 기회를 아쉽게도 놓쳤다는 것이다.
김선일이 무자헤딘들에게 붙잡혀 있는 기간이 무려 3주나 된다. 우리는 그의 3주 동안의 전체 모습을 다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붙잡힌 곳에는 기독교 메스컴의 카메라가 없었다. 우리가 보았던 그의 모습은 그를 붙잡아 죽인 무자헤딘들의 카메라의 렌즈를 통하여 포착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모습이 3주 동안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는 3 주 동안 내내, 살려달라고 절규만 했겠는가? 사실, 3주라는 기간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나는 우리가 보았던 단편적인 모습 하나만을 근거로 하여 그를 쉽게 판단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실례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고인의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는 3주 동안에 걸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고인의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품고 계셨을까?
나는 여기서 스테반의 최후의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를 생각하여 본다. 누가도 사실 스테반의 순교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다름 아닌 누가의 스승인 사도 바울이 있었다. 사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졌던 사도 바울은 당시 스테반의 설교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를 죽이는 자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짧지 않은 설교 내용(행 7:2-53)을 청종하였다. 때가 되매, 그가 스테반이 증거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 회심하게 되었고, 그를 대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 누가는 이른바 사도행전을 통해 온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그의 감동적인 최후의 설교를 들려주는 가운데 그의 최후의 모습, 즉 천사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게 되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인자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가운데 그를 환영하고 계셨음도 전해 주었다. 김선일이 3 주 동안에 걸쳐 체포되어있던 동안 함께 있었던 무자헤딘들 가운데 바울 사도와 같은 믿음의 제자들이 나와, 김선일을 온전히 대변하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바람이 현실과는 거리가 아주 멀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가능성을 놓고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나는 두 주 동안의 고국 방문 중, 즉 8월 첫 주의 선교한국과 둘째 주의 이슬람선교 포럼에 참가하던 중 여러 동료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김선일의 죽음에 관련된 질문을 받고 나름대로 답을 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나의 답을 듣고, 그 답을 글로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격려하여 주는 자들도 있었다. 사실, 나는 김선일의 3 주 동안의 생각과 마음을 감히 대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줄고 준비하여 왔다. 어떤 한국인도 김선일이가 붙잡혀 있는 3 주 동안에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대변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널리 양해하여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먼저 히브리서 기자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3일 길을 걷는 동안 아브라함이 가졌던 생각을 어떻게 대변하였는지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품었는지에 대하여 야고보서 기자가 어떻게 대변하였는지에 대하여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II.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걸었던 3일 길
하나님께서 브엘세바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3일 길이 되는 모리아산까지 걸어 간 다음 바치도록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당장 바치라고 하지 않고,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까지 3일 길을 걸어 간 다음 바치라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3일 길을 걸어 간 다음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을까?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담대하고도 명쾌하게 아브라함의 마음을 대변하였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 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통하여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모순 된 명령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 서로 충돌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받으신 다음 다시 살려 주실 것을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 서는 아브라함의 3일 길은 그의 부활의 믿음을 다지고 다지는 길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3일 길을 걷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겠는가? 그 점에 대하여 야고보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2:21,23)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그의 두 사환과 이삭과 더불어 3일 길을 걸었을 때, 그의 진정한 길동무는 이삭도 아니고, 두 사환도 아니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걸었던 3일 길에서 하나님의 벗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히브리서 기자나 야고보서 기자도 아브라함과 함께 그 3일 길을 동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들은 아브라함의 생각과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아브라함의 전 생애와 더불어 특별히 다음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을 대변하였을 것이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혼자서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원문에 의하면, 예배하고 돌아오겠다는 동사가 복수 동사로 표기되어 있다. “나와 내 아들 이삭이 함께” 돌아오겠다는 말씀이다.
III. 김선일이 무자헤딘들에 의해서 붙잡혀 있던 3주일
히브리서 기자와 야고보서 기자의 대변은 각각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름대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의 납치 사건이후, 줄곧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3주 동안의 삶을 이해하려고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여 왔다. 나는 김선일이 납치되어 죽임을 당하기 직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그리고 내가 지난해 5월부터 금년 4월초까지 그를 만났던 기억을 더듬어 보고, 그리고 그가 3 주 동안에 걸쳐 남긴 세 번의 비디오테이프 내용을 살펴보는 가운데 그의 마음을 대변하여 보려고 한다.
김선일은 납치되기 직전까지 이라크한인연합교회 주일 강단을 6번에 걸쳐서 계속 지켰다. 이라크를 비롯하여 아랍권의 주 공휴일은 일(日)요일이 아니라, 금(金)요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랍권 한인교회는 금(金)요일에 교회 대예배를 드린다. 이라크한인연합교회 대예배는 매주 금(金)요일 오후 1:00에 시작한다. 그 교회 담임 강부호 목사가 이라크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외무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아 요르단으로 나와 있는 동안, 김선일이 담임목사를 대신하여 설교자로 세움 받게 되었다.
김선일은 4월 23일, 30일, 그리고 5월 7일, 14일, 21 일, 28일, 이렇게 6번에 걸쳐 이라크한인연합교회 주일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3일이 지난 후, 즉 5월 31일(月)에 붙잡혔다. 분명히, 그는 6월 4일의 예배를 기억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를 대신하여 설교할 자와 예배에 참여한 교우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6월 4일 예배는 그 교회 담임 강부호 목사가 바그다드를 잠시 방문하여 직접 인도하였다. 그러나 김선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6월 11일 예배, 18일 예배, 이렇게 두 번의 주일 예배도 기억하며 위하여 기도하였을 것이다.
김선일은 부산에서 전문대학과 신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안양의 어느 신학교 재학 중, 아랍권 선교사로서 자신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 신학교를 중퇴하였다. 그리고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외대) 아랍어과 3학년에 편입하였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외대 통역대학원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그 대학원 지도 교수도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는 신실한 기독교인데, 김선일의 믿음과 비젼은 좋지만, 그의 아랍어 실력이 다른 학생들에 비하여 크게 뒤떨어졌기에 합격시킬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나에게 개인적으로 알려 주었다. 사실,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4년 동안에 걸쳐 전공할 뿐만 아니라, 재학 중 적어도 1년 이상 동안 해외 연수를 하였다. 그러나 김선일은 고작 2년밖에 아랍어를 공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불합격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김선일은 지난 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준비를 하던 중, 즉 5월 어느 날, 중동선교회 웹싸이트를 통하여 이라크의 가나무역이 그 직원들을 자비량 선교사로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하고 응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중동선교회 본부장으로 김선일을 처음 만났다. 그는 나의 대학 후배로서 나의 선교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교수님들과 선배들로부터 잘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중동선교소식지와 웹싸이트에 올려놓았던 나의 글들을 다 읽었다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력과 간증을 듣고 보니, 아랍권 선교비젼을 갖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꾸준히 준비하여 온 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죽임당한 이후에 공개된 여러 글 등을 통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 분들이 적지 않은 줄 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중동선교회 이름으로 그가 자비량 선교사로 파송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가 나를 만난 직후, 5월 어느 날에 어느 웹싸이트에 올렸던 글에서 “6월 초 중동선교회를 통해서 이라크에 선교사로 가게 됐다.”고 밝혔는데,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서 널리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와 김선일은 그가 몸담게 될 가나무역으로부터 어느 정도 현지에서 경험을 갖은 다음 선교사 파송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어 그의 파송계획을 뒤로 미루었다. (중동선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본부장의 추천을 받아 이사회가 심의 결정하는데, 김선일의 경우에는 이사회에 추천하기 직전에 가나무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기에 이사들은 그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김선일은 선교사로 파송을 받지는 않았지만, 예정대로 바그다드로 나와 가나무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나도 국내 사역을 지난해 말에 마무리하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나와 김선일은 교회와 그의 일터인 바그다드 가나 무역 사무실 등에서 금년 1월부터 4월 초까지 지속적으로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아랍어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충분히 실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마음껏 실습할 수가 있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기뻐하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는 6주에 걸쳐 한인교회에서 매주 설교를 했고, 그의 사장 김천호 집사를 비롯하여 동료 직원들이 그 예배에 참여하여 그의 설교를 들었다. 언론에 공개된 그의 이메일을 통하여 그의 이라크 생활에 어려운 점들을 조금씩 언급하는 가운데 그의 이라크 생활이 쉽지 않았던 점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는 그의 이라크 생활을 나름대로 즐겼던 점도 있었던 것 같았다. 뉴스에 보도 된 대로, 그는 그의 직장 동료인 이라크인 여직원과 한때 데이트를 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터키인이며, 그가 그녀와 결혼하여 터키 선교를 꿈꾸었다는 사실은 잘 못된 것이다. 그녀는 바그다드 아랍교회 성가대원이며, 청년부에 속한 이라크인 자매였다. 나도 그 자매와 잠시 이야기하여 본 적이 있는데 인상이 아주 좋았다. 여기서 내가 그의 데이트 이야기까지 거론한 것은 그가 얼마나 이라크인들을 사랑했고, 그의 전 생애를 이라크 선교를 위해 헌신하였는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이제 김선일이 막 붙잡혔을 때의 모습, 즉 금년 6월 첫 주의 모습을 함께 생각하여 보자. 그 모습을 담은 테이프가 AP에게 전달되었지만, 제 때에 방영되지 않았고, 뒤늦게 방영되었다. 그것마저도 편집된 가운데 방영되었음이 뒤따라 밝혀지게 되었다. 그 때 그가 무자헤딘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모습은 아주 당당했고, 그의 발언도 아주 명료하였다. AP가 그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하여 놓고도 곧바로 방영하지 않았던 이유들 중의 하나가 그가 납치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그의 발언과 그의 모습은 아주 당당했다.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먼저 방영된 그의 두 번째 모습, 즉 초라하고 초췌한 그의 모습이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뒤따라 방영된 그의 당당한 첫 번째 모습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선일이 미국과 부시에 대하여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던 점을 인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김선일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게 욕을 돌렸던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김선일이 미국과 부시에 대하여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신념일 수도 있고, 또한 그를 붙잡은 자들의 호감을 얻어 살아나가고 싶은 생각의 결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게 욕을 결코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김선일이 만일에 이슬람 신앙고백을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몇몇 아랍인들에게 던져 보았다.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그가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슬림은 전시가 아니라면, 즉 상대 무슬림이 무기를 들고 있지 않으면, 결코 죽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파키스탄인은 그가 납치되어 있는 동안에 3명의 참수 사건을 목격하고, 그는 자신이 신실한 무슬림인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수 없이 기도를 하였고, 그 결과 살아남았다고 증언하기도 하였다. 김선일은 그의 목숨에 연연하여 이슬람 신앙고백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김선일은 내가 바그다드 한인교회 설교자로 한번 부름을 받고 설교하였을 때, 나의 설교를 듣기도 하였다. 그는 이라크복음주의 신학교 개교식(3월 19일)에도 참여하여 필자의 아랍어 메시지도 들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나를 그의 선배로 여기며 늘 나에게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아주 반가운 눈길을 주고받았고, 앞으로 더 좋은 교제를 가져 보려고 기대를 크게 갖고 있었다. 나의 뇌리 속에 각인된 김선일의 모습은 아주 강건한 모습이다. 바그다드 1월은 꽤 쌀쌀한 날씨다. 대부분 사람들이 겨울옷을 입고, 때로는 외투를 입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선일은 그때도 여름처럼 반팔 옷을 입고 다녀 정말 부럽기도 하였다.
김선일이 지난 4월 23일부터 5월말까지 바그다드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지만, 그동안 나는 요르단에 나와 있었기에, 그의 설교를 직접 듣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죽임 당 사건을 통하여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듣고 있다. 그는 이 곳 중동의 영혼들을 몹시 사랑했다.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사도들 중에 야고보 사도가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의 동생 요한과 동료사도들이 감당하였다. 우리도 김선일 형제가 감당하지 못다 한 중동선교사역을 우리가 계속 감당해야겠다.
사실, 알자지라방송을 통해 방영되고, 한국 방송을 통해 반복적으로 방영되어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었던 김선일의 모습, 그를 살려달고 절규했던 모습은 그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참수를 당하였던 모습이다. 감사하게도, 그의 마지막 모습도 무자헤딘들의 비디오 카메라에 잡혀 언론에 소개되었다. 국내에서는 접속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여 그 모습을 본 자들이 많지 않은 줄 안다. 나도 그의 참수 장면 비디오를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김선일과 미국인 버그의 참수 모습의 비디오 테이프를 각각 유심히 살펴보았던 나의 후배 김동문 목사로부터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인 버그씨는 그가 참수당하기 직전에 큰 소리를 지르며, 그의 마지막 분을 크게 표출하였다. 그런데 김선일은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의 영혼을 온전히 주께 맡긴 모습이었다. 그가 참수 당하기 직전의 얼굴에도, 그리고 그의 목이 잘려진 후의 그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 당하기 직전 밤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후,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눅22:42)라고 기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다음 날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27:46)라고 외치셨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는 기도를 드린 후 운명하셨다. 김선일이 그가 운명하기까지 최대한 살아남아 보려고 안간 힘을 다하여 노력했던 것 자체를 그렇게 비웃으면 안 될 것이다. 김선일도 끝내는 예수님처럼, 스테반처럼, 그의 영혼을 주께 맡기며, 그를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는 가운데, 평온히 그의 최후를 맞이하였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그의 죽음의 잔을 옮겨 달라고 부르짖고, 어찌하여 그를 버리시냐고 외쳤던 모습도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달라고 기도하고,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도 그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김선일이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반복적으로 방영되었던 그의 모습, 즉 살려달라고 절규하였던 모습이나 그가 참수를 당하면서, 그의 영혼을 주님께 온전히 맡겼던 모습 모두 다 그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급히 철회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실제로 철회하였다면, 그는 결코 죽지도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주님과 교회를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말하기 보다는 대한민국을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불러일으킨 자들은 다름 아닌 적 그리스도적인 이슬람의 무자헤딘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그가 몸담았던 이라크한인연합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 첫 강단을 지켰던 김사무엘 목사가 목회 중, 급성 혈액 암에 걸려 금년 초에 소천하였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김선일의 장례예배 설교자였던 하용조 목사는 이라크한인교회 담임 강부호 목사로부터 김선일이 바로 그 이라크한인연합교회 주일 강단을 여섯 번에 걸쳐 지켰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리고 그가 마지막 참수당하기 직전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확인한 후, 그를 순교자로 확정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을 통하여, “우리는 이라크인을 사랑한다!”는 용서의 메시지를 온 세계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IV. 나가는 말
김선일의 무자헤딘들에게 붙잡혀 있었던 3주라는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는 3주 동안 내내 그를 붙잡고 있던 자들에게 살려 달라고 절규만 했다고 단정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김선일과 같은 입장에 처하여 보지도 않았고, 그와 같이 온 몸을 다하여 기도하여 보지도 않았다.
김선일은 3주 동안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고, 그의 기도를 받으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살려주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마침내, 그는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입성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를 잡아 죽이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예수님처럼, 스테반처럼 기도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도록 말씀하신 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벗이 되어 주셨던 것처럼, 김선일의 벗이 되어 주셨을 것이다.
나는 김선일의 3 주 동안의 삶을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감당했던 3 일 동안의 시험 기간과 감히 비교하여 보았다. 어떻게 김선일을 아브라함과 감히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들이 아브라함의 3일 동안과 김선일의 3 주 동안이라는 기간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좋겠다. 김선일이 아브라함 보다 더 혹독한 시험을 치렀던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천국에 먼저 들어가 살고 있는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김선일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를 대견스럽게 맞이하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아브라함을 뒤이어 천국에 들어 온 김선일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희가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